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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1일 오늘은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새벽부터 내리고 있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아름다운 단풍이 든 선선한 계절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아들을 태우고 학교까지 갔다가 비가 많이 내려서 딸도 태우러 전화하니 친구랑 걸어서 가겠다고 하여 곧장 체육관으로 들어갔다. 아내는 어제가 일요일이라 오늘 공과금을 납부하고 돌아왔는데 넉넉하게 생활비를 주지 못하여 매월 말일이 오면 은근히 미안한 마음이 생긴다. 요즘에 열심히 운동하고 식사도 잘 하는데 장腸에 문제가 있는지 화장실 가는 횟수가 많아져 체중이 2~3킬로 줄었다. 병이 없이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 나이가 들어서도 좋고 아버지로서 자식들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 될 수도 있다. 점심 후 노량진 김성만 개원식에 난 화분을 가지고 갔더니 떡과 음식을 준비하여 나를 반기고 참석한 여러 선생들과 대화를 나누웠다. 노량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학원이 밀집된 곳으로 나도 3년 가까이 이 곳에서 강의를 했으니 웬만하면 모두 연줄이 닿는 선배나 후배들이다. 늦은 오후에 요양원에 가서 어머니 뵙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 김치찌개로 딸과 식사를 했다.
2일 어제 비가 내려 가을을 불러 왔는지 오늘은 기온이 내려가 새벽에는 이불이 필요할 정도였다. 아침식사를 하는 중에 아들은 교회에서 드럼을 쳐보니 축구보다 더 재미있다고 말을 하고 음악학원에 다녀볼 이야기를 한다. 사람은 커 가면서 취미나 음식 나아가 성격까지 변하기 마련이지만 내가 음악에 취미가 없어서 그런지 악기를 다루는 아들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다. 오전에 홍제천을 출발하여 성산대교 양화대교 서강대교까지 2시간 넘게 20킬로를 달리고 왔다. 코스모스가 피어 있고 넘실거리는 한강과 청명한 하늘이 완연한 가을풍경이었다. 집에 와서 고구마로 점심을 먹는 중에 모임에 나갔던 아내는 빕스에서 식사를 하고 쿠키와 고기를 가지고 들어왔다. 3시에 요양원에 도착하여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에 돌아와 간장게장을 구입하여 식사를 했다. 게장이라고 하지만 어린 시절에 논에서 잡은 참게를 장에 담아 집에서 만들어 먹던 맛과는 비교가 안 된다. 피곤한지 시들해 보이는 딸이 옆에 있고 아들은 학원에서 늦게 왔다.
3일 눈을 뜨니 맑은 날씨에 어제와 다르지 않은 아침이다. 어제 늦은 밤에 라면으로 야식을 했더니 오늘 아침 된장찌개와 고기볶음 반찬임에도 눈길이 가지 않는다. 일찍 홍제천에 나가 모래네까지 가볍고 빠르게 6킬로를 달려보니 그 동안 연습을 많이 한 탓인지 지치지도 않고 기록도 단축되었다. 다시 체육관으로 들어가 기구운동을 하고 집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 청계천 주변에 있는 체육사에 마라톤 유니폼을 보러 나갔다가 검정색 티셔츠와 반바지 그리고 고구려 정신이 담긴 삼족오 마크까지 2만원을 주고 구입하였다. 경기학원으로 이동하여 학원장과 저녁식사를 하면서 학원운영이나 나의 보이지 않는 증상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역시 정신이 건강하고 생각이 깊은 선배라서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 아내를 앉혀두고 내가 날마다 산이나 체육관을 다니고 마라톤을 준비하는 이유를 이야기하며 어두운 그림자 같은 우울증에 대하여 처음으로 말을 꺼내었다. 겉보기에는 정상인과 같지만 순간순간 불안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그러면서 삶에 회의를 느끼는 증상이 계속된다는 현재 나의 구체적인 상태를 조목조목 이야기하니 눈물부터 보여 말도 못하고 더 심난한 마음이었다. 내가 왜 우울한 삶으로 전락했는지 세월이 지나면 알 수 있을 것이지만 보여줄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 이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나는 다시 달리고 노력할 것이다.
4일 목요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신문을 보고 식사를 했다. 초등학생인 딸은 중학생 아들과 달리 늦게 학교에 가는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아침식사를 거르는 일이 없어서 좋다. 오전에 아내를 태우고 홍제역 근처 신한빌딩 피부과에 들어가 봉숭아물로 머리에 염색을 할 수 있는지 물으니 까닭을 모르는 간호원들이 눈만 껌벅거린다. 아들의 과학탐구 과제를 해결한다고 아내를 따라간 것인데 엉뚱한 질문이 아닐 수 없고 봉숭아물로 머리를 붉게 한다니 내가 생각해도 뭔가 이상하다. 서대문경찰서에 아내의 면허증을 갱신하러 갔더니 사진을 지참하지 않아 여기서도 헛탕을 치고 청계천 체육사에 가서 어제 산 마라톤 팬츠를 다른 것으로 교환하였다. 제기동에 있는 공업사에서는 자동차 검사에 조명장치가 문제가 있다고 비용을 요구하여 자주 다니는 장안동 수리점에 갔더니 친절하게 모든 것을 완료해 준다. 오후 1시가 되어 갈비탕으로 점심을 먹고 요양원을 거쳐 집으로 오면서 교보문고에 들어가 마라톤 서적을 읽었고 아내는 중학교 국어문제집 3권을 샀다. 오전부터 오후까지 긴 시간 서울 시내를 누비며 저녁을 맞이하였다.
