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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읍루(邑婁)의 위치가 어디인가 검색해보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 이르기를 "본거지는 목단강(牧丹江)·두만강 유역에 이르는 지역이었다. "고 하였으며,
브리태니커가 이르기를 "문헌기록에 따르면 읍루는 남쪽으로는 창바이 산맥[長白山脈] 일대, 북쪽으로는 동류 쑹화강[松花江], 서쪽으로는 북류 쑹화 강, 동쪽으로는 블라디보스토크의 바다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걸쳐 분포했으며, 통일된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산과 계곡 사이에 부족별로 흩어져 살았던 종족이다."라고 하였고,
위키백과가 이르기를 "후한에서 오호십육국 시대사이에 연해주와 그 부근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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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강단사학계의 통설대로라면 현 한반도(韓半島) 동북부 바깥에 위치하는 곳이라고 하였는데, 실상 기록 조차도 제대로 숙지 못하면서 읍루(邑婁)의 위치를 추정한 것뿐이지 않는가 반문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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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근세 조선(朝鮮) 후기의 기록들의 내용대로 찾아보면 전혀 다른 곳에 위치해 있음을 상세히 나와 있으니, 이를 고증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의 입장으로서 어디에 위치하는가 따라서 설명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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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1 瀋陽,古挹婁國。漢置四郡,爲樂浪治所。
①-1 심양。고읍루국。한치사군。위낙랑치소。
①-2 魏,隋時屬高句麗。唐置瀋州,遼改爲興遼軍。
①-2 위,수시속고구려。당치심주,요개위흥료군。
①-3 明洪武初,置衛。天啓時,陷於淸,爲其都。
①-3 명홍무초,치위。전계시,함어청,위기도。
①-4 改衛爲奉天府。府有知府。
①-4 개위위봉천부。부유지부。
①-5 又置承德縣,縣有知縣。統而名之曰盛京。
①-5 우치승덕현,현유지현。통이명지왈성경。
▲ 김경선(金景善)의 연원직지(燕轅直指 : 근세 조선 후기) - 심양성기(瀋陽城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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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1 심양(瀋陽)은, 옛 읍루국(挹婁國)입니다. 한나라(漢) 때에 사군(四郡)을 두었고, 낙랑(樂浪)을 두었던 곳입니다.
▶ ①-2 위나라(魏)와, 수나라(隋) 당시 고구려(高句麗)에 속하였습니다. 당나라(唐) 당시 심주(瀋州)를 두었고, 요나라(遼) 당시 모두 흥료군(興遼軍)으로 두었습니다.
▶ ①-3 명나라(明)의 흥무(洪武 : 1369년부터) 초기에, 심양위(瀋陽衛)를 두었습니다. 천계(天啓 : 1620년 ~ 1627년) 시대에, 청나라(靑)에 함락당하였고, (심양은) 기도(其都 : 수도) 입니다.
▶ ①-4 모든 심양위(瀋陽衛)를 봉천부(奉天府)로 고쳤습니다. 봉천부(奉天府)에 지부(知府 : 부의 장관)가 있습니다.
▶ ①-5 또 승덕현(承德縣)을 두었다가, 승덕현(承德縣)에 지현(知縣 : 현의 장관)이 있습니다. 다스리는 곳의 이름을 말하길 성경(盛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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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1 瀋陽古肅愼挹婁之地。渤海大氏, 始置瀋州。
②-1 심양고숙신읍루지지。발해대씨, 시치심주。
②-2 漢曰樂浪郡。遼曰興遼軍。明曰瀋陽中衛。淸屬奉天府,亦曰盛京。
②-2 한왈낙랑군。요왈흥료군。명왈심양중위。청속봉천부,역왈성경。
▲ 박사호(朴思浩)의 심전고(心田稿 : 근세 조선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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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1 심양(瀋陽)은 옛 숙신(肅愼) 및 읍루(挹婁)의 지역입니다. 발해(渤海)의 대씨(大氏)가, 처음으로 심주(瀋州)를 두었습니다.
