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시詩의 오솔길
윤강로 시인의 '투명한 유리컵'
▲ [시인 윤강로] 고려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서울 보성고등학교에서 36년간 교직에 몸담았던 시인은 1976년 시[발상법]이 박목월, 김종길, 박남수 세분의 심사로 당선되어 월간시집[심상]신인상으로 등단하였다. 중국 훈춘시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하였다. 시집에[불꽃놀이][피피새가 운다][오늘도, 피피새가 운다][먼 천둥 피피새야][빙 있음의 풍경][별똥전쟁, 제7시집[사람마다 가슴에 바람이 분다] 등이 있으며 현재[문학저널]편집위원, 한국시인협회 심사위원으로 창작과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인터팬 김형출 기자
투명한 유리컵
윤강로
빈 컵이 앞에 있다
반쯤의 갈증과
반쯤의 출렁임으로 살아가는 일상
빈 컵에 찍힌 손가락의 지문이 보인다
삶의 지문은 얼머나 복잡한가
나는 복잡한 지문의 갈등이다
정갈한 흰 손수건으로 지문을 닦는다
빈 컵을 보면서
한 모금의 맑은 물을 생각한다
투명한 갈증이 바람처럼 고인다
티 없이 투명한 물 컵이
앞에 있다
나는 갈증이 바람만큼 가벼워진다
갈증에 시달리는 건
가여운 일이지만
누가
그랬다
함부로 마시면 무겁게 추락한다고
-[촌장 잘 있소]제17회 하이디하우스 시낭송회 기념시집 중, 윤강로 작품 편-
시작노트
시가 아름답다고 할 때 어떤 것이 아름다운가? 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어떻게 답할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아름다움의 구체적 실상은 미사여구로 짜인 언어의 집합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와 같은 편견과 선입견은 시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협소하게 만든다. 어떤 시에 대해서 주제를 간파하고 해석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1차적인 문제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을 뛰어 넘어서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눈을 가져야 한다. 이름에도 불구하고 가장 잘못된 편견은 아름다운 미사여구로 짜인 시를 아름답게 보는 데 있다.
시인이 시어를 선택하는 것 또한 갈등과 고민 속에서 심사숙고하는 창조 작업이다. 포괄적인 광범위한 수많은 것 중에서 망원경으로 관찰하고 현미경으로 확인하여 뽑아 낸 선택이 렌즈에 담는 것이 시어다. 이것은 광활한 의미에서 아름다움이다. 또한, 시의 아름다움은 말의 아름다움이 아닌 문자의 세밀한 아름다움이어야 한다. 인생의 압축이 시라고 표현한다면 여러 시어에는 서정적인 시어도 있겠고, 울분을 토해내는 저항 시어도 있겠고, 불콰한 풍자 시어도 있다. 이런 것들을 종합하면 시에서 아름다움이란 흥분, 도치, 매혹적인 힘이 솟아나는 긴장미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란 과연 무엇인가? 라고 다시 한번 되묻는다면 대다수가 함축된 언어라고 대답한다. 이 답은 시에 대한 부족하지만 핵심에 가까운 대답이라 할 수 있다. 시적 언어는 산문처럼 풀어진 말의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 말을 풀어서 사용한다는 것은 설명하는 것이고 이것은 시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다. 시를 이렇게 정의하면 어떨까? "논리를 거두절미한 채 자신의 감정을 발설하는 것." "시는 한방의 다른 사람과 자신에 언어적 고백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 시인들은 골머리 아픈 시를 왜 쓰고 있는가? 시인만이 가지는 특성 때문이 아닐까, 시인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죽음 사람을 살릴 수도 있는 예술의 구도자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고백하기에 앞서 자기의 절박한 고백이 과연 제대로 전달될 수 있는지 불안해한다. 눈에 보이지 않은 내면을 실감나게 전달할 수 없는 경우, 고백의 욕구는 침묵으로 돌아가거나 발설하는 순간 실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질화할 수 없는, 즉 감각에 직접 호소할 수 없는 내면을 드러내고자 할 때 고백을 하기도 어렵듯이 고백은 듣기도 어렵다. 즉 시는 남의 고백을 귀담아듣는 것이다.
모든 고백은 비물질적인 세계, 비가시적인 세계에서 시도되는 소통이기 때문에 질량도 부피도 색깔도 형체도 없는 내면을 교환하는 일이야말로 인간들 사이에서 가장 어려운 고민거리다. 시가 어려운 근본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시는 내적 고백의 양식이다. 물론 모든 시가 개인의 내적 고백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참여시나 민중시처럼 주관적 내면이 아니라 객관적 사회에 대한 비판을 우선시하는 시도 있다. 그럼에도, 내적 고백이 시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이라는 것은 부정하기는 어렵다. 이런 똘똘 뭉친 내적 고백을 해독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시속에 숨어있는 수수께끼를 풀어내야 한다.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것 중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화자의 존재를 이해하는 것이다.
시속에서 화자의 나이, 성별, 감정상태(슬픔, 분노, 환희 등등)를 파악하는 것이 시의 어려움을 벗어나는 관건이다. 난해하고 어려운 시가 나쁜 시는 아니다. 반대로 아름다운 시어로 구성된 쉬운 시가 좋은 시도 결코 아니다. 시인이라면 독자입장에서 시의 주제나 해석에 급급하지 말고 시 속에서 제대로 된 시 맛을 씹을 수 있어야 한다. 여기 시 한 편 감상해보자. 당신은 어떤 눈으로 화자를 바라볼 것인가?
시를 감상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목을 음미해 보는 것이다. 제목은 시 전체를 나타내는 상징이기도 하다. 또한,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주제나 해석에만 급급하다 보면 화자가 이야기하는 깊은 시 맛을 모른다. 시는 소설이나 수필처럼 해석이 아니라, 숨은 수수께끼를 찾는 것이다.
이시는 투명한 유리컵을 바라보는 시인의 해맑은 영혼을 뽑아 올리는 듯하다. 문장에서 시를 감상하는데 문맥을 통해서 풀어내야 한다. 난해하면서 난해하지 않는 듯 보이는 것은 시인의 주지적 서정시의 경향을 띤 실체적인 삶이 용해된 생명력을 근간의 한 시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시인은 30년이 넘게 오로지 외길을 걸고 있는 우리 문단의 투명함의 대명사로 잘 알려진 시인이다.
<인터팬> 김형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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