5일 일찍 일어나 마라톤 연습으로 준비운동을 마치고 홍제천을 출발하여 양화대교와 서강대교를 돌아오는 왕복 25킬로 2시간 이상을 달렸다.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마라톤에 출전하고 그것을 위하여 오늘처럼 땀을 흘리며 연습을 하는 것은 정신적인 고통이나 잡념을 없애기 위한 방편이고 실질적으로 한강물과 마주하며 쉬지 않고 달려온 후에는 몸과 마음이 가뿐하고 삶과 의욕이 생기기 때문이다. 오늘은 영식이가 요양원에 온다기에 시간을 맞추려고 빨리 달렸는데 돌아오는 후반에 속력을 많이 내어 기록이 단축된 경우다. 집으로 와서 점심을 먹고 지하철로 회기역에 도착하니 갑자기 비가 내리고 다행히 기다리는 친구의 차를 타고 요양원에 들어갈 수 있었다.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다가 저녁에는 방배동 중국음식점 거목으로 이동하여 친구와 식사를 함께 했다. 오래 전부터 친구는 우울감에 빠진 나를 위하여 변함없이 물심양면으로 격려를 했는데 오늘도 긴 훈계를 하면서 나의 우울증은 떠나간 형님이 결정적이니 평소 내가 지니고 다니는 양복이나 넥타이 등 형님의 유품을 없애라고 선무당처럼 이야기한다. 나로서는 형님을 생각해서 양복을 입고 구두까지 신고 다니는데 죽은 자를 잊지 못해 우울함이 지속된다니 비과학적인 논리라고 말을 가로막고 손을 저었다.
6일 추석 명절이 얼마 남지 않아 가까운 지인들에게 선물을 준비하려고 아내와 월드컵경기장 홈플러스에 갔다. 날마다 달리는 홍제천 길을 따라 오늘은 운전을 하면서 가니 달리는 내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홈플러스 2층 스포츠용품에서 아내가 마라톤화나 등산화를 사 주겠다고 하는 것을 거절하고 대신 남방 하나를 1만원에 샀다. 1층 식품점으로 내려와 서서 먹는 점심으로 메밀국수를 주문하였는데 감칠맛이 나는 국물이었다. 아들과 딸에게 줄 LA갈비를 비롯하여 꼬치구이와 음료수 등 간식거리를 가지고 돌아왔다. 오후에 도봉산에 있다는 영식이는 어제 말한 유품을 처리했느냐고 전화를 하여 나를 걱정하며 묻는다. 미신을 믿지 않는 나로서는 친구의 요청이 달갑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마음에서 형을 보내드리고 나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도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5시에 안산에 올라 산길을 걷고 땅거미가 밀려올 무렵 내려왔다.
7일 잠자는 아내의 콧소리가 심해 잠을 이루지 못했다. 피곤해서도 그렇고 체질적으로 그럴 수 있는데 같은 방을 쓰는 사람으로서 불편함이 있으니 수술이라도 받아 치료를 해야 할 것이다. 일요일 아침 어김없이 산에 가자는 친구의 전화가 왔고 밤새 잠을 못자서 힘들다고 하니 그럴수록 땀을 흘리고 맑은 정신을 유지해야 한다고 종용한다. 그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여 식사를 마치고 집 앞에서 704번 시내버스에 오르니 오늘도 여전히 등산객이 많다. 송추에 10시40분에 도착하여 100분을 걸어 오봉삼거리를 지나 만장봉 정상 근처에 다다랐다. 발걸음을 멈추고 서울 시내가 훤하게 보이고 소나무가 있는 바위에 앉아 ‘아우야 사랑한다’로 시작된 5년을 부적符籍처럼 간직한 형이 마지막으로 남긴 글을 불에 태워 보냈다. 주변에 있던 등산객 한 사람이 다가와 내 사연을 듣더니 힘을 내고 형의 몫까지 열심히 살아가라고 한다. 자리에서 일어나 20여분을 걸어 우이암 근처에서 친구를 만나 점심을 먹고 그늘에서 시간을 보내다 방학역으로 내려오니 4시가 지났다. 지하철로 돌아오면서 요양원근처 회기역에 내려 술을 마시고 밤이 깊어서 집에 왔다.
