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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타산(頭陀山 1353m) 청옥산 쉰움산
강원 삼척
두타 신선봉의 병풍 절벽과, 무릉계의 용추, 추암 촛대바위는 한국 100대 절경 중 하나.
두타산 박달골, 바른골 물이 모여 무릉계곡이 되고, 살내가 되어 동해로, 남쪽 번천리계곡은
골치천과 합류하여 한강이 되고, 동쪽 내미로리 고천리 계류는 오십천과 합류하여 동해로 흘러간다.
고산자 김정호가 편찬한 ‘대동지지’ 삼척 편에 ‘阿谷川 西五十里 源出 頭陀山, 合于 竹峴川‘과
정선편에 ’竹峴川 東五十里 源出 蒼玉峯, 北流 至兎山, 過百福嶺 及大朴山之水, 至餘粮驛...‘
창옥봉은 금대봉의 옛이름, 대박산은 함백산, 대박산 지수는 동남천을 뜻하는데,
혹자는 대박천이라 하기도 한다. 백복령 쪽에서 흘러내린 물은 임계천, 죽현은 댓재를 말한다.
번천리 계곡은 골지천의 상류에 해당하지만 원래 阿谷川이다.
댓재에서 내려오는 물은 역시 골지천의 상류부로 죽천천이라 한다. 댓골이라.
시작하는 골짜기는 竹峴川이다. 아곡천의 阿는 언덕의 뜻도 있지만 곡천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옛날 사람들은 아곡천이 금대봉 쪽보다 길다고 보았다.
골지천(骨只川)은 한일합방 이후 일제가 남긴 잘못된 이름이다. 골짜기 골이 뼈 골로 바뀌었다.
두타산 문헌고찰
강원 삼척의 미로면과 하장면, 동해시와 정선군의 경계를 이루는 백두대간 상의 댓재竹峙와
백복령(百福嶺 구간의 주산 두타산(頭陀山은 이 산에 드는 것 자체가 두타행인 청정 도량의 명산이다.
두타산의 '두타(頭陀)'는 범어(梵語) dhuta의 음역으로서, 번뇌의 티끌을 털어 없애고,
의식주에 탐착하지 아니하며 청정하게 불도를 수행하는 것을 이른다. 후세에는 산야와 세상을
순력하면서 온갖 신고를 인내하는 행각의 수행, 또는 그러한 수행자를 지칭하기도 했다.
동북쪽 두타동천에 무릉도원(武陵桃源)의 선경을 이룬 무릉계곡을 품에 안고 있는
심산유곡의 명산이니, 이 산에 드는 것, 이 산에 오르는 것 자체가 바로 두타행이다.
두타 12인가를 멀리 떠나 산숲?광야의 한적한 곳에 있는 것, 곧 아란야처(阿蘭若處)에 머무는 것이다.
조선 중기에 삼척부사(三陟府使)를 지낸 성암(省菴) 김효원(金孝元?532-1590)은
'두타산일기(頭陀山日記)'에서 명산으로서 두타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무릉계곡 안쪽의 용추폭포
'천하에 산수로서 이름난 나라는 우리나라만한 데가 없고, 우리나라에서도 산수로 이름난 고을은
영동만한 데가 없다. 영동의 산수 중에서도 기이한 형승으로 이름난 것은 금강산이 최고이고,
그 다음이 두타산이다. 산의 근원이 백두에서 일어나 동쪽으로 달려와 철령이 되고, 금강산이 되고,
대관령이 되었으며, 구덩이처럼 움푹 파인 곳은 계곡이 되고, 우뚝 솟은 것은 산봉우리가 되었다.
우뚝 선 것, 급하게 기울어진 것, 높고 험한 것, 탄탄하게 뻗은 것 거의가 한두 가지 형상으로는
말할 수 없는 수많은 모습을 지니고 있다. 두타산은 실로 삼척부의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골짜기의 깊음과 수석의 기이함이 인구에 회자된 지 오래되었다'(성암선생유고 권2).
두타산의 산수와 산령 이름
두타산은 남쪽 424번 지방도 상에 큰 고개를 이룬 댓재가 위치하고, 북서쪽으로는 백두대간을
따라
올라가면서 박달령(朴達嶺)과 최고봉인 청옥산(靑玉山?,404m) 및 연칠성령(連七星嶺)
망군대(1247m)?고적대(高積臺?354m)가 위치하고,
고적대에서 정북쪽으로 뻗어가고 있는 산줄기 상에는 갈미봉(1260m)과 이기령(耳基嶺)
상월산(上月山) 등의 산봉과 고개가 자리하고 있다.
또 동북쪽으로 뻗어내린 가지산 줄기 상에는 예전에 오십정산(五十井山)으로 불리던 쉰움산(688m)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상봉인 청옥산 근처에서 동북쪽으로 뻗어 내려가는 학등 산줄기 좌측 바른골
우측에는 박달골의 물이 흘러내려가 용추폭포?쌍폭포 등의 비경을 연출하면서 선경인
무릉계곡을 형성하고, 하류로 흘러가면서 전천이 되어 동해로 흘러들어간다.
두타산은 현재 최고봉인 1404m봉이 청옥산, 그 동쪽 1,353m봉이 두타산이라 불리고 있으나,
대동여지도에 의하면, 본래는 최고봉인 청옥산이 두타산, 현 1353m봉인 두타산이
청옥산으로 불렸던 것으로 보인다. 곧 산경표에서는 태백산을 향하여 남하하는 백두대간 상의
산 이름 순서를 백봉령→두타산→청옥산→죽현(竹峴?댓재)으로 언급하고 있으며,
대동여지도에도 백봉령 남쪽에 두타산이 있고, 그 동남쪽에 청옥산이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그려져 있으며, 두타산과 청옥산의 산줄기 사이에 무릉계가 위치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또 조선세종실록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동국여지지의 삼척군 산천조에 관내의 대표적 명산으로서
두타산은 언급하고 있으나, 청옥산이란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동해시 일원에서 삼화동 방면으로 들어가다가 멀리 보이는 두타산의 모습을 보면 현재의 청옥산이
푸른 색을 띤 둥그런 육산의 모습으로 조망된다. 그러한 모습으로 인해 본래 두타산이란 이름이
현대로 오면서 청옥산으로 바뀌어 불리어지고, 두타산이란 산 이름은 자연스럽게 바위산으로
형성되어 있는 현 1353m봉쪽으로 이동되어 불리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두타산 정상부에 올라보아도 청옥산은 곧 원만한 형상을 한 육산 모습이고,
두타산은 첨봉(尖峯)을 이룬 골산(骨山) 모습이다.
또 조선세종실록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 삼척 두타산조에 의하면, 현재 쉰움산(688m)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오십정산(五十井山)과 그 옆에 있던 두타산 신사(頭陀山神祠)를 두타산 산허리[山腰]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언급하고 있는데, 이러한 위치개념에 의해서도 자연스럽게 현 1353m봉이
두타산의 중심 산봉으로 자리 잡혀 갔을 것으로 추측된다.
쉰움산. 정상에 돌 웅덩이가 많아 옛부터 신성시 돼 왔는데,
조선시대에는 신사를 두고 봄 가을로 제사를 지냈다.
청옥산이란 이름은 19세기 후엽 고산자 김정호가 편찬한 대동지지 삼척조에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이러한 두타산 최고봉과 제2봉에 대한 보편적 산 이름 정서는 오늘날까지도 그대로 남아
삼척의 대표적 명산하면 두타산을 언급할 뿐 청옥산이라고 언급하는 예는 드물다.
다만 18세기 후엽 영조 때 편찬한 여지도서 산천조에 수록한 삼척부지도에 현재의 두타산
청옥산의 이름과 같은 위치로 표기한 것으로 보이는 일례도 있으나,
여지도서 삼척부 산천조에 청옥산 이름이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당대 지도가 아닌,
후대 지도를 삽입해 놓은 것이 아닌가 한다.
청옥산과 두타산을 잇는 7.5km 능선은 해발 1,300여m의 백두대간 능선길로서 마치
거대한 횃대 같다고 하여 옷걸이 고갯길이라는 의미로 의가등(衣架嶝)이라 불리기도 한다.
청옥산과 고적대 사이의 연칠성령(連七星嶺)은 글자 그대로 새기면 하늘에 계신 칠성님께로 이어지는
고개라는 의미로 풀이해 볼 수 있겠으나, 이 고장 땅이름 유래에 의하면, 동쪽 사원터 방면에서 서쪽
하장면 방면으로 넘어가는 높은 고개로 7개 등성이가 있다고 하여 일컬어진 고개 이름으로 보인다.
