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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여행 2009/01/21 09:00 꺄르르
수유+너머는 사회과학과 고전문학을 넘어 과학에서 예술, 영화에 이르기까지 온갖 방면의 공부꾼들이 흘러 들어오는 연구소지요. 10여 전, 공부와 밥과 우정이 있는 풍경을 그리려 했던 여러 선생님들이 뜻이 통하여 오늘에 이르렀지요.
그 가운데에서 수많은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고 계신 고미숙 선생님을 찾아뵈었습니다. 고미숙 선생님은 최근 ‘호모 쿵푸스’, ‘호모 에로스’를 쓰시면서 젊은이들에게 인생공부를 하고 삶과 앎을 일치시키라고 말을 거셨지요. 1월 16일, 수유+너머에서 젊은이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2009년 전망을 어떻게 하시는지요? “IMF이후, 삶이 크게 바뀌었잖아요. 그런데 작년 말부터 다시, 패러다임이 바뀌는 구나, 큰 운이 바뀌는구나, 느낌을 받고 있어요. IMF이후, 사람들이 생각했던 삶과 행복의 가치가 다 붕괴되었구나, 돈을 중시하는 수준을 넘어 펀드, 주식, 부동산으로 삶이 설치되었잖아요. 이게 붕괴가 되고 있어요. 사람들이 다 어렵다 하는데, 저는 그게 너무 허망하였던 것이기에 오히려 무너진 게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자격증 같은 도구화된 지식이 아니고 사는 게 뭔지 알려고 하는 공부가 늘어나고 있거든요. 이젠 정말 허황한 신기루를 좇지 않고 자기 몸에서 시작하는 공부, 거기에 맞는 경제활동과 삶을 구성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행복할 거 같은 사람이 행복하지 않은 세상” -위기가 기회일 수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변화하려면 시간이 필요할 듯싶습니다. “그동안 붙들고 있었던 게 무너지니까 많은 고통을 동반하겠지요. 삶의 기반이 붕괴되는 거잖아요. 여기서 오는 수많은 균열과 상실을 감내해야하니까 상당히 힘들죠. 제가 축복이라 한 것이 마음 편하게 된다는 것이 아니고 이런 고통들이 감내할만한 한 가치가 있다는 거예요. 이걸 감내하면 그런 허황한 가치에 의존하지 않고 어떤 상황에도 당당히 살 수 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기존에 우리가 생각했던 행복 기준으로 보면 행복할 거 같은 사람이 행복하지 않아요. 다 가진 사람도 행복하지 않아요. 망상에 의존한 행복이었어요. 그거 우리가 다 알고 있거든요. 주식이 대박난 사람이나, 부동산에서 성공한 사람들, 절대로 행복하지 않아요. 그걸 따라간 사람은 더 행복하지 않지요. 몸이 익숙하고 편했을지는 몰라도 그 편안함은 마약 같은 거였죠. 이걸 떨치기까지 굉장한 고통이 동반되지만 그 고통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시민들은 고통이 줄 수 있도록 부드럽게 변화나 전환이 되면 좋겠네요. “부드럽게, 그런 식의 타협보다는 정면으로 돌파할 수 있는 비전을 줘야 해요. 정치지도자나 지식인들, 사회를 이끌어가는 사람 몫이 있다면, 그런 비전을 담당하게 해서 고통을 겪는 보통의 서민들이 자기 고통의 뿌리를 알 수 있게 하고 거기서 시작할 수 있게 해줘야 해요. 우리는 불행히도 그런 정치지도자나 지식인그룹이 형성되지 않은 게 뼈아픈 현실이죠. 그게 가장 큰 결핍의 문제고 어디고 기댈 데가 없으니까, 보통서민들과 청년실업자들은 이 상황에서 근본적인 질문을 하나씩 던질 수밖에 없어요. 허황한 거 다 걷어내고 하나씩 떠올리면 이게 거품이다, 아니다 알 수 있거든요. 거품들을 걷어내고 나면, 이 세대는 처음으로 태어난 세대처럼 시작할 수 있지요. 기반이 붕괴된 중년층도 마찬가지고요.“