8일 일교차가 심하여 낮 기온은 30도를 넘어선다니 아직도 여름의 끝이다. 아들과 딸은 홈플러스에서 구입한 LA갈비를 먹고 학교에 가고 나도 식사를 조금 했다. 머리가 멍하여 거실에 누워 시간을 보내다 잠이 들었고 그 사이 아내는 동사무소에 영어를 배우러 나갔다. 10시에 차를 몰고 청량리 경동시장에 추석선물을 사려고 나가니 날도 덥고 사람이 많아 힘들었지만 집에서 시킨 대로 멸치 4박스(10만원), 키위 2박스(3만원)을 샀다. 시장을 나오면서 어머니 병문안을 자제해 달라는 요양원의 요청이 있었다고 형한테 전화가 오는데 그 동안 우리 입장만 생각한 것 같아 미안하기도 했다. 날마다 찾아가는 우리는 좋아도 간병인들의 입장은 피곤할 것이고 그것보다 보호자가 자주 오지 않는 다른 환자들과의 위화감 그리고 우리만 의지하려는 어머니께서 간병인들의 요청에 응하지 않아 더 힘들다고 하니 충분히 이해가 된다. 오후에 노량진에서 10월에 동영상을 촬영하고 공무원강의도 함께 하자고 김성만 연락이 왔고 생각을 해보겠다는 말로 내키지 않음을 대신 전했다. 저녁에는 축구하러 나간 아들이 일찍 들어와 모처럼 가족이 일상을 이야기하며 식사를 했는데 평범하게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하루를 보낸 오늘이 세월이 흐르면 생각날 것이다.
9일 어제 달리기 연습을 하지 않아 오늘은 먼 거리를 달려볼 계획이다. 식사를 하고 9시에 홍제천에 나가서 준비운동을 하고 성산대교까지 6.5킬로 거기서 마포대교까지 한강변을 따라 5.5킬로를 더 달려 12킬로 지점에서 출발점으로 돌아와 총 24킬로를 달렸다. 쾌적한 분위기와 달리 아침식사를 많이 한 탓인지 몸이 무겁고 배까지 아파 속도를 낼 수 없었다. 그렇지만 마라톤은 나와의 싸움이고 쉬지 않고 달려 완주하는 것이 중요하기때문에 정신을 모으고 긴 호흡을 하며 평소보다 30분 늦게 골인을 했다. 집으로 왔다가 요양원에 가면서 어제 구입한 그린키위를 골드키위로 교환하고 경동시장 북쪽 출입구를 나서는데 뒤차가 범퍼를 받아 수리비용으로 즉석에서 12만원을 받았다. 큰 사고가 아니어서 양심상 미안하기도 했지만 아무튼 충돌한 것이니 그렇게 마무리를 하고 어머니를 뵈러 갔다. 보호자 방문을 자제해 달라는 엊그제 요청이 있어서 잠깐 머물다가 경기학원으로 이동하여 원장과 고등부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보고 직접 운영을 하라는 것인데 그 조건으로 밀린 강사료를 먼저 처리해 주고 현재 들어오는 수강료가 있으니 투자한 금액의 10%씩을 매월 가져가고 이자와 나의 강의료는 별도로 정산하는 조건이다. 장원장은 홀가분하여 좋고 나는 정석학원 원장 이후 오랜만에 운영자로 나서는 것이다.
10일 오늘 신설동 3층 임대료 문제로 법원에 가는 날이다. 소송한 내용대로 조정위원들이 조정을 하고 합의가 안 되면 판결을 받는다. 아침식사를 하고 소집이 오후 2시라고 생각하여 느긋하게 있으면서 서류를 다시 보니 조정시간이 오전 10시로 되어 있다. 일단 개봉동에 가려던 약속을 내일로 미루고 내부순환도로를 거쳐 법원에 10시에 들어갔다. 피고석에는 평소에 얼굴을 마주한 3층 임차인이 자리를 했고 원고 자리에 내가 앉았다.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임대료를 내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한 결정이 나와야 하고 결국 다음 달 10월8일까지는 사무실을 비운다는 확답을 받고 조정을 마쳤다. 보증금까지 없어진 마당에 9월에 밀린 임대료 일부와 조정비용 그리고 공과금은 임대인인 내가 처리할 수밖에 없는데 남의 사정 헤아리다가 손해를 보는 경우다. 법원에 소송을 하려면 보증금이 남아 있을 때 미리 해야지 보증금이 월세로 상쇄되고 늦게 처리를 하여 이런 문제가 생겼다. 오후에 집으로 오면서 아들에게 전화하니 종로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고 식사를 마친 밤 9시경에 돌아왔다.
11일 어제 저녁부터 날이 흐려 비가 온다는 예보다. 날마다 초행길을 가는 운전사의 심정으로 인생을 살면서 오늘은 새벽에 아내와 법원상황과 학원운영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니 듣기만 한다.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판단과 결정을 내가 내려야 하는 고독하고 왜소한 새벽이었다. 아침에 식사를 하면서 아들에게 오늘만 학교에 가면 내일부터는 추석연휴를 포함하여 6일간 단기방학이니 최선으로 하루를 보내라고 일렀다. 오전에 개봉동에 가서 조사장을 만나고 점심쯤에 인천상가가 위치한 간석역을 6개월 만에 지하철을 타고 도착했다. 1,2층 상가는 60% 임대가 되어 있고 내가 포기한 203호와 208호도 깨끗한 사무실로 변해 있다. 그렇다고 해도 이러한 최초 임대는 분양팀에서 상가 활성화를 위하여 월세를 헐값에 내놓고 세입자들이 시설을 하면 가격을 올려서 임대료 인상 또는 매매하는 방법이다. 서울로 나와서 오후에 이정렬을 만나 필리핀 교육사업과 관련하여 의견을 듣고 시간을 보냈다. 필리핀 대학과 결연을 맺어 한국에서 학생들을 모집하여 기숙사로 보내고 때로는 서울에서도 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유학네트이다. 내가 보기에는 필리핀은 상대적으로 우리보다 후진국이라 대학 졸업장에 큰 매력이 없어 회의적인 생각이다.
