주남동(周南洞) 이름 변천사
*임진왜란(1592~1598) 때는 울산군 서면에 속했는데, 亂後 때의 功으로 로 昇格.
'1599년(선조 32) 5월: 울산도호부 서면 屬
'1609년(광해군 1): 울산도호부 서면 웅촌리(熊村里)屬
1672년(현종 13): 울산도호부 웅촌면(熊村面주남리
'1702년(숙종 28): 울산도호부 웅촌면 주남방(南)
1749년(영조 25, 학성지): 울산도호부 웅촌면 주남리(南)
1765년(영조 41), 1771년(영조 47), 1774년(영조 50): 웅촌면 주남리
1789년(정조 13, 호구총수): 주남리(周南里)
1795년(정조 19), 1825년(순조 25): 주남리
'1840년(헌종 6): 주남리(周南里)
'1849년(헌종 15): 웅촌면 주남리(周南里)
*1889년(고종 26)고연리 대대리와 주남리 용당리를 분계로 웅하면과 웅상면으로 분면시 웅상면에 속함(추정) )
1889(고종 26) 1월: 웅상면(熊上面) 주남리
1895년(고종 32, 영남읍지): 울산도호부 웅상면 대주리(大周里), 주남리
1895년 윤5월 1일(6월 23일) 23부제 실시 때 도호부에서 군으로 개편, 동래부에 속함
1895년(고종 32) 윤5월: 동래부 울산군 웅상면 대주리, 주남리
*1896년 8월 13도제 실시로 경상남도에 속함
1896년(고종 33) 8월: 경상남도 울산군 웅상면 대주리, 주남리
1906년 9월 지방 행정구역 개편 때 웅상면이 울산군에서 양산군으로 이속
1906년 9월: 경상남도 양산군 웅상면 마을명 不知
1911년(조선지지자료): 양산군 웅상면 대주동(大周洞), 소칠리(所七里), 주남동(周南洞)
1912년(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 양산군 웅상면 대주동, 주남동, 삼방동(三洞)
1914년 4월(신구대조 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 지방 행정구역 개편 때 주남동과 대주 동(大周洞) 일부를 병합하여 경남 양산군 웅상면 주남리
'1917년 10월 1일: 경남 양산군 웅상면 주남리
1991년 11월 20일(군조례 제1288호): 웅상면이 읍으로 승격하여 양산군 웅상읍 주남리 1996년 3월 1일(법률 제4994호): 양산군이 시로 승격되어 양산시 웅상읍 주남리
'1998년 4월 1일(시조례 제108호): (덕계출장소 설치·관할) 양산시 주남리
'2004년 1월 3일(시조례 제340호): (웅상민원출장소 설치·관할) 양산시 주남리
'2007년 4월 1일(시조례 제571호): (웅상출장소 설치·관할) 경남 양산시 소주동 (주남동) 자연마을에는 안터(基 사기점 서남쪽에 있는 마을), 담때(담뒤, 당산 동쪽에 있는 마을), 당산(堂山; 안터 동쪽에 있는 마을), 사기점(器, 당산 서북쪽에 있는 마을), 삼뱅이(三, 삼방, 안터 동남쪽 세 봉우리 밑에 있는 마을로, 한국전쟁 (6.25) 때 없어졌다), 상남上 주 남 위쪽에 있는 마을로, 현 상동마을), 중말(중마, 사기점 남쪽에 있는 마을) 등이 있다.
