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의 새 공동체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선택된 마지막 시대의 공동체임을 자각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후로 제자들에게 요구된 새로운 결단은 예수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종말론적 활동에 근거해서만 가능했다. 그러므로 이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선민"이나 "성도"라는 칭호를 지니게 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공동체를 이루는 그들이 구약의 칭호인 동시에 하느님의 종말론적 공동체의 칭호인 "하느님의 단체"라는 칭호를 물려받을 자격이 있었다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유대교에 있어서 이 이름은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는 흩어지고 감추어져 있으나 장차 모여서 이루어질 종말의 하느님 백성을 가리켰다.
이에 해당하는 희랍어 "하느님의 교회"가 새로운 공동체의 이름으로 통용되었고, 오늘날 간단히 "교회"라고 불리고 있는 것이다.
"교회"라는 말은 세월이 흐르면서 여러 가지로 사용되어 복잡한 의미와 뉘앙스를 띠게 되었다. 게르만어에서 통용되는 말(독일어 Kirche, 영어 church, 스웨덴어 Kyrka; 비교:슬라브어의 cerkov)은 루터가 지적했듯이 로마의 정치적 집회인 "꾸리아"(curia)에서 유래한 말이 아니다[루터가 "교회"라는 말을 싫어하고 "공동체"라는 말을 좋아한 데는 이 점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 말은 테오도리크 대왕의 고트 왕국에서 유래하여 도나우강 이북과 라인강 이남 지역에서 통용되었었다. 그 어원은 비잔틴 희랍 어형인 "kyrike"로서 "주님께 속하는"이라는 뜻이다. 보충하자면 "주님께 속하는 집"이라는 뜻이요, 요컨대 "주님(Kyrios)의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게르만어와는 대조적으로 로만어(라틴어 ecclesia,스페인어 iglesia,불어 eglise, 이탈리아어 chiesa)는 모두가 신약성서에서 사용된 희랍어 "에클레시아"(ekklesia)와 직접 관계를 보존하고 있다. 그러면 이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에클레시아"라는 말은 에페소 사람들이 사도 바울로에게 난동을 부린 이야기(사도 19:32,39-40)에 나오듯이 세속 희랍어에서도 사용된 말이다. 가령 투키디데스, 플라톤, 크세노폰이나 그후의 희랍인들이 이 말을 사용할 때, 또는 희랍 시민들이 이떤 제명(題銘)에서 이 말을 읽을 때, 그 뜻은 즉시 분명한 것이었다.
여기서 시민이란 전령관의 부름을 받고 모인 사람들(ekkletoi)이다. 에클레시아는 그러므로 "불려나온 사람들"이고 이 불려나온 사람들의 모임이며 백성들의 집회다. 따라서 에클레시아가 직접 의미하는 것은 ㅡ 아무리 종교적 의미를 가미한다 하더라도 ㅡ 정치적 집회이지 신성한 종교 의식의 집회는 아니다. 또 그것은 구체적 집회, 수시의 "회합"을 의미한다. 회합이 없는 휴회기간에는 에클레시아도 없다.
이런 의미의 에클레시아와, 교회를 뜻하는 에클레시아가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이 말의 신약성서상 용법을 직접 세속 희랍어에서 추론한다는 것을 불가능하다.
신약성서의 에클레시아가 개념의 척도가 되는 것은 희랍어의 어원을 캐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구약성서를 희랍어로 번역할 때 어떤 말을 사용했는가에 있다. 70인역에는 이 말이 약 백 번 나온다. 그리고 그것도 거의 모두가 원래 세속적 의미를 지닌 히브리어 카할(kahal=소집된 모임)에 해당한다(법적,종교 의식적 공동체로서의 백성들의 모임을 뜻하는 eda는 대개 synagoge로 번역되어 있다).
"에클레시아"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띠게 되는 것은 "주님의"(혹은 "야훼의")라는 수식어가 붙을 때이다. 여기서도 집합과정이 등한시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단순히 누군가가 무엇인가를 위하여 모이는 것이 아니라 누가 무슨 목적으로 모이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즉 하느님이 모으시고, 따라서 에클레시아가 하느님의 공동체가 된다는 것이 중요하다(에클레시아라는 말이 수식어 없이 이런 뜻으로 쓰이는 경우도 종종 있다).이것은 임의의 사람들이 임의로 모인 것이 아니다. 하느님의 에클레시아는 수시로 일어나는 임의의 집회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하느님이 미리 선택한 사람들의, 하느님을 중심으로 한 모임이다. 이리하여 이 말은 이미 70인역에서도 종교적,예배적 개념으로 되고 있었거니와, 그후 점점 더 ㅡ 꿈란 문서에 "카할(kahal)이라는 말이 확실히 드문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ㅡ 종말론적인 의미를 띠게 된다. 즉 마지막 시대의 참 하느님 공동체로서의 에클레시아가 되어가는 것이다.
초대 교회는 에클레시아라는 용어를 이어받음으로써, 의식적으로 참 하느님의 집회, 참 하느님의 공동체, 참 종말의 하느님 백성으로 자처했다.
첫댓글 주욱 올려주신 한스큉의 3편 글을 통해 "교회"에 대하여 좀더 심도있게 접근할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특히 공동체, 에클레시아에 대하여 어원으로부터 의미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