12일 어제 늦게 들어와 화장실에서 넘어져 허리에 상처가 났고 이에 가족들이 놀랐지만 그나마 큰 사고가 아니어 다행이다. 새벽에 거실에 나와 신문을 보고 7시 30분에 시원한 무국으로 식사를 했다. 아들은 오늘부터 휴일이고 등교를 하는 딸은 가을에 입을 것이 없다면서 불만을 표출하여 의아했다. 초등학생이라 평소 옷에 대하여는 별로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오후라도 동행하여 예쁜 옷을 사 주고 싶다. 오전에 홍제천으로 나가 원효대교 근처까지 1시간20분 그리고 다시 돌아오기까지 총 2시간40분 25킬로를 쉬지 않고 달렸다. 그래도 보름 후 42.195킬로를 달리는 대장정이 기다리고 있어 내일이나 모레는 더 먼 거리를 돌아올 것이다. 점심을 먹고 30분을 자고 일어나 신촌 현대백화점으로 나가 영식이 어머님께 드릴 추석 선물로 한과를 구입했다. 요양원을 매월 방문하는 친구에 대한 고마움으로 준비한 것이고 청파동에 가서 명절을 보내기 위하여 고향에 가는 그의 형님 차편에 실어 주었다. 요양원을 가려다가 종로에 차가 너무 막혀 광화문에서 바로 집에 돌아와 아들과 대화하고 먹고 싶다는 함박스테이크를 배달시켜 주었다.
13일 아침 8시에 가족이 함께 식사를 했다. 9월 중순이고 내일이 추석인데 오늘도 낮 기온이 30도라니 추석秋夕을 하석夏夕으로 고쳐야 할 것 같다. 음식준비를 위하여 신내동에 간다는 아내를 태우고 신설동에 들러 어제 만든 임대 현수막을 옥상에서 내려걸었다. 부동산 중개수수료가 비싸 내가 직접 임대하고 계약서까지 작성하니 나도 좋고 세입자도 수수료 지출이 없어 부담이 덜하다. 평소에 밤 11시가 지나면 영업을 마감하는 2층 사장이 밤새 장사를 했다고 졸린 눈을 비비며 명절이라고 나에게 포도주 2병을 선물한다. 서둘러 신설동을 떠나 요양원에 가서 인사만 드리고 아내와 딸을 신내동에 내려주었다. 곧바로 내부순환도로를 타고 집에 돌아오니 아들은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고 경상도 고향에 내려간 영식이는 내가 보낸 선물에 고맙다는 전화를 해 온다. 늦은 점심을 먹은 후 낮잠을 자고 4시경 안산에 올라 숲속을 걷고 대운동장에서 기구운동까지 하고 내려오니 6시가 되었다. 신내동에서 음식을 준비한 아내가 송편 몇 개를 들고 들어오고 딸은 유진이와 함께 중계동 고모집으로 갔다.
14일 오늘은 추석 명절이다. 예전 같으면 흥성한 마음으로 고향에서 가족끼리 보냈을 시간이다. 돈을 벌고 자가용을 사고 서울에서 몇 시간을 달려 고향 집에 들어서면 두 형님 내외와 조카들까지 대가족이 모여 잠자는 장소도 걱정하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지나간 시간이고 오늘은 신내동에서 차례를 지내기 위하여 요양원에 들어가 어머니를 모시고 이동하는 완전 다른 상황이 되어 있다. 아침에 가족끼리 앉아 식사를 하는데 어쩌면 마지막 추석이 될 어머님께서는 깨죽과 식혜를 특별히 많이 드신다. 명절 오전을 보내고 다시 어머니와 요양원 자리에 갔다가 집에 도착하여 오후에는 아들과 함께 703번 버스를 타고 형의 납골함이 있는 용미리 시립묘지로 출발을 했다. 명절이라 그렇지만 차와 사람이 많아 벽제를 지나서는 버스가 꼼짝도 하지 않는다. 결국 2시간이나 걸려 납골함에 도착했고 추모와 묵념으로 자리를 지켰다. 집에서 배낭에 넣어온 형의 유품을 야트막한 시립묘지 숲속으로 들어가 처리하려는데 불이 붙지 않아 다시 가지고 내려왔다. 추석 명절날 멀쩡한 양복을 들고 불태우겠다고 서성대는 행동이 내가 보기에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정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납골함을 내려오면서 줄지어 누워 있는 무덤을 가리키며 언젠가는 우리도 한 줌 흙으로 변하여 갈 것이니 아버지와 아들로 열심히 잘 살아가자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당부했다. 집에 돌아오니 7시30분이 지났고 어둑한 저녁 결국 아파트 재활용 수거함에 형의 유품 모두를 버렸다.
