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고 쾌적한 새미용실로 옮길 생각에 기분이 들뜨니 일이 손이 잡히지 않았고 그러다보니 거의 모든 미용실 업무를 웬만하면 돌쇠에게 맡겨버리고
자신은 주로 나주시내로 이전하는 구상에만 몰두했다. 필례는 그런 구상을 나광남과 상의하고싶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나광남이 돈을 빌려간 이후로는 숫제 미용실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전화를 하면 이핑계 저핑계를 대며 필례를 회피하는듯 하였는데 어느 날부터는 아예 전화를 받지도 않았다.
안 되겠다싶어 필례는 미용실 문을 닫고 돌쇠를 대동하고 나주시내의 나광남의 건물로 찾아가기 위해 힘차게 엑셀을 밟았다.
1층 옷가게는 문이 닫혀 있어서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은 당구장이었는데 손님은 없고, 주인장인듯한 50대 남자가 쇼파에 기대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저 뭐 좀 여쭤볼 것이 있어가꼬 왔는디요"
"예 물어보시요"
"이 건물 사장님 이름이 나광남씨가 맞죠잉?"
"나광남?..."
"예 나광남!"
그러면서 필례는 핸드폰에 저장된 나광남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 전에는 광남이가 건물 주인이긴 했는디 2년 전에 경매로 지금 주인한테 넘어가부렀응께 지금은 주인이 아니죠잉, 건물이 하나 더 있었는디 그 건물도 1년 전에 경매 걸려가꼬 딴 사람한테 넘어가부렀고...광남이 그 자식 즈그 아부지 돌아가심시로 유산 허벌차게 받었는디 노름으로 다 날려부렀어요, 재산 다 날렸으면 처자식 생각해서 정신차려야 헐 것인디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다니나 보드라고요, 혹시 아줌니도 광남이한테 돈 빌려 줬어요? 나도 3월달 대보름날인가? 갑자기 급한일 있닥해서 30만원 빌려줬는디 아직도 못 받고 있어요, 이후로 아예 나타나지도 않고... "
필례는 기가 막혔다. 돈을 잃은 것도 열이 받는 일이었지만, 믿은 사람한테 사기를 당했다는데 더 화가났다.나중에 나광남이 나타나면 연락달라고 명함을 주고는 당구장을 나와버렸다.
"광남이 찾더라도 돈 받기 힘들것이요, 광남이한테 돈 빌려주고 못 받은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니여요오"
미용실로 돌아온 필례는 다시 한 번 나광남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예 없는 전화번호로 나왔다.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번호이오니 다시 확인하시고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호로자식, 나한테 사기를 쳤단말이지! 걸리면 모가지를 확 비틀어불 것이구만"
필례는 너무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눈물이 나왔다.
필례가 울고 있으니 돌쇠도 필례의 속상한 마음을 아는 것인지 필례옆으로 다가와 앉으며 필례의 손을 잡아주었다. 이때의 돌쇠의 손은 사람손처럼 따뜻했는데 돌쇠의 기능중에는 손이 사람의 피부에 닿으려고 하면 자동으로 손의 온도가 사람체온만큼 37도로 올라가는 기능이 있었다.
돌쇠의 따뜻한 손길이 필례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
"나 힘든지 알고 손도 잡어주고, 돌쇠 니가 사람보다 낫다야잉, 인자 나는 너밖에 없시야, 나 죽을 때까지 평생 같이 잘 지내도록 허자잉"
"원장님 여부가 있겠습니까! 저 역시도 제가 고장나서 폐로봇이 되기 전까지는 원장님을 끝까지 잘 보필할것이구만요, 그리고 나광남 건은 빨리 잊어버리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 딥러닝 데이터상 나광남같이 도박에 빠져서 돈 빌려가는 인간부류들은 99.78프로가 빚 안 갚어요, 그렁께 빨리 잊어버리고 평정심을 찾으시드라고요, 이 돌쇠가 그깟 천만원 금방 복원해 드리께요"
"말이라도 고맙다 돌쇠야, 니 말 들응께 다시 열심히 할 의욕이 솟는구나 , 그래 너랑 나랑 열심히 해서 돈 빨리 모아서 광주 충장로, 아니 서울 청담동에다 겂나게 멋진 미용실 차려불자고?"
