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식량과 핸드폰과 카드 그리고 만 원짜리 몇 장을 넣으며 대문을 나섰다. '이런 기분 오랜만이네'라는 생각을 하며 골목을 지나 사당역 가는 길 시간이 달랑달랑 늦을까봐 택시를 타고 교대역으로 향했다. 왜 그렇게 신호들이 많던지 교대역 1번 출구에 박혜수씨 김윤희씨 김미숙씨가 기다리고 있었고 잠시 후 김경란씨와 오은선씨와 수유역에서 버스가 도착하여 이승형씨와 박미경 장혜선씨 내변산으로 향했다.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잔잔한 '영상' '그대 그리고 나' 노래를 들으며...김경란씨가 사온 김밥과 박혜수씨가 구워온 계란을 먹고 그대로 퍼져서 잠이든 박미경씨처럼 안전벨트로 이중 확보를 하고 잠을 자려다가 포기하고 의자를 뒤로 재껴서 편안하게 숨을 쉬었다.
차는 서너 시간 고속도로를 달려 우리의 목적지 내변산 초입 남여치에 내려주었고 우리들은 호젓한 산길 잎이 퇴색하고 무채색이 되어가고 있는 산길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초록색의 잔해들이 곳곳에 남아 있지만 뜨거웠던 여름은 없다 추울까봐 입었던 옷은 올라가면서 하나씩 가방 속에 집어넣으며 산길을 올라가는데 후두둑 이마에서 땀이 번져서 모자를 벗었다. 앞에 가는 오은선씨는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같은 속도록 꾸준히 걸어가고 있었다. 한 시간을 산행을 하고 월명암 절에 도착하여 마당에 서성이고 있을 때 나무에 달려있는 주황색 감이 예뻤다. 몇 명은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고 삽살개 세 마리도 마당에 서성였다.
오랜 역사를 기억하고 있을 아름 들이 나무들과 종 그리고 절의 기와지붕들 주변에 산사의 청정함이 있었고 언젠가 연꽃이 가득했던 연못은 몇 개의 풀들이 떠 있을 뿐 흐릿한 물이 미동도 하지 않았고 하늘만 담겨있었다.
길 한쪽에 자리를 잡고 여러 가지 밥과 반찬 떡 커피 과일은 소박하고 좋았다 아프다고 밥 먹는 것 구경만 한 이승형씨는 오은선씨가 가져온 식혜 한 모금 받아 마시는 것으로 점심을 대신했다.
구비 구비 산길을 돌아 잎 떨어진 나무들이 있는 산길을 걸어 올라가는데 오른쪽 까마득한 산 아래에서 바람이 소나무를 흔들면서 자신의 존재를 소리로 알렸다. 표현할 수 없는 나무들이 움직이는 소리는 연주곡처럼 듣기가 좋았다. 어느 해 지리산 산장에서 밤새 들어내야만 했던 아우성치는 소리보다는 미미하고 들릴 듯 말 듯 하게 작았지만 그 나무 흔들리는 소리를 들으며 오은선씨 박헤수씨 박미경씨 김미숙씨 장혜선씨 그리고 아래에 김경란씨 김윤희씨 이승형씨가 순서가 뒤바뀌기도 하면서 걸어올라 가고 있었다. 앞서 가는 박미경씨는 “김형일씨와 산바라기 사람이 죽어서 일주일동안 술을 먹어서 배가 나와서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며 올라가고 있었다. 김형일씨와 소련 엘부르즈를 같이 갔었는데 좋은 사람이었다 겨울 토왕에서 사고가 날 때 그를 보았었는데 다시 볼수없다는 것은 섭섭했다 촐라체 그 산은 마음 아프게 하는 산으로 변했다.
이따금씩 호수도 보이고 산의 곳곳에 들어난 바위들도 보이고 어떤 산쟁이 들이 저 바위에 길을 낼 곳이 없을까? 눈여겨보았음직한 바위들이 그곳에는 듬성듬성 많아서 "이 장비면 못가는 곳이 없다"라던 어느 선생님의 말도 생각이 나기도 했지만 우리가 마주한 바위들은 푸석한 바위였다. 가을 가뭄으로 물이 많이 빠져서 바닥에 고인 선녀탕 앞에서 쉬며 우리는 커피를 마시고 웃기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웃다가 우리는 다시 배낭을 메고 호수 가를 걸어가면서 “언니 고기도 없는 것 같애”라는 박미경씨의 말을 들으며 바라본 선녀탕에 앞산이 내려앉아 호수에 산이 거꾸로 보여서 요세미테에 있던 밀러래이크를 생각했다 하프돔 앞에 있는 호수에는 그대로 거울을 보듯이 보였던 거꾸로 보이는 하프돔을 보면서 동계하프돔을 어디로 올라갔을까? 생각을 하며 사진을 찍고 걸어가다 낙석으로 길이 막혀서 되돌아 왔었다. 이번에 방영이 되어 다시보기로 보았더니 까만 선이 흐르는 왼쪽으로 그들은 올라가는 장면이 보였다 호수의 가장자리로 난 길을 따라 앞뒤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고 산을 넘어가니 직소폭포가 보였다.
