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다리와 심장으로 사막을 건넌다. 사진 박현우 오래전 사막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산맥같이 높다란 사구, 발을 잘못 디디면 헤어 나올 수 없는 사막의 늪 유사(流砂), 낙타도 힘들어하는 거친 자갈밭, 모래 폭풍. 그 영화 덕분에 사막은 아름다움보다 가혹함으로 기억에 남았다. 그 가혹함에 도전 중인 탐험가를 만났다. '세계 최초 10대 사막 무동력 횡단'이 목표라니 정복자 혹은 승부사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에게 사막은 정복할 대상이 아니었다. '탐험은 자연 속에서 느끼는 자유로움' 이라 말하는 탐험가 남영호 대장을 만났다. |
|
사막에 대한 몇 가지 말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샘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야. _<어린왕자> 중에서 사막을 즐기는 부류는 딱 둘뿐일세. 베두인족과 신이지. 자네는 어느 쪽도 아니잖나. _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 중에서 하필 왜 사막인가요? 세계 대륙의 1/10인 사막이 소외당하는 것 같아서요. _탐험가 남영호와 인터뷰 중에서 |
소년,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빠지다 |
"처음부터 탐험가가 꿈은 아니었다" 는 남영호(38) 대장은 어릴때부터 세계 여러 곳을 다니며 새로운 것들을 보고 기록하며 살고 싶었다. 우연히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라는 잡지를 보고 그 세계에 매료되었다. 그가 원하는 것들이 그곳에 다 있었다. 사진들 속의 지리, 환경, 사람들, 그들의 문화, 종교, 생활… 모든 것이 궁금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보다가 역사가 궁금해지면 역사책을 읽고, 그러다가 궁금한 것이 생기면 관련 책을 또 찾아 읽었다. 인류 문명의 불평등을 다룬 <총 균 쇠>도 그렇게 읽었다. "내가 궁금한 것들을 직접 보고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우선 다큐멘터리 사진작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가 사진을 전공으로 선택한 동기다. 하지만 아들이 '사진사'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부모님을 설득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딱 한 번이라는 조건으로 겨우 허락을 받았다. 입시를 위한 실기 레슨도 한 학기 정도만 받았다. "레슨 비용도 문제였지만 나름의 전략이 있었어요. 실기가 30%, 시험이 70%인 상황에서 우선 공부로 승부수를 두어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렇게 첫 번째 꿈의 단계를 넘었다. 대학 졸업 후 산악 전문지에서 사진기자로 일하면서 '탐험으로 직접 자연에 다가가고 싶어' 탐험가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
하필이면 왜 사막인가? |
그는 2006년 유라시아 대륙 1만8천 km를 자전거로 횡단하며 탐험가의 길을 시작했다. 2009년 타클라마칸사막 도보 종단, 2010년 갠지스 강 무동력 완주를 마치고 2011년 고비사막을 시작으로 인류 최초의 '세계 10대 사막 무동력 횡단'에 도전하고 있다. 세상의 많고 많은 곳 중 그는 왜 사막을 선택했을까? "산은 꼭짓점이 분명하고 정복의 의미가 강하죠. 정상에 도달하는것 자체가 목적이니까요."(물론 혹독한 일이라는 것도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정복보다 과정을 즐기고 싶었노라 말한다. 그런 그에게 사막이 다가왔고, 지구 표면의 1/10을 차지하는 사막이 소외되는 것이 아쉬워서, 남들과 다른 도전을 해보고 싶어서 사막으로 갔다. 그의 탐험 기록에는 '무동력' 이라는 말이 항상 등장한다.
