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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in] 나는 “일생 거짓말 시도 많이 썼다” | ||
“김규동 시인의 삶과 시세계”... 6일, 제1회 삼정문학관 문학강연 및 시 낭송회 | ||
조금 밖에 없으므로 그렇다 가까이 오너라 손 잡아보자
시간이 조금밖에 없으므로 간단히 말하겠다 일생 거짓말 시도 많이 썼지
시간이 조금밖에 없으므로 내 죄를 벗고 갈 수도 없이 되었다 시간이 조금밖에 없으므로. -김규동, ‘어떤 유언’ 모두
“깊어가는 가을입니다... 삼정문학관은 2008년에 문을 열어 우리 문학의 소중한 자료들을 수집하고 보관 및 활용하려고 합니다... 특히 이번 행사의 주제로 선정한 김규동 선생님은 후배 시인들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삶과 시작 활동을 하시다가 지난달 세상을 뜨셨습니다. 많은 후배 시인들의 가슴속에 여전히 살아 계십니다. 삼정문학관에는 김규동 선생님의 서각(書刻) 작품 일체가 보관되고 있기에 관람하실 기회도 가질 수 있습니다.” -‘모시는 말씀’ 몇 토막
남북분단 때문에 60년 동안 고향인 함북 종성을 한 번도 잊어보지 못한 시인 김규동 선생. 지난 9월 28일 이 세상을 훌쩍 떠난 우리 겨레가 낳은 으뜸 시인 김규동(1925년 2월 13일~2011년 9월 28일) 선생을 추모하는 첫 행사가 열린다.
깊어가는 가을,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맹문재(문학in 기획 편집위원)는 3일 “6일(일) 낮 2시∼4시까지 경기도 용인에 있는 삼정문학관(관장 정정례) 강의실에서 삼정문학관 주최로 ‘김규동 시인의 삶과 시세계’ 행사가 열린다”고 밝혔다.
이번 추모행사는 모두 4부로 나뉘어져 있다. 제1부는 ‘모시는 말씀’을 시인 정정례가, 인사 말씀은 시인 이은봉(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광주대 교수)이 맡는다. 제2부는 문학강연으로 민영 시인(한국작가회의 고문)이 나와 “내가 만난 김규동 시인”을, 맹문재 시인(안양대 교수)이 나와 “나비와 광장의 시학, 김규동의 시세계”를 되짚는다. 제3부는 시 낭송 및 공연으로 시인 공광규(문학in 기획편집위원), 권성훈, 권현형, 김세희, 문창길, 박몽구, 신미균, 이도윤, 이소리(문학in 대표), 임동확, 최순섭, 황은주가 나와 시인 김규동 선생이 남긴 시와 자작시를 읊는다. 제4부는 “나의 아버지 김규동 시인”으로 2남인 김현이 나와 아버지 삶과 시세계에 대해 차분하게 이야기한다.
맹문재 시인은 “이번 행사에서 시를 낭송하실 분은 누구나 환영한다”라며 “11월 5일까지 신청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에 참석할 분은 낮 1시까지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초구민회관 옆(3호선 양재역 7번 출구)으로 나와 대절버스 탑관광을 타면 된다(011-686-5060). 일반 버스를 타는 사람은 9404번(강남 신사역 출발), 5500-1번(광화문 출발), 7000번(사당동 출발)을 타고 삼정문학관(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하갈동 93-3, 031-283-5371, 011-314-1236)으로 오면 된다. 승용차를 타고 오는 사람은 경부고속도로-신갈인터체인지-좌회전-경희대 방향 약1.5km 정도 사거리-민속촌, 용인시청 방향 좌회전-약 200m 대덕사 입구-사거리 우회전-대한항공 방향으로 직진해 약 200m를 지나 하나은행 연수원 주차장 앞 건물(녹색철조망 안집)로 오면 된다.
얘야 에미가 기다린다 언제까지 기다리마 3년 뒤면 돌아온다더니 40년이 지나도 못 오는 너를 그래도 기다린다 먼 산 적시며 비 오는 날은 빗속에라도 찾아올 것만 같아 물 흐르는 신작로길에 나와 섰다 -김규동, ‘어머니’ 모두
이동순 시인은 창비에서 나온 <김규동 시 전집> 해설 ‘장엄한 분단서사와 회복의 시정신’이란 해설에서 “김규동 시인이 발간한 전체 시집을 통찰하는 과정에서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시인의 작품세계가 줄곧 ‘회복’의 시정신에 일관해 왔다는 사실이다”라며 “김규동 시인이 추구해온 회복의 대상은 바로 그리운 어머니와 잃어버린 고향”이라고 썼다.
김규동(1925년 2월 13일~2011년 9월 28일) 시인은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호는 문곡(文谷)이다. 선생은 1925년 함경북도 경성(鏡城)에서 태어나 전후(戰後)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문명 비판을 하는 시를 썼다. 1944년에는 경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47년 연변의과대학을 마쳤으며, 1948년 김일성종합대학교를 중퇴했다.
1948년 <예술조선> 신춘문예에 시 ‘강’이 당선되어 작품횔동을 시작했으며, 경성고보에 다닐 때 스승인 김기림(金起林) 시인 영향을 받아 모더니스트로 출발했다. 1951년에는 박인환(朴寅煥), 김경린(金璟麟) 등과 함께 <후반기> 동인으로 활동하며 모더니즘에 바탕을 둔 초현실주의 색채가 짙은 작품을 발표했다.
1955년에는 <한국일보>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우리는 살리라’와 ‘포대가 있는 풍경’이 당선되었으며, 1960년 자유문인협회상을 받았다. 시집 <나비와 광장>(1955) <현대의 신화>(1958) 등으로 대표되는 초기 시에서는 전쟁을 소재로 삼아 도시가 낳은 기계문명과 자연을 견주는 시를 썼다.
1960년 4·19혁명 뒤부터 1970년대 초까지 작품활동을 거의 하지 않던 선생은 1974년 고은, 백낙청, 김병걸, 김정한과 함께 민주회복국민회의에 참가한 뒤 자유실천문인협의회(1974),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민족문학작가회의(1989) 고문 등을 맡으면서 민족문학을 이끌었다.
시집으로는 <죽음 속의 영웅>(1977) <깨끗한 희망>(1985) <오늘밤 기러기떼는>(1989) <하나의 세상>(1987) <생명의 노래>(1991) <길은 멀어도>(1991) 등이 있다. 평론집으로는 <새로운 시론>(1959) <지성과 고독의 문학>(1962) <어두운 시대의 마지막 언어>(1979) 등이 있다. 1996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으며, 2011년 9월 28일 폐렴과 노환으로 86살로 이 세상을 떠났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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