▶ ②-2 한나라(漢) 당시 말하길 낙랑군(樂浪郡) 입니다. 요나라(遼) 당시 말하길 흥료군(興遼軍) 입니다. 명나라(明) 당시 말하길 심양중위(瀋陽中衛) 입니다. 청나라(淸)에 봉천부(奉天府)로 속하였다가, 또 말하길 성경(盛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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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1 一統志云,瀋陽衛。本挹婁國地,渤海置瀋州。遼改曰昭德。金改曰顯德,元改曰瀋陽路。
③-1 일통지운,심양위。본읍루국지,발해치심주。요개왈소덕。금개왈현덕,원개왈심양로。
③-2 盛京志云,古挹婁縣。本遼興州地。金改挹婁縣屬瀋州,謂挹婁故地也。今鐵嶺縣南懿路城也。
③-2 성경지운,고읍루현。본요흥주지。금개읍루현속심주,위읍루고지야。금철령현남의로성야。
▲ 류득공(柳得恭)의 발해고(渤海考 : 근세 조선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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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③-1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가 이르길, 심양위(瀋陽衛) 입니다. 본디 읍루국(挹婁國)의 지역이고, 발해(渤海)가 심주(瀋州)를 두었습니다. 요나라(遼)가 고쳐 말하길 소덕(昭德) 입니다. 금나라(金)가 고쳐 말하길 현덕(顯德)이고, 원나라(元)가 고쳐 말하기를 심양로(瀋陽路) 입니다.
▶ ③-2 성경지(盛京志)가 이르기를, 옛 읍루현(挹婁縣) 입니다. 본디 요나라(遼)의 흥주(興州)지역 입니다. 금나라(金)가 읍루현(挹婁縣)을 심주(瀋州)에 속하여 고쳤고, 일러 읍루(挹婁)의 옛 땅이라고 하였습니다. 지금(조선시대)에는 철령현(鐵嶺縣) 남쪽의 의로성(懿路城)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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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 철령현(鐵嶺縣)은 심양(瀋陽 : 瀋州)에 속하는 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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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1 瀋州,昭德軍,中,節度。本挹婁國地。渤海建瀋州,故縣九,皆廢。
④-1 심주,소덕군,중,절도。본읍루국지。발해건심주,고현구,개폐。
④-2 太宗置興遼軍,後更名。初隸永興宮,後屬敦睦宮,兵事隸東京都部署司。
④-2 태종치흥료군,후개명。초례영흥궁,후속돈목궁,병사례동경도부서사。
④-3 統州一、縣二:
④-3 통주일、현이:
④-4 樂郊縣。太祖俘薊州三河民,建三河縣,後更名。
④-4 낙교현。태조부계주삼하민,건삼하현,후개명。
④-5 靈源縣。太祖俘薊州吏民,建漁陽縣,後更名。
④-5 령원현。태조부계주리민,건어양현,후개명。
▲ 요사(遼史) 38권(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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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④-1 심주(瀋州)는, 소덕군(昭德軍)이며, 중부(中府)이요, 절도사(節度使) 입니다. 본디 읍루국(挹婁國) 지역입니다. 발해(渤海)가 (읍루 지역에) 심주(瀋州)로 세웠고, 옛 9 현(縣)이며, 모두 폐하였습니다.
▶ ④-2 태종(太宗 : 耶律德光)이 흥료군(興遼軍)을 두었고, 이후 지명을 고쳤습니다. 초기부터 영흥궁(永興宮)에 예속하였으며, 이후 돈목궁(敦睦宮)에 속하였고, 병사는 동경동부서사(東京都部署司)에 예속하였습니다.
▶ ④-3 심주(瀋州) 하나에 ' 2현(縣)을 통괄하였습니다(바탕으로 두었습니다).
▶ ④-4 낙교현(樂郊縣) 입니다. 태조(太祖 : 耶律阿保機)는 계주(薊州)의 삼하(三河) 백성을 사로 잡고, 삼하현(三河縣)을 세웠으며, 이후에 지명을 고쳤습니다.
