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여행 나흘째. 아침에 과일과 콘푸레이크로 간단히 아침을 챙긴다. 오늘은 군산근대역사문화거리를 답사하고 오후에는 새만금방조제를 건너서 부안 마실길을 걷는다. 좀 빡빡한 일정이다.
↑먼저 근대역사박물관을 돌아본다. (겨울 답사 때 찍은 사진이라 표지석 주위에 눈이 남아 있다.)
↑박물관 앞마당에 있는 인력거를 타면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놀이는 아이들은 자발적이고 창의적이게 만든다. 인력거는 움직이지 않지만 아이들 놀이 세계에서는 그것이 문제 되지는 않는다. 상상 속에서 아이들은 과거로 돌아간다.
↑1층 해양물류역사관. 군산의 역사를 담은 영상을 상영하고 있다.
↑오식도에 설치됐던 철제화포. 고군산에 출몰하는 서양 함선들을 방어하기 위해 고종 8년(1871) 군산지역에 배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통적인 우리나라 화포 제작 방식과 달리 화포의 입구가 본체보다 좁아지는 개량된 형태이어서 발견 당시에는 외국 대포로 오해 받았다. 이 화포는 1991년 군산시 오식도동에서 우연히 길을 가던 고물장수에 의해 발견되었다.
↑1층 해양물류관에서 3층 근대생활관으로 가는 2층 계단에 군산 3·5 만세운동 코너가 마련되어 있다. 진욱이가 만세운동 당시의 남학생 복장을 입고 있다.
↑이번에는 여학생 복장. 날씬한 희주가 입는다.
↑만세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아이들. 군산은 일본의 수탈이 심했던 만큼 만세운동도 치열하였다. 주로 영명학교 졸업생과 교사들이 중심이 되고 만세운동을 벌였다. 한강 이남에서는 처음으로 만세운동이 일어 났으며 희생자가 59명, 부상자자 195명에 이르렀다. 이 만세운동은 군산 지방의 민족의식을 일깨웠고 나중의 옥구농민항쟁의 뿌리가 되었다. 군산에서는 지금도 3·5만세운동을 기념하여 해마다 재현하고 있다.
↑희주와 윤석이가 만세를 부르는 동안 다른 아이들은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다.
↑3층 근대생활관에는 일제시대의 생활상을 재현하여 놓았다. 여기는 인력거조합이다. 군산은 1899년 5월 1일 개항하였다. 일찌기 일본인들과 중국인들이 많이 들어와 살면서 인력거도 많아졌다. 이 인력거꾼들은 조합을 결성하여 자신들의 권익을 지켰다. 당시 인력거조합은 상당한 세력이 있는 단체였다고 한다. 지금으로 치면 택시노조에 해당할 것이다.
↑여기는 미곡취인장이다. 일명 미두장이라고도 한다. 여기에서는 미곡(쌀) 시세가 수시로 나 붙는다. 일종의 증권거래소와 같아서 쌀 가격이 오르고 내림에 따라서 희비가 엇갈리는 곳이다. 이곳에 출입하는 많은 조선 지주들이 재산을 탕진하는데 이는 일본인들이 쌀 값을 조작하였기때문이다. 채만식의 소설 탁류는 이 미두장 앞에서 정주사가 봉변을 당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당시의 고무신 상회. 고무신이 한국 사회에 오면서 신발 문화에 혁명을 몰고 왔다. 그전에는 나막신이나 짚신을 신었는데 고무신은 모양이 예쁘고 물이 새지 않고 질겨서 많은 서민들이 애호하였다. 채색(彩色)고무신도 있었지만 주로 흰고무신이나 검정고무신이 환영을 받았다. 그리고 여자들에게 꽃고무신은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1930년대의 술병. 군산에 일본인들이 진출하면서 양조장이 성행한다. 술의 재료가 되는 쌀이 싸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소위 가양주(家釀酒)라 하여 집집마다 술을 빚어 왔지만 일제 강점기에는 이를 모두 금지하고 술도가에서만 술을 제조하게 하였다. 이는 주세(酒稅)를 징수할 목적으로 시행한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다양한 우리 가양주의 전통이 끊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군산 내항의 부잔교 앞에 정박한 배에다 쌀을 싣는 인부들의 모습. 일본은 호남평야와 내포평야에서 나는 쌀을 군산항을 통하여 본국으로 실어 날랐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쌀 가격은 거의 10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에서 헐값에 사들여 본국에서 비싸게 팔아 이익을 얻었다. 군산항 부잔교 앞에는 쌀가마니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전국에서 몰려든 막노동꾼들이 이 부두에서 지게를 지고 품을 팔아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지게 체험. 희수가 지게를 지고 있지만 지게의 무게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진욱이의 지게 지는 모습은 그럴듯하다.