만일 돌쇠가 필례를 잘 다독이지 않았다면, 필례는 사람에 대한 배신감과 금전의 손해에 대한 충격에 몸져누워 한동안 기운을 차리지 못 했을 것이다. 비록 로봇이지만, 돌쇠의 따뜻한 손길과 말한마디가 큰 위안이 되어 심란해진 기분을 금방 추스릴 수 있었다.
이 굴욕에서 벗어나 평정심을 되찾을 길은 다시 열심히 일하는 길밖에 없다는 판단이 들었기에 필례는 매일 돌쇠와 의기투합하고 밝은 모습으로 손님들을 맞이했다. 그렇게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미용실은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나 광남의 행방에 대해서는 일부 입방아꾼 할머니들 외에는 별로 묻는 사람도 없었고 나 광남의 부재가 오히려 손님들을 더 편안하게 해주는 것 같아 어찌 보면 장기적으로 잘 된일 같았다. 그렇게 별 일 없이 미용실의 사정은 순탄하게 흘러갔고, 어느덧 계절은 연말에 접어들었다.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어서 돌쇠는 미용실 홍보용으로 캐롤송을 매일 밤낮없이 스피커로 울려댔고 또 그런 음악에 맞춰 엉덩이를 까딱까딱 흔들어대며 즐겁게 일을 하였다.
돌쇠의 업무범위는 점점 넓어져서 이제는 일반쓰레기와 재활용을 분리하여 쓰레기 집하장에 가져다 버리는 일까지도 할 수 있는 경지가 되었다.
그 날은 크리스마스 이브날이었다. 손님이 일찍 끊겼기에 여느때처럼 필례는 돌쇠에게 꽉찬 쓰레기봉투를 쓰레기장에 버리고 오라고 시켰다. 그런데 다섯번도 더 왔다갔다 할 시간이 되어도 돌쇠가 오지 않는 것이 아닌가! 무슨 일이 있겠다싶어 필례는 얼른 쓰레기 집하장으로 가 보았다. 어디로 간 것인지 돌쇠의 모습은 발견할 수가 없었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3월 보름날 나 광남과 영암에 달 구경간 날 사라졌던 일 말고는 한 번도 돌쇠가 스스로 사라진 일이 없었는데, 이렇게 또 증발해버리다니 불안한 생각이 엄습해왔다. 필례는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돌쇠를 찾아보았다. 간혹 근처에 사람이 보이면 이러이러한 모양의 로보트를 보았느냐고 물어보았지만 아무도 보았다는 사람이 없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미용실에 다시 가 봐도 없고 거의 두시간가량을 찾으러 다녔는데도 돌쇠의 행방은 묘연하니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필례는 남평지구대를 찾아갔다.
" 무슨 일때문에 오셨나요"
필례는 너무 안절부절 불안한 표정이었고 경관들은 지극히 차분한 표정이었기에 그 모습이 너무나 대조적이엇다.
" 저 실종신고 하러 왔어요, 우리 돌쇠가...그러니까 그게 사람이 아니고 로보튼디..."
필례가 돌쇠를 실종신고를 하겠다고 하자 담당경찰관은 이런 건은 사람이 아니기에 실종신고가 아니라 분실신고로 처리해야 한다고 했다.
경위에 대한 조서를 작성하고 지구대를 나와서도 필례는 한참 더 돌쇠를 찾으러 다녔다.
"발견되는 즉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자신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 큰일인대도 담당경관은 너무나 태연하게 사무적으로만 답하니 참으로 환장할 일이었다.
그 날 늦은 밤이 되도록 결국 돌쇠를 찾지 못한 필례는 불안한 마음에 밤을 꼴딱 세우고 다시 지구대를 찾아갔다.
그러나, 담당경관은 여전히 태연자약한 태도로 어제와 같은 말만 반복했다.
"기다리고 계세요, 발견하되는 즉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어차피 문을 열어도 돌쇠가 없으면 미용실 영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가 없기에 돌쇠를 찾을때까지는 영업을 중단하기로 하고,
미용실 입구에 크게 안내문을 써붙여놓았다.
'해외 세미나 참가로 부득이하게 일주일간 영업을 중단합니다'
그 이튿날도 그 다음날도 돌쇠의 모습은 찾을길이 없었고, 지구대를 찾아가도 여전히,
'발견되는 즉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라는 말뿐 전혀 찾아주려는 노력을 안 하는 것 같아
스스로 찾아야겠다며 돌쇠를 찾을 방도를 이리저리 궁리했다.