▶ ④-5 령원현(靈源縣) 입니다. 태조(太祖 :耶律阿保機)는 계주(薊州)의 관청 백성을 사로 잡고, 어양현(漁陽縣)을 세웠으며, 이후에 지명을 고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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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주(薊州)는 하북(河北) 지역의 어양(漁陽)과 삼하(三河)를 두는 지명인데, 본래 심주(瀋州) ' 심양(瀋陽)로 고쳐진 원래 지명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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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중화인민공화국의 입장으로 보자면, 현재 하북성(河北省) 안에 위치합니다. 그래서 심주(瀋州) ' 심양(瀋陽)이 속하는 봉천부(奉天府)이라고 불리우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북경(北京)의 동쪽 인근과 천진(天津) 북쪽 인근 사이에 있는 삼하현(三河縣)과 어양현(漁陽縣)으로서 심주(瀋州) ' 심양(瀋陽)이 위치한 것입니다.
따라서, 현재 산서성(山西省)과 하북성(河北省)에 흐르는 상건하(桑乾河 : 영정하의 상류)와 영정하(永定河 : 상건하의 하류)는 본디 대요수(大遼水)이요, 압록강(鴨綠江)이며, 대동강(大同江 : 산서 지역의 대동부에 따르는 강이름)이라고 불리우고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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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1 瀋陽中衞,在都司城北一百二十里。本挹婁國地。唐時渤海置瀋州。
⑤-1 심양중위,재도사성북일백이십리。본읍루국지。당시발해치심주。
⑤-2 遼置興遼軍,後改曰昭徳。金改為顯徳軍。元改為瀋陽路,治遼陽故城。本朝。
⑤-2 요치흥료군,후개왈소덕。금개위현덕군。원개위심양로,치요양고성。본조。
▲ 명일통지(明一統志) 25권(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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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⑤-1 심양중위(瀋陽中衞)는, 도사성(都司城)의 북쪽 120리에 위치합니다. 본디 읍루국(挹婁國) 지역 입니다. 당나라(唐) 시대에 발해(渤海)는 심주(瀋州)를 두었습니다.
▶ ⑤-2 요나라(遼)는 흥료군(興遼軍)을 두었고, 이후 고쳐서 일컫길 소덕(昭徳) 입니다. 금나라(金)는 고쳐서 현덕군(顯徳軍) 입니다. 원나라(元)는 고쳐서 심양로(瀋陽路) 이고, 요양(遼陽)의 옛 성을 두었습니다. 본디 조선(朝鮮)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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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주(瀋州)의 도사성(都司城)은 양평(襄平) ' 요양(遼陽)이 속하는 곳입니다.
요사(遼史)에 따르면, 왕망(王莽)이 말하길 양평(襄平)은 창평(昌平)이라고 했는데, 그 창평(昌平)은 북경(北京) 서북쪽 인근에 위치하는 지명입니다.
