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흥왕 순수비는 함경남도 장진군의 황초령과 이원군의 마운령에 각각 서 있었다. 마운령에 있던 비는 1929년 함경남도 이원군 마운령 만덕산 산중에 파묻혀 있던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 비의 발견은 16세기말에 발견된 것을 17세기말 금석학의 대가이며 우리나라 고고학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추사 김정희의 고증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지금은 함흥시 사포구역 소나무동에 있는 함흥본궁 뜰 안에 옮겨놓았다. 비석은 화강석으로 네모나게 다듬어서 만들었는데 비몸돌의 높이는 1.36m, 너비는 45cm, 두께는 30cm이며 갓돌은 배집형식으로 되어
있다. 비에는 앞면에 26자씩 10줄, 뒷면에 25자씩 8줄, 모두 415자의
글이 세겨져 있다. 앞에서 10자, 뒤에서 19자가 깍이어 없어졌거나 잘
보이지 않는데 '황초령순수비'에 의하면 앞의 10자 가운데 7자까지는
알 수 있으므로 결국 393자를 읽을 수 있다. 글씨체는 해서체이다.
비문에는 진흥왕의 '업적'과 변방을 돌아보는 목적 그리고 비를 세우게 된 연유 등이 적혀있고 그 마지막 부분에는 왕을 따라갔던 사람들의 출신과 벼슬,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비는 지금 있는 진흥왕 순수비 가운데서 비문이 제일 많이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라의 24대 왕인 진흥왕이 568년 8월에 이 곳을 돌아보고 간 것을 기념하여 세운 이 비는 당시의 역사와 서예, 이두문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