2007년 말 증시가 폭락했을 때 @ 연합뉴스 -제도와 구조가 막혀 있어서 젊은 세대가 돌파구를 못 찾는 모습입니다. “제도에 기대지 말아야죠. 요즘 말로 생까야죠. 그러면 됩니다. 지성권력이나 기성의 질서는 법이나 제도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협박해요. 제도의 편안함으로 유혹하고 어기면 벌을 받고 실패한다, 이러죠. 제도자체가 허황하고 삶을 풍요롭게 해주지 않잖아요. 이거 밖에는 없는냐 그러지 않아요. 거꾸로 생각해보세요. 제가 대학을 다닐 때와 비교하면 너무나 풍요로워요. 저희 때는 야학을 한다고 하면, 판자촌에서 간신히 건물하나 얻어서 칙칙한 불하나 켜고 했거든요. 그렇게 해도 끼니 때우는 일부터 해서 판자촌 아이들을 네트워크를 해주고 풍요롭게 해줬어요.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잖아요. 너무나 많은 공간이 있어요. 먹을 것도 참 많습니다.(웃음) 에전에는 먹을 게 없었어요. 가난하고 아르바이트 할 데도 없을 뿐 아니라 토큰하나로 살아야 하고, 코튼 하나 없어서 걸어 다녔어요. 그래도 젊음이 위축되지 않았거든요. 지금은 끼니 절대 안 굶습니다. 건강이 있고 먹을 게 있으면 젊은이만 놓고 보면 세상에 걸릴게 없어야 해요. 먹을 게 있고 자기가 사람만나고 뜻을 펼칠 공간이 있다면 그것만 이용해도 뭐든지 할 수가 있어요. 거기서부터 나아가서 세상에 사람 인연만 있으면 두려울 게 있습니까, 그 연으로 의식주가 해결되고 자기 뜻을 펼칠 공간이 열리잖아요. 이런 건 제도권에서 못하고 제도 안에 가려져 있거든요. 이걸 활성화시키면 제도나 법에 전혀 의존하지 않고도 지금보다 훨씬 풍요로운 일상이 열립니다.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절대 굶지 않아요. 가난한 사람들 모이면 어떻게든 먹고 삽니다. 그런데 어설프게 부자들은 굶어요. 돈 있어도 굶게 되요. 근본적으로 생각하는 건 일상의 주변 자체를 뒤집어엎는 거를 말해요.“ 모양은 멀끔한데, 완전히 속이 곯은 젊은이들 -선생님이 갖고 계신 젊은이들에 대한 인상은 어떠신지요? “우리 연구소에 대학생프로그램이 있어서 현실에서 만나요. 부모와 학교와 국가의 배려 속에서 화초처럼 자란 세대, 참 모양은 정말 멀끔하고 잘 빠졌는데, 속은 완전히 곯은, 정말 건강들이 되게 안 좋아요.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에 대해서 뭔가 잘 못 배려했다는 거예요. 젊음은 건강해야 돼요. 봄에 대지를 뚫고 올라오는 싹처럼 올봄에 싹이 트는 것은 작년에 트는 나무와 다른 게 올라오는 거예요. 지구는 단 한 번도 동일한 방식으로 봄을 연출하지 않았어요. 수 억 번의 봄여름가을겨울이 와도 다 달랐거든요.
대지를 뚫고 나오는 새싹 @오마이뉴스 김민수 그래서 초발심이 가능한데요. 봄이 되어 움이 나올 때, 지구는 단 한 번의 생명을 꽃피우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봄을 수 십 번을 맞아도 지루하지 않아요. 눈 오면, 또 오네가 아니라 너무 가슴이 벅차요. 이 눈은 단 한 번도 동일하지 않았던 눈이에요. 젊음이 그래야 하거든요. 젊은이는 단 한 번의 인생을 겪는데, 마치 수 십 번 청춘을 겪은 것처럼 보인다면 이상한 거죠. 그렇게 만들어버렸어요. IMF때 자라난 세대잖아요. 정말, 돈밖에 모르는 부모들이 교육을 시켰거든요. 그 기운에 의해서 움 트기 전에 땅속에서 짓밟혔어요. 양기를 다 빼앗겼어요. 부모가 예쁘고 경쟁력 있는 신체를 가져야한다 해서 요즘 애들은 부모를 전혀 안 닮았어요. 다리가 그렇게 길 수 없어요. 부모는 짜리몽땅한 한국인인데, 미국사람처럼 쭉 뻗었다, 이건 출생의 비밀이에요. 이게 어떻게 진화론에서 가능해요. 그런데 어떻게 가능하냐? 부모가 그거를 너무나 전폭적으로 열망하고 있거든요. 내 자식의 신체에 대해서 그래야 애들이 경쟁력있다는 그 신앙이 그렇게 만든 거예요. 예쁘고 늘씬해도 속에는 자기 기운이 없어요. 대한민국에서 자랄 수 있는 신체가 아니거든요. 자기 내부 네트워킹이 안 되죠. 그러니까 삭았죠. 건강이 다 안 좋아요.“ -요즘 정신건강이 안 좋은 젊은이들이 많은데 그런 이유군요. “정신건강이 안 좋은 건 몸이 안 좋은 결과에요. 거꾸로 아닙니다. 몸이 건강한데 정신이 건강하다, 동양의학에서는 불가능해요. 진짜 정신줄 놓은 사람 많아요.(웃음) 옛날에는 70~80대 노인들에게 한 말인데 요즘엔 20대들 자기들끼리 합니다. 무의식적으로 자기들 몸을 반영하는 거거든요. 젊은이들 몸이 약한데, 특히 어디가 약하냐, 하체가 약하고 간과 신이 약하죠. 그러니까 다리가 그렇게 길죠. 간과 신이 약하니까 기운이 위에서 떠있죠. 허혈이 망동한다고 하는 거죠. 그게 정신병을 낳는 거예요. 열이 위로만 떠서 밑과 교신이 안 되잖아요. 소통이 안 된다, 안 된다. 하는데, 20대 신체를 보면 소통의 부재가 뭔가 그대로 보여줘요. 내 몸 안에서 소통이 안 일어나는데, 어떻게 외부와 소통을 하겠어요. 내 몸에서 소통이 되어 하체는 따뜻하고 머리는 차가워야 건강해지는 거거든요. 머리는 뜨겁고 하체가 차가워지면 하체는 하체대로 상체는 상체대로 가는 것, 이렇게 붕괴가 일어나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정직하게 대면을 하겠어요. 