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감각을 통해 받게 되는 유혹
사단이 지배하는 죄된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길에는 유혹이 산재해 있다. 사단은 매일 홍수와 같은 유혹들을 가지고 와서 우리의 감정에 호소한다.
육신에서 올라오는 감정을 통해 인간이 범죄하고 실패하기 쉽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는 늘 감정과 감각들을 통해 유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매일의 삶 속에서 직면하게 되는 유혹들을 어떻게 다루며 감정이 올라올 때 그것을 이기는가 하는 문제는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이므로 매우 중요하다.
사단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통치권을 쟁탈하기 위해 교묘하게 유혹을 통해 역사하고 있다. 유혹을 받을 때, 모든 감각 기관이 받지만, 유혹에 가장 민감한 부분은 시각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눈은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마 6:22)라고 하셨다. 시각을 통하여 유혹을 받는다는 사실을 우리가 인식하는 일은, 유혹을 대항하기를 원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바울은 죄에 대해서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는 것 이라고 말하고 있다. 악한 생각들의 많은 것들이 우리가 보지 않았어야 할 것을 보았기 때문에 생성되며, 이렇게 생성된 악한 생각들로부터 공공연한 죄의 행위가 발전한다. 그러므로 무엇을 보느냐, 또는 어떻게 보는가 하는 문제는 실제적인 면에서 죄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 5:28)라고 하셨다. 사단은 인간의 마음과 의지를 지배하려고 고도의 감정적이고 육체적인 감각을 이용하고 있는데, 창세기에는 이것에 관한 뚜렷한 증거가 나와 있다.
인간을 범죄하도록 만든 첫 번째 시도에서 사단은 이 방법을 전적으로 사용하였다. 하와가 선악과 나무 아래에서 뱀에게 유혹받았을 때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사단이 얼마나 강력한 감각적 매력을 가지고 하와를 유혹하였는지를 알게 된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창 3:6)
여기에서 우리는 시각, 청각 그리고 미각을 통한 유혹의 조화를 보게 된다. 사단은 항상 감각을 통해 우리의 감정에 호소하며 유혹한다. 또한, 죄악의 행로를 아름답게 장식하고 죄된 길을 항상 타당하며 많은 사람에게서 인정받을 수 있는 것들로 꾸며 놓는다. 그러나 옳고 그름은 외관이나 감정이나 느낌에 의해서 결정할 수 없는 것이다.
감정은 우리가 보고, 듣도록 자신을 허용함으로써 생성되고 발전한다. 사단은 하와로부터 자만과 헛된 생각을 이끌어 내기 위해 과장된 말을 하였다. 그녀가 보고 들은 것은 그녀가 옳고 그름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감정에 영향을 미쳤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면서 하와의 자제력은 무너졌고, 재빠른 불순종이 뒤따르게 되었다. 그 열매의 맛이 너무나 좋았기 때문에 하와는 자신이 그것을 먹는 것이 잘못된 것임을 믿을 수 없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유혹은 죄가 아니라는 것이다.
유혹을 받았을 때, 그 유혹을 어떻게 처리하는가 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 유혹을 받아들여 마음에 품고 그 유혹이 죄로 잉태되도록 하는가 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 죄를 짓느냐 짓지 않느냐 하는 문제가 된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약 1:15)
2) 감정이 일어나 유혹을 받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의 마음속에는 쉴 새 없이 여러 가지 생각과 감정들이 일어난다. 감정에 휩싸이게 되는 것은 곧 죄를 짓게 되는 지름길이 되고 있다. 죄를 짓는 일은 감정과 매우 깊은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대부분 죄들은 우리가 애지중지하는, 감정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것들인 경우가 많다. 우리가 범하는 죄들은 우리의 정욕과 뒤엉켜 우리를 너무 꼭 붙잡고 있기 때문에 마치 쇠사슬로 붙들어 매인 양 그것을 끊고 나오는 것이 불가능하게 생각된다.
또, 우리는 너무나 자주 쓰러지고 패배하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깊은 실망감으로 그리스도인 생활을 포기하고 싶은 지경에 이르게 될 때도 있다. 그러나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에게 주신 복음은 모든 죄를 넉넉히 이길 수 있게 하는 능력의 복음이므로 복음을 이해하고 말씀대로 살아갈 때 그 모든 것들을 이길 수 있다. 유혹이 오고 감정이 일어날 때, 그것을 이기고 그 대신 말씀을 따라가는 실제적인 경험에 대하여 단계적으로 한번 생각하여 보자.
