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신학원 시절, 철저한 앵글로 가톨릭주의자이자 오직 공교회의 정통 신앙만을 수호하던 미국인 신자 러셀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우리 신앙인은 이웃 종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분은 잠시 깊은 침묵 끝에 예상과는 의외로 “We must build a good neighborhood 우리는 좋은 이웃 관계를 세워야 합니다!”라고 답하였습니다. 내 신앙이 존중받기 위해서는 이웃과 갈등을 피하고 조화로운 관계를 먼저 일구어야 한다는 묵직한 진실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는 "나는 개신교 목사님들과도 친구이고, 절에 가면 스님들하고도 차를 마시며 대화한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엄격한 정통주의 신앙을 가졌으면서도 종교와 교파의 담장을 넘어 이웃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그의 모습은, 배타적 진리만을 고집하는 태도와는 거리가 먼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포용력을 보여주었습니다. 타자를 향한 이러한 태도는 성공회가 지닌 깊고 넓은 영적 지향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성공회는 역사 속에서 서로 다른 신학적 입장과 종교적 견해 사이의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 상호 존중과 포용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이른바 관용(Tolerance)이란 단순히 내 생각을 양보하거나 진리를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타인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다양성 속에서 일치를 이루어 가려는 거룩한 영적 태도입니다. 원주의 생명운동가인 장일순 선생님도 “너는 어떤 종교, 나는 어떤 종교라는 걸 존중은 하되 생활과 만남에 있어서는 나누어져서는 안됩니다. 생명은 ‘하나‘이니까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종교적·정치적 극단주의가 거세지고 타인에 대한 관용이 메말라가면서 극심한 혼란과 대립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습니다. 내 생각만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독단이 지배할 때, 사회는 대화의 문을 닫고 폭력과 갈등으로 치닫기 마련입니다. 바로 이러한 시대일수록 서로 다른 입장을 품어 안는 성공회의 관용 교리는 더욱 소중한 가치를 지닙니다. 러셀의 말처럼 참된 신앙은 배타적인 담을 쌓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차를 마시며 좋은 관계가 되어주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다양성을 포용하고 평화의 길을 모색하는 관용의 정신이야말로, 갈등으로 얼룩진 이 세상 속에서 우리 신앙 공동체가 세상에 전해야 할 따뜻하고 강력한 복음입니다.
[원주교회 관할사제 조정근 프란시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