눈을 쳐다보고 대화를 하지 못해요. 책을 읽거나 해도 그걸 전부 자기 방식으로 망상을 해버려요. 책을 읽어도 위험하고 안 읽으면 아무 생각이 없어지니까 위험하고, 생각이 없어진다는 게 가난한 시절이나 조선시대에는 공부를 안 하면 사람이 순박했어요. 천진하다는 게 그런 거였어요. 악의적인 게 덜 가니까, 지금은 책을 안 읽으면, 미망에 사로잡히게 되어 있어요. 시골에 살아도 천진하기 어려워요. 인터넷과 게임과 이미지에 노출되기 때문에. “얼굴은 20대데 몸은 70대인 정줄놓들, 일상을 재배치하라” 요즘 책을 안 읽는다는 건 무슨 뜻이냐면 건강하고 야생적으로 들과 산으로 싸돌아다니는 게 아니고 얘는 매일 핸드폰을 갖고 있다, 게임을 한다, 이미지에 노출되어 있다는 얘기에요. 책을 읽어야 된다는 게 생존권확보 같은 게 되었어요. 밥을 안 먹고 살면 안 되는데, 패스트푸드만 먹으면 위험한 것처럼, 책을 안 읽으면 내 인생에 해로운 걸 하게끔 세상배치가 되버렸거든요. 그러니까 몸이 곯죠. 농담으로, 얼굴은 20대데 몸은 70대구나, 하면 다 동의해요. 그 정도로 몸이 안 좋아요. 기운이 솟지 않으면 청춘이 아니죠. 야생성이 있어야죠. 새싹이 봄의 흙을 뚫고 나와야 되잖아요. 요만한 씨앗이 두꺼운 땅을 뚫고 나오는 게 얼마나 경이로워요. 그게 10대 20대여야 하거든요. 그런데 다 피어버린 꽃 같은, 늦여름의 화초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동안 청춘욕망과 에너지를 몰수한 대가로 경제적인 수치를 얻은 거죠. 국가경쟁력이라는 말과 교환을 한 거죠.“
책을 안 읽으면 해로운 걸 하게끔 배치가 되어버린 세상살이, 책을 읽고 계신가요? -20대들도 느끼고 있을 텐데, 이 상황을 어떻게 뒤집어서 건강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굉장히 많은 길이 있죠. 우선, 자기가 길들여져 있는 조건, 가족과 제도, 학교 여러 가지를 포함해서 뭐든 것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질문을 하고 일상을 재배치를 해야 돼요. 자기 일상의 흐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점검을 해보면, 얼마나 엄마한테 길들여져 있는가 알 수 있어요. 엄마가 거의 모든 걸 해주고 있거든요. 윗세대들은 자상한 배려를 받아보지 않았으니까 자식들을 엄청나게 배려해줬어요. 한 10살까지는 보호가 필요할 수 있는데, 10살 안 된 아이에게 하는 배려를 20대에게 하고 있고 20대도 당연하게 여겨요. 이걸 끊어야죠. 이걸 얻으면서 야생적인 청춘을 불태울 수 없지요. 학교에서 배우는 게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일까, 학점을 따기 위해 이렇게 노력을 해야 하나, 질문을 해야죠. 그게 아니라면 이 공부가 아닌 다른 공부를 구성해야죠. 학교에다 요구해봤자 소용이 없고요. 80년대처럼 학생회관에서 스스로 구성해야 돼요. 그때는 학교 보직교수는 말할 것도 없이 안기부, 짭새의 온갖 억압과 감시 속에서 수 십 개 동아리가 열렸잖아요. 금서라면 더 읽고, 그때는 또 많은 학생들이 죽었어요. 한 두 사람이 죽는다, 그러면 수십만의 대학생들이 목숨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살아가는 거예요. 지금은 그렇게 안 하잖아요. 지금은 동아리활동하면 잡아갑니까? 80년대 그 세대가 만들어놓은 좋은 조건이잖아요. 이걸 자유의 공간으로 써야죠. 그렇게 못하는데, 무엇이 두려운가, 바로 내가 손해 보는 게 두려운 거예요. 내가 이걸 하는 동안 친구들이 학점 더 따서 성공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해요. 그런데 성공의 내용도 너무 빈약해요. 굉장한 비전이 있다면 경쟁심도 나쁘지 않은데, 꼴랑해야 정규직 얻는 거고 연봉 더 받는 건대, 그 손해가 싫어서 그 행위를 못하는 거죠. 젊음이란 게 더 이상 초라할 수 없죠. 이거를 끊어야 되죠.“ “자유인인지 노예인지 묻고 배짱을 길러라” -20대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문화보다는 소비문화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20대가 힘들다고 하지만, 돈을 쓰는 흐름을 보면 소비위주로 되어 있어요. 돈이 없고, 실업이 높고, 살기 어렵다는 말도 맞지만 실제 물적 토대 활용하는 자체가 열심히 일해서 책을 사는 게 아니라 옷 사고 핸드폰 바꾸는 거죠. 