또한, 양평(襄平)은 평주(平州)에 속하는 지명이기도 하며, 평주(平州)는 한나라(漢) 당시의 우북평(右北平)인데, 북경(北京)의 옛 지명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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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철령현(鐵嶺縣)은 본디 현재 하북성(河北省)의 계주(薊州) 북쪽 인근에 위치하는 지명임을 자연히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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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후한서(後漢書) 동이열전(東夷列傳)에 의하면, 읍루(挹婁)에 적옥(赤玉 : 붉은 옥)이 난다고 하였기 때문에 현재 하북성(河北省)의 계주(薊州) 북동쪽에 위치하는 적봉(赤峰)의 홍산 문화 유적지에 출토되는 옥 유물은 고조선(古朝鮮) 시대의 웅족(곰족) 문화 및 읍루(挹婁)의 적옥(赤玉) 문화와의 연관성이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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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사(遼史), 명일통지(明一統志), 발해고(渤海考), 연원직지(燕轅直指) 등 원문 고사서들에 반영되는 시대를 비추어보면, 중기 고려(高麗) 시대부터 근세 조선(朝鮮) 시대까지 그 당시 고대 국가 읍루(挹婁)의 위치를 보는 시점으로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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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1 箕山在縣東三十里,逓高二里,盤踞三里,相傳箕子始封地。唐箕州治山下有箕城址。
①-1 기산재현동삼십리,체고이리,반거삼리,상전기자시봉지。당기주치산하유기성지。
①-2 晉敗狄于箕者,杜預謂:太原陽邑有箕城是陽邑。隋之太谷,後為骨打。
①-2 진패적우기자,두예위:태원양읍유기성시양읍。수지태곡,후위골타。
①-3 都今遼之榆社東南三十里。古箕城在遼山與琅琊、益都、襄邑異。
①-3 도금요지유사동남삼십리。고기성재요산여낭야、익도、양읍이。
▲ 산서통지(山西通志) 25권(卷) - 유사현(榆社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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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1 기산(箕山)은 유사현(榆社縣)의 동쪽 30리(里)에 있고, 갈마들고 높은데에 2리(里)이고, 반거(盤踞)하였으니 3리(里)이고, 대대로 이어 서로 전하는 바 기자(箕子)가 첫 봉토 지역입니다. 당나라(唐) 시대에 기주(箕州)는 기산(箕山) 아래에 두었고, 기성(箕城)의 터가 있습니다.
▶ ①-2 진(晉)이 적(狄)을 격패시켰기에 기(箕)는 그 곳이기에, 두예(杜預)가 이르길 : 태원(太原)의 양읍(陽邑)에 기성(箕城)이 있으니, 양읍(陽邑)이라고 하는게 옳습니다. 수나라(隋) 당시의 태곡(太谷)이고, 이후 골타(骨打)로 하였습니다.
▶ ①-3 도읍은 지금 요주(遼州)의 유사(榆社)에서 동남쪽 30리(里)입니다. 옛 기성(箕城)은 요산(遼山)에 있고, 통들어 낭야(琅琊) ' 익도(益都) ' 양읍(襄邑)이니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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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거(盤踞)
1. 넓고 굳게 뿌리를 박고 자리잡음.
2. 어떤 집단이 한 지역을 차지하여 세력을 떨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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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경주(水經注)에 의하면, " 광아왈:대노,태원야。(廣雅曰:大鹵,太原也。) " 즉, " 광아(廣雅)가 말히길 : 대노(大鹵)는, 태원(太原)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대로(大鹵)는 춘추(春秋) 시대 노나라(魯) 소공(魯昭公) 1년에 진나라(晉)의 순오(荀吳)가 적(狄)을 격패시켰던 땅 이름인데, 난리를 뜻한다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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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1 王險城即平壤城,應劭曰箕子故都也,薛瓉曰王險在樂浪郡浿水之東。
②-1 왕험성즉평양성,응소왈기자고도야,설찬왈왕험재낙랑군패수지동。
②-2 古蹟箕子故都即平壤今王險城是也,漢書地理志樂浪郡朝鮮,應劭曰武王封箕子於朝鮮。
②-2 고적기자고도즉평양금왕험성시야,한서지리지낙랑군조선,응소왈무왕봉기자어조선。
▲ 흠정대청일통지(欽定大清一統志) 421권(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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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1 왕험성(王險城)은 즉 평양성(平壤城)이고, 응소(應劭)가 말하길 기자(箕子)의 옛 도읍이요, 설찬(薛瓉)이 말하길 왕험(王險)은 낙랑군(樂浪郡) 패수(浿水)의 동쪽입니다.