↑윤석이가 쌀가마를 지게에 지고 부잔교 앞에 서 있다. 부잔교는 밀물과 썰물 때 수면의 높이에 맞게 자동적으로 조절되게 만들어진 다리이다.
↑일제강점기의 군산 극장이다. 안에 들면 다다미가 깔려 있고 의자가 아니라 자리에 앉아서 영화를 관람한다. 마침 심청전을 상영하고 있었다.
↑해망굴을 지나 바닷가 비탈에는 가난한 식민지 백성들이 이런 토막집에 살고 있었다. 주로 군산항 주변에 일을 하는 일용노동자들이었다. 일본의 수탈이 얼마나 극심하였는가는 보여 준다.
↑히로쓰 가옥. 그러나 일본인들은 군산의 미곡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하여 일본에서 수송하여온 목재로 호화주택을 짓고 살았다. 이 집의 주인인 일본인 히로쓰 게이샤부로는 군산에서 포목점을 운영한 사람으로 소규모 농장을 운영하였다고 한다.(히로쓰 가옥은 군산시 월명동에 있는 일본인 가옥으로 실제로 이번 여행 때는 가 보지 못하였지만 해망동의 토막집과 비교하기 위하여 두 번째 답사 때 찍은 사진을 올린 것이다)
↑히로쓰 가옥의 정원. 원래는 이 정원에 연못도 조성되어 있었다. 당시 일본인 정원에는 불법적으로 도굴된 많은 문화재들이 버젓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영명학교는 군산 최초의 사립학교로 3·5 만세운동을 주도한 학교이다.
↑영명학교 교실에서 주산을 공부하는 윤석이와 경빈이.
↑영명학교는 미국의 선교사에 의하여 창립되었다. 군산 3·5만세 운동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고 일제 말기에는 신사 참배를 거부하여 폐교가 되었다. 1952년 다시 복교되었다가 후에 제일고등학교로 교명이 변경되었다.
↑기획전시실에서는 명창 최란의 삶과 예술을 전시하고 있었다. 판소리 명창 월산 최란수 선생의 일생을 조명하는 자리이다. 여기는 아이들이 최란수 명창의 소리하는 모습을 그려보는 체험교실이다.
↑이 퍼즐 맞추기는 군산항 부잔교 앞에 쌓인 쌀탑 사진을 완성하는 것이다. 이름하여 '개항 35년에 만들어진 수탈의 상징 쌀탑'이다. 일본은 우리나라 생산량의 거의 절반을 일본으로 반출하였다. 쌀이 자급자족이 안 되던 시절에 생산량의 절반을 수탈하여 갔으면 우리 민족의 굶주림은 불을 보듯이 뻔한 일이다.
↑조정래 아리랑 취재 수첩의 일부. 여기에는 1926년 6월 25일 일본 총독 사이토가 군산항 앞에 쌓인 쌀더미를 보고 '오! 쌀의 나라'라고 감탄을 하였다는 이야기기 메모되어 있다.(이 사진 김제 아리랑 문학관을 답사하면서 찍은 것이다.) 조선 총독 사이토에게는 이 군산항에 쌓인 쌀이 일본을 배불려 줄 식량으로만 생각하고 그 속에 스며있는 조선인들의 피눈물은 억지로 외면하였을 터이다.