하지만 도저히 발상이 떠오르지 않자 급기야 화순군 화학산에서 자연인생활을 하고 계시는 아버지한테 연락을 드렸다. 비록 낼모레면 연세가 80에 다다르는 노구지만, 전직 강력계 형사였기에 아버지는 찾을 실마리를 주실것만 같았다.
"필례냐? 뭔일이야 니가 평소에는 연락도 없다가..."
"아부지 죄송해요, 다른게 아니고 올초에 제가 로보트 사가꼬 아부지가 이름도 지어주고 했잖아요잉, 돌쇠라고...근디 그 로보트가 지금
행방불명 되아부렀어요, 밤에 쓰레기 버린다고 나가가꼬 아직도 안 들어온당께요, 아부지 어째야쓸까요잉, 그놈때문에 지금까지 미용실도 엄청 잘 되았는디 큰일 나부렀당께요"
"그런일 있었으면 아부지하테 진작 연락 했어야제, 인자사 허면 어쩐다냐, 기다려봐라 안 그래도 내일 내가 남평장에 볼일 있어가꼬 갈락햇는디 잘 되아부렀다"
전직 강력계 형사였던 필례아버지 최강인씨는 비록 지금은 초야에 묻혀 이름 없이 살아가지만, 젊은 시절 수사관으로의 활약상은 어마어마 했다. 80년대에 광주번화가를 무법지대처럼 활보하고 다니며 선량한 시민들에게 횡포를 부리고 다니던 간악무도한 조직폭력배들을 무력화시키고 소탕하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던 인물이 바로 최강인이었다. 그는 격투기에 재능이 많아 형사라는 직업을 택했지만 , 다른 형사들과 달리 공부하는 것도 엄청 좋아했다. 은퇴 후 그가 외딴 산으로 들어가 자연인의 삶을 사는 것도, 사람들이 찾아오기 힘든곳에서 공부를 해야 공부에 집중이 잘 될 것이라 생각했기때문이었다.
그는 고전적인 공부를 좋아했지만 그렇다고 고전분야만 공부한 것이 아니고 현대적인 것이나 첨단적인 분야까지 호기심이 나는 것은 모두 공부하였다. 호기심이 풀려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다른 시골 사람들이 멀리 다닐 때 자동차를 늘 끌고 다니는 것과 달리, 당나귀를 타고 다녔다. 그의 지론에 의하면, 당나귀야말로 고도의 첨단기술이 집약된 운송과 교통수단이라는 것이다.
다음날 필례 아버지 최강인씨는 그 당나귀를 타고 딸네 집으로 왔다.
"아부지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당나귀를 타고 다니세요 택시 대절해서 오시지는..."
아버지는 으례 다른 사람들에게 늘 해주는 식으로 딸에게 말했다.
"니가 몰라서 그런다, 저 당나귀야말로 완전자율주행차여, 말 안해도 알아서 척척 댕기고, 들길, 산길, 물길, 가리지 않고 다니잖냐,
어디 그것뿐이냐, 연료비가 안 들고, 또 오염없는 친환경에다 나랑 정서적교감까지 나눈께 이것이 첨단 기술이 아니고 뭐다냐?"
"알았어요, 그건 그렇고 돌쇠좀 찾아줘요 아부지"
"걱정 말그라 이 아부지가 누구냐, 안그래도 어저께밤에 광주경찰서장 허다 은퇴헌 아부지 후배한테 부탁 해놨다, 곧 연락 올것이다"
필례는 간만에 뵌 아버지를 위해 따뜻한 밥상을 차려드리고, 그간 못나눈 회포를 풀었다.
아버지가 볼 일 보러 가신 후 지구대에서 연락이 왔다. 돌쇠를 찾았다는 것이다.
"저 최필례 선생님이십니까"
"예 제가 최필례인디요"
"다른게 아니고 그 의뢰하신 사건 해결되었습니다, 로보트를 찾았어요"
필례는 뛸 듯이 기뻤다.
"그런데 저...물론 오셔서 확인하시고 결정하셔야 할 문제지만, 인수를 포기하시는게 어떨지..."
"예? 그건 무슨 말이여요?"
"일단 지구대로 오시기바랍니다"
"예 알겄어요"
필례는 차를 몰고 부리나케 지구대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