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0년 영 허즈밴드, 죠가스마 백두산 등정,
1861년(철종)에 고산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이조말 서양 문명 유입과 실학 사상이 보급되며 등산문화 시작.
1924년 백운암(현 백운산장)에서 인수봉 정상의 돌탑을 발견.
이미 국내에서 누구인가가 그곳을 올랐던 흔적이 발견되었다.
1925년 원산 스키연맹이 조직되어 금강산 스키와 등산
1925년 서구적인 알파니즘과 등반기록 영화 및 서적이 보급되었다.
당시 서울에 거주한 외국인들의 암벽등반이 한국 등반사에 파급효과
1926년 <조선 교육회>에서 백두산을 등반한 기록이 있다.
1926년 한국인 임무와 영국인 아처(공사관)의 인수봉과 선인봉 등반
1927년 연세대 설립자 언더우드(원한경)외 5인이 '고독의 길'로 인수봉 등반
1931년 1월 일본인 반산달웅과 반소에 의해 금강산 비로봉에서 스키 등산.
1931년 일본인을 중심으로 한 조선 산악회 창립(회보 : 조선 산악을 창간)
1935년 1월 <경도제대 산악부>에서 백두산 동계 등반.
1936년 1월 경성제대 산악부가 한라산 등반(전천 대원이 최초 우리나라조난사고)
1937년 창립된 백령회로 순수한 한국인들만으로 조직된 우리나라의 최초 산악회
1938년 조선 산악회에 의해 금강산 접선봉 암벽 및 슬랩(slap)을 초등했다.
1942년 백령회에서 적설기 백두산 마천령 산맥 연봉을 경유한 종주등반
암벽등반은 서울 북한산 인수봉과 백운대를 중심으로 많은 코스가 개척.
금강산은 접선봉을 비롯, 많은 암벽이 초등 되었고, 근대 알파니즘 형성.
1945년 9월 15일 백령회 주축으로 한국산악회 창립.(1946년에 부산, 경북지부 창립)
1946년 3월 제 1차 제주도 종합 학술 조사등산, 태백산맥 학술 조사를 위한 등반.
1947년에는 서울대, 세브란스의대, 한양공대를 주축으로 학생산악연맹이 창립.
1947년 8월에 제 1차로 울릉도 독도 학술조사를 위해 등반했다.
1956년 1차 동계 한라산 극지 등반이 한국산악회에 의해 이루어졌다.
1962년 대한산악연맹 창립, 산악계는 양대산맥 체계로 운영되기 시작.
1955년 서울 문리대 산악부에서 설악산 천불동 코스를 최초로 개척했다.
슈타이맨 클럽의 동계 설악산 최초 적설기 등반과 초등정이 시작되었다.
1960년 초 극지법 및 종주 횡단 산행방식은 대학산악부를 중심으로 발전.
지방의 몇몇 단체가 합세, 설악산, 한라산, 지리산 등을 중심으로 행해졌다.
60년대 이 후 각 산악단체의 활발한 등반 활동이 근대등산을 정착화 시켰다.
1960년 하켄 클럽이 대만에 있는 옥산 원정.
1962년 박철암이 다울라기기 봉을 정찰했다,
1962년 이들을 통합한 대한산악연맹이 결성
1963년 경희대 산악부의 히말라야 정찰 등반,
1964년 동국대와 한국산악회의 일본 북알프스 등반,
선우중옥 씨가 선인봉의 박쥐길 코스를 개척,
인수봉 귀바위 A, B코스 설악산 공룡능선 개척.
1965년 3월 네팔의 입산 금지령으로 해외등반 주춤
1969년 해금령에 따라 다시 히말라야로 등반 붐.
1969년 한국산악회가 국제산악연맹에 가입.
1969년 7월 한국산악회의 츄렌히말 정찰대 파견,
1970년 김정섭 원정대의 츄렌히말 등정,
1971년 김정섭 원정대의 마나슬루 원정을 했으나 정상 등정에 실패했다.
1971년 대한산악연맹의 로체샬 원정이 고소장애 및 대원의 조난으로 실패,
1972년 대한산악연맹도 국제산악연맹에 가입
1972년 김정섭 원정대 마나슬루 재도전
(히말라야 사상 두 번째 큰 사고 후 퇴각).
1977년 9월 김영도 대장이 이끈 등반대가 에베레스트 등반(고상돈)
1995년 3극점과 7대륙 최고봉을 모두 정복한 인류 최초의 탐험가..허영호
2000년 히말라야 14좌 완등한, 우리나라가 배출한 세계적인 산악인, 엄홍길.
2005년 산악 그랜드슬램(히말라야 14좌, 7대륙 최고봉, 지구 3극점),. 박영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