두타산 구간의 최북단에 위치한 백복령(百福嶺)은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복을 희망하는 고개,
다복하기를 희망하는 고개라는 의미로 희복현(希福峴) 이라 불린 이름으로 보이는데,
희다는 白의 훈을 빌려 白福嶺으로, 많다는 百의 훈을 빌려 百福嶺으로 불렸고,
이를 소리 나는 대로 적어 白鳳嶺으로 쓰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두타산 남쪽 댓재 에는 두타산 방면으로 오르는 등산길 입구쪽 북쪽 언저리에
두타영산지신(頭陀靈山之神)이란 신위를 모신 산신각이 자리하고 있다.
본래의 두타산 신사는 조선시대에는 쉰움산 정상 부근에 있었는데, 지금도 그 석축제단의 모습이
일부 남아 있다. 그 일대 산을 오르다 보면 신에 의지하려는 무속인들이
지금도 치성을 드리고 있는 모습을 가끔 목격하기도 한다.
댓재라는 이름은 곧 큰 산줄기의 고개라는 의미로 일컬은 '대고개' 라는 뜻의 말이라 생각된다.
대동여지도에는 이를 죽치(竹峙)로 표기하고 있는데, 이는 대고개?댓재를 뜻옮김한 표기다.
여기서의 대는 곧 대들보?대보름 등과 같은 크다는 의미로서 竹의 훈을 빌려 표기한 것이다.
대동여지도에 의하면, 댓재 서쪽 기슭 죽현천(竹峴川) 부근에 고대 죽령현(竹嶺縣) 터가
있었던 곳으로
표기하고 있다. 삼국사기 지리지(권 35) 삼척군조에 의하면,
죽령현은 고구려 시기에는 죽현현(竹峴縣)으로 불리다가
통일신라 경덕왕 이후 죽령현으로 개칭되었다. 이에 의하면
댓재는 고대시절에는 竹峴→竹嶺으로 불리다가 조선시대에 竹峙로도 불렸고,
우리말 땅이름으로 댓재 로도 속칭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동국여지승람 삼척 고적조에서는 고죽령현(古竹嶺縣)터를 현 삼척시 원덕읍 옥원리에 있던
옛 옥원역(沃原驛)자리로 보기도 하였으나,
댓재의 위치와 비교할 때 신뢰할 만한 설이 못되는 것으로 보인다.
두타산의 이름과 삼화사 사적
두타산이란 이름은 고려시대 두타산인(頭陀山人) 이승휴(李承休224-1300)의 보광정기 동안거사집,
잡저)와 최해(崔瀣?287-1340)의 두타산간장암중영기(頭陀山看藏庵重營記) 등에 의하면,
적어도 고려시대 이래로 현재까지 두타산으로 불려오고 있다.
다만 최고봉과 제2봉의 이름이 바뀌었을 뿐 전체의 산 이름은 시종여일하게 두타산으로 불리고 있다.
삼화사
신라 말 두타삼선 창건설과 범일국사 창건설, 자장국사 창건설 등이 있는 천년고찰이지만,
한 때 폐허됐다가 근래에 들어와 옛터는 쌍용시멘트에 내주고, 현재의 위치에 새로 마련했다.
최해의 간장암중영기는 동국여지승람 삼척부조에는 안축(安軸?287-1348)의 기문으로
언급되어 있으나, 최해의 졸고천백(拙藁千百)?이승휴의 동안거사집
동문선 등에 모두 최해의 기문으로 전문이 수록되어 있고, 안축의 근재집(謹齋集)과 여지승람에는
일부만 게재하고, 끝을 '~云'으로 끝맺음하고 있어 곧 남의 글 이야기하듯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동국여지승람에 인용된 안축 기문설은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또 고려시대 석식영암(釋息影菴)의 삼화사 사적에 관한 기문에, 신라 말에 세 신인(神人)이
이곳 두타산 기슭, 삼화사 맞은편 삼공암(三公巖)으로 보이는 삼공봉 근처에 자리 잡고 오랫동안 일을
의논하며 머물다 간 일이 있고, 뒤에 사굴산문(??山門)의 개조 범일국사(梵日國師?10-889),
일명 품일(品日)이 그 자리에 절을 세우고 삼공암(三公庵)이라 현판을 달았다는 내용과,
두타산삼화사고금사적(頭陀山三和寺古今事蹟)에 고적(古蹟)을 인용하여 자장조사가
본국 오대산에 들어가 성적(聖蹟)을 두루 찾아다니다가, 두타산을 유력(遊歷)하고
신라 선덕왕 11년(642)에 비로소 이곳에 흑련대(黑蓮臺)를 창건하니,
지금의 삼화사였다는 기록 내용에 의하면, 두타산이란 산 이름은 더 거슬러 올라가
신라 때부터 불려온 이름으로도 추측해 볼 수 있다.
신라 말에 두타산 삼화사 일대에 들어와 있었다는 세 신인은 후대에 두타 삼선(頭陀三仙)으로도
지칭되고 있는데, 이들이 많은 무리들을 거느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 동해안 지역에 많은 행적을 남기고 있는, 도의로써 서로 연마하고 산수를 즐겨 찾아다니며
수행하던 통일신라시대의 사선랑(四仙郞)과 같은 대표적 화랑의 무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또 두타산삼화사고금사적과 진주지(鎭珠誌) 등에 보이는 삼화사 창건설화에 의하면,
'삼화사 숲속 삼층보탑에 이르기를, 약사삼불인 백(伯)?중(仲)?계(季) 삼형제가 처음 서역에서
동해를 유력(遊歷)하면서 한 척의 돌배를 타고 우리나라에 와서 정박한 후
맏형은 흑련(黑蓮) 한 송이를 가지고 흑련대(黑蓮臺)에, 둘째는 청련(靑蓮) 한 송이를 가지고
청련대(靑蓮臺)에, 막내는 금련(金蓮) 한 송이를 가지고 금련대(金蓮臺)에 머물렀다고 하는데,
흑련대가 지금의 삼화사이고, 청련대가 지금의 지상사(池上寺),
금련대가 지금의 영은사(靈隱寺)였다고 전한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약사삼불이 타고 온 용의 몸이 변하여 바위가 되었으며,
바위 뒤쪽에는 약사삼불이 앉았던 자리가 완연한 형태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여기에 보이는 약사삼불은 1657년 천재지변으로 흩어지고, 맏형인 백의 불상만 하나 남은 것이 바로
현 삼화사 적광전에 안치되어 있는 보물 제 1292호 철조노사나불좌상이라 전한다.
또 석식영암의 기문에 의하면, 조선 태조 때 칙령을 내려 이 절의 이름을 문안(文案)에 기록하고
후사(後嗣)에 전하게 하면서 신인이 절터를 알려준 것이니 신기한 일이라 하고,
그 옛날 왕건 태조가 삼국을 통일한 것은 부처님 영험의 덕택이었으므로 이 사실을 기리기 위하여
절 이름을, 삼국을 화합하여 통일하였다는 의미로 삼화사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두타산의 명승과 고적
두타산 무릉계곡 일원에 자리한 여러 명승에 대한 이름은 김효원의 두타산일기와
미수(眉?) 허목(許穆?595-1682)의 두타산기에 의하면,
김효원이 삼척부사 재임시 이곳을 답산하였을 때 명명한 것이라 전한다.
동해시 삼화동 일대의 무릉계곡 하류쪽과,
삼척시 미로면 내미로리 일대의 천은사계곡 하류쪽의 경관은 필자가 이곳을 답산하기 한 해 전이던
2002년도에 대대적인 홍수피해로 거의 폐허화되었으나,
다행히도 절경이 펼쳐지기 시작하는 금란정 일대의 무릉계곡 입구와 천은사 일대의 계곡부터는
많이 훼손되지 않은 모습을 지니고 있어서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 여긴 적이 있다.
무릉계곡에 들어서면 수백 명이 앉아서 놀 만한 무릉반석이 펼쳐져 있고, 그 무릉반석 냇가에
아담한 금란정(金蘭亭)이 서 있다. 금란정은 삼척의 유림들이 향교 명륜당에 모여
한말까지 유학강론에 전념하였는데, 한일합방으로 폐강하기에 이르자 이에 분개하여
우의를 다지는 금란계(金蘭契)를 결성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정자를 건립하기로 결의하였으나,
일본 관헌들의 제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45년 해방을 맞이하게 되자 이에 금란계원과 그 후손들이 과거 선인들의 뜻을 계승하여
1949년 봄에 정자를 건립하고, 1956년 9월에 현재 위치로 이건한 것이라 전한다.
그 옆 등산로 길가에는 큰 반석을 떼어다 석축 위에 비스듬하게 세워 놓은 듯한 직사각형 반석 위에
'武陵仙源 中臺泉石 頭陀洞天'이라 쓴, 조선 전기 4대 명필의 한 사람인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517-1584)의 호쾌한 필력이 넘치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아마도 이곳 냇가 무릉반석에 새겨져 있는 양봉래의 절묘한 글씨가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점점 선명치 못하여져 감상하는 이들을 위해 이를 복각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
이들 세 용어 '선원?천석?동천'이란 말은 모두 도교사상?신선사상과 관련한 무릉도원의 선경을
상징하고 있는 말들이므로,
양사언이 두타산의 진면목을 단 3개 용어를 통하여 참으로 적절하게 잘 표현해 놓고 있다고 생각된다.