돈이 있는 애건 없는 애건, 핸드폰 신형 나오면 바꿔야 된다는 게 골수에 박혀있거든요. 80년대는 부자집 애들도 1년 내내 군복식 검은 물들인 거 입고 다녔거든요. 일부러 빈티를 내야 지성이라고 했을 정도였지요. 요즘 가난한 애들은 절대 가난한 티를 안 내요. 사실 이래서 더 예속이 되는 거잖아요. 가난을 긍정해서, 겉으로 드러나는 그 까짓게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게 가야지, 반대로 가리는 쪽으로 갔어요. 이거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닌데, 이것이 나를 건강하고 활기차게 해주냐 물어야 해요. 그렇게 해주면 아주 좋은 일이죠. 젊음을 제대로 살고 있는 일이에요. 정답이 책이다, 공부다가 아니라 이것이 내가 능동적으로 선택한 것이냐 물어야 해요. 그것이 아니라 광고에 노출되어서 남의 욕망을 내 욕망으로 지금 받아들였다, 그러면 내가 노예라는 걸 선택한 거예요. 그런데 어떤 젊은이도 내가 노예라고 하면 좋아할 사람 없죠. 자존심 안 상하면 이상하죠. 노예로 살고 싶은 사람은 없어요. 자유인으로 살아라, 그럼 나는 자유로운가, 이 핸드폰이 나를 자유롭게 해주는가, 이 게임이 나를 자유롭게 해주냐, 쾌락을 주는 게 그렇게 많은데 자유롭고 행복한가? 그래서 자유로우면 하라 이거죠. 법으로 말려도 소용없습니다.“
오락을 하여 진짜, 자유롭고 행복한가요? @오마이뉴스 박철 -질문을 해서 지금까지와 다른 길을 가야겠네요. “질문을 해서 이 길이 아닌가 보다, 설령, 이게 테크놀로지의 핵심이래도 20대에 필요한 건 건강이고 활력이다, 그러면 그거를 쌓기 위해 몇 년을 걸어보겠다, 그런 배짱이 있어야 해요. 테크놀로지로 하는 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지금 컴퓨터를 못한다고 뒤떨어질까, 전혀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기술은 계속 갈아치우기 때문에 산에 있다 내려와도 업데이트된 거 따라갑니다. 결국 사람은 사람관계에서 내공이 결정되는 거예요. 점점 인간이 개입하는 영역이 줄어들기 때문에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결합하고 헤쳐모여를 하게 되지요. 기계와 문서를 잘 다룬다는 건 내가 하급노예로 살겠다는 선언입니다. 영화, 음악 뭐 모른다고, 자기가 대화에 끼지 못한다고 불안해하죠. TV엔 만날 막장드라마 나오고, 안 봐도 본거와 마찬가지에요. 그것을 따라간다는 게 흐름과 유행을 따라가는 게 아니거든요. 진짜 크고 깊은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해요. 눈 아픈 걸 보다가 금융이 그렇게 된 거잖아요. 그렇게 잘난 사람들이 예측하고 그러는데 왜 그렇게 된 거냐고요. 그게 그렇게 중요하면, 전 세계 최고 엘리트, 기술관료가 있는데, 10년은 고사하고 1년은 못 내다보잖아요. 자기들 능력을 벗어나 버린 거죠. 결국, 제어할 수 없는 환상이 재앙을 불러왔다면, 그럼 무엇을 읽어야 하는가? 공부해야하는가? 욕망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읽어야 하죠. 그게 인간을 이해하는 거고, 인간의 시공간을 이해하는 거죠. 인간은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시공간, 봄여름가을겨울, 풍한서습이라는 대기의 흐름 속에서, 사회 조건 안에서 욕망을 구성하거든요. “자기 안에서 소통이 안 되기 때문에 남을 받아들이지 못해” 이거를 알아간다면 자기 존재에 대한 질문이 풀리죠. 내가 왜 이렇게 망동하느냐, 내가 왜 이것을 보면 참지 못하느냐, 이것이 내 신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 이것을 알게 되는 게 통찰이라는 거예요. 통하고 투시하는 힘이거든요. 이게 안 되면 자기 안에서 소통이 안 되기 때문에 타자를 자기 안에 받아들일 수 없어요. 인간이 타자와 소통하지 못하면 성숙할 수 없지요. 나이는 점점 들어가면서 겨울로 향해가잖아요. 겨울에 씨앗으로 수렴해서 땅으로 들어가잖아요. 그런데 20대 때 씨앗이 되어버리면 씨앗이 여물지도 않은 거지요. 이게 자폐증이고 우울증이고 암이죠. 암이 그런 질병이거든요. 내안의 내가 소통을 거부하고 왕성하게 자라면서 다른 세포를 잡아먹는 거, 요것이 우리 삶을 표현하는 거예요. 이것을 이해하면 우리가 어떤 우주에 사는지 다 알 수 있어요.