감정 대신 말씀을 붙잡는 길
1. 첫째 계단: 영적인 눈을 떠서 인식하라
먼저, 좋지 않은 감정이 일어나고 그에 대하여 반응하고 싶은 유혹을 받았을 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유혹을 받는 자체, 감정이 일어나는 자체는 죄가 아니라는 것이다. 저 유명한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말하기를, 새가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것은 막을 수 없어도, 머리에 둥지를 트는 것은 막을 수 있다. 라고 했다.
유혹을 받는 상태는 마치 새가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것과 같다. 그러나 새가 둥지를 틀지 못하게 해야 한다. 곧, 그 유혹이 죄로 발전하도록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 그 유혹을 품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삶 속에서 여러 가지 유혹들을 받는다. 타락하여 연약해진 육체를 가졌으므로 바람직하지 못한 감정에 빠지려는 유혹에 당면할 때가 수도 없이 많다. 고난이 올 때, 시련과 시험이 올 때, 핍박을 받을 때, 모든 것을 잃는 경험을 할 때, 우리는 낙심하여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려는 유혹을 받는다. 그리고 그로 인해 환경이나 남을 탓하고 싶은 욕망에 빠진다.
또한, 애매하게 모함을 받거나 업신여김을 당할 때,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을 들을 때나 욕설과 비방을 받을 때, 똑같이 보복해 주고 싶은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일어나는 감정으로 인해, 부정적이고 분노하고 어둡고 낙담하는 감정에 빠져서 하나님을 바라보지도 신뢰하지도 않게 되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
자, 우리가 어떤 것에 자극되어 유혹을 느꼈다고 하자. 예를 들어 나쁜 비방의 말이나 이유없이 던지는 거친 말을 듣고 화를 내고 싶은 지경에 이르렀던지, 혹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게 되어 탐욕이 올라오게 되었다든지, 그 유혹을 받는 단계가 공식적인 단계의 절차를 거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유혹을 받았다고 하자. 이때는 매우 중요한 시점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눈을 뜨고 늘 깨어 있어서, 유혹이 올 때, 감정이 일어날 때 그리고 사단의 공격이 올 때, 이것을 알아차리고 인식할 수 있는 영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유혹을 이길 수 있는 두 번째 계단으로 갈 수 있다.
영적인 혼수상태에서 잠을 자고 있는 사람은 유혹이 와도 그것이 유혹인지 아닌지 알아차리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런 사람은 감정이 이끄는 대로 마구 행동하게 된다. 그러므로 유혹이 올 때, 그 유혹을 인식하는 문제는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우리에게 깨우쳐 준다.
2. 둘째 계단: 유혹과의 싸움을 시작하고 말씀을 붙잡으라
많은 그리스도인이 구원은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진리의 말씀은 이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성경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 (약 2:26)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만, 머리로 믿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참된 믿음을 가지고 말씀대로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유혹을 물리치고 죄를 승리하기 위하여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부인하며 밖에서 오는 유혹과 육체에서 올라오는 감정의 유혹과 대항하여 전쟁을 벌이면서 날마다 구세주의 발자취를 뒤따라야 한다. 구원을 얻는 일에 있어서 인간이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유혹을 받을 때, 우리는 유혹과의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대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자기의 느낌과 감정을 따라 행해서는 안 된다. 유혹과 싸우라는 말은, 자신의 욕구를 부인하라는 말이다. 자신의 뜻을 부인하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 대신 하나님 말씀의 약속을 붙들라는 말이다.
유혹과 싸우라는 말은 유혹을 붙잡지 말고 말씀을 붙들라는 말이다. 나의 감정, 나의 좋아하는 느낌을 부인하고 말씀을 붙잡는 것이 말씀으로 산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시험과 고난이 올 때, 불평하는 정신에 빠지는 대신 하나님의 뜻과 목적이, 하나님 말씀의 약속이 우리에게 이루어질 것을 믿어야 하며, 하나님께서 최선의 길을 따라 그 일을 이루실 것을 믿어야 한다. 그러므로 낙망과 낙심의 감정이 올 때 자신의 사사로운 느낌과 감정과 욕망을 제쳐 놓고 말씀을 붙잡아야 한다.