↑일제는 곡창지대인 호남 만경평야의 쌀을 수탈하여 군산을 통하여 일본으로 실어 갔는데 이것이 소설 아리랑의 중요한 소재가 된다.(사진 : 아리랑 문학관)
↑소설 아리랑의 서두. 뭔가 심상치 않는 사건들이 이 평화로운 평야에서 벌어질 것같은 느낌을 준다.(사진:아리랑 문학관)
↑군산 세관. 낮에는 세관 업무를 보는 곳이었다면 밤에는 군산 유지들의 파티장이 되었다고 한다. 세관은 예나 지금이나 기업인에게는 두려운 존재이다. 군산세관은 일본 제국주의 수탈의 첨병이었다.
↑원준이가 세무서장 자리에 앉아서 전화를 하는 포즈를 취한다.
↑세관 전시장. 밀렵한 상품을 불법적으로 거래를 하다가 적발되어 압수된 제품인 듯하다. 호랑이 머리와 코뿔소 뿔이 나란히 놓여 있다. 언뜻 보아도 상당히 정교하고 고급스러워 고가의 제품임을 알겠다.
↑세관에서 걸려 든 가짜 상품. 지금도 가짜 상품은 여전하다.
↑백년광장. 군산 개항 100주년 기념서업으로 조성한 광장이다. 지금은 앞에 6차선 도로가 나면서 많이 줄었다고 한다. 여기는 채만식의 탁류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조각한 것이다. 희주는 정주사와 그의 큰 딸 초봉이 사이에 서 있고 원준이는 정주사와 초봉이 동생 계봉이 사이에 서 있다.
↑군산 근대건축관. 과거 조선은행 군산지점이다. 해방이 되고 나서 한일은행 군산지점으로 잠시 쓰이다가 민간인에게 인수되어 유흥업소로 바뀐다. 유흥업소 운영 중 불이나자 건물을 시에서 인수하여 내부를 복구하여 2013년에 근대건축관으로 개관하였다. 안에는 일제강점기의 조선은행에 관한 여러 가지 기록과 일제 수탈의 자료와 군산의 근대 건축물 미니어처(실물축소모형)를 전시하고 있다.
↑2층 전시장 '터의 기억을 살피다'. 당시 가혹했던 농민수탈과 군산항 미곡 반출의 현장을 재현하였다.
↑당시 일본 지주들의 재산 현황을 엿볼 수 있다.
↑당시 대표적인 일본인 주택 히로쓰 가옥 미니어처. 히로쓰는 일본에서 직접 삼나무를 가져 와서 집을 지었다고 한다.
↑조선미곡 신탁 주식회사 사택 미니어처.
↑군산에 현재까지도 남아 있는 일본 사찰 동국사. 지금은 불교 조계종에서 사용하고 있다. 지붕의 경사가 급하고 길이가 길다. 일본에는 비가 많이 와서 눈 피해를 줄이기 위해 지붕의 경사를 급하게 한다.
↑1층 바닥에 상영되는 영상을 2층에서 보고 있다.
↑조선 은행 뒷문을 나가면 안중근 의사가 수감된 뤼순 감옥이 재현되어 있다. 윤석이가 안의사와 같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진포해양테마공원. 진포는 군산의 옛이름이다. 이곳에서 최무선이 화약을 발명하여 10배가 넘는 왜구들을 섬멸하였다. 이를 진포대첩이라고 한다. 진포해양테마공원은 우리나라 해전의 역사와 화약발명의 과정 그리고 세계의 유명한 해전 등을 소개하고 있다.
진포해양테마공원 들어가기 직전에 좌측에 보이는 부잔교. 지금은 다리가 고정되어 있지만 일제 강점기에는 조류에 따라서 다리의 높이를 조정할 수 있었다.