일반세포가 암세포로 바뀌면서 암이 된다. 사진은 말기암환자들을 돌보는 호스피스들 @오마이뉴스 윤태 자기 자신에서 시작하면 돼요. 나는 어디가 아픈가? 왜 주기적으로 아픈가? 나는 왜 무엇 때문에 번뇌를 일으키는가? 연애가 안 되기 때문인가? 친구들과 잘 지내지 못해서인가? 사람들은 이유를 다 밖에다 두거든요. 그럼 나는 왜 그런 친구들밖에 안 만나는가, 나는 왜 인복이 없는가, 나는 왜 재수가 없는가, 자기의 몫이에요. 만약에 그런 밖에 있다면 나는 내 삶의 주인이 아니에요. 밖에서 다 정해지면 평생 남 때문에 사는 거죠. 억울하지 않나요? 모든 스승들은 자기가 겪는 괴로움을 질문으로 바꿨어요. 부처님이 그랬잖아요. 왜 인간은 태어나서 병들고 죽는가? 그게 너무 괴로웠기 때문에 출가를 한 거고 그 의문을 풀기위해 자기 몸을 관찰했거든요. 부처님 설법이 온 우주를 포괄하지만 내용은 내 몸을 관찰해라에요. 몸 어디가 아픈지, 기운이 어디로 가는지, 왜 404가지 병을 앓게 되는지, 번뇌가 왜 108번뇌인지, 봐라 이거거든요. 이거를 열심히 보다보니까 우주가 다 들어오거든요. 예수님도 마찬가지죠. 공자도 마찬가지에요. 질문은 너무 쉬워요. 자기가 겪는, 넘어진 곳에서 시작해라, 넘어진 곳에서 땅을 짚고 일어나라.“ -젊은이들이 건강하지 못한데, 그래도 희망이 있다면? “온갖 IMF 환상들이 사라져서 이제는 대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어요. 대학에 오면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안 달라지니까 너무 절망스럽잖아요. 그래서 저희연구실에도 많이 온 거 같아요. 예전 같으면 나이 드신 분들이 오셨는데, 지금은 엄청 왔어요. 대학 안에 새로운 흐름이 지금 싹이 트기 시작하는데, 그거를 어떻게 북돋아줄 것인가, 중년들의 몫이 되는 거죠. 지금 10대들이 대학에 갔을 때는 당당히 자기들 힘으로 대학사회를 바꿀 수 있어야 하겠지요. 봄에 산을 가보면, 1주일 전에는 겨울이었는데 시퍼렇게 올라오는 게 보여요. 그렇게 불만 지피면 들불처럼 일어날 거라 보거든요. 단계적으로 가는 게 아니에요. 80년대도 그랬고, 하나의 징조도 없다가 갑자기 뒤집혀요. 땅속에는 뭔가 일어나고 있는 거예요. 어제까지 용기를 내지 못하다가 다음 순간에 갑자기 확 치고 나가는 게 있거든요. 그게 인생역전이죠. 저는 그거를 믿어 대학생들 프로그램을 만들고, 대학생들은 부응해서 온 거 자체가 시작이라고 생각하죠.“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가 바로 곧 공부” -앞으로 젊은이와 소통을 많이 하실 텐데요. 어떤 방향이나 계획이 있으시나요? “신자유주의 자본은 맹목적 증식을 위해서 국경, 민족, 오프라인, 온라인, 성별, 모든 경계를 깨면서 상품을 만들었거든요. 그 조건을 역이용해서 우리를 붙잡고 있던 규범과 코드 경계들을 진짜 삶으로 격파하는 거지요. 모든 존재는 공부를 해야 한다, 공부는 자기 존재와 몸, 자기 인생에 대한 탐구다, 그거를 통해 세상 전체와 소통하는 것이다. 그러면 돈 벌려고 여기저기 다니는 게 아니라 어떤 낯선 타자와도 바로 그 자리에서 삶에 대해서 실험을 할 수 있어야 해요. 타자 속에 자기와 함께하는 동료들을 보고 세대적 일치를 이뤄야 해요. 대학생들은 대학생들끼리 세대적 일치를 이뤄야 하죠. 대학생 안에 엄청난 경계가 있잖아요. 명문대, 비명문대 이러한 내부 경계를 다 깨야 해요. 학벌이 주는 제약, 서울대와 비서울대, 지방과 서울, 이건 차이가 아니라 기득권에 의한 강요된 차별이에요. 차이냐 차별이냐는 구별로 인하여 기득권이 누구에게 주어지냐, 그거를 잘 떠올리면 돼요.