날이 가물어서 폭포는 수도꼭지 틀어놓은 것처럼 소량의 물이 떨어지고 있었고 새로 만든 쉼터는 별 모양이어서 어렸을 때 뽑기 생각이 난다며 별모양의 안쪽에는 바늘에 침 발라서 긁어야 한다는 김경란씨의 말도 들렸다. 직소폭포를 지나며 박미경씨에게 부안 고미영씨 있는 곳이 여기서 가까운지를 물으며 가고 싶다는 말을 했다. "부안IC 가까운 곳에 있어요." 나는 속으로 갈 시간이 날까? 여기서 서울 가는 시간도 한참 먼데... 라는 생각을 하며 낮게 물이 보일 듯 말듯 흐르는 계곡을 지나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 평지를 빠르게 걸을 때 행복이 밀려왔다. 나중에 “왜 빨리 갔느냐?” 는 질문을 받았는데 “그냥 좋아서“가 나의 대답이었고 그들은 내가 급한 볼일이 있다고 생각했다는 말을 들었다.
오르막이 오면 몸이 먼저 알았다 '아줌마 운동 안했지' 오르막에서 허벅지가 나에게 싸인을 해서 천천히 올라가며 집에 두고 온 스틱을 생각 했다. 앞에 가는 사람들은 꾸준히 걷고 있었다. 멋진 바위가 보이고 바다도 덤으로 보였다. 언젠가 바라보았던 이 길 그들과 바닷가에서 집나간 며느리가 돌아온다는 전어와 닭발을 구워먹으며 비박을 하고 다음 날 바다에서 수영 할 사람과 산에 갈 사람을 나눌 때 '여름이 끝나 가는데'라며 유혹하는 푸른바다를 뒤로하고 산을 택했던 어느 해 여름이 생각이 났다.
산 위의 바위에 앉아서 동양화의 여백 같은 무색의 바다를 보며 복잡하게 생각하면 안 될 것 같다. 자유로워지고... 순수해지고 아이처럼 아무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멍하니 바라보아야 바다가 제대로 보일 것 같았다.
사진 몇 장 찍고 돌아서서 다시 걸었다. 내소사가 고개를 돌리면 왼쪽 발아래에서 보였다. 가파른 산길을 서둘러 내려와서 소나무 아래 의자에 앉으니 소나무 향기가 좋았다 '유치원에 모자를 두고 온 락이 이야기를 듣고' 웃으며 버스를 타고 부안으로 향했다 한 시간 정도 갔을까? 황미현씨가 전화로 알려 준대로 하서제일교회 왼편에 고미영씨는 있었다. 이제는 비석으로 남은 그녀 나는 비석에 적혀있는 이름을 몇 번 어루만졌다. 매끄럽고 견고한 느낌이 손끝에 닿았다.
반갑고 따뜻한 그 무엇이 마음 어느 구석에서 올라왔다. 그녀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잘 가꾸어 놓은 그곳에서 오은선씨와 회원들이 떡과 음식물을 올려놓고 막걸리를 컵에 따르고 절을 했다. 2009년 벌써 세월이 그렇게 흘렀나? 빠르다. 늘 웃던 산을 사랑했던 그녀 주변에 멋진 소나무가 있어서 좋았다. “미영이언니 술 좋아해”라는 박미경씨의 말을 들으며 누군가가 술도 주변에 부어주었던 것 같았다 ‘잔 잡아 권 할이 없으니...‘이런 시조도 생각이 나고 차를 타고 서울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달리며 기사아저씨가 미리 준비해 놓은 영화를 두 편 보며 긴 시간동안 지루함을 잊었다
사당에서 내려 맥주와 안주를 먹으면서 이야기를 듣다가 그들은 전철을 타고 가고 나는 횡단보도를 건너 어슬렁거리며 걸어서 집으로 돌아 왔다 그런데 새벽에 나가던 때와 다르게 마음에 포만감이 차올랐다 술안주 때문이 아니고 그냥 정신과 몸이 가벼워졌고 함께 내변산 산행을 함께한 사람들과 산 햇빛 바람 바다 나무 이런 모든 것들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