▶ ②-2 고적(古蹟 : 남아 있는 옛날의 건물이나 터) 기자(箕子)의 옛 도읍은 즉 평양(平壤)이고, 지금 왕험성(王險城)이니 옳고,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의 낙랑군(樂浪郡) 조선(朝鮮)이요, 응소(應劭)가 말하길 무왕(武王)이 기자(箕子)에게 조선(朝鮮)을 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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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箕子)의 옛 도읍은 요주(遼州)의 유사(榆社) 동남쪽 30리(里)에 위치하는 기성(箕城)이라고 했습니다.
현재 산서성(山西省) 중부의 태원(太原)에서 남쪽 인근으로 위치하는 요주(遼州) ' 유사(榆社) ' 요산(遼山) ' 기산(箕山) 등지에 왕험성(王險城)이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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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1 杜預曰:梁國蒙縣北有薄伐城,城中有成湯冢,其西有箕子冢。
③-1 두예왈:양국몽현북유박벌성,성중유성탕총,기서유기자총。
▲ 수경주(水經注) 23권(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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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1 두예(杜預)가 말하길 : 양국(梁國)의 몽현(蒙縣) 북쪽에 박벌성(薄伐城)이 있고, 성 가운데에 성탕(成湯 : 은나라의 왕)의 무덤이 있고, 그 성의 서쪽에 기자(箕子)의 무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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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1 梁國蒙縣亳:梁國蒙縣西北有亳,城中有成湯,其西有箕子。
④-1 양국몽현박:양국몽현서북유박,성중유성탕,기서유기자。
▲ 춘추석례(春秋釋例) 05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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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1 양국(梁國)의 몽현(蒙縣) - 박(亳 : 은나라의 서울):양국(梁國)의 몽현(蒙縣) 서북쪽에 박(亳 : 은나라의 서울)이 있고, 성 가운데에 성탕(成湯 : 은나라의 임금)이 있고, 그 성 서쪽에 기자(箕子)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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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1 杜預雲:梁國蒙縣有箕子冢。
⑤-1 두예운:양국몽현유기자총。
⑤-2 集解,杜預曰:梁國蒙縣有箕子冢。
⑤-2 집혜,두예왈:양국몽현유기자총。
⑤-3 杜預曰:梁國䝉縣有箕子。
⑤-3 두예왈:양국몽현유기자。
▲ 사기(史記) 38권(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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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1 두예(杜預)가 이르길 : 양국(梁國)의 몽현(蒙縣)에 기자(箕子)의 무덤이 있습니다.
⑤-2 집해(集解)에 따르면, 두예(杜預)가 말하길 : 양국(梁國)의 몽현(蒙縣)에 기자(箕子)의 무덤이 있습니다.
⑤-3 두예(杜預)가 말하길 : 양국(梁國)의 몽현(䝉縣)에 기자(箕子)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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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1 蒙縣在商丘北五十里。
⑥-1 몽현재상구북오십리。
▲ 상서비전(尚書埤傳) 07권(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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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1 몽현(蒙縣)은 상구(商丘)의 북쪽 50리에 위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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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1 蒙澤,杜注宋地:梁國有蒙縣,今河南歸徳府商丘縣。北有蒙澤縣,南二十五里有蒙縣古城。
⑦-1 몽택,두주송지:양국유몽현,금하남귀덕부상구현。북유몽택현,남이십오리유몽현고성。
▲ 흠정춘추전설휘찬(欽定春秋傳說彚纂) 08권(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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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⑦-1 몽택(蒙澤), 두주(杜注)와 송지(宋地)에 따르면:양국(梁國)에 몽현(蒙縣)이 있고, 지금 하남(河南)의 귀덕부(歸徳府) 상구현(商丘縣) 입니다. (상구현의) 북쪽에 몽택현(蒙澤縣)이 있고, 남쪽 25리(里)에 몽현(蒙縣)의 옛 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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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산서성(山西省) 남부의 요산(遼山)의 낙평(樂平)에 대하여, 여러 기록이 밝히는바 요산(遼山)은 원래 기자(箕子)의 봉토 지역(조선 영역)이고, 낙평(樂平)은 후에 낙랑(樂浪)과 평주(平州 : 유주)를 나눠 두기 이전의 지명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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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확하게 찾아야 한다면, 현재 하남성(河南省)의 낙양(洛陽)에서 북쪽으로 나아가야 하고..
