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그림의 소재 중 인간만큼 오랫동안 다루어진 것은 없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에서 출발해 지금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그림의 영원한 숙제로 남아있다. 그림에서 인간은 아름다움을 탐구하기 위한 대상으로 혹은 실존적인 문제의 핵심으로 끊임없이 등장한다.
인간과 문명에 대한 반성이 거세게 일어났던 80년대에 인간이라는 주제를 다루지 않은 작가는 거의 없었다. 당시 현실과 사회를 여러 측면으로 비판했던 작가들의 작품 중 허위영은 특유의 해학과 은유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의 많은 작품 중 인간을 벌레로 은유했던 이 작품은 여러 가지 면에서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흔히들 ꡐ벌레만도 못한 인간ꡑ이라는 비유에서 드러나듯 몹쓸 인간에 대한 비유로 벌레는 곧잘 등장한다. 허위영의 이 작품은 인간을 벌레로 변형하여 그 허위의식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작은 머리는 아둔한 인간의 이성을 풍자하고 지나치게 많은 수의 손은 과도한 물질문명을 축면으로 비판하고 있다. 작가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몸의 크기에 비해 비대해진 인간의 성적인 심벌을 강조함으로써 그 너저분한 욕망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은 벌레처럼 묘사된 인간의 형상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물질문명이 과도해질수록 인간의 삶은 피폐해진다. 순수했던 욕구들은 조작된 욕망들로 대체되고 자연을 지향했던 따뜻한 인성은 생존과 경쟁을 위한 공격적인 본능이 능사가 되어 버린다. 이 작품은 왜곡되어 버린 현대인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까발리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작품의 백미는 공격적으로 묘사된 인간의 모습이 무섭다기 보다는 왜소하게 보인다는 점이다. 측은하게 느껴지기까지 한 가냘픈 외모는 위선과 허위로도 상대를 제압하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상황 같은 것을 은연 중에 암시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빨을 드러내고 있는 허위영의 이 작품은 불구화되어 버린 현대인의 비관적인 상황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수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