미네르바를 통해 얼마나 한국사회가 학벌에 얽매어 있는지 드러났다 @오마이뉴스 유성호 그거를 넘어서는 타자와 소통, 세대 간 소통, 어떤 세대와도 소통할 수 있는 그런 힘을 키워야 하죠. 경계를 인터넷으로 허구적으로 깨는 거 말고 진짜 삶에서 바꿀 수 있어야 하죠. 자기 안에는 무의식에 엄청난 차별들이 있어요. 사랑에 대한 고정관념도 엄청 많아요. 사회에서 진보를 외치며 세계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도 자기 안의 일어나는 사랑과 성에 관해서는 엄청난 차별을 갖고 있잖아요. 이거 하고도 싸워야 하죠. 그렇게 되면 앎이 나를 자유롭게 한다, 그 경계에 도달하고 그것이 구도요, 수행이요, 공부의 끝이자 시작이라 생각해요.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가 바로 곧 공부지요. 지금까지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번뇌를 앓는 영역은 종교인들에게 맡겨놓고 몸이 아프면 의사에게 맡겨놓았지요. 내 몸의 주인은 의사, 내 영혼의 주인은 목사님이나 스님, 이게 현대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공부를 해야 하지요. 공부는 지식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내 존재의 해방과 자유를 위한 길이에요. 여기는 외부가 없어요. 어디까지 내가 하고 나머지는 스님과 목사님 몫이 아니에요. 쉽게 말하면 갈 데까지 가는 거예요. 많은 10대들 성이나 사랑문제로 고민하는데 왜 이건 공부의 영역이 아닐까, 왜 학교에서는 알려주지 않고 못하게만 하고 그거 하면 몸 망친다고만 하잖아요. 사실 선생님도 자기 앞가름 못해요. 호모에로스를 쓰게 된 것은 은밀하고 내밀한 영역이라고 하는 것, 그거야 말로 공부 영역이고 사랑이야 말로 공부영역이라는 걸 말해주고 싶었어요. 나를 힘들게 하고 내가 정말 원하는 거라면 이거를 풀어야 내가 자유로워지죠. 이거 안에 우주가 다 담겨있어요. 골골한 사람에게 질병은 소중한 거잖아요. 의사보다 질병에 대해서 더 알아야 해요. 그냥 병원 가서 수술하고 한약방가서 약을 먹으면 자기가 어디가 아픈지 몰라요. 공부를 해서 약을 스스로 달여 먹고, 스스로 자기 몸을 구원하고, 그래서 의사를 만나면 전혀 다른 관계가 형성되잖아요. 아픈 만큼 지식을 얻잖아요. 전문적 의사는 아니지만 자기와 비슷하게 아픈 사람에게는 엄청난 지혜가 되어줄 수 있거든요. 의학도 독점되어서는 안 되지요. 몸의 권리도 몸을 가진 모든 사람의 권리에요. 저희 연구실에서 그거를 할 건데, 의학은 전문영역이 아니라는 거, 의학이야말로 보편적 학문이라는 거, 내 존재의 구원은 종교인의 전문영역이 아니라는 것, 부처님도 나를 못 구하는데, 목사님이나 스님이 어떻게 구하겠습니까, 자기는 자기가 구해야 돼요. 자기 몸은 자기가 고쳐야 되고, 그래야 의사가 명의가 되고 스님이 구도자가 되어서 사회에 좋은 비전을 주거든요. 요것만 바꾸면 진짜 공부의 90%는 되는 거예요. 자기 몸을 자기가 고치고 자기 번뇌를 자기 스스로 풀어나가는 공부란 무엇인가? 요약을 한다면, 자신의 몸과 마음을 해방시키는 도정이다, 그 점을 의학과 종교영역에서 얘기 드린 거예요, 연애, 성욕은 사적인 게 아니에요. 같이 풀어가야 하는 거예요. 숨기고 은밀한 거, 그런 건 없습니다. 우주적으로 그 부분을 하나씩 끌고 가면 자기를 구원하는 공부가 될 겁니다.“ “공부할게 많아서 너무 행복하다, 다음 생애까지 해도 끝이 없다” -평생 공부하신 분인데 요즘 어떤 분야에 공부하고 계신지요? “공부할 게 너무 많아요. 공부를 하면 세상이 열리고 내가 모르는 것이 확 열려요, 공부를 해서 아는 게 아니고, 이걸 몰랐구나, 를 알아요. 무지해서 고통스럽다가 아니고 공부할 게 많아서 너무 행복하다에요. 저는 열하일기를 통해서 글쓰기랑 여행과 삶이 일치하는 길이 있구나, 알고 굉장한 놀라움을 느꼈어요. 그 이후에 동의보감이랑 의역학을 배우면서 몸하고 우주하고 단번에 직통하는구나, 그걸 알게 되었고 그 공부는 다음 생애까지 해도 끝이 없지요. 그걸 생각하면 너무 부자가 된 거 같아요.