어려울 때, 핍박을 받을 때, 슬프고 의기소침하려는 감정과 싸우고, 어둡고 부정적인 느낌을 부인하고 말씀을 붙잡고 소망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말씀만으로 산다는 의미이다. 멸시를 받아 분노가 올라올 때, 자신의 상한 자존심을 내세우며 똑같이 보복하고 싶은 감정을 붙잡는 대신, 원수를 사랑하라는, 유순한 대답으로 노를 식히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이 명령하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 말씀으로 산다는 의미이다.
3. 셋째 계단: 선택이 중요하다
자신의 느낌이나 감정을 따라가는 대신 말씀을 붙잡고 말씀이 명령하는 대로 나아가는 길에서 필수적인 것은 우리의 선택이다. 그리고 선택을 하는 일에는 반드시 우리 의지의 작용이 따른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다. 우리의 매일 신앙생활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혹을 이기고 말씀을 따라 산다는 것은 어떤 큰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매일의 생활에서 우리의 의지로 감정과 자신의 느낌을 따라가는 편을 택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의 편을 택하는 것, 즉 사단이 주는 충동에 따라 육체의 소욕을 따르지 않고 말씀이 시사하는 대로 성령의 소욕을 따르는 것이다.
이 일은 우리 의지의 작용과 선택에 의하여 매일 매 순간 이루어지는 일들이다. 우리는 자아와의 싸움에서 우리의 의지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또 우리의 의지를 사용하여 매일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의지는 사람의 본성 가운데서 지배하는 힘이다. 만일 의지가 확고하게 성립이 되면 나머지 모든 것들은 그 지배하에 들어오게 된다.
의지란 자신의 좋아하는 기호나 경향이 아니다. 그것은 선택이며, 결정하는 능력이고, 사람 속에 작용하여 말씀에 순종하게도 하고 불순종하게도 만드는 능력이다. 이 의지는 아무도 강제할 수 없다. 우리가 감정의 편이나 하나님 말씀의 편이나 둘 중 하나를 따라가기로 선택하여 결정하면, 그때 그리스도든 사단이든 그 사람을 지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바울은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롬 6:16)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말씀으로만 살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은, 우리의 의지를 그리스도 편에 고정하는 것이다. 곧, 하나님 말씀의 편을 따라가기로 우리의 의지로 선택하는 일이다. 연약성을 가진 우리 인간은 끊임없이 여러 가지 휘몰아쳐 오는 감정에 휩싸이기 쉽고,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욕망과 느낌과 충동으로 휩쓸려 가기가 매우 쉽다.
우리는 스스로 마음을 고칠 수 없고, 또 옳은 일을 행할 능력도 없다. 그러나 말씀만으로 산다는 것은, 어떠한 감정과 느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말씀의 약속을 상기하고 믿고 주장하며 그편을 선택하는 것, 곧 우리의 의지로 하나님의 편을 선택하고 그 말씀을 따라가는 것을 가리킨다.
감정은 하루에도 수십 번 변할 수 있고, 올라왔다가는 사라져 버리는 허상이라는 것을 늘 기억하면서 말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택력을 주셨으므로 그것을 활용하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다. 우리가 비록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없고, 우리의 감정과 생각과 욕망과 애정을 지배할 수 없다 해도,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기로 선택할 수는 있고, 우리의 의지를 그분께 드릴 수는 있다. 여기에 유혹을 이기고 말씀으로만 사는 비결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으로만 사는 비결은 감정적으로 그렇게 느껴지지 않고, 또 그렇게 하고 싶지 않더라도 자신의 뜻보다는 하나님 말씀의 편을 택하는 것이다.
4. 넷째 계단: 도움을 구하라
그런데 한 가지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가 비록 그 단계와 법칙들을 잘 안다 해도, 우리는 연약한 본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스스로 우리의 생각과 동기와 애정을 통제하거나 억제하기가 어렵고, 그렇게 할 힘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낙심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의지의 힘과 또한 우리의 의지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러므로 그럴 때, 우리의 의지를 그리스도께 굴복시켜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과 연합하게 된다.
유혹이 밀려오고 감정이 일어날 때 우리는 즉시 말씀의 편을 택하고 예수님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주여! 지금 감정이 밀려오고 저의 마음속에 풍파가 일어납니다. 저를 도와주십시오! 주님! 나의 마음대로 하고 싶은 욕망과 내 뜻대로 하고 싶은 고집을 주님께 지금 바칩니다. 주님의 뜻대로만 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내게 주십시오!