말 그대로 걷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노를 저어 배를 타거나 인간의 힘만으로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탐험을 평가할 때 세 가지를 염두에 둬요. 동력, 중간 지원 여부, 솔로냐 팀이냐 하는 것들이죠." 기본적으로 탐험은 모험성이 강조된 행위이기 때문에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활동이 좀더 주목을 받는다. 하지만 그는 "어떤 평가도 생명과 안전보다 우선할 수 없다" 고 단언한다. |
절실함으로 다시 서다 |
"갠지스 강 탐험 때 강도를 만난 적이 있어요." 무장 괴한 네 명에게 습격을 당했다. 총과 칼로 무장한 복면강도에게 장비 일부와 개인 소지품 등을 빼앗기고 목에 칼끝이 닿고, 총으로 위협당하는 경험을 했다. 다행히 그 위험에서 벗어났지만 또다시 해상 강도를 만났고, 필사의 탈출을 했다. 그 사건의 후유증 때문에 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 마음의 병에 걸렸다. "누군가가 나를 보는 것 같아 낮에도 커튼을 닫아놓고 지냈어요. 하지만 쉽게 나아지지 않더라고요." 2011년 도전한 고비사막을 완주하지 못했을 때는 탐험가로서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지 회의까지 느꼈다. 이때 그를 일으킨 것은 '절실' 함이었다. "꿈을 위해 투자한 시간과 노력이 떠올랐어요. 여기서 멈추면 내 삶의 존재 가치도 없어질 것 같았죠." 아무리 철저히 계획을 세우고 준비해서 떠나도 늘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하지만 "내가 감내할 수 있는 위험" 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상황에 집중하면 벗어날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고. "몰입과 집중이 위험에서 벗어나게 하는 내적 원동력입니다." 사진 속의 그는 늘 웃고 있다. 가족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힘든 모습으로 찍을 수 없고, 겪었던 어려움은 말할 수 없으며, 새롭게 시작하는 탐험도 위험하지 않다는 말로 오히려 가족을 안심시켜야한다. 탐험은 오로지 그의 몫이다. 문득 참 외로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탐험을 계속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
자연은 스펙도, 정복 대상도 아니다 |
" '건넜다, 완주했다' 는 말이 탐험의 완성이라고 생각지 않아요. 내 탐험의 과정과 결과로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야 비로소 온전해진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를 위해 그는 탐험하는 동안 남길 수 있는 모든 것을 기록한다. 그가 전공한 사진이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이다. "탐험하는 동안 찍은 사진을 인터넷 교육 업체에 무상으로 제공한 적이 있어요. 교육적으로 활용되길 바라는 마음이었죠." "아이들은 자연 에서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 말하는 그는 자연조차 스펙의 도구로 여겨지는 현실이 안타깝다. 아름다운 자연에서 지나친 극기 훈련, 고행 같은 도보 행진은 자연을 '힘든 것' 으로 인식하게 만든다는 것. "언젠가 저에게도 탐험을 계속 할 수 없는 육체적 조건이 찾아오겠죠. 그때가 되면 아이들과 즐길 수 있는 탐험 프로그램을 만들어 함께 해보고 싶어요." 아이들에게 자연은 재미있는 놀이임을 알려주고 싶은 그의 소박한 바람이다. "재미있어요. 즐겁지 않으면 계속할 수 없어요. 고통과 위험은 늘 존재하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과정,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기쁨을 '재미있다, 즐겁다' 말하는 거죠."
재미와 즐거움은 그를 채찍질하는 또 다른 시금석이다. 그는 무작정 재미있고 즐거운 순간이 뭔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라고 생각한다. "그 순간이 나를 채찍질해서 한 걸음 더 나가도록 노력해야 하는 시점이죠." 지금까지 5개 사막을 횡단했다. 앞으로 남은 것은 5개. "우선은 10개 사막을 안전하게 횡단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1년에 2개 사막 탐험을 계획하고 있으니 아직 갈 길이 멀죠." 남영호 대장은 몸이 날렵하다. 처음 만났을 때 금방 알아보지 못한것은 수천 km의 사막을 무동력으로 건너는 이는 건장한 체격일거라는 선입관 때문. 하루도 빠짐 없이 10~20km를 걷는다는 그는 "사막을 탐험하는 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폐활량과 튼튼한 다리근육이지 넓은 어깨가 아니다" 라며 필요에 따라 몸을 만들 듯, 나만의 주관적인 생각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누군가의 판단에 맞추지 말고 스스로 고민하고 좌절하고 깨닫는 과정을 꼭 겪으라" 는 말을 남기고 그는 일어섰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대사 한 줄을 수정해야 할 것 같다. "세상에서 사막을 즐기는 부류는 베두인족과 신뿐만 아니라네. 탐험가들이 있지 않은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