현 산서성(山西省)의 태원(太原)에서 남쪽으로 나아가야 하는 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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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윗쪽 고지도를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로주(潞州 : 潞安)의 북쪽 주위에 기자(箕子)의 봉토 기산(箕山)과 관련되는 요산(遼山) ' 유사(榆社) ' 평성(平城) ' 화순(和順)등이 실존합니다.
그 곳은 요서(遼西)와 요동(遼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요산(遼山)이 있는데, 현재 산서성(山西省)의 요주(遼州 : 左權)이라고 불리우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고대 기록들에 따라서 현재 요녕성(遼寧省)에 결코 고대의 요주(遼州) ' 요양산(遼陽山)' 요산(遼山) 등이 위치할 수 없고, 원래 현재 산서성(山西省)의 좌권(左權)에 속하는 지명들이라는 것입니다.
즉, 현재 산서성(山西省)의 동남쪽과 산동성(山東省)의 서쪽 사이에 위치하는 태행산맥(太行山脈)의 한 지류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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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高句麗在遼東之東千里,南與朝鮮、濊貊,東與沃沮,北與夫餘接。
① 고구려재요동지동천리,남여조선、예맥,동여옥저,북여부여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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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고구려(高句麗)는 요동(遼東)의 동쪽 천리(里)이요, 남쪽에는 조선(朝鮮)과 예맥(濊貊) 이고, 동쪽에는 옥저(沃沮) 이고, 북쪽에는 부여(夫餘)와 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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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1 東沃沮在高句麗蓋馬大山之東,濱大海而居。
②-1 동옥저재고구려개마대산지동,빈대해이거。
②-2 其地形東北狹,西南長,可千里,北與挹婁、夫餘,南與濊貊接。
②-2 기지형동북협,서남장,가천리,북여읍루、부여,남여예맥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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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1 동옥저(東沃沮)는 고구려(高句麗)와 개마대산(蓋馬大山)의 동쪽에 위치하고, 대해(大海)와 가까이 있어서 거하였습니다.
▶ ②-2 그 곳(동옥저)의 지형은 동북쪽으로 좁고, 서남쪽으로 길어지니, 가히 천 리(里)이요, 북쪽에는 읍루(挹婁) ' 부여(夫餘) 이고, 남쪽에는 예맥(濊貊)과 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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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옥저(東沃沮)의 지형적 구조를 살펴보면 현재 한반도(韓半島) 북부의 지형과는 전혀 맞지 않는 문제가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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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옥저(東沃沮)의 지형적 구조 - 동북쪽으로 좁고,서남쪽으로 길어지는 지형은 동북쪽으로 돌출되어 나오며, 서남쪽으로 대륙과 붙어 있는 반도 지형 구조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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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挹婁在夫餘東北千餘里,濱大海,南與北沃沮接,未知其北所極。其土地多山險。
③ 읍루재부여동북천여리,빈대해,남여북옥저접,미지기북소극。기토지다산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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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③ 읍루(挹婁)는 부여(夫餘)의 동북쪽 천여리(里)에 위치하고, 대해(大海)와 가까이 있고 [ 대해(大海)를 둘러싸였고 ], 남쪽에는 북옥저(北沃沮)와 접하고, 그 곳(읍루)의 북쪽에서 다다른 곳을 알지 못합니다. 그 곳(읍루)의 토지는 산이 많고 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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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읍루(挹婁)는 여러 기록에 따르면 본디 심양(瀋陽)이라고 했고, 요사(遼史) 38권(卷)의 기록에 따라서 그 심양(瀋陽)은 계주(薊州)의 삼하현(三河縣)과 어양현(漁陽縣)을 고쳐서 세운 지명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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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읍루(挹婁)의 토지는 본디 현재 하북성(河北省) 북부의 산맥 지형에 속하여 있고, 천진(天津)과 가까이 하는 바다는 원래 읍루(挹婁)의 대해(大海)이었음을 자연히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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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읍루(挹婁)의 남쪽에 위치하는 동옥저(東沃沮)는 기실 산동성(山東省)에 위치하는 지형적 조건이 생기게 되는데, 산동성(山東省)은 동북쪽으로 돌출되어 나오며, 서쪽으로 대륙과 붙어 있는 지형적 구조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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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濊南與辰韓,北與高句麗、沃沮接,東窮大海,今朝鮮之東皆其地也。
④ 예남여진한,북여고구려、옥저접,동궁대해,금조선지동개기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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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④ 예(濊 : 예맥)의 남쪽에는 진한(辰韓) 이고, 북쪽에는 고구려(高句麗) ' 옥저(沃沮)와 접하였고, 동쪽으로 대해(大海)로 마치니, 지금 고조선(古朝鮮)의 동쪽에는 대개 예(濊 : 예맥) 지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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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고조선(古朝鮮)은 기자(箕子) 조선(朝鮮)을 기준으로 하게 된다면..
