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28.주일. 창2:19. 하나님의 CCTV. 236. 231
대한민국은 도로뿐만 아니라 농촌에 가더라도 웬만한 부락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우리 집만 해도 대문 앞 전봇대에 CCTV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2000년부터 방범용 CCTV가 생긴 이래 현재는 모든 곳에 설치되어 범죄예방효과를 높이고 있습니다.
물론 사생활침해와 주민통제감시의 부작용으로 사회적 논쟁이 되기도 하였지만 실보다 득이 많아 점점 확장되어지는 추세입니다.
최근에는 북한 탈출인 들이 많이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북한에도 두만강변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고 국경에는 철조망과 전기까지 흐르게 하여 점점 탈출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답니다.
작년에 우리 집 앞 마을회관마당에 주차해 놓았는데 동네사람이 집사람 차를 후진하다가 받아서 문짝을 교체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CCTV 없었다면 가해자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CCTV 의 고마움을 느낀 적이 있었습니다.
이 CCTV 가 1942년 (82년 전)에 독일발명가에 의해 만들어져서 현재까지 이르고 있답니다.
그런데
최초의 CCTV 운영자가 누구신지 아십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적CCTV 운영자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후 하신일은 인간이 무엇을 하는지 세밀히 살펴보셨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현재에도 하나님은 인간을(나를) 불꽃같은 눈으로 살펴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들을 모두 창조하시고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춰놓으신 후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첫째 사람인 아담을 지으신 후 아담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게 보여서 아담을 돕는 배필을 만드십니다.
첫째 사람인 아담이 먼저 만들어져 혼자였지만 사실 그 아담은 매우 바빴습니다. 하나님이 많은 일거리들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2:19 -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하나님이 흙으로 만든 짐승과 공중의 새들에게 이름을 짓도록 하시고 무엇을 하는지? 살펴보셨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무엇(what) 은 원문으로 ‘마’המ 라고 부릅니다.
그전 성경 개역한글에서는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라고 번역하였는데
지금성경 (개역개정)이 ‘무엇. what. המ (마). 의문사?' -
원문에 맞게 잘 번역을 하였네요 ,
(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
무엇 이라는 단어가 성경에는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시자 마자 그냥 버려두신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는지 세밀하게 살펴주셨던 것입니다.
친근한 사람이나 가족에게 전화할 때는 “지금 뭐 하고 있어?”하고 운을 뗍니다.
그러자 상대방은 농담한다고“ 지금 전화 받고 있잖아~ ”응수합니다.
우리는 눈으로 보지 않고는 상대방이 무얼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 어느 곳에 있는 사람도 지금,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다 아십니다.
하나님을 무소부재 하시다는 표현을 씁니다.
때와 장소 관계없이 어디에나 계시고 어디에서나 함께 하시는 분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세밀한 배려와 보살핌이 없으면 우리 인간들은 한 순간도 살 수가 없습니다.
아니 지구자체가 순식간에 사라질 수 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정확한 손길과 관심과 인간을 향한 세심한 배려가 있기에 지구도 안전하고 인간도 안전하고 모든 동식물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이 키우기가 힘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엄마는 본능적인 사랑으로 아이를 키우게 됩니다. 그 아이가 움직이고 걸음마하기 시작하면 아이 엄마는 한 눈을 팔수가 없습니다.
같이 밥을 먹다가 순식간에 뜨거운 음식을 만질 수도 있고, 어떤 물건을 집어 먹을 수도 있고, 장애물에 부딪치는 등 사고위험성이 항상 도사리고 있어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는 어머니의 사랑과 관심도 자식을 온전히 지켜 주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순식간에 일어날 일도 미리 예측하시고 우리들을 보호하십니다.
위험한 순간에도 기적적으로 살아나는 일들이 참 많잖아요.
일차원적인 눈을 가진 세상 사람들은 고통 중에 있을 때 광야에 버려진 것 같은 초라한 나만 보게 됩니다.
하지만 믿음의 눈을 가진 성도는 고난을 당했을 때,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도는 환경이나 고난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보기에 담대하게 믿음의 행진을 할 수 있습니다.( 이승희, 하나님을 알아가는 행복. )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
그러나 나도 나를 모를 때가 많습니다.
어떤 실수를 해 놓고는 “내가 이러지?”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그러나 실수가 전혀 없으신 하나님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요, 축복된 사람이 됩니다.