임꺽정 동상 @오마이뉴스 문일식
임꺽정 인물들이 어떻게 먹고 사느냐 얘기하면서 이 시대 비정규직과 청년실업을 얘기하는데, 말을 하는 저도 너무 즐겁고, 듣는 분들도 여유가 생기는 거예요. 맞아, 모든 사람이 정규직을 갖고 평생직장을 갖고 일해야 되냐, 비정규직이 정규직에 대해서 차별받는 상황만을 보면, 비정규직의 억울함만을 보지요. 물론 비정규직차별은 투쟁을 해야 되지만, 모든 사람이 정규직 자체가 목표일 수는 없어요.
거기 나오는 인물들은 고정된 직업이 없어요. 그리고 그것을 갖고 싶어 하는 생각도 없어요. 그래도 자기들 하고 싶은 짓은 다해요, 우리는 그 임꺽정 인물들보다 신분도 높고 사회권리도 많고, 물적 기반도 많은데, 왜 이 모양으로 사냐, 걔네들은 천민들에다가 조선시대가 열악했잖아요. 부모도 일찍 죽고, 전염병도 돌고, 그런데 걔네들에 비해서도 현대인들이 훨씬 불행하게 사는 거예요.
이걸 볼 때마다 막 배짱이 생기는 거죠. 청년들은 배짱 좀 키워라, 청년실업, 부끄러운 일 절대 아니에요. 오히려 모든 사람이 실업자인데, 나는 100만 실업자와 함께한다 생각하면 전혀 다르잖아요. 중년가장들도 명예퇴직 당하는 게 가족에게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라고요. 3~4명 같이 살면서 왜 가장이 그렇게 죄의식을 가져야 하는가.
임꺽정은 자존심 엄청 센데, 가부장 책임이 전혀 없어요. 그리고 가족들도 남자가 다 벌어야 된다는 생각이 없어요. 서로 편한 거예요. 능력만큼 일하고 놀고 싶을 때 놀고, 그러면 좋은 가족관계가 되지요. 10년 20년 다니다 회사에서 퇴출당하면 얼굴을 못 들고 공원으로 나가는데, 20년 했으니까 좀 쉬어야겠어 생각을 해야죠.
그동안 잘 먹고 살았으니까, 외식 줄이고 쓸데없는 소비 줄이고, 집도 좀 줄여서 그 돈으로 벌이가 생길 때까지 개별적으로 알바를 해서 생활한다고 생각하면 가족이 얼마나 재미있는 생활이 되고 친구가 되요. 그런데 기러기아빠가 되가지고 1억씩 보내고 자살하고, 이건 정말 슬프게 웃긴 일이에요.
이건 도저히 이해를 하려고 해도 이 불행을 저는 도저히 동감해줄 수 없어요. 그건 자기가 생각한 잘못된 척도에 의해서 희생당한 것이지 가족을 위해서나 의미 있는 가치를 위해서 희생당한 게 아니에요.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지가 낳은 결과거든요. 왜 자식을 위해서 1억씩을 벌어서 보내야 하고 미안해하죠.
이거를 내려놓는 방식으로 사회 불평등에 대해서 싸우면 싸움자체가 굉장히 나를 풍요롭게 해줘요. 짊어지면서 권리를 찾으려고 하면 정말 힘들어요. 파업이나 뭘 하려고 해도 애들학원비 걱정해야 되고, 내가 아니면 당장 굶을지도 모른다 불안해하죠.