15일 감자국으로 식사를 했다. 마라톤이 임박하여 오늘도 홍제천에 나가 성산대교 양화대교 서강대교 마포대교 원효대교를 지나 한강철교 아래를 달렸다. 왕복 30킬로 이상이 되니 태어나서 가장 긴 거리를 달린 오늘이다. 한강철교 아래에서 머리 위를 지나가는 지하철을 보면서는 노량진 강의를 위해 새벽부터 밤까지 바로 이 곳을 건너다닌 시간이 떠올라 꿈을 꾸는 듯했다. 방향을 바꾸어 한강 물을 따라 가쁜 숨을 몰아쉬며 처음 출발점으로 돌아오니 3시간 30분이 지났다. 오늘도 기온이 높아 달리는 내내 땀이 많이 흘렀고 중간 중간에 위치한 한강공원 수돗물을 많이 마셔 힘든 시간이었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1시간을 보내다가 가까스로 일어나 점심을 먹는데 홍제문고에 책을 보러 갔던 아내와 아들이 시장까지 보고 들어온다. 오후 4시에 다시 안산에 올라 운동을 하고 정상을 거쳐 6시에 내려와 맥주 한 컵을 마시니 시원하다. 오전에 30킬로를 달리고 오후에는 산으로 가고, 이런 모든 과정이 나를 이기기 위한 몸부림인 것을 누구도 알 턱이 없다. 저녁에 요양원을 갔던 동생이 딸을 태우고 집에 왔고 스케이트도 타고 재미있게 놀았다는 딸은 오자마자 즐거움을 자랑하더니 금새 잠이 든다.
16일 연휴가 계속되고 아들과 딸은 늦게까지 잔다.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규칙적인 생활이 중요하고 많은 잠은 시간을 낭비할 뿐 아니라 오히려 건강에도 좋지가 않다. 8시에 고기를 썰어 넣은 구수한 청국장으로 맛있는 아침식사를 해서 좋았는데 거실에는 냄새가 가득하다. 30도가 넘는 기온이 계속되어 마라톤 연습을 대신하여 체육관에 다녀오니 아내가 가까운 곳으로 나의 양복을 사러 가자고 청한다. 쇼핑도 하고 점심도 먹으려고 아들과 딸을 포함하여 가족이 불광동 킴스클럽에 나갔다. 평소에 내가 입고 다녔던 양복이 엊그제 버린 유품이라서 당장 입을 것이 없고 또한 내일이 나의 생일이라 아내가 선물로 구입을 하는 것이다. 9만 9천원 양복에 바지 하나를 더 추가하니 14만원이고 딸에게도 2만 9천원에 검정색 체크무늬 예쁜 옷을 사 주었다. 내가 새벽부터 밤까지 오랜시간 강의를 하고 다녀서 오늘처럼 가족이 함께 쇼핑하며 양복을 구입하는 과정이 생소하기만 하다. 점심을 먹고 집으로 왔다가 차를 수리하기 위하여 나가는 중에 형준이가 어머니 문병을 온다고 해서 요양원으로 들어가니 전복죽에 위로금이라고 5만원을 전한다.
17일 어제 저녁에 만난 친구와 화곡동으로 갔다가 집에 늦게 들어와 아내에게 현재의 상황과 미래의 계획에 대하여 진지하게 이야기를 했다. 평소에 아내는 민주 투사처럼 반대 의견을 많이 내어 대화가 중단되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은 내 입장에서 이해하고 들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아침 식탁에 미역국과 케익이 준비되어 내 생일임이 실감나고 가족이 식사를 함께 했다. 오전에 체육관으로 가서 운동을 하는 중에 영식이가 고향에서 생선을 많이 가지고 왔다고 방배동에 와서 싣고 가라고 한다. 점심을 먹고 젖갈과 동해안 생선 여러 종류를 집에 가져다 두고 지하철로 신설동에 나갔다. 현수막 내용을 수정하여 걸고 2층 호프집에서 정식이를 비롯하여 나를 만나러 온 친구들한테 40대의 마지막 생일 축하를 받았다. 내 생일은 추석이 앞에 있어 잔치를 마치고 다시 밥을 먹는 격으로 사람들에게 관심이나 주목을 받지 못한다. 파티 자리에 오랫만에 기선이가 참석하여 좋았고 동생 정환이도 단숨에 달려 나왔다. 이렇게 멀쩡한 내가 우울증으로 헤매고 있다니 목소리를 높이는 흥겨운 시간에도 정신은 거기에 비례하지 않았다. 그런 나를 충분히 간파하는 영식이가 나에게 노래도 시키고 오늘의 비용도 모두 지불한다.