삼화사 뒤쪽 산중턱에는 중대천석의 중대와 관련 있는 중대사터가 있다. 삼화사 일대를 지나면
폭포수가 암반을 타고 흘러내리는 명승 학소대(鶴巢臺)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바라보이는
두타산의 암릉은 기막힌 절경이다.
허목의 두타산기에 의하면, 이 일대 경관을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폭포수가 흐르는 바위를 천주암(?珠巖)이라 하고, 그 앞산 봉우리에는 옛날 학의 둥지가 있었는데,
지금은 학이 오지 않은 지가 60년이라고 한다. 줄사다리를 딛고 몇 층을 올라가 지조암(指祖庵
현 관음사)을 유람하였다. 이 산(지조산)의 암석이 끝나는 곳 옆으로 석굴이 있으며,
그 속에는 마의노인(麻衣老人)이 쓰던 토상(土床)이 있고, 남쪽으로는 옛 성(城)이 보인다.'
위에 보이는 옛 성은 곧 관음사 일대에서 무릉계곡 건너편 산쪽으로 보이는
신라 파사왕 23년(102)에 축성하고, 조선 태종 14년(1414)에 수축하였다는 두타산성을 지칭한 것이다.
관음사 건너편 두타산 정상부로 오르는 코스로 가파른 등산로를 약 20분 정도 오르면,
산성 주변에 두타산성이라 쓴 안내표목이 서 있다. 이곳에서 반대로 무릉계곡 건너편을 바라보면
관음폭포와 관음사가 한눈에 조망되고, 또 그 동쪽 아래쪽으로 삼화사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 암벽에 올라서서 바로 아래를 내려다보면 깎아지른 듯한 천길 낭떠러지 아래로
산성12폭이 있는 절경을 연출하고 있는 협곡이 내려다보인다.
천은사
이승휴가 삼화사에서 빌린 불경을 용안당에서 읽었는데 후에 간장암이라 고친 암자가
이 부근 이승휴 유허지(사적 제421호)에 있었다. 이쪽 두타산성과 관음사 사이의 무릉계곡 일대를
허공다리라고 일컫는데, 임진왜란 때 왜군의 공격에 맞서 의병항쟁을 벌일 때
이 계곡 양편 사이에 줄을 매고 허수아비 신장을 매달아 골짜기 반공을 오가게 하면서
왜군들을 놀라게 하였다는 일화에서 유래된 땅이름으로 보인다.
이곳을 지나 약 15분 정도 가면 계곡을 건너 문간재로 올라 학등[鶴背]을 타고 곧 바로
두타산 최고봉인 청옥산으로 오르거나, 또는 바른골 일명 사원터골을 경유하여 망군대
연칠성령쪽으로 오르게 된다.
옛날 어느 선비가 층암절벽의 높은 학소대에서 종이로 학을 접어서 날렸는데,
그 종이학이 진짜 학이 되어 날아가 청옥산에서 문간재로 내려온 산줄기의 산등에 앉았다고 한다.
그 학이 앉았던 산등이 바로 지금의 학등이라 전한다. 계곡 건너 문간재로 가는 길을 무시하고,
곧장 계곡 따라 오르면
수량이 풍부한 거대한 물줄기가 약 45도 각도로 양쪽에서 내리쏟는 쌍폭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좀더 오르면 신선봉 남쪽 절벽 아래에 수수만년을 내려오면서 물줄기의 힘으로
오묘한 절경을 연출해 놓은 폭포가 있으니, 곧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폭포 중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3단 폭포인 용추폭포(龍湫瀑布)다. 날씨가 가물 때면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기도 한다고 한다.
두타산 정상부에서 동북쪽으로 뻗어내려간 산허리 부근에는 현재 무속인들이 신성시하며
치성을 드리는 곳으로 유명한 쉰움산이 있다. 쉰움산은 두타산 산허리에 있는 산으로,
산정에 약 50개 우물이 있는 산이라 하여 쉰우물산, 곧 오십정산(五十井山)이라 부른 신비의 산이다.
척주지(陟州誌)에서는 그러한 쉰움산을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흑악사(黑岳寺?현 천은사) 위쪽에 오십정산이 있다. 암석 위에 돌웅덩이 [石?]가 50개인데,
깊은 것은 이끼 색이 짙고 물이 맑아서 신정(神井)이라 한다. 가물면 이곳에서 비를 빈다.
풍속에 고을 사람들이 봄?가을로 대대적으로 제사를 지낸다.'
쉰움의 움은 움푹 들어가다, 또는 우묵하다는 말에서 온 것으로 추측되며, 한편
그러한 움푹 들어간 웅덩이에 고인 물을 신정(神井)으로 여기던 옛 사람들은 이를
쉰우물산 곧 오십정산이라 일컬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조선 시대에는
이곳을 신성시하여 두타산의 신사를 이곳에 두고 봄?가을로 치제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쉰움산 기슭 내미로리에는 천은사(天恩寺)가 있다. 이 일대는 고려 충렬왕 때 문신이며 학자인
동안거사(動安居士) 이승휴가 은거하였던 이승휴 유허지이기도 하다.
고려시대에는 이 일대 천은사계곡을 용계(龍溪), 이 일대 땅이름을 귀동(龜洞),
또는 귀산동(龜山洞)이라 하였는데, 이곳은 이승휴의 외가가 있었던 곳이다.
충렬왕 때 그의 간언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곳 귀동 용계변에 용안당(容安堂)이란 별장을 짓고,
이곳에서 우리 민족의 역사 서사시 제왕운기(帝王韻紀)를 저술하였다.
또 천성이 불도를 좋아하여 늘 삼화사에 있는 대장경을 빌려다 읽었는데,
10년만에 다 완독하였다고 한다. 용안당의 '容安' 은 곧 진 도연명(陶淵明?65-427)이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그가 머무는 집을 무릎을 펼만한 편안한 공간만 살필 뿐이라는 말로
언급한 용슬이안(容膝易安)에서 딴 당호다. 뒤에 이 별장을 승려에게 희사하여
절로 만든 후 그가 대장경을 보던 곳이라는 의미로 절의 현판을 간장암(看藏庵)으로 고쳐 달았다.
현재 이곳은 사적 제421호로 지정되어 있고, 유허지 안내판 개울 건너편에는
이승휴의 사당인 동안사(動安祠)가 건립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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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타산(頭陀山) 정상은 남쪽 함백산으로 뻗어나간 백두대간뿐 아니라 가리왕산 등
강원 내륙의 고산준령에 이어 동쪽으로는 망망대해 동해바다까지 바라보인다.
이러한 지형적 특성 덕분에 일출뿐 아니라
동해바다에서 두둥실 떠올라 강원 내륙으로 내려앉는 보름달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산행기점은 424번 지방도가 넘어가는 댓재 고갯마루에서 하장 방향으로 약 500m 지점.
'두타산 6.5km'안내판이 선 이곳에서 북쪽 마을길을 따라 1km쯤 들어서면 포장도로가 끝나면서
거무소 다리를 건넌다. 다리를 건너 오른쪽 길을 따르면 곧 임도 차단막이 나타난다.
초입은 길이 거칠지만 곧 길이 널찍해지고 노면 상태도 나아지는 임도를 따라 20분쯤(1.4km) 걸으면
'청옥산 4.8km 2시간30분, 두타산 3.9km 2시간'이라 적힌 대형 안내판이 보인다.
여기서 오른쪽 잡목지대를 가로질러 물줄기를 건너서면 산죽골(통골)로 들어서는데
안부로 올라서면 댓재 코스와 합친다.
번천리계곡~문바위~두타산~통골목이~산죽골 원점회귀 산행시에는 안내판 부근에 차를 세워놓으면
시간을 아낄 수 있다. 단 임도 입구에 차단기가 내려져 있지 않아야 한다.
안내판에서 임도를 따라 30분쯤 더 가면 지도상에 '고대'라 표기된 계곡 갈림목에 닿는다.
여기서 오른쪽 물줄기를 건너 낙엽송숲을 두 번 지나치면 아름드리 전나무 아래
'전나무골, 청옥산 2시간, 청타산악회'란 돌비석 서 있는 지점에 닿는다.
이 지점을 지나면서 골짜기는 급격히 좁아지고 가팔라지면서 물줄기를 여러 차례 가로지르고,
산길 또한 폭우로 많이 훼손되어 중간중간 끊기는 등 사뭇 험해진다.
전나무골 돌비석을 지난 이후 이렇게 30분쯤 오르면 물줄기 갈림목에 올라선다.
여기서 모덤이 있는 오른쪽 물줄기를 따라야 문바위로 이어진다.
첫번째 모덤에서 10분쯤 떨어진 두번째 모덤을 지나면 물줄기가 사라지므로
이곳에서 식수를 준비하도록 한다. 이후 성곽처럼 보이는 둘무더기 지대에서 좌측으로 틀다가
청옥~두타산 사이의 문바위 앞으로 올라선다.