사실, 굶지 않잖아요. 그리고 옆 친구들끼리만 해도 먹고 살아야합니다. 내 친구가 파업 중이다, 걔네 집 애들 데려서 밥 먹여줘야 해요. 밥 먹이고 청소시키고, 동네에서 잘 뛰어놀게 하고, 그런 관계가 형성되어야 하지 몽땅 다 자기가 책임져야 하는 게 아니죠. 지금은 옆 친구들이 불행해도 전혀 책임지지 않잖아요. 설령 사회 운동하는 사람도 사회복지제도의 문제라고 하고,
자기 친구들 자식이 불행을 겪는데 가만히 있으면 그럼 친구란 도대체 뭐예요. 왜 이렇게 꽉꽉 막혔을까, 제가 앞으로 꿈꾸는 혁명이나 저의 삶 비전은 물질적 풍요를 더 누리고 더 나눠먹어야 한다를 버려야 된다고 생각해요. 전 세계에서, 인간은 살아있으면 재화활동을 하게 되어있어요 .간접노동이든.
재화활동 하는 거를 하면서도 어떻게 순환시킬 것이냐, 순환의 방식만 바꾸도록 상상력을 써야 돼요. 임꺽정을 보면 이렇게도 사는구나, 아무도 모르는 사람에게 집을 맡기고 시골로 내려가고, 사돈에 팔촌하고 같이 집에 살고, 아무 연고도 없는 애들 데려다 키우고, 그렇게 해서 불행하거나 뺏기는 게 없거든요.
성 프란시스 대학 수업 @노숙인다시서기센터
“인류의 정신 자산이 분배되어야 진정한 평등”
GDP를 올리고 문화를 뭐 뒤집고, 일자리를 인위적으로 창출하는 식을 안 해도 이런 상상력만 확대해서 네트워크가 확장되면 가난한 사람들이 정말 필요한 지적인 풍요를 누릴 수 있어요. 예전에는 돈을 벌어서 공부하러 간다가 아니라 공부하는 지식인과 연결이 되면,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열심히 듣는 것으로 최고의 지식을 만날 수 있잖아요. 이게 정말 평등이지, 한 사람 앞에 아파트 한 채씩 생기는 게 평등이 아니지요.
부자들이 점유하고 있는 인류의 정신적 자산을 순환해야 돼요. 내가 집 한 칸이 없고 내 아이들이 대학을 못 다니지만 1주일에 한번은 고전의 강의를 즐겁게 들을 수 있다, 아무 경제 부담 없이, 언제든지 공부를 하고 싶으면 밥도 얻어먹으면서 다닐 수 있다, 이런 조건들이 형성되면 아마 그렇게 열심히 돈을 안 벌걸요. 그럼 정말 필요한 게 그런 것이죠.
하층노동자나 그런 분들이 안타까운 건 생존권보장도 중요하지만 아무리 사회적 분배가 이뤄져도 인류의 정신자산이 그리로 흘러가는 길이 없어요. 그럼 삶은 경제수치로 확인해야 돼요. 그래서 불행한 겁니다. 가난해서 불행하게 아니고 경제만으로는 나를 표현할 길이 없기 때문에 불행한 겁니다. 저는 이거를 순환시키는 수많은 실험들을 해보고 싶고 그게 이뤄지길 바래요. 그 길은 자금이 드는 일도 아니고 집을 많이 짓는 일도 아니에요. 있는 지형지물을 이용하면 돼요. 지금 갖고 있는 걸로도 남아요.“
허걱, 정줄놓이라니… 웃음이 나면서도 가슴이 저렸습니다. 미쳤다, 돌았다, 정신병이다, 맛이 갔다, 약 먹을 시간이다 등등 정신건강이 나빠진 낌새를 느끼게 하는 말들이 자주 입에 오르내리지요. 그만큼 무의식으로 정신이 아프다는 걸 보여주지요.
이것은 몸이 아프기 때문이죠. 몸과 정신은 그 경계가 분명치 않고 몸이 마음이며 마음이 몸이니까요. 젊은이들을 앓게 하고 병들게 하는 문화와 세상을 전복하기 위해서 공부를 하라고 고미숙 선생님은 강조, 또 강조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공부는 숫자 달달 외워 쓰는 ‘성적겨루기’가 아닙니다. 선생님은 삼단논법으로 단순명쾌하게 요약하시지요.
1. 대전제 : 공부하거나 행복하지 않거나!
2. 소전제 : 행복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3. 결론 :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공부란 세상을 향해 자기 존재와 세상의 의미를 묻는 그물망을 던지는 일이지요. 일찍이 홍대용 선생님은, 크게 의심하는 바가 없으면 큰 깨달음도 없다, 하셨지요. 그러므로 질문의 크기가 곧 자기 삶의 크기를 결정하게 됩니다. 젊은이들이 행복해지고 자유인이 되고 싶다면 공부를 열나게, 말 그대로 열나게 해야겠네요. 행복하려면. 정줄놓이 안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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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이네요.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