년도별 주남리 이름 변천사
① 조선 전기 ~ 임진왜란 이전
울산도호부 서면 지역 소속(주남 명칭은 아직 불명확)
② 임진왜란 이후 (16세기 말~17세기)
1599년: 울산도호부 서면 소속
1609년: 웅촌리(熊村里)소속
1672년: 웅촌면 주남리(周南里)‘주남’ 명칭 등장
③ 18세기 (숙종~정조)
주남방(南) → 주남리(周南里)로 정착
1789년: 주남리(周南里)확정 표기
④ 19세기
계속 웅촌면 주남리유지
⑤ 1895년 행정개편 (23부제)
울산도호부 → 울산군
동래부 울산군 웅상면 주남리
⑥ 1896년 (13도제)
경상남도 울산군 웅상면 주남리
⑦ 1906년
웅상면이 양산군으로 이속
→ 경남 양산군 웅상면 주남리
⑧ 일제강점기 (1910~)
1914년: 주남동 + 대주동 일부 병합
→ 양산군 웅상면 주남리로 통합 확정
⑨ 현대
1991년: 웅상면 → 웅상읍 승격
1996년: 양산군 → 양산시
2007년: 행정동 개편 → 양산시 소주동(주남동)
주남리(周南里) 연혁
주남리(周南里)는 본래 조선 전기 울산도호부 서면에 속한 지역으로, 임진왜란 이후 그 공로로 행정적 위상이 정비되면서 점차 독립된 리(里)로 자리 잡게 되었다.
선조 32년(1599)에는 울산도호부 서면에 속하였고, 광해군 원년(1609)에는 웅촌리(熊村里)에 소속되었다. 이후 현종 13년(1672)에 이르러 웅촌면 주남리(周南里)라 칭하게 되어 ‘주남’의 지명이 비로소 문헌에 나타난다.
숙종·영조 연간에는 주남방 또는 주남리로 기록되며, 정조 13년(1789) 『호구총수』에 주남리로 명기됨으로써 지명이 확립되었다. 이후 조선 후기 전 기간 동안 웅촌면 주남리로 지속되었다.
고종 32년(1895) 지방제도 개편으로 울산도호부가 울산군으로 개편되면서 동래부에 속한 울산군 웅상면 주남리가 되었고, 이듬해 13도제 실시로 경상남도 울산군 웅상면 주남리로 편제되었다.
광무 10년(1906) 지방 행정구역 개편 시 웅상면이 양산군으로 이속됨에 따라 경상남도 양산군 웅상면 주남리가 되었으며,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주남동과 대주동 일부를 병합하여 주남리로 확정되었다.
이후 1991년 웅상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양산군 웅상읍 주남리가 되었고, 1996년 양산군의 시 승격으로 양산시 웅상읍 주남리가 되었다. 2007년 행정동 개편에 따라 현재는 양산시 소주동 관할의 법정리인 주남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주남리(周南里) 연혁 정리
주남리(周南里)는 본래 조선 전기 울산도호부 서면에 속한 지역으로, 임진왜란 이후 행정 정비를 거쳐 독립된 리로 형성되었다.
선조 32년(1599) 서면에 속하였고, 광해군 원년(1609) 웅촌리에 소속되었으며, 현종 13년(1672) 웅촌면 주남리로 기록되어 지명이 정립되었다.
이후 숙종·영조·정조 연간을 거치며 주남리로 확정되어 조선 후기 내내 유지되었다.
고종 32년(1895) 지방제도 개편으로 동래부 울산군 웅상면 주남리가 되었고, 1896년 경상남도 울산군에 속하였다.
1906년 웅상면이 양산군으로 이속되어 양산군 웅상면 주남리가 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현재의 주남리로 확정되었다.
이후 웅상읍 승격과 양산시 편제를 거쳐 오늘날 양산시 소주동 관할 주남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조선 전기] 울산도호부 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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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9 광해군] 웅촌리(熊村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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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2 현종] 웅촌면 주남리(周南里) ← 지명 최초 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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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 고종] 동래부 울산군 웅상면 주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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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 경상남도 울산군 웅상면 주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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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 경상남도 양산군 웅상면 주남리 ← 양산으로 이속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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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 주남동 + 대주동 일부 통합 → 양산군 웅상면 주남리로 확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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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행정동 개편 → 양산시 소주동(주남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