현재 산서성(山西省) 동남부의 좌권(左權 : 遼州 : 기자의 첫 봉토) ' 유사(榆社) 부터 하남성(河南省) 동북부의 상구(商丘) ' 몽현(蒙縣 : 기자의 무덤) 등지는 기자(箕子) 조선(朝鮮)의 영역이라고 하기 때문에,
따라서 예멕(濊貊) ' 진한(辰韓) 지역은 안휘성(安徽省)과 강소성(江蘇省) 등지이라야 하는 지형적 조건이 생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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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1 韓在帶方之南,東西以海爲限,南與倭接,方可四千里。
⑤-1 한재대방지남,동서이해위한,남여왜접,방가사천리。
⑤-2 有三種,一曰馬韓,二曰辰韓,三曰弁韓。辰韓者,古之辰國也。馬韓在西。
⑤-2 유삼종,일왈마한,이왈진한,삼왈변한。진한자,고지진국야。마한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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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1 한(韓 : 마한 ' 진한)은 대방(帶方)의 남쪽에 위치하고, 동쪽과 서쪽에 바다가 연이어져 있어서 경계를 두었으며, 남쪽에는 왜나라(倭)와 접하고, 사방이 가히 4천리(里 = 4,000 X 4,000)가 됩니다.
⑤-2 3가지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마한(馬韓)을 일컫고, ,둘은 진한(辰韓)을 일컫고, 셋은 변한(弁韓)을 일컫습니다. 진한(辰韓)이라는 것은, 고대의 진국(辰國 : 秦韓) 입니다. 마한(馬韓)은 (진한의) 서쪽에 위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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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륙의 청해성(靑海省)의 청해호(靑海湖 : 쿠쿠눠얼 : 푸른 바다)가 있는데, 그 호수를 일러 서해(西海) 이라고 하며, 서해(西海) 지역에서 나와서 황하(黃河)가 흐르다가 대해(大海 : 東海)로 들어가는 지형적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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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대방(帶方) 지역에는 황하(黃河)를 해(海)로 정하여 경계를 두고 있음을 볼 수 있으며, 그 때문에 고구려(高句麗)와 백제(百濟) 사이에 바다를 경계로 두었다는 기괴한 기록이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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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나라(倭)와 접하였다면 한(韓 : 마한 ' 진한)과 왜나라(倭)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대륙형 구조로 되어 있는 지형적 모순이 생기게 되고, 특히 4,000 X 4,000 면적을 가져야 하는데 현재 한반도(韓半島 : 남북 3천리 X 동서 1천리)의 길이와 전혀 맞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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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 30권(卷)의 기록을 기준으로 지리적 관점 하에 찾아보는 지도 입니다. 이를 제일 흡사한 지도를 맞추게 되면 다음 아래처럼 그렇게 됩니다.
△ 윗 쪽 지도를 클릭하면 확대해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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