이렇게 우리가 말씀만으로 살고자 하늘의 도우심을 구할 때, 도움을 요청하는 응급 기도를 드릴 때, 하늘에서 초자연적인 능력이 임하여 우리로 시험과 유혹과 감정을 이기게 한다. 즉, 우리의 의지를 예수 그리스도의 의지에 복종시킬 때, 그분은 즉시 우리의 의지를 취하여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뜻으로 대치시키시고, 말씀대로 행할 수 있도록 우리 속에서 역사하시고 힘을 주시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본성은 성령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고, 그렇게 되면 우리의 감정과 느낌과 생각조차도 그분께 복종하게 되어 유혹과 죄를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감정대로 살지 않고 말씀대로만 산다는 것은 바로 이렇게 하는 것이다.
죄를 승리하는 생애, 감정과 느낌과 정욕에 승리하는 생애는 연약하고 요동하는 인간의 의지를 전능하고 확고한 하나님의 의지에 결합시키는 모든 사람에게 가능한 것이다. 덧붙여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하고 실천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편을 택하는 우리의 선택은 끊임없이 지속되어야 하며, 도움을 구하는 기도는 한 번뿐만 아니라 일어난 감정이 사라질 때까지, 유혹을 이길 수 있을 때까지 쉬지 않고 여러 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일이 매일 매 순간 유지될 때, 우리의 생애는 그리스도의 생애를 그대로 모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신앙: 4부 - 말씀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약속
1) 말씀을 붙잡는 것이란?
죄의 유혹과 감정들을 이기고 대신 말씀을 붙잡고 승리하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펴야 한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말씀 속에 승리를 위한 모든 능력을 약속해 놓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성경을 상고하고 말씀을 암송하여 유혹이 오고 감정이 올라올 때에 그 말씀을 기억하고 그대로 따르므로 승리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그리스도의 생명은 바로 그분의 말씀 가운데 있다. 예수께서 질병을 고치시고 마귀를 내어쫓으신 것은 말씀으로 하신 것이었으며, 또 말씀으로 바다를 잔잔하게 하시고 죽은 자를 일으키셨다. 온 성경은 그리스도를 나타낸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이 그들의 믿음을 말씀 위에 고정하기를 원하신다. 예수님처럼 그들도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기를 원하신다(마 4:4).
우리 육체의 생명이 음식에 의하여 유지되는 것처럼 영적 생명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유지된다. 사람마다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생명을 얻어야 한다. 영양분을 위하여 스스로 먹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우리도 그 말씀을 우리 각자를 위하여 받지 않으면 안 된다.
단지 다른 사람의 지식을 중개로 하여 말씀을 얻어서는 안 되며,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하여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깊은 주의를 가지고 성경을 연구해야 하고, 한 구절씩을 취할 뿐 아니라 문맥 속에 포함되어 있는 사상을 확인하는 일에 정신을 집중시켜야 한다. 그리하여 그 사상이 우리의 것이 되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알게 될 때까지 그 말씀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이렇게 진리의 원칙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소화시킬 때에 그 원칙은 우리 자신의 일부가 되고 생명의 원동력이 된다.
심령에 받아들인 하나님의 말씀은 사상을 형성하고 품성을 발달시킨다. 이 말씀은 우리의 본성적이며 땅에 속한 성정을 멸하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 생명을 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말씀을 붙들고 말씀으로만 살아야 한다. 성령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심령에 임하신다.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은혜의 작용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이 말씀을 붙드는 사람 안에서 재창조되고 그 사람은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이다. 이것이 곧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을 먹는다는 것이다.
2) 말씀에 나타난 약속들
여러 가지 다른 환경이나 난처한 상황을 만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그 약속을 마음에 새기며 주님의 뜻대로 전진해야 한다. 여러 가지 감정에 휩싸이게 될 때, 또 유혹과 부정적인 감정으로 마음이 흔들릴 때, 육신의 감정이 자신의 원하는 바를 관철하기 위해 치밀어 올라올 때, 분노와 격정이 마음을 휘몰아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들어 있는 약속들을 헤아리며, 또 그 말씀들을 암송하며 이겨내야 할 것이다.다음의 성경 절들은 우리에게 용기를 주는 은혜로운 성경 구절들이다. 기억해 놓도록 하자.
