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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후반까지 젊은이를 열광시킨 대표적인 놀이문화 중 하나가 '롤러장'이다. 신나는 최신 팝송이 흘러나오는 넓은 공간 위, 양발의 바퀴에 몸을 실은 청춘들이 젊음을 발산하던 추억의 장소. 조잡하기 짝이 없는 조명이 깔려있던 그 공간은 복합사교의 장(場)이자 데이트 코스였다. 삼삼오오 앞사람의 허리를 붙잡고 따라가는 '기차놀이'는 초보자의 필수코스이자 재미였고 잠깐이라도 두 다리에서 긴장을 푸는 순간 여지없이 엉덩방아를 찧는 일도 다반사. 현란한 백 스텝이나 지그재그 스텝을 앞세운 이들이 마냥 부럽기만 했다. 추억과 향수를 전해 주던 이 롤러스케이트가 선명한 태극마크를 앞세우고 세상 밖으로 질주하려 한다. ◆ 스케이트의 진화가 만든 스포츠 1940년대 파고다 공원부근에 옥외 링크장이 만들어지면서 국내 처음 소개된 롤러스케이팅은 80-90년대엔 여가선용의 대표적인 놀이문화로 군림했다. 500만이 넘는 동호인의 사랑을 받으며 인기를 구가했지만 한때 주춤하며 소수자의 레저로 그래도 여전히 300만이 넘는 동호인을 보유한 레저 스포츠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관전'이 아닌 ‘직접 참여하는 레저’로 시작된 롤러스케이팅은 앞뒤 4개의 바퀴로 이뤄진 쿼드(quad)형태였다. 움직임이 자유자재로 가능하고 최대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바퀴의 간격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좀 더 강한 스릴과 아찔한 도전을 원하는 이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이를 만족시키기 위해 빙상 위의 스케이트와 동일한 ‘일자 바퀴’를 부착한 새로운 형태의 ‘인라인롤러’가 등장했고 최고 60km까지 스피드를 낼 수 있다는 점은 속도경쟁을 펼쳐 보는 이들에게도 스릴을 안겨 주는 장점이 되었다. 인라인롤러 스피드종목은 경기코스에 따라 트랙(Track)과 도로(Road)로 나뉘고 경기형태에 따라 타임트라이얼(time trials) 제외경기(elimination race) 시간제한경기(endurance races) 포인트경기(point-to-point race) 제외+포인트 경기 등 10여개로 분류되어 있다. 각 종목마다 기록과 순위를 매기는 방법의 차이를 두고 있어 다소 복잡한데 장거리의 경우 경기 중 지루함을 없애고자 하는 목적이 강하다. 전체적으로 사이클과 비슷하다. ◆ ‘아시안게임’ 첫 나들이에 나서다 1924년 스위스 몽띄르에서 창단한 국제롤러경기연맹(FIRS)는 2009년 기준으로 115개의 회원국을 자랑하고 있지만 국제종합대회의 최고봉 올림픽 입성은 요원한 상태. 그런 가운데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어 눈길을 끈다. ◆'인라인 요정' 궉채이 등장 이후 꼭 10년 만에 정상에 서다 1972년 경북로울러스케이팅협회를 처음 결성한 이후 대한체육회 정식 가맹단체로 승인을 받아 대한인라인롤러연맹(KRSF)으로 공식출범한 연맹은 1987년 국내에선 처음으로 아시아선수권대회를 광주에서 개최하는 등 일찌감치 국제 대회로 눈을 돌렸고 마침내 1997년 아르헨티나 마르텔플라타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 처녀출전, 예상치 못한 메달을 거머쥐기도 했다.