문바위에서 박달령을 거쳐 두타산 정상까지는 1시간 거리다.
댓재 기점은 고갯마루 산신각이나 고갯마루 서쪽의 잔디공원에서 시작한다.
산신각에서 도로쪽으로 낙석방지용 철책이 설치된 능선을 따라 20분쯤 오르면
'햇댓등, 두타산 3시간, 댓재 30분'대리석 표지석이 있는 햇댓등 정상이다.
여기서 뚝 떨어지는 능선길을 따라 펑퍼짐한 안부로 내려섰다
완급을 거듭하는 능선길을 따라 1128m봉으로 올라선다.
이어 완경사 능선을 따르다 잘록이로 내려서면 산죽골 길이 갈라지는
통골목이(댓재 4km 1시간30분, 두타산 2.1km 1시간30분 안내판)다.
댓재 잔디공원에서 시작하면 햇댓등 서쪽 안부로 곧장 올라선다.
통골목이부터 무덤이 있는 능선마루까지는 급경사 오르막을 이루다
이후 정상까지 완경사 능선길로 바뀐다. 댓재에서 약 3시간 소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등산인들이라면 두타산 정상 야영 후
청옥산(1,403.7m)~연칠성령~바른골~문간재~무릉계곡,
또는 대궐터~문지방산성~무릉계를 거쳐 삼화동 시설지구로 내려서는 산행을 해볼 만하다.
고적대까지 뽑을 생각이라면 고적대에서 갈미봉 방향으로 20분쯤 가다 사원터 표시가 있는
갈림목에서 오른쪽 능선을 넘어 가파른 지능선을 따라 사원터로 내려서도록 한다.
간이대피소가 있는 사원터에서 바른골을 따라 문간재를 넘어 무릉계 매표소까지는 가는 데는
약 1시간30분 걸린다.
종주 산행시 식수는 청옥산 정상에서 남동쪽 산길을 따라 200m쯤 가면 사철 맑고 차가운 석간수가 나오는 샘터에서 구할 수 있다.
교통
댓재?번천리계곡 입구까지 가는 노선버스는 삼척에서 다닌다. 서울 강남고속버tm터미널(www.exterminal.co.kr)에서 90분 간격(06:30~21:00, 야간우등 23:10, 23:30) 운행(4시간, 일반 14,900원, 우등 22,100원, 야간 24,300원) / 동서울터미널에서 수시(07:00~20:05) 운행(3시간40분, 14,900원) / 부산 노포동 종합터미널(051-508-9966 ARS)에서 1일 8회(05:56~16:08) 운행하는 삼척 또는 강릉행 직행버스 이용. 4시간30분 소요, 요금 21,800원 / 대구 동부시외버스터미널(gobus.co.kr?53-756-0017~19)에서 1일 8회(08:05, 09:44, 11:30, 11:55, 12:38, 13:10, 13:38, 15:03, 심야 22:25, 24:00) 출발하는 삼척행이나 강릉행 직행버스 이용(6시간30분 소요, 요금 25,400원).
삼척→댓재?번천리계곡 입구 시외버스터미널(033-572-2085)에서 1일 3회(07:30, 13:30, 16:30) 출발하는 광동행 완행버스 이용. 요금 댓재 2,900원, 번천리 3,000원. 댓재에서 삼척행은 08:50, 15:00, 18:00 출발.
무릉계로 하산할 경우 수시 운행하는 시내버스로 동해시로 나가 각 지역으로 향하는 고속버스나 직행버스, 또는 열차를 이용해 귀가한다(지역번호 033). 동해 시외버스터미널 533-2020, 동해 고속버스터미널 531-3400~1, 동해역 521-7788.
숙식
댓재 고갯마루 부근의 댓재휴게소는 식당과 매점을 겸하면서 민박도 친다. 방 5개 각 30,000원(3인 기준, 1인 추가시 10,000원). 닭도리탕 30,000원, 백반 5,000원. 전화 033-554-1123, 011-9797-7960. 무릉계 상가단지에는 민박을 함께 하는 식당이 많이 있다.
무릉계 입장료는 어른 1,5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600원. 주차료는 1회당 승용차 2,000원, 버스 5,000원. 여름철이면 인기 높은 주차장 매표소 아래 야영장은 1박당 소형 5,000원, 중형 7,000원, 대형 9,000원이다. 번천리, 댓재, 쉰움산 천은사 방면에서는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관리사무소 전화 033-534-7306~7.
두타산(頭陀山 1353m)청옥산 쉰움산
구간 : 댓재-80분-통골목이-70분-두타산-40분-박달령-50분-청옥산-110분-문간재-70분-
무릉계 삼화사 주차장 (7시간)
삼척시 하장면 번천리 댓재산방에서 임도를 걷는다.
개울을 여러 차례 건너면서 임도를 따라 걷다가 문바위골과 통골이 갈라지는 지점에서
불안하게 놓인 나무다리를 건너면서 통골로 들어선다.
산죽을 헤치고 오르면 백두대간 길과 만나는 통골목이에 이른다. 이제부터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묘2기를 만나면서 길이 순해진다. 산행 2시간30분 두타산 정상에 선다.
표지석이 근사하고 쉰움산 쪽으로 조금 더 가면 동해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박달령 내려서는 길도 가파르다.
청옥산 3km 이정표를 따라가면 문바위 암릉 밑 사면을 타고 오르게 된다.
청옥산 정상석은 예쁜 한글로 쓰여있다.
하산은 샘터-무릉계12km 십자팻말로 되 나와 학등을 타게 된다.
엄청나게 가파른 빙판길을 조심스럽게 내려온다.
1시간후 묘지를 만나고 20분후 학등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나무와 암릉으로 이루어진 곳을 지난다.
우측으로 박달폭포를 내려다보면서 방향을 틀어 철다리를 건너 바른골에 내려서고
아름다운 계곡미를 감상하며 가다가 문간재에 이르러 신선봉에 오르면
깊은 계곡이 무서울 정도로 수려하다. 다시 철계단을 내려서면 무릉계의 시작이다.
용추를 보며 계곡을 건너고 두타산성 입구를 지나 학소대를 바라보며
우측 베틀바위 미륵봉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르고 무릉반석, 금란정을 지나며 아름다운 계곡에 감탄 연발이다.
신선되어 오르는 백두대간, 동해 조망대
두타산(1,352.7m)~청옥산(1,403.7m)은 백두대간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산봉이다.
백두산에서 동해바다를 옆에 끼고 내리 뻗어 내린 대간이 한반도 내륙으로 방향을 틀기 전 우뚝
치솟아 중심을 잡아주고 있기 때문이다,
무릉계곡은 고려 충렬왕 때 이 산에 들어 은둔생활을 했던
이승휴(삼척부사 김휴원이 지었다는 설도 있음)가 중국의 무릉도원 같은 선경이라 하여
그렇게 이름 짓고 극찬했다는 골짜기다. 무릉계의 들머리에 해당하는 무릉반석 너럭바위에는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아름다운 대자연 속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자 수많은 각자들을 새겨 놓았다.
박달골과 바른골은 합쳐지기 전 각기 깊은 산속에서 흘러내린 물줄기를 깊은 소로 떨어뜨리면서
쌍폭이라는 신비로운 폭포를 만들어놓고, 바른골 쪽 폭포 위로는 학등 능선과 신선대 사이에
절묘한 소가 연이어지는 협곡과 더불어 용추폭이라는 웅장한 폭포를 만들어놓고 있다.
6.25 때는 인민군 병참기지가 들어서는 바람에 미공군의 융단폭격을 받기도 했다.
삼화사는 신라 선덕여왕 11년(642) 자장율사가 창건한 흑연대의 후신으로,
시멘트공장의 석회석 채광에 밀려 현재의 위치인 중대사터로 이전, 새로 지은 사찰이다.
경내에는 신라 삼층석탑과 철불을 비롯해 대웅전, 종각, 부도
그리고 20척 높이의 금동여래불상 등이 있다.
삼화사 원점회귀 산행
무릉계-산성터-대궝터-두타산-박달령-박달골-삼화사 원점회귀 코스(7시간 소요).
동해시 삼화동 무릉계 국민관광지 주차장의 해발 고도는 180m.
주차장에서 상가단지를 왼쪽에 끼고 매표소를 지나 다리를 건넌다.
다리 위쪽에 보이는 정자는 금란정, 정자 오른쪽의 암반은 무릉반석이다.
수백 명이 앉아 쉴 수 있을 만큼 널따란 반석에는 조선 4대 명필인
봉래 양사언(또는 삼척부사 정하언)이 남겼다는
'무릉선원 중원천석 두타동천' 외에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수없이 새겨져 있다.
