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괜찮은 영화 한 편을 봤습니다. 이번 아카데미에서 덴젤 워싱턴에게 남우 주연상을 안겨준 영화, '트레이닝 데이'. 극장에서 보려고 했는데, 개봉시기를 놓치고 이제야 DVD로 보게 되었습니다.
영화의 내용은 신참 형사 에단 호크가 형사로 입문하기 위해 하루 동안 마약 단속 반장 덴젤 워싱턴에게 견습을 받는 과정을 따라갑니다. 이 시나리오의 최대 매력은 두 형사의 하루를 따라가는 동안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해진다는 겁니다.
마약 단속 형사로서 악당들을 무자비하게 때려잡는 민완 형사, 알론조. (덴젤 워싱턴 분) 분명 그는 정의의 사자인듯 보이지만 그는 세상의 악을 퇴치하기 위해 그 스스로 악당이 되는 것도 개의치않아 하는듯 합니다. 그리고 신참 형사 에단 호크는 그의 선임 반장의 행각을 보며 과연 형사와 악당의 경계는 어디인지 혼란을 느끼게 됩니다.
자세한 줄거리는 직접 보실 분을 위해, 생략하구요. 제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크게 와닿았던 대목은 악당같은 형사의 생활에 회의를 느끼는 호크에게 덴젤 워싱턴이 하는 대사입니다.
'내게 문제가 있다는건 알아. 분명 네가 생각하는 정의는 이게 아니었겠지. 하지만 내 방식이 싫어서 네가 여기서 형사를 포기하면, 그건 최선은 아니지. 차라리 나처럼 비열해지고 악랄해져서 형사 반장이 되라구. 그리고 나서 내부에서부터의 개혁을 해나가면 되잖아? 이 바닥이 싫다고 먼저 등돌리지는 말아.'
이 이야기는 어려서부터 제가 자주 한 고민의 대목을 정면으로 건드립니다. 자, 어떤 사람이 자선 사업가가 되는게 꿈이라고 칩시다. 그에게는 1년에 1만원을 10만원으로, 10년이면 1000만원으로 불릴 재주가 있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그는 1년간 모은 10만원에서 3만원을 갖고 남을 도와야 할까요? 아니면 그 돈을 계속 투자해서 10년 뒤, 1000만원을 모았을때, 그때에 300만원을 기부하는게 옳을까요?
경제의 논리로 보면 후자가 더 옳은 선택으로 보입니다. 더 많이 벌어서 더 크게 남을 도울수 있을때까지 기다리는게 현명하다... 하지만 실생활에서 보면 10만원이 생겼을때 3만원을 기부하지 못하는 사람이 1000만원이 생겼다고 300만원을 내놓지는 못하는것 같습니다. 즉, 요는 얼마의 돈을 내놓느냐가 아니라, 돈을 내놓으려는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 이지요.
그렇게 보면, 알론조 형사의 논리는 이렇게 반박할 수 있겠군요. 신참 형사로서 정의를 바로 세우지 못하는 사람은 나중에 형사 반장이 되어서도 정의를 구현할 수 없다. 아니 오히려 위로 올라가는 과정에서 그 자신 부패의 고리로 변하기 쉽겠죠?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현재 자신의 마음 상태인것 같습니다.
갑자기 시트콤 피디가 웬 도덕론인가, 의아해 하실 분...
사실 이 얘기는 제가 요즘 하는 고민의 연장선에서 나온 얘기랍니다.
방송을 2주간 쉬면서, 저는 새로 시작한 '뉴논스톱 2'에 대한 의견을 수렴중입니다. 그 중에서 이런 방송 매체 비평을 접했습니다. '뉴논스톱은 그만 STOP!' 그리고 <너, 뉴논스톱 보냐?>라는 글에 대한 반박글들... 무비 위크에 실린 뉴논 비평문...
그리고 많은 방송 비평 기사에서 뉴논스톱은 허무맹랑하고 현실을 왜곡하는 시트콤으로 비쳐지고 있더군요. 그리고 대학생들의 고민과 현실인식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많고... 어떤 시각에서는 제가 약간의 저질 문화 상품을 생산해내는 주체로 비쳐지고 있다는 자각이 드는 순간, 무척 놀랐습니다.
저는 MBC에 입사하면서, 시사 교양 제작국과 예능 제작국 사이에서 고민하다, 제 방식대로 세상속에서 제 몫을 찾아가는 것은 사회 고발 프로에서 정의를 찾아나서는 것 보다, 코미디가 주는 웃음의 틀 안에서 세상의 의미를 찾아봐야지... 하는 것이었는데, 일하는 과정에서 저도 어느새 비판받는 제도권의 일부가 되어버렸다는게 못내 서글퍼지는군요.
세상을 살아가며 가장 어려운 점은 흑과 백의 경계를 긋는 것 같습니다. 살아가며 자신있게 선의 영역에서 살고 있다고 말하기가 점점 힘들어지는게 덧없이 먹어가는 나이 탓일까요? 한때는 젊다는 혈기 하나로 정의의 중심에 서있다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흠... '트레이닝 데이'를 보면서 한 고민에서 시덥잖은 푸념이 나왔군요. 이제 내일은 '일렉션 데이'죠? 전 제가 세상의 선인지 악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내일 제가 행사하는 투표로도 그것이 정의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가 싫어서 투표도 거부한다... 그렇다면 나중에 세상에 대해 불평할 권리도 없어지겠죠? 선택의 의무는 방기하면서 불평의 자유를 누릴수는 없으니까... 여러분, 우리 모두 투표합시다.
그리구... 뉴논은... 앞으로도 계속 변화할 것입니다. 한때 문화 비평의 대상도 되지못했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의 관심은 고마울 뿐이니까요.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