경기도 귀인중학교 2학년이던 궉채이는 5000M포인트 우승과 1만M 제외경기 준우승을 거둬 종합9위를 차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실력뿐 만 아니라 출중한 미모를 지녀 ‘인라인 요정’이라 불리며 세간의 화제를 불러 모았는데 이는 인라인롤러라는 생소한 종목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대표경력 8년차 임진선(22.경남도청)은 사상 첫 우승의 원동력을 ‘착실한 준비와 현지적응’이라고 손꼽았다. “그 전보다 팀이 빨리 꾸려져서 대회 장소로 일찍 떠났죠. 음식 같은 경기 외적인 면에서 불편이 없어 경기에 더 집중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매년 개최국의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고생했었거든요. 그래서 확실히 좋은 경쟁력을 보였던 거 같아요(웃음)” ◆ 국제대회 우승보다 더 어려운 대표선발전
인라인 태극마크를 달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한다 (사진 : 대한인라인롤러연맹) 인라인롤러 스피드는 양궁, 태권도만큼이나 태극마크를 다는 일이 쉽지 않다. 더구나 아시안게임 참가티켓이 걸린 특별한 선발전의 치열함은 상상을 불허한다. 하루 두 번의 경기로 태극마크의 엔트리를 정했던 예전과 달리 이번엔 1,2차전으로 나눠 총 4번의 경기로 옥석을 가렸다. 주니어시절부터 국제대회에서 수차례 우승을 이어오며 10년 가까이 한국 남자 인라인롤러 장거리를 대표했던 남유종(24.안양시청). 그는 EP10000M에서 아깝게 3위에 그쳐 광저우행 티켓을 놓쳤다. 대신 지금은 대표팀의 훈련을 돕고 있다. “아쉽죠. 역시 아시안게임은 하늘이 정해주는 사람이 따로 있는 거 같아요(웃음) 장거리 는 혼자선 연습이 불가능 하거든요. 그래서 옆에서 레이스를 끌어주고 호흡을 맞춰주고 있어요. 다들 좋은 성적 내고 와야죠.” ◆ 결전의 그날을 위해 스케이트 날을 곧추세우다
경상남도 진주시 종합운동장내 인라인롤러 경기장. 파란색 하의와 흰색 상의의 타이트한 유니폼 가슴에 ‘KOREA'가 선명한 선수들이 각자 소속팀 유니폼을 착용한 이들과 무리를 지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트랙을 힘차게 돌고 또 돈다. 지난 4월과 6월 전남 여수시 진남인라인 롤러 경기장에서 열린 2010 스피드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해 선발된 선수는 남녀 각 4명 총 8명이다. 종목당 한 팀에서 2명까지 참가할 수 있는 가운데 단거리의 경우 한 선수가 최대 2개의 메달을 목에 걸 수 있다. 8명 중 절반이 경남도청 소속으로 대표팀도 경남도청을 이끄는 강대식(42)감독이 지휘봉을 잡는다.
7월말 소집한 대표팀은 8월초까지 전남 여수에서 체력보강훈련을 실시한 뒤 8,9일 이틀간은 충북 청주공군사관학교에서 체력측정으로 각 개인별 맞춤식 훈련 해법을 고민했고 충남 대천해병대 훈련소에 입소 2박 3일간의 극기훈련에 참가했다. ◆ 단 한 번의 기회, 최고의 성적만이 살아남는다
“어쩌면 이번 광저우대회가 처음이자 마지막 아시안게임이 될 수 있는 상황이잖아요. 아직 2014년 인천대회엔 참가 여부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라 어떻게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좋은 성적으로 효자종목으로 눈도장을 받아야 합니다. 개최국으로서 몇 개 종목은 선택할 수 있잖아요. 무조건 아시안게임에 잔류해야 삽니다.” 작년 말 대한체육회는 해가 거듭될수록 전국체전이 방대해지고 과열경쟁으로 치닫고 있다고 판단, 국제경쟁력이 검증된 종목 위주로 재편해야 한다는 구조조정안을 들고 나왔다. ◆ 아시안게임 첫 금메달 유력후보, 우효숙
한국 인라인롤러를 논하면 우효숙이라는 이름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충북 일신여고 시절 2002년 처음 태극마크를 달고 나선 벨기에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P5000M)을 따내며 유망주로 불리기 시작한 우효숙은 시니어무대로 옮긴 2003년엔 EP10000M에서 금메달을 차지,사상 첫 시니어부문 우승을 차지한 한국선수로 기록되었다. “아시안게임이라고 방심할 수 없죠. 최근에 대만이 무섭게 떠오르고 있어요. 그들도 목표가 전 종목 우승이래요(웃음) 절대 쉽게 봐선 안돼요. 그만큼 올라오고있거든요. 저희보다 훨씬 더 좋은 환경에서 든든한 지원을 받고 있거든요. 가장 자신 있는 종목이긴 하지만 모두가 우승을 낙관하니 솔직히 부담스럽죠. 변수는 늘 있게 마련인데 게임은 뛰어봐야 하잖아요”
“개인적인 욕심보다는 우리 선수들이 전체적으로 잘했음 하는 바람이 앞서요. 물론 아시안게임 역대 최초 우승이라는 타이틀에 대한 욕심도 없진 않지만, 조국을 위해 금메달을 최대한 많이 안겨주고 싶은 마음이 더 큽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저도 꼭 해내야죠.”(웃음) ◆ 각양각색, 8명의 태극전사 “매일 같이 지내다보니까 이젠 선후배 동료 사이를 떠나 가족 같은 느낌이죠.”