무릉반석이 잘 바라 뵈는 곳에 지어진 금란정은 이 고장 선비들의 모임인 금란계의 뜻을 기리고자
세운 정자다. 1903년 유림재현들이 향교 명륜당에 모여 학문에 전념하던 중
1910년 한일합방의 국치를 겪고 향교의 문이 닫히자 이에 분개해 금란계라는 모임을 만들어
울분을 달래던 중 그 뜻을 기리기 위해 정자를 세우려고 했으나 일본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1945년 자손들에 의해 북평동 단봉 석경지에 세워졌다가 1958년 무릉계로 옮긴 것이다.
삼화사를 지나 탐방로를 따라 400m쯤 오르면 관음암 갈림목. 여기서 오른쪽 길을 따르면
관음암을 거쳐 기암절벽을 가로지르며 두타산과 산성12폭 등 무릉계 일원의 산세를 한눈에 바라보며
하늘문길로 내려선다. 학소대 들머리를 지나 지계곡에 걸린 철다리를 건너고,
이어 무릉게를 가로지른 철다리를 건너 산성길 갈림목(산성 0.8km 25분, 두타산 8.7km 3시간)에 닿는다.
여기서 계속 계곡길을 따르면 박달골~박달령 길, 쌍폭, 용추폭 탐방로나,
또는 문간재~바른골~청옥산 길, 학등~청옥산 길로 이어진다. 일반적으로 두타산을 먼저 오른 다음
박달골이나 학등, 또는 바른골을 하산로로 잡는데, 실제는 바른골~연칠성령~청옥산 길이 수월하다.
왜적을 막다가 의병이 장렬하게 산화했다는 난공불락의 천연요새인 두타산성의 산성 유래비가
박혀 있는 두타산성에서 마지막 물줄기이자 계곡인 대궐터까지는 숨을 고를 수 있는 완만한 산길로,
산성12폭을 비롯해 주변 경관이 워낙 뛰어나 선게에 들어선 듯한 기분이 드는 구간이다.
오른쪽으로 빠지는 샛길들은 거의 다 와폭이 길게 이어지는 산성12폭 조망점으로 가는 길들이다.
대궐터를 지나면 또다시 급경사 능선길. 된비알을 1시간쯤 오르면
'두타산 3.1km, 무릉계 7.1km' 안내판이 서 있는 돌무덤을 지나면서 능선이 잠시 숨을 죽이다가
위압적인 봉우리가 앞에 나타나고, 또다시 급경사 능선길을 따르면 쉰움산 갈림목에 올라선다.
여기서 왼쪽으로 쏟아지듯 가파른 능선길을 따라 1시간쯤 내려서면 오십정산(670m)이라고 불리는
쉰움산 정상에 닿는다.
갈림목에서 두타산 정상까지 싸리나무숲 구간을 지나 안전로프가 걸려 있는 급경사 구간을 올라서면 헬기장이 닦여 있는 널따란 두타산 정상이다.
두타산-1시간-박달령~박달골~무릉계
박달령(청옥산3km 50분, 두타산4.5km, 무릉계8km 2시간40분) 안내판에서 오른쪽 길로 내려선다.
약 50분간은 깨진 돌이 가파른 산길을 따라 줄곧 널려 있어 미끄러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급경사 능선길을 내려서면 박달골 오른쪽 지계곡으로 내려선다. 박달폭포는 제대로 보려면
산길에서 물가로 내려서야 한다. '쌍폭 0.2km, 무릉계관리소 2.45km' 안내판이 나오면 꼭 용추폭포와
쌍폭은 두타산 최대의 절경지인 만큼 꼭 들러볼 것. 박달골은 폭우시는 피하는 게 바람직하다.
청옥산-연칠성령~칠성폭~바른골~문간재
청옥산에서 완만한 능선길을 따라 30분쯤 걸어가면 돌탑이 쌓여 있는 연칠성령이다.
오른쪽 급사면 길을 따라 30분쯤 내려서면 칠성폭포가 내려다뵈는 바른골 최상류 물줄기에 닿는다
(청옥산 7.2km 2시간, 대피소 1.5km 20분, 무릉계 8.6km 1시간40분).
사원터라 불리는 대피소 일원은 옛날 절터 자리로, 임진왜란 때 유생들이 모여 의병운동을 한 곳이다.
대피소(칠성폭포 1.5km 20분, 무릉계 7.1km 1시간20분)에서 철다리가 걸려 있는 학등 갈림목까지
암반 구간이 몇 차례 나타나는데, 물이 많이 불어날 경우에는 휩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학등 갈림목을 지나 문간재 고갯마루에서 오른쪽 바윗길을 따르면 신선대 정상에 올라선다.
무릉계와 바른골, 박달골과 더불어 두타~청옥산 일원의 기암절벽이 두루 조망되는 곳이다.
번천리계곡 원점회귀 코스
번천리계곡은 임도가 정비된 이후 임도가 시작되는 거무소에서 고대에 이르기까지 약 4km 구간은
승용차로도 접근이 가능하다. 이 구간은 골짜기 풍광이 수려하면서도 수량이 넉넉해
여름철 피서지로도 인기 높다. 산행기점은 댓재에서 424번 지방도로를 따라 하장 방향으로
약 500m 지점. 입구에 '두타산 6.5km' 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여기서 도로를 따라 1km쯤 들어서면
포장도로가 끝나면서 거무소다리를 건넌다.
다리를 건너 오른쪽 길을 따르면 곧 임도 차단막이 나타난다.
임도를 따라 20분쯤(1.4km) 걸으면 '청옥산 4.8km 2시간30분, 두타산 3.9km 2시간' 이라 적힌
대형 안내판이 보인다. 여기서 오른쪽 잡목지대를 가로질러 물줄기를 건너서면
통골(산죽골)로 들어서는데 원점회귀 산행의 경우 통골 길을 하산로로 이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안내판에서 임도를 따라 30분쯤 더 가면 지도상에 '고대'라 표기된 계곡 갈림목에 닿는다.
문바위로 가려면 오른쪽 물줄기를 건너서야 한다.
청옥~두타산 사이의 문바위 앞으로 올라서면 청옥산은 30분, 두타산은 1시간 거리다.
통골로 내려서려면 두타산에서 댓재쪽으로 대간을 타고 나아가야 한다.
내리막길에 이어 완경사 능선을 따르다 둔덕 같은 무명봉을 넘어서면 묘 앞에 선다(약 25분 소요).
이곳에서부터 쏟아지듯 가파른 내리막길을 30분쯤 걸으면
통골목이(두타산 2km 1시간30분, 댓재 2.5km 1시간30분)에 닿는다.
산죽이 가슴까지 차 오른 산길을 200m쯤 걸으면 지계곡이 나타나고 번천리계곡 물가로 내려서고,
물줄기를 건넌 다음 수풀지대를 가로지르면
'청옥산 4.8km 2시간30분, 두타산 3.9km 2시간' 대형 안내판이 서 있는 임도로 올라선다. 6시간소요.
댓재 고갯마루 부근의 댓재휴게소033-554-1123, 011-9797-7960 식당과 매점 민박도 친다.
방 5개 각 25,000원(2인 기준, 1인 추가시 5,000원). 번천리계곡 입구 댓재산방은 033-553-1659.
댓재 기점 백두대간 코스
백두대간은 고개 마루 송림 속 산신각 옆으로 올라야하나 댓재 민박집에서 곧장 계곡 옆
널찍한 길로 접어든다. 서쪽의 잔디공원에서 시작하면 햇댓등 서쪽의 안부로 곧장 올라선다.
산신각에서 도로쪽으로 낙석방지용 철책이 설치된 능선을 따라 20분쯤 오르면
'햇댓등, 두타산 3시간, 댓재 30분' 이라 표시한 청타산악회 대리석 표지석이 박혀 있는
햇댓등 정상이다. 여기서 뚝 떨어지는 능선길을 따라 펑퍼짐한 안부로 내려섰다가
완급을 거듭하는 능선길을 따라 1128m봉으로 올라선다. 이어 완경사 능선을 따르다
잘록이로 내려서면 통골목이다. 무덤이 들어선 능선 턱까지 약 40분간은 급경사 오르막.
이후 완경사-급경사 능선길- 두타산 정상(댓재에서 약 3시간 소요).
두타산 구룡골
삼척시에서 댓재로 이어지는 424번 지방도로를 따르다 천은사 입구 삼거리를 지나 4.5km 더 가면
구룡골 입구가 나온다. 입구에 '하장 댓재, 구룡골', '두타산 등반길' 이란 안내판이 서 있다.
구룡골 입구를 막고 있는 터널식 콘크리트 구조물은 쌍용자원개발의 콘베어벨트로,
기점을 알려주는 중요한 구조물이다. 정류장에서 골 입구의 쌍용자원개발 콘베어밸트까지는 약 2km.
승용차는 입구의 공터에 세워놓는다. 구룡골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물줄기를 건넌
이후 10여 분은 산판로가 잘 나 있으나, 벌막을 지나 오른쪽 주계곡으로 들어선 뒤로는
길이 점점 희미해진다.