18일 늦게 들어와 자고 일어나니 아들과 딸이 학교에 갔다. 머리맡에는 딸이 준비한 생일날 선물이 놓여 있어 열어보니 밥그릇이다. 생일선물로 밥그릇을 받아보기는 처음인데 돈도 아끼며 실용성을 생각했을 딸이 고맙기만 하다. 사임당 모임에서 영화를 본다는 아내는 오전에 외출하고 나는 집에서 쉬려다가 차를 몰고 정릉으로 들어가 청수장 입구를 출발하여 칼바위 능선에 올랐다. 서울시내가 모두 바라보이는 정상에서 점심을 먹고 바위에 기대어 있으니 마음도 시원하고 상쾌했다. 오늘이 나의 생일이고 벌써 나이가 50줄에 들어서다니 세월의 빠름을 인식하며 정릉으로 내려와 요양원에 어머니를 뵈러 갔더니 눈이 퍼렇게 멍이 들었고 피부에는 붉은 반점으로 금방이라도 돌아가실 것같은 모습이다. 어제가 생일이었다고 말도 못 꺼내고 오히려 불안한 마음으로 서성대다가 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19일 어머니께서 돌아가실까, 밤새 꿈을 꾸고 잠을 설치며 아침을 맞았는데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피곤하다. 가까스로 거실에 나와서 아들과 딸이 등교하는 것을 바라보며 더 자상하게 대하지 못한 미안함으로 식탁에 앉았다. 청국장으로 식사를 마치고 오전에 홍제천으로 나가서 양화대교까지 왕복 20킬로 약 2시간을 달리고 왔다. 말끔하게 정리된 한강변을 나서면 국화나 코스모스를 비롯하여 초가을 꽃들을 만나고 양화대교 위를 달리는 지하철은 맑은 한강과 조화를 이루어 매우 아름답다. 절두산 성지를 지나 서강대교를 앞에 두고 유턴을 하여 다시 성산대교 아래에 이르면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나 낚시를 하는 사람 등 여유있게 시간을 보내는 여러 사람들을 스치게 된다. 내일은 더 먼 거리를 달린다는 생각을 하고 집에 들어오니 아내가 김치찌개를 정성껏 만들어 놓아 맛있게 먹었다. 오후에 신설동 재산세가 130만원이 나와서 시내에서 마원장한테 금전을 정산받아 바로 납부하고 어머니가 걱정이 되어 서둘러 요양원에 갔더니 오늘은 평상시와 다름이 없어 안심을 하였다. 집으로 오면서 영풍문고에 들어가 책을 읽고 저녁에는 엊그제 영식이가 준 꼼장어를 구워서 먹었다.
20일 어젯밤 꿈에는 내가 어머니를 업고 금강산 정상을 오르고 있고 게으른 여동생을 꾸짖는 장면이 있었는데 평소에 어머니께 최선을 다하는 동생이라 해몽이 되지 않는다. 아침에 홍제천에 나가서 모래네까지 35분 달리고 돌아와 다시 안산에 올랐다가 대운동장에서 기구운동을 하고 있으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마라톤이 일주일 남았으니 감기가 들면 안 되고 금주는 물론이고 음식도 조심하고 가급적 잠도 일찍 자면서 컨디션 조절을 해야 한다. 1시경 집으로 내려오니 토요일이라 일찍 돌아온 아들과 딸이 점심을 먹고 있어 나도 옆에 앉아 함께 식사를 했다. 오후에 청량리에서 마라톤 유니폼에 마크를 달고 요양원에 도착하니 4시가 되었다. 로비에서 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언제까지 이렇게 계셔야 하는지 세월은 흐르는데 안타까운 마음이 많았다. 저녁식사 하시는 것을 보고 차량 정체가 심한 도심을 통과하여 집에 돌아오니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돼지고기 사태를 삶아 놓았다.
21일 낮 기온이 30도를 육박한다는 예보다. 8월의 여름이 다른 해에 비하여 선선하다 했더니 더위가 늦게 밀려오는지 하순이 되었는데도 높은 기온이다. 아침에 북한산에 가자고 영식이 전화가 왔지만 오늘은 마라톤 연습과 신설동 임대문의가 있어 동참을 하지 못했다. 식사를 마치고 새로 구입한 유니폼까지 준비하여 홍제천 나가서 성산대교를 거쳐 반포 건너편 동작대교까지 17키로 왕복 34킬로를 달려오니 3시간 50분이 걸렸다. 연습한 것 중에서 또 다시 가장 먼 거리를 달린 기록을 세웠지만 오늘도 너무 힘들었고 골인을 하고 나를 돌아보니 눈이 퀭한 병든 여우같은 모습이다. 오전 9시에 나가서 집에 오후 2시에 들어와 그대로 쓰러져 거실에 누워 있다가 점심을 먹고 오후에 딸을 태우고 요양원에 갔더니 여동생이 밝은 모습으로 어머니 곁에 있다. 집으로 오면서 경동시장에 가서 포도 1박스를 사고 저녁에 논술수업으로 힘든 아내를 대신하여 식사를 혼자 준비하여 먹었다.
22일 월요일 흐린 날씨다. 잠이 많은 아내가 일찍 일어나 신문을 보고 컴퓨터를 하고 딸의 과제물을 정리해 주고 있다. 아들은 과학 숙제로 단층모형도를 만들었는데 시내버스에 사람이 많아 불편하다기에 이른 아침에 학교까지 태워 주었다. 오늘은 광화문 거리에 차 없는 날이라고 오래 전부터 홍보를 하더니 정작 무악재 고개는 차가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교통체증이 심하다. 식사를 하고 체육관에서 운동을 마친 뒤에 오후에 신설동 임대로 갔더니 주변에 있는 미송한과 사장이 보증금 없이 5개월만 사용하겠다고 하여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종각으로 이동하여 영풍문고에 들어가 구당 김남수 선생의 침과 뜸으로 화상부터 암까지도 치료한다는 서적을 읽어보니 놀랍고 신비스런 내용이었다. 7시경 집으로 들어오면서 마침 수업을 마치고 내려오는 아내를 반가운 마음으로 이름까지 부르니 밝은 미소는 찾아볼 수 없고 화가 난 표정으로 상대를 뚫어지게 쳐다만 보고 있다. 어렸을 때 아들인 내가 어머니를 부르면 대답도 없고 표정도 없이 차갑게 서 있던 기억이 있는데 이런 상황도 운명이라고 할까.