여자선수 가운데 유일한 여고생 안이슬은 경기에 나서면 특유의 근성과 강한 승부욕을 보이지만 평소엔 야무지고 낯을 가리는 수줍움 많은 소녀. 하지만 애교도 많아 귀여움을 독차지한다. 작년 하이닝 세계선수권대회 4관왕을 비롯하여 광저우아시안게임 전초전이라 할 수 있었던 2010 아시아롤러스케이팅선수권대회 3관왕에 오르며 단거리 2종목 모두 금메달을 노린다. 맏언니 우효숙은 팀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드는 허당(?)역할을 맡고 있다. 평소엔 웃음도 많고 빈틈도 있어 챙겨주고 싶게 만들지만 스케이트만 갈아 신으면 특유의 카리스마로 또 다른 모습으로 감탄사를 연발하게 만든다.
장수철은 국제대회 경험도 성적도 없는 신예. 하지만 2010 스피드 국가대표 선발전 타임트라이얼(T300M)에서 한국신기록(24.583초)를 0.077초 앞당겼고 500M에서도 기존의 한국신기록 40.840초를 40.712초로 경신, 관계자를 놀라게 했다. 신체조건(190cm/78kg)과 순발력, 탄력 등 그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는 그는 최고의 스프린터로 성장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소극적인 성격으로 인한 자신감 결여 거기에 큰 무대를 경험 부족이 극복해야 할 과제이자 변수다. 최광호는 고교2학년으로 대표팀의 막내지만 대구사나이답게 말수도 없고 무뚝뚝한 편. 나이가 어린 만큼 많은 경험을 쌓고 배우고 돌아오겠노라 여유를 보인다. 반면 최광호와 함께 장거리종목에 출전하는 손근성은 군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우승을 간절히 원한다. 고감도 스케이트 테크닉을 자랑하며 순발력과 경기 운영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체력만큼은 후배에게 밀리고 있는 상황. 그래서 스스로 기술적인 것 보다는 체력보강에 집중 할 것이라고 말한다. ◆ 내가 아닌 우리, 후배를 위해
각자 살아온 환경과 성격은 다르지만 인라인롤러의 매력에 빠져 선수의 삶에 이르면서 단 한 번도 선택에 대한 후회는 없었노라 한목소리를 낸다. “가끔 태릉선수촌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고 가보고 싶어요. 매번 지방으로만 돌며 모텔이나 여관생활을 하는 것이 지겹기도 하고...” “바람을 가르며 질주하는 그 짜릿함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들은 절대 이해지 못할 걸요? 다시 태어나도 인라인롤러 선수를 다시 할 겁니다.” “여러 종목이 함께 참가하는 대회는 어떻게 치러지고 어떤 분위기일까 벌써부터 기대돼요. 그런데 이번이 마지막이 될 수 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그런 감정은 사치인 것 같아요. 정말 이를 악물고 성적을 내서 우리를 보여줘야 해요. 금메달 따는 종목은 짧게나마 관심을 받고 박수 받잖아요.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을 하고 1등을 몇 개씩 해도 반응이 신통치 않네요”
해가 거듭될수록 ‘스포츠 강국’ 대한민국의 눈높이는 높아지고 있다. 수십 개의 금메달을 토해내는 아시안게임의 위상은 올림픽에 밀려 가치가 점점 더 떨어지고 있고 관심도도 예전만 못하다. 하지만 인라인롤러가 목표로 하는 6개의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가치는 몇 곱절 더 많은 메달보다 더 높고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자신이 아닌 후배들의 미래를 위해 더 나은 환경과 실력을 인정받는 세상으로 다가가기 위해 8명의 인라인롤러 태극전사는 지금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전 종목 석권을 꿈꾼다.
*기사제공 : 네이버스포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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