산행 시작 1시간30분 지나 구룡소에 이르면 폭포 오른쪽 바위 사면으로 올라서야 하는데,
매우 미끄러우니 조심해야 한다. 구룡소를 넘어선 다음부터는 물줄기를 따르거나
또는 양쪽 사면을 수시로 건너면서 길이 이어진다. 이끼가 많이 끼어 조심해야 한다.
구룡소를 지나 1시간 오르면 골짜기가 갈라진다. 2단 폭포가 걸려 있는
왼쪽은 두타산 남릉으로 이어지고, 오른쪽 골짜기는 정상에서부터 형성된 골짜기다.
오른쪽 골짜기는 곧 거대한 홈처럼 생긴 폭포가 길을 끊어놓는다.
가물 때는 폭포 오른쪽 바위지대로 올라설 수 있는데, 바위가 날카로우니 손이 베이지 않도록 조심한다.
폭포를 넘어선 다음 오른쪽 너덜지대로 타고 오른다.
바위지대에서 수림지대로 이어지는 가파른 사면을 따라 3시간 정도 오르면
두타산 정상과 염불암 사이의 안부에 올라선다. 길이 전혀 없어 거친 바위를 넘어서거나
수풀을 헤치면서 올라야 하는 구간이다.
안부에 올라서면 왼쪽으로 두타산 정상까지 30분 소요. 하산은 쉰움산을 거쳐 천은사로 내려서든,
두타산성을 거쳐 무릉계로 내려서든 소요시간은 엇비슷하다(약 2시간30분 소요).
구룡골은 등행에만도 7시간 이상 걸리는 길고 험한 산행 코스다.
하늘문길 코스
삼화사에서 400m쯤 탐방로를 따라 오른 뒤 오른쪽 사면으로 거슬러 관음암에 이어
기암절벽 사면을 가로지르는 벼랑길을 거쳐 급경사 절벽에 걸쳐 있는 철계단을 내려선 다음
문간재 갈림목에서 무릉계곡길로 잇는
이 탐방로는 두타산과 청옥산의 웅장함과 산성12폭포가 걸쳐 있는 알바위골, 박달골, 바른골 등
두타~청옥산의 북사면의 바위골과 기암절벽을 이룬 능선과 사면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멋진 코스다.
영화 '오세암'과 '달마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등 인기 영화의 촬영지로서 조망이 뛰어나면서도
아담한 비구니 산사인 관음암을 탐방할 수 있다.
쉰움산(五十井山 683m)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쉰움산은 정상부에 우물 같은 웅덩이가 50갸 파여 있다 하여 지어진 지명.
쉰움산은 683m봉으로 나와 있으나, 실제 웅덩이가 파여 있는 봉은 683m봉 남서쪽의 670m봉,
670m봉 정상 암릉에는 '五十井(쉰우물) 해발 670m'란 정상석이 서 있다.
산세가 빼어나고 동해 바다도 시원스럽게 조망이 뛰어나면서도 무속인들의 기도터로도 이름나 있다.
산행 기점은 삼척시 미로면 내미로리 좌남골 입구의 천은사. 천은사 남쪽 고천리 죽방계곡을 따르다
넘어 좌남골을 가로지른 다음 정상에 오르는 산길도 있다.
천은사는 고려 충렬왕 때 이승휴가 충렬왕 6년(1280) 스스로 동안거사, 혹은 두타산거사라 부르고
은거하며 <제왕운기>와 <내전록>을 저술한 곳이다.
<제왕운기>는 중국과 한국의 역사를 엮은 서사시로, 당시 원나라의 정치,
문화적 지배체제를 극복하고자 중국과 한국의 지리, 문화적 차이를 강조함으로써 중국과 다른
민족문화적 주체성을 표명했다.
산행은 내미로리 버스종점에서 500m쯤 덜어진 이승휴 유허지를 끼고 천은사 경내로 들어선 다음
법당 뒤편의 산길로 들어서면서 시작한다. 식수는 법당 뒤편 감로수를 이용하도록 한다.
초입에 식수보호구역 출입금지 안내판과 산불예방기간 중 입산금지 안내판을 지나
평범한 골짜기 길을 지나면 아치형 철다리가 나타난다. 계곡길을 따르면 또다시 철다리가 나오고,
이 다리를 건너 10분쯤 오르면 돌무덤 갈림목에 닿는다. 대개 이 지점에서 사면을 거슬러
정상에 오른 다음 돌무덤으로 되돌아오는데, 돌무덤~정상 왕복 길이 경관이 뛰어나고 길도 잘 나 있다.
돌무덤 갈림목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오르면 능선 턱 위로 올라선다.
여기서 왼쪽 길로 내려서면 100여m 길이의 바위벼랑 하단에 수많은 제단이 닦여 있다.
돌탑이 수십 개 쌓여 있는 너럭바위 위에 서면 동해 바다가 시원스럽게 내려다뵈고,
골 위쪽으로는 두타산 정상부가 우뚝 솟구쳐 있다. 너럭암릉에서 능선길을 따라 15분쯤 오르면 샘터.
깨끗하지 않다. 여기서 왼쪽으로 트래버스하면 683m봉과 쉰움산 갈림목으로 쉰움산은 왼쪽.
암릉을 끼고 두타산쪽으로 100m쯤 가면 오른쪽으로 암릉에 올라서는 뚜렷한 길이 나온다.
쉰움산에서 두타산까지는 줄곧 급경사 오르막. 특히 산성길 갈림목까지 약 3km 구간은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가파르다. 천은사~쉰움산 1시간, 쉰움산~두타산 정상 2시간30분 정도
두타산
천은사-쉰움산-두타산-청옥산-무릉계곡-삼화사
1. 산행코스; 천은사-쉼움산-산성갈림길-두타산-박달령-청옥산-연칠성령-무릉계곡-삼화사
2. 산행시간: 5시간40분
3 산행날짜: 2006.6.4
5. 산행일지; 06.00분 울산 태화로타리 출발(포시즌산악회)
:11.00 분 동해. 천은사 도착및 산행 들머리 시작
: 가고자하는 이 코스는 예전에는 무박코스였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져서
: 당일 산행코스가 가능하므로서 많은 등산인들이 참석하였다(90명)
; 천은사 우측으로 틀어 쉼움산까지가 가파른 오르막길로 정상에 도착한다.
;11.45 분 쉼움산도착(670m)
: 정상 주위가 커다란 암반으로 이루워져 있다
; 쉼움산에서 출발하여 산성 갈립길까지 계속 오르막 및 두타산 정상까지 계속
: 오르막을 올라보니 어느새 정상에 도착한다
;13.00 분 두타산 정상 도착
:13.45 분 박달령도착
: 여기서 청옥산까지 20여분오르막을 올라야 정상에 도착한다
;14.10 분 청옥산 도착
: 주위가 헬기장이므로 경치는 좋지않다
;14,10 분-14.40분 점심시간
; 정상에서 고적대 방향으로 20여분 가면 연칠성령도착
;15.00 분 연칠성령 도착
:15.30 분 칠성계곡 도착
;15.40 분 사원터 도착
:16,45 분 삼화사를 들러서 매표소도착
구간 : 죽방곡-두선암-지릉-쉰움산-천은사계곡-천은사 (6km 3시간)
쉰움산 북쪽 바로 아래 비린내골 입구는 쌍용양회 채석장이라 통행이 안된다.
삼척 미로역에서 1.5km 남하하여 우회전하면 고천리 마을. ‘두타사‘ 팻말을 따라 3km 오르면
죽방곡 마을을 지나 콘크리트 도로가 넓어지는 지점에 주차. 포장길이 끝나면 이내 산길이 시작된다.
초입에 頭禪庵(두선암)이란 무속인 기도처가 있다. 일대 암반 경치가 뛰어나다.
암자 오른쪽 옆으로 계곡을 따라간다. 1시간 정도 계곡 산행을 하고 골이 좁아지면서 경치가 나빠지면
오른쪽 급경사 지능선을 찾는다. 급사면을 20분 치켜 오르면 죽방곡과 천은사계곡 사이 능선으로
. 10분후 오른쪽 계곡으로 난 샛길이 보인다.
천은사계곡으로 내려서 계류를 건너 뚜렷한 등산로를 만나 오른다.
주변의 두 아름도 넘는 노거수 숲의 풍치가 멋지다.
하산은 서쪽 두타산 가는 길로 접어든다.
돌로 길게 쌓은 기도터를 지나 잠시 바위지대가 끝나는 주릉에 있는 케른 삼거리.
곧바로 가면 두타산 정상과 산성으로 가게된다. 여기서 왼쪽으로 내려서면
사면을 비스듬히 가로지르며 30분 만에 점봉산 12폭포와 비슷한 좌남골 폭포를 만난다.
10여분 길을 따르면 폭포가 끝나고 계류가 이어진다.