아기를 낳은 부모가 본능적으로 그 아기를 사랑하지만 또 다른 이유는 부모를 닮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아이가 아무리 예뻐도 다른 아이가 아무리 똑똑해도 내 자식만큼 예쁠까요?
하나님이 흙덩어리에 불과한 나를 그토록 애지중지 하시고 사랑하시고 세밀하게 보살펴 주시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하나님 닮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인간은 너무나도 소중하고 귀한 사랑의 존재가 됩니다.
성경의 처음서부터 끝까지의 요지는 하나님의 사랑이요, 관심이요, 배려입니다.
성경 어느장을 펼쳐 보더라도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수21:13 ~19에는 성읍배분과정을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제비뽑기로 나눠줍니다.
레위자손중 고핫자손이 제일 먼저 제비 뽑혔습니다.
그는 장남 게르손 다음 고핫자손입니다.
어째서 차남후손이 제비 뽑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 아론의 헌신과 수고 때문이었습니다.
아론은 모세와 같은 출애굽의 영웅이었습니다.
광야40년 동안 헌신한 제사장이었습니다.
동생인 모세를 도우며 심어 놓았던 헌신의 열매를 자손들이 얻은 것입니다.
당시의 제비뽑기는 하나님이 하시는 방법으로 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제비를 뽑아서 나누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민34:13; 수21:8).
수고의 대가를 지불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고핫자손이 택함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체적임과 세밀하시고 자상하심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하나님의 세밀하심은 인간의 유한한 지식과 지혜로는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신비롭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삶의 먼 미래까지 내다보시고 삶을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짧은 식견과 지혜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하여 불평과 불만을 쏟아놓을 필요가 없습니다.
인도함 받은 곳이 가장 최선의 장소요 가장 안전한 목적지입니다.
지금 이곳, 이 현장에 서 있는 것은 하나님의 실수와 무관심 때문이 아니요, 하나님의 배려와 세심한 섭리 때문임을 고백하기 바랍니다.
오늘도 우리의 수고를 세밀히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겸손히 도와 주시고 계십니다.
신 32:10-12
신32:10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일방적으로 사랑하시고 지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신32:10절에 눈동자같이 지켜 주신다고 했는데, 눈동자를 보면 전자동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눈에 무엇이 들어오려고 하면 어느새 감아서 그것을 막는다.
눈에는 30만개의 회로가 있고 1억만 개의 신경세포가 있어서 무엇이 들어오려고 하면 눈이 자동으로 감기고 보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빠른 새가 ‘눈 깜짝 할 새’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이 눈동자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을 지켜 주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것은 일방적인 사랑입니다.
수없이 거역, 배반, 부족한 일 많이 했으나 일방적인 사랑으로 용서하시고 용납하시고 받아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게 된 것은 전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일방적인 은혜입니다.
스피노자는 말하기를 “사랑하기만 하면 허물은 보이지 않고 모든 것이 다 좋게만 보인다”고 했습니다
세상의 CC카메라는 감시와 통제, 범죄예방 및 추적용으로 주로 쓰이나 하나님의 CC카메라는 사랑과 자비, 보호와 관심과 배려의 장치입니다.
세상의 카메라는 사각지대와 고장 난 곳도 많고 가짜 카메라도 종종 있습니다.
과거에는 도로감시카메라도 가짜가 많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가짜 카메라 있는 곳이 있습니다.
가짜인지 고장 난 곳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어디에 그런 것이 있는지 압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영적 카메라는 지구는 어디에 가더라고 다 설치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눈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지구의 한 모퉁이에서 굶주리며 아파서 고통당하는 자들의 한숨소리도 다 들으시고 보고 계시며, 한 모퉁이에서는 풍요와 쾌락의 현장에서 죄의 나락으로 변해가는 자들의 모습도 다 보시고 계십니다.
하나님 앞에 항상 우리들은 모든 것들이 다 드러나는 삶을 살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다만 감시와 억압의 눈길이 아닙니다.
아담에게 무엇을 하는지 세밀히 살펴 보셨던 하나님이 지금은 나를 향하여 사랑의 눈길로 지켜주시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시기 바랍니다.
마6:5-6
5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골3:23 -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꼭 하나님이 보시니까 잘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감시하시니까 똑 바로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와 과거, 현재, 미래를 세밀히 살펴주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세상의 모든 일이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됨을 바로 알고 책임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경건한 성도들의 삶은 매사에 신중하고 조심스러우며 정성을 다하는 토기장이의 손길처럼 넘어질까 조심하고 깨어질까 근신하는 복된 인생이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