23일 기압이 낮은지 잠이 오지를 않아 거실로 나와 누웠다가 다시 들어가 잠을 청하는데 아직도 모기가 있어 이래저래 힘든 밤이었다. 짜증나는 아침에 감자국으로 식사를 하고 오전에 개봉동 조사장 전화가 와서 인천상가 113호를 이전해 가라고 또 이야기를 꺼낸다. 다음에 보기로 하고 일단 마라톤 마무리 연습을 하려고 홍제천에 나가 성산대교 초입까지 돌아오는 12킬로 1시간10분을 달렸다. 한 달 전과 비교하면 월등하게 기량이 좋아져서 이제는 10킬로 15킬로 정도는 부담없이 가볍게 달리는 정도다. 12시경 마치고 홍제천 고가도로 아래에 위치한 평화수퍼에 앉아 음료를 마시고 갈증을 달래며 흐르는 물줄기에 넋을 놓고 있는데 형이 전화를 하여 추석에 성묘를 못하여 오늘 고향에 내려왔노라고 전화를 한다. 형제 중 누구라도 고향에 가거나 산소에 가면 마치 내가 거기에 가 있는 것처럼 마음이 놓인다. 점심도 거르고 내부순환 도로를 달려 요양원에 도착하여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다가 내가 잠깐 잠이 들었다가 일어나니 물끄러미 어머니께서 나를 보고 계신다.
24일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보고 하루를 시작한다. 아들 딸이 학교에 가고 오늘은 기구 중심으로 체육관에서 운동을 할 참이다. 요즘 마라톤 준비로 담배는 물론 술도 마시지 않는데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위하여 노력하는 과정은 확실히 아름답고 가치가 있어 앞으로 살아가는 일정도 이와 다르지 않아야 할 것이다.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고 경기학원에 가서 갈치조림으로 장원장과 식사를 하면서 고등부 운영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무엇보다 후배 강사들 밀린 임금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다. 대화를 마치고 신설동에 가서 새로운 임차인에게 3층 사무실을 설명하고 나오는데 법원에서 판결을 받은 기존 사장은 마치 자신이 피해자인 양 불만이 가득하여 인사도 없다. 고향의 종식이 형은 잘 아는 사람에게 금전을 빌려 주었는데 연락이 두절되었다고 하소연하는 전화가 온다. 배운 것은 없어도 순박한 사람인데 계약서나 각서도 작성하지 않고 금전거래를 하였다니 안타까울 뿐이다.
25일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새벽 3시에 일어나 라면을 끓여서 먹고 4시에 다시 잠이 들었다. 8시에 일어나 오전에 개봉동에서 조사장을 만나니 인천 상가 113호 분양가 1억2천만 원 중 내가 가져갈 6천만 원을 제외하고 나머지 융자금 6천만 원을 은행에 갚아달라는 평상시와 같은 소리를 이제는 하소연 하듯이 한다. 보기에 따라서는 손해를 막는 방법같지만 실제 분양가격이 7천만 원이기 때문에 취,등록세 약1천만 원까지 더 내면 이익이 되는 것은 없고 좁은 상가와 은행이자만 동시에 떠안게 된다. 돌아오면서 종식이 형을 만나 법무사에 가서 금전 차용건에 대하여 상담을 하니 내가 예상한 대로 당사자가 잠적하여 막연하다는 입장이다. 요양원으로 이동하여 어머니를 뵙고 대화를 하는 중에 10년 전 내 생일파티 힐튼호텔 시간을 기억하시어 깜짝 놀랐다. 오늘은 비가 계속 내리는데 이 비가 그치면 기온이 내려가고 완연한 가을이 도래할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들이 교복을 선배한테 얻어 상가에서 수선하여 집에 두고 학원에 간다. 한창 자랄 때라 선배 옷이라도 입을 만큼 괜찮다면 몇 개월 입고 다니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26일 어제 치킨을 먹고 잤는데 체를 했는지 명치가 아파서 새벽에 일어났다. 자던 아내가 일어나 바늘을 이용하여 손끝에서 피를 뽑아내니 그나마 속이 좀 편해진다. 아침에 김치찌개로 식사를 했고 등교하는 아들은 하복을 입는 기간에 날씨가 쌀쌀하다고 긴 티셔츠 위에 하복을 겹쳐서 입었다. 보기가 흉하니 옷을 제대로 입으라고 하니 대꾸도 하지 않고 현관을 나가 오늘도 내 존재감이 없는 듯하다. 42.195킬로 내일 마라톤 완주를 위하여 오전에 홍제천에 나가 3킬로를 달리며 컨디션을 조절하고 서대문구청 뒷길을 거쳐 안산에 올랐다가 내려왔다. 처음으로 달리는 풀코스 도전이라 긴장과 두려움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반드시 완주하여 우울함에서 벗어나는 나를 확인하고 싶다. 차를 몰고 월드컵경기장 홈에버에 가서 세일가격 6만4천원 마라톤 아식스 운동화를 구입하여 집에 돌아왔고 저녁에 일찍 자리에 누웠다.