5분쯤 게류를 건너면 처음 산악구조대 푯말이 있는 삼거리다. 20분후 천은사 감로수에 닿는다.
버스종점 좌남골과 너래골의 합수점 장사축와형(뱀이 개구리를 좇는 형국)의 명당터 초라한 무덤 앞에 이른다. 천은사 땅을 소작하던 사람이 부친의 시신을 묻고 몰래 야반도주했다는 묘다.
두타산(쉰움산)
쉰움산 산행의 들머리는 천은사 약사전의 왼쪽으로 난 샛길이다.
등산로 옆에는 시원한 약수물이 폭포수처럼 시원하게 떨어지고 있다.
상수원 보호구역이라는 입간을 뒤로하고 조금 올라가니 미완성인 다리 하나가 세워져 있다.
다리를 덮고 있어야 할 상판은 온데간데 없고 철골만 앙상해 계곡물이라도 불어나면
위험을 무릅쓰고 아슬아슬한 곡예를 해야 한다.
20 분을 올라가자 나온 안내판에는 '천은사 0.7km, 쉰움산 0.8km' 라고 적혀있다.
등산로 표시는 이곳에서 오른쪽 능선을 향하고 있는데, 계곡의 정면으로도 리본 몇 개가 달려있다.
지도엔 좌남골을 통해 쉰움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표시되어 있다.
"저쪽으로 가면 엄청 고생해. 길이 험하고 위험해"
길은 이제 오른쪽 능선으로 아주 가파르게 이어진다. 산 전체가 적송과 소나무 군락으로
울창한 수림을 이루며 장관이다. 등산로 왼쪽으로 20m 떨어진 곳에 높이가 수십m는 됨직한
바위 하나가 햇살을 받으며 서있다. 길에서 내려서 바위 뒤로 돌아가니 등산로에서 보이지 않던,
신선이 쉬는 곳이라는 넓은 마당바위가 나타난다. 계곡 맞은편에는 연수봉과 기암괴석,
고목들이 어울려 한 폭의 동양화 같다.
양옆으로 적송이 가득한 가파른 길을 20여분 오르니 '정상 0.1km' 표지판 옆에 작은 샘이 있다.
하지만 갈수기엔 물이 말라버린다고 한다. 정상이 가까워지며 점차 흙보다는 돌이 많아지고
머리 위를 가렸던 나뭇가지들도 장막을 걷어낸다.
빈내골과 멀리 시멘트 채석당이 내려다보인다. 빈내골 사이로 깎아지른 절벽들은
설악의 울산바위 같고 형제봉 능선의 삐죽한 바위들은 공룡능선을 닮았다.
쉰움산. 쉰 개의 우물이 정상에 존재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오십정(五十井)이라고도 불린다.
과연 정상의 바위에는 곰보마냥 큰 구멍이 수십 개, 작은 구멍은 헤어릴 수 없을 만치 많이 뚫려있다.
사방으로 두타산과 청옥산, 멀리 동해바다까지 선명하게 내다보인다.
정상 주변에는 돌을 쌓고 치성을 드리는 제단이 널따랗게 자리잡고, 누군가 다녀간 흔적이 또렷하다.
정상에서 두타산 방향으로 10분을 가면 헬기장 하나를 지나고 이때부터
무릉계곡 갈림길까지는 잠시 쉴만한 평지 하나없이 오르막이 이어지다. 헬기장에서 50분을 가면
진달래군락이 나타나고 곧 갈림길이다. 무릉계곡을 향해 하산.
진달래 꽃길을 따라 기암괴석과 멋들어진 노송을 구경하며 내려가는 길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20분만에 대궐터 삼거리에 닿고 다시 40분을 가파른 길을 내려가니 깔딱고개 입구다.
좋은 곳을 보여주겠다며 데리고 간 곳은 산성12폭포. 깔따곡개 입구에서 5분여를 가다
왼족으로 난 작은 오솔길로 접어들자 '우와~'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바위를 타고 낼온 폭포수가 벼랑 아래로 깊숙이 낙하하는 모습은 과히 장관이다.
맞은편 산등성이에는 관음사가 울창한 수림 속에 자리하고 있다.
폭포에서 나와 10여분을 가면 높은 바위벼랑이 나온다. 절벽 아래로는 두타산성터가 내려다보이는데
이곳까지는 10분이면 닿는 거리다.
두타산성은 102년(신라 파사왕 23년) 처음 쌓았다고 전해지며 1414년에 삼척부사 김맹손이
다시 쌓았는데 그 둘레가 2500m, 높이가 15m에 달했다고 한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왜군과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의병들과 백성들의 호국정신이 깃든 곳이다.
세로로 세워놓은 것 같은 아찔한 바위벼랑에는 성을 쌓았던 돌무더기가 수북히 쌓여있다.
두타산성 입구에 이르자 많은 관광객이 용추폭포를 보기 위해 무릉계곡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무릉계곡은 기암괴석과 푸른 못으로 유명하다. 일명 무릉도원이라 불리며 조선 선조 때 삼척부사 김효원이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수령이 수십 년은 넘은 울창한 수림 사이를 지나 삼화사에 들러 내려오니 무릉계곡의 맑은 물이 푸른 하늘을 가득 담아 동해로 흘러가고 있었다.
천은사-(20분)-쉰움산 0.8km 표지판-(15분)-신선대-(25분)-샘터-(10분)-정상-(10분)-헬기장-(50분)
-두타산, 무릉계곡 갈림길-(20분)-대궐터-(40분)-깔딱고개 입구-(15분)-산성터-(10분)
-두타산성 입구-(30분)-삼화사-(15분)-관리사무소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동해나 묵호역에서 내리면 된다.
삼척터미널에서 천은사가 있는 내미로리까지 14번 시내버스가 하루 5회(06:20, 08:30, 12:50, 15:00, 18:10) 운행한다.
무릉계곡에는 청옥모텔(033-534-8866), 무릉프라자호텔(534-8855)이 있고, 무릉계곡 내 7천 평의 야영장이 조성되어 있다. 무릉회관(534-9990), 영진회관(534-9116) 등. 묵호항이 가까이 있고 이곳에서 숙박을 해결할 수도 있다.
스위치백 시스템(흥전~나한정역 구간) 스위치백(Switchback) 시스템은 경사가 급한 철로를 오르기 위한 방법으로 철로를 지그재그로 놓아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며 고도를 높여가는 방법이다. 영동선 흥전~나한정역 구간은 국내 유일의 스위치백 시스템 구간이다.
삼화사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다. 642년(선덕여왕 11년) 신라시대 자장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절을 짓고 흑련대라 하였다. 864년 범일국사가 절을 다시 지어 삼공암이라 하였다가,
고려 태조 때 삼화사라고 개칭하였으며, 많은 부속암자를 지었다. 1369년 절을 크게 확장하였는데,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중건하였으며, 1905년에는 의병이 이곳을 근거지로 활약하다가
1907년 왜병의 공격으로 또다시 소실된 것을 이듬해 중건하였다.
경내에는 대웅전, 약사전을 비롯하여, 문화재로 보물 제1277호 삼화사 삼층석탑과
보물 제1292호 철조비로사나불좌상 신라시대의 철불상과 3층석탑 및 대사들의 비와 부도가 있다.
청옥산-백복령 구간종주
실측거리 29.1km로 천왕봉-성삼재 28.13km 보다 길다.
청옥산-30분-연칠성령-2.3km(50분)-고적대. 高積臺는 조망이 좋으나 너무 좁다.
여기서 갈미봉까지 최고의 풍광이다.
고깔모양의 갈미봉을 감상하고 무릉계의 녹음도 감상하고 가는 길.
갈미봉은 한국에서 백운산 50개보다 많은 180개의 지명을 가지고 있다.
갈미는 비가 올 때 갓 위에 쓰는 기름에 결은 종이 모자다. 나무에 갈미봉1278m 팻말이 걸려 있다.
갈미봉에서 40분 내려서면 길 왼쪽에 샘터를 만난다. 5분후 길이 90도로 꺾인다.(방향 주의)
거대한 고압 송전탑이 서있는 이기령에 도착한다. 바로 옆으로 임도가 지나간다.
완경사 길을 오르면 상월산. 헬기장인 이곳서 안부까지 급경사를 이룬다.
상월산에 사슴뿔 모양의 고사목에 팻말이 걸려 있다. 지형도에는 헬기장이 상월산.
이곳은 970.3m 봉우리다. 원방재는 움푹 패인 좁은 안부. 다복솔 잡목이 걸치적거리며 오르고
오른쪽 옆이 아찔한 절벽이라 조심해야한다. 862봉에 올라 쉬다가
긴 오르막에 이어 헬기장 1022봉에 이른다. 987봉 삼각점을 지나서 순한 능선 길을 걷는다.
백복령 앞 500m 지점 헬기장에 이르니 차량소리가 들린다.
바로 앞 자병산의 살풍경한 모습에 허탈해진다.