↑676함대를 개조하여 안에 전시실을 만들었다. 676함대는 '위봉함'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1945년에 미국에서 축조되어 연합군의 상륙작전에 사용되었고 이후 1959년 한국군에 인수되었다. 월남전 등에 참전하고 2006년 12월 31일 이곳에 와 전시되고 있다. 4200톤급이다.
↑678함대 전시실 내부. 진포대첩은 1380년 8월에 진포(현재의 군산) 앞바다에서 일어난 해상전투이다. 최무선이 만든 화포를 처음 사용한 해전이기도 하다. 당시 왜구는 전선 500여 척에 2만이라는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쌀을 약탈하기 위해 고려를 침입했다. 당시로 치면 정말 엄청난 인원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고려는 최무선이 발명한 화포를 앞세워 이들을 진압, 크게 승리할 수 있었다.
↑신기전의 모형. 우리나라 최초의 로켓 화기는 고려시대 최무선(崔茂宣)에 의해 만들어진 주화(走火)이다. 이 주화가 조선시대에 들어와 여러 차례 개량되어 세종 30년 1448년에 신기전으로 탄생되었다. 신기전은 여러 종류가 있었는데 그 중 대신기전 같은 것은 사거리가 천 미터가 넘었다고 한다.
↑내부 전시실. 화약을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군함 내부. 여기는 병사들이 휴식을 취하거나 잠을 자는 내무반이다.
↑위봉함을 나와 해양경비정으로 간다.
↑해양경찰 경비정 기관실에서 아이들이 기관을 조작하여 보고 있다. 이 외에도 헬기와 수송기 그리고 장갑차 등이 있었지만 더운 관계로 내부에 들어가는 것은 생략하였다.
↑군산에서 가장 유명한 돈까스 클럽. 어제는 휴무일이어서 못 갔는데 오늘은 무려 1시간 가까이 기다려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메뉴 왕 돈까스. 말 그대로 배가 터질 뻔하였다.
↑비응도에서 신지도로 가는 길 곳곳에 이런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새만금 신지도 배수갑문(이 사진은 겨울 답사 때 찍은 것이다.)
↑신지도 앞 한국농어촌공사 앞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새만금방조에 대하여 설명한다. 새만금방조제는 모두 33.9km로 세계에게 가장 긴 방조제이다. 물론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다.
↑완성된 새만금방조제 조감도. 새만금이 이런 모습을 드러내려면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부안에서 본 새만금 방조제
↑드디어 부안 고사포 해수욕장에 도착하였다.
↑약한 고무보트 하나를 이렇게 못 살게 굴었으니. 결국 고무보트는 찢어지고 말았다. 고무보트를 대여해준 할머니는 이제 두 번 빌려주고 못 쓰게 되었다고 울상이다. 그래서 생각 끝에 조금이라도 변상하여 드리겠다고 하니 할머닌 싫다고 한다. 학생들이 놀다가 그랬는데 못 쓰게 되었다고 돈을 받는다면 우리도 마음이 편치 않다는 것었다 여름 휴가철 바닷가라고 다 인심이 매서운 것은 아니었다.
↑신나는 물놀이. 두 시간이 넘도록 물 속에 있어도 피곤한 줄 모른다. 걸을 적에는 한 시간만 지나도 찡찡대던 녀석들이.
↑고사포에서 나와 낙조로 유명한 부안 격포에 들어섰다.
↑격포항 방파제 가는 길.
↑방파제 끝 등대에서 다 같이 기념 촬영.
↑재미있는 표정짓기.
↑누구 표정이 제일 재미있지?
↑이번에는 재미있는 동작 취하기.
↑누구 동작이 재미었어?
↑하루가 바다로 진다. 해가 떨어지는 곳이 바로 위도이다. 허균의 홍길동전 이상향 율도국의 모델이 아니었겠나라고 추정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