27일 결전의 날, 평화통일 풀코스마라톤 임진각 대회일이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식사를 조금하고 택시로 서울역으로 가서 열차를 타고 임진각에 8시 30분에 도착했다. 9시에 긴장감과 두려움으로 출발선을 나서 도라산역 민통선을 달리다 파주와 문산을 향하는 코스로 들어서니 길 가장자리에 가을 국화와 코스모스가 피어 있다. 풀코스는 긴 거리라 천천히 달리며 시간이나 체력을 조절해야 하는데 다른 주자들을 따라 잡을 양으로 속력을 냈더니 20킬로 지점부터 지치기 시작했고 파주역을 지난 30킬로에서는 발과 다리가 아파 거의 탈진이 되어 극심한 통증을 격었다. 급수대에서 물을 머리에 끼얹기를 여러 차례하며 여우고개를 넘어 가까스로 출발점에 돌아왔지만 이 엄청난 풀코스 거리를 연습을 했다는 자만감과 기본적인 이론을 무시한 초보자의 무모함이 가을의 축제를 고통의 시간으로 만들었다. 골인 아치에 들어서니 아내와 딸이 기다리고 있고 시간은 먼저 들어온 사람들이 자리를 뜨기에도 충분한 4시간 59분을 지나고 있다. 완주의 감동보다 달리는 내내 나약했던 자신에 연민이 많았고 다시 도전하여 당당하게 들어서는 내 모습을 다짐하고 기울어 가는 저녁노을과 함께 한강변을 따라 집으로 돌아왔다.
28일 오늘 일요일 아침까지 긴 시간 휴식을 했음에도 다리가 아파 몸을 움직이기도 쉽지 않다. 어제 마라톤 레이스가 아쉽고 마치 사각의 링에서 다운을 당하고 패배한 기분이다. 아무리 처음이라지만 저조한 기록보다 정신력과 의지가 약한 무기력한 내가 자탄自嘆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초반에 조깅하듯 천천히 달리는 것이 마라톤의 기본적인 원칙인 것을 의욕만 앞서 초반 스피드를 낸 것이 전체를 망친 원인이다. 아침에 아들은 내일부터 중간고사 시작이라 도서관에 나가고 나는 요양원에 가서 3일 만에 어머니를 뵈었다. 점심을 마친 어머니를 모시고 3층으로 올라가 어제 마라톤 과정과 힘들었던 이야기를 했더니 오히려 달리기 이론을 한참 말씀하신다. 어제 어머니의 휠체어를 밀며 달리던 어느 아들의 모습이 기억나는데 나도 휠체어를 탄 어머니와 단거리라도 한강변을 꼭 달려 보고 싶다. 오후에 요양원을 나와 경동시장에 들어가 사과, 포도, 무 등을 사다가 집에 두고 딸을 데리고 동네 중국집에 가서 자장면을 사 먹고 들어왔다.
29일 아들 중간고사 시작일이다. 새벽 3시에 일어나 라면을 먹고 컴퓨터를 하다가 4시가 지나 아들을 깨웠다. 무엇이든 매사에 최선을 다하면 결과도 좋은 것이니 이번 시험에서 열심히 노력하는 아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침식사를 하고 아들을 태우고 학교에 갔다가 마라톤 체험기를 ‘월간 마라톤’ 잡지에 게제하기로 해서 논술학원으로 들어가 글을 작성했다. 첫 풀코스 출전이라 기억이 생생하고 또한 마라톤을 하게 된 동기가 우울증을 이기기 위한 절박한 상황이었으니 남다른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점심에 집으로 오니 시험을 마친 아들이 있어 수고했다고 격려를 하고 내일 준비를 잘 하라고 일렀다. 오후에 지하철로 영풍문고에 가서 몇 권의 책을 읽고 요양원에 가려다 그냥 집으로 왔다. 오후 6시에 딸이 학원에 가고 논술학원에서 늦게 오는 아내를 대신하여 저녁식사로 얼큰한 김치찌개를 만들었다.
30일 어느덧 여름이 가고 가을이 성큼 다가온 9월의 말일이 되었다. 다른 때와 비교하여 유독 길게 느껴진 시간이었는데 다가오는 10월을 포함하여 남은 3개월 2008년을 의연한 삶으로 만들어 가는 내가 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날 시험을 보는 아들을 깨우려고 새벽에 잠을 설치고 어묵탕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7시50분 아들과 시험감독으로 가는 아내를 학교에 내려주고 돌아와 논술교실에서 어제 작성하다 멈춘 마라톤 체험기를 계속 완성하여 갔다. 점심 때 시험 마친 아들과 식사를 함께 하고 오늘도 영풍문고에 가서 여러 책을 읽고 마라톤과 관련하여 이론을 소개한 책도 구입하였다. 고향에 갔다가 올라온 영식이가 방배동에서 만나자는 전화가 와서 레스토랑 거목에서 만나 식사를 하고 술을 마셨다. 형의 유품을 버린 일과 마라톤의 힘든 과정을 이야기하니 연신 박수를 보내고 저녁에는 여동생한테 내일 오후 3시에 어머니께서 병원으로 이동하여 진단을 받는다고 참석해 달라는 전화가 왔다. 현재 구체적인 병명은 무엇이고 치매는 어느 단계인지 그리고 회복은 될 것인지 여러 궁금한 사항이 많다. 방배동 시간은 빨리 흘러 집에 도착하니 밤12시가 되었고 아름다운 단풍을 동반하는 10월이 앞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