고적대에서 사원터로 빠지려면
갈미봉 방향으로 20분쯤 걸어가면 나타나는 갈림목(사원터 표시가 있음)에서 오른쪽으로 능선을
넘어서야 한다. 이후 가파른 지능선을 40~50분 따르면 묘 2기를 지나 사원터 대피소 뒤로 내려선다.
2월15일부터 5월15일까지 입산금지기간. 그
러나 하늘문 길이라는 '삼화사~관음암~하늘문' 길과 쌍폭~무릉계곡~관리사무소 구간을 개방해 놓아
이 구간을 찾는 탐방객과 함께 내려서면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댓재휴게소는 매점 식당 민박 2인 기준 25,000원. 추가 1인당 5,000원. 전화 033-544-1123.
반석상회(김원기 백두대간보전회회장) 534-8382. 무릉계곡국민관광지 관리사무소 534-7306~7.
댓재민박(552-0096)에 급수대가 있다. 백복령 동쪽 200m 간이매점(562-2730). 정선쪽 2km 거리 백복령쉼터(음식점 13동) 산행후 중식 한곳 동해 해송 가든 033-522-0066
두타산-청옥산 원점회귀
42번국도 삼화동 삼거리에서 좌회전, 쌍용양회 앞을 지나 무릉계곡 주차장에 도착해 상가 앞과
매표소를 지나 금란정으로 갔다. 강릉 명륜당에서 공부하던 유림 선비들은
한일합방 후 향교가 폐지되자 그 울분을 달래고자 금란계라는 모임을 만들고 정각을 건립하려다가
일본 관헌들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금란정은 45년 해방된 후
그 유림의 자손들이 선인들의 뜻을 받들어 세운 정각이다.
반석교 너머 삼화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신라 선덕여왕 때인 643년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와
두타산에 절을 짓고 흑연대라 불렀고, 864년 범일국사가 절을 다시 짓고 삼공암이라 하였으며,
고려 태조 때 이를 다시 삼화사라 개칭했다.
무릉반석 위에는 조선의 4대 명필인 양사언의 친필이 새겨져 있다. '
무릉선원 중대천석 두타동천'의 12자로 두타산을 예찬하고 있다.
반석교와 삼화사 앞을 지나 300m 직진하여 '관음암 1km' 안내판이 설치된 갈림길에 도착한다.
관음암으로 향했다. 철사다리를 지나 바위 전망대에 도착하여 무릉계곡의 풍광에 도취해 본다.
발길을 돌려 '문간재 2.2km, 용추폭포 2.9km' 이정표가 있는 관음암에 도착한다.
현재는 삼화사와 관음암, 천은사만 남아 있지만 불교가 융성했던 시기에는
상원사, 중대사, 내화암, 성로암, 대승암 등 10여 개가 넘는 사암이 있었다.
관음암을 지나 바위 터널 속에 수직으로 설치하여 놓은 50m 정도의 철계단이 가로막는다.
긴장하여 조심스레 내려서니 이곳이 바로 하늘문이며 또한 피마름골이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과 맞서 싸우던 의병들이 피를 하도 많이 흘려 그렇게 불렸다는 전설이 읽힌 곳이기도 하다.
문간재 입구를 지나 철다리를 건넌다. 이곳에서 부터 장군바위와 병풍바위, 선녀탕,
쌍폭포와 용추폭포가 펼쳐진다. 다리를 건너면 계곡 왼쪽에 거대한 물줄기가 좌우에서 굉음을 토하며
쏟아져 내려 장관을 연출한다.
이곳이 쌍폭포로서, 바른골에서 흐르는 물과 왼쪽의 박달골이 각각 폭포를 이루어 쌍폭이 되어
떨어지고 있다. 이곳에서 바른골로 오르면 3단으로 된 용추폭포와 담이 연이어져 아름다움을 더한다.
상담과 중담을 거친 물줄기가 시원스럽게 미끄러져 내린다. 검푸른 하담은 깊이를 알 수가 없다.
이곳에서 문간재 입구까지 되돌아가 사랑바위를 지나 신선봉 정상에 도착했다.
이곳은 바위전망대로, 양쪽 계곡의 전경을 만낄할 수 있는 곳이다.
바른골 계곡 오른쪽 사면에 설치된 밧줄을 이용,
학등 갈림길을 지나 '칠성폭포 1.5km, 무릉계 7.1km' 이정표가 설치된 사원터에 도착한다.
이곳은 대피소로 이용되고 있으며 임진왜란 당시 의병운동을 하던 곳이다.
사원터 오른쪽 능선으로 진행, 가파른 오르막길을 택하여 오른다. 대체로 뚜렷한 등산로이지만
백두대간인 주능선까지 1시간 정도 가파른 오르막길의 연속으로 체력 소모가 많은 구간이다.
주능선인 사원터 갈림길 삼거리에 도착한다. 이곳에서부터 고적대 정상까지는
30여분 소요되는 구간으로 편안한 길이다. 정상엔 '청옥산 1.7km, 괘병산 2.5km'의 이정표와 함께
정상표지석이 설치돼 있으며, 무릉계곡과 동해 조망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기암절벽이 대를 이루고 있는 곳으로, 두타산, 청옥산, 고적대를 해동삼대라 일컫는다.
고적대에서 연칠성령으로 향한다. 내리막의 연속으로, 망군대를 지나 작은 돌탑과 넓은 공터가 있는
연칠성령에 도착한다. 이 고개는 삼척시 하장면과 동해시 삼화동을 오가는 곳으로
산세가 험준하여 난출령이라 불렸다. 이 난출령 정상을 망경대라 하는데,
인조 원년 명재상 이식이 중봉산 단교암에 은퇴하였을 때 이곳에 올라
서울을 사모하였다 하여 망경대라 한다고 전해진다.
이곳에서 왼쪽은 칠성폭포와 사원터를 지나 무릉계곡으로 내려가는 길로 2시간 이상 잡아야 한다.
남쪽의 청옥산으로 발길을 돌린다. 오르막의 연속으로 청옥산 정상까지는 1.2km다.
정상엔 시설물과 헬기장이 있다. 완만한 능선 내리막길로 내려서면 커다란 바윗덩어리로 되어 있는
문바위재(청옥산 1.1km, 두타산 2.5km, 번천 하산길)를 지나 박달령에 도착한다.
작은 돌탑과 '청옥산 3km 50분, 두타산 4.5km 1시간10분, 무릉계곡 8km 2시간40분'의 믿기 어려운
이정표가 있다.
이곳에서 두타산 정상까지는 정상까지 줄기차게 가파른 오르막길을 택하여야 하며
실제 거리는 2.15km로 45분이 소요된다.
두타산 정상은 동해시와 저 멀리 바다까지 탁 트인 조망을 서슴없이 보여주고 있다.
두타산 정상에서 1km 정도 가면 쉰움산 갈림길로 '무릉계(산성터) 7.7km'의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다.
대궐터를 지나 조그만 고개를 넘으니 두타산성이다.
험준한 산세를 이용하여 산성을 쌓은 것은 신라 파사왕 23년에 일이라 한다.
태종 14년 삼척부사 김맹손은 이 성을 증축하여 석성을 만들었으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의병들이 모여 왜적을 전멸시킨 싸움터이기도 하다.
두타산의 가을 모습을 좀 더 생생하게
통골목이 이르기 전에 번천리 계곡 넘머 1201봉 쪽을 바라보니 가을 옷을 입었다.
온통 가을 빛으로 치장을 하였다
통골목이를 지나 서 오름 길에도 단풍이 현란하다
1243봉우리를 지나서도 아예 단풍 터널입니다
정상 직전에서 고적대 청옥산의 모습을 봅니다. 온통 단풍 옷으로 치장을 하였네요
두타산 정상에서 내려서면서 두타산성 능선을 바라보니 역시...
문바위재 부근의 풍광
번천리 계곡 상류부 근처 역시
청옥산 정상에서 학등으로 내려서는 길에도 역시... 노란 단풍이
단풍 터널 속으로
역시 현란합니다
아예 피를 토하 듯이 붉어집니다
바른 골에 내려서 문간재에서 신선봉으로 올라가서 건너다 보는 모습
바위 벽에 붙은 단풍과 푸르름이 어울어져 있네요
병풍바위
쌍폭. 박달골에서 내린 왼쪽 폭포
바른 골에서 내리 쏟는 오른쪽 폭포
우렁차게 굉음을 내며 만든 짙고 푸른 소가 무섭다
쌍폭, 용추를 보고 무릉계곡으로 내려서면서 역시 너른 반석이 특징인 계류는
삼화사를 지나서도 게속된다
이곳을 지나 금란정을 만나고 상가지역 주차장에 내려선다
첫댓글 사진들을 보니까 아름답던 그 산천들이 새삼 머리 속으로 눈앞에 그려집니다. 님의 사진 솜씨가 더 빛나 보입니다
한 줄 글이 용기를 줍니다. 감사합니다. of line 에서 만나는 즐거움도 행복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