시련과 고난을 당할 때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전 10:13)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약 1:2~3)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히 12:5~10)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시 119:67)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 119:71)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약 1:12)
낙심이 들어올 때
너는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시 27:14)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시 42:5)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렘 29:11)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시 12:2~3)
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애 3:21~23).
슬픔과 외로움이 밀려올 때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사 49:14~15)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시 46:10)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고후 1: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 5:4)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20)
근심 걱정으로 마음이 눌릴 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시 55:22)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시 68:19)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벧전 5:7)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마 6:25~27)
신앙: 5부 - 유혹과 싸웠던 사람 요셉과의 가상 인터뷰
생애의 빛 편집인 : 먼저 요셉님의 경험을 독자들과 이렇게 나누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성경 역사에서 당신은 유혹을 이기고 하나님께 충성한 믿음의 조상으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데요. 당신이 이루신 승리의 경험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시기 바랍니다.먼저, 형제들에 의해 팔려 갈 때에 일어났던 감정의 변화와 승리의 경험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요셉 : 네, 마치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이 나의 일생은 누구보다도 격렬한 시련과 고난 그리고 영욕으로 점철된 삶이었습니다. 형제들로부터 그렇게 철저하게 미움을 받은 사람이 나 말고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형제들의 증오와 배반으로 그렇게 처참하게 노예로 타국에 팔려 간 사람이 나 말고 또 있겠습니까?
이집트로 팔려 가던 그날의 비극적인 경험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약대에 실려 상인들을 따라 점점 남쪽으로 갈 때, 멀리 아버지의 장막 주위에 있는 산들이 보였습니다. 멀어져 가는 고향의 산들을 바라보며 나는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싸여 울었습니다.나에게 사나운 눈초리를 던지며 나의 애원을 무시하던 성난 형제들의 모습, 나를 상인에게 팔아넘기던 그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몸부림치며 애걸할 때 나를 향해 쏘는 듯이 뱉어 놓던 모욕적인 말들이 귀에 쟁쟁하게 울리는 듯 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나에게 일어났고, 그것이 나의 형제들에 의해서 저질러진 일들이기 때문에 더 기가 막히고 슬펐습니다.
원망과 분노의 감정, 기막힌 운명을 한탄하고 싶은 감정들이 몰려왔고, 자포자기하는 부정적인 마음과 하나님께 불평하고 싶은 감정이 마음속에서 막 치밀어 오르던 그때, 흔들리는 낙타 등 위에서 나는 나의 아버지 야곱의 하나님을 생각해 내었습니다. 어린 시절에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아버지 야곱이 방황하던 때의 이야기, 곧 집으로부터 도망해 나와서 쓸쓸한 들판에서 잠자던 밤에 꿈속에서 계시해 주셨던 여호와의 사다리와 아버지 야곱을 버리지 않고 인도하셨던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해 내었습니다. 위급하고 필요할 때 항상 아버지 야곱을 도우셨던 하나님을 생각하자 갑자기 마음에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한테서 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자 마음에 용기가 솟아오르게 되었습니다.
아! 나는 혼자가 아니다! 아버지 야곱과 함께하셨던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 약한 마음으로 자꾸 슬퍼하며 울지 말고 아버지에게서 배운 대로 하나님을 신뢰하며 굳센 믿음으로 살아가자! 외롭고 어두운 감정을 날려 보내고, 어릴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배웠던 모든 귀한 교훈들을 생각하고 붙잡으며, 나의 조상들을 인도하신 하나님이 이제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낯선 상인을 따라 흔들거리며 가는 그 머나먼 여행길 동안 나는 내내 마음속으로 기도를 드리며 하나님을 믿음으로 붙잡았습니다. 그러자, 외로운 몸으로 가는 낯선 땅에서 펼쳐질 앞으로의 운명에 대해서 슬퍼하고 두려워하던 마음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에 그렇게 가혹하게 보이던 하나님의 섭리는, 다른 방법으로는 여러 해를 걸쳐서도 배울 수 없었을 교훈을 나로 하여금 몇 시간 안에 배우게 했습니다. 낙타를 타고 가면서 나는 난생 처음 여호와 하나님께 나 자신을 완전히 헌신했고, 이스라엘의 수호자 되신 하나님께서 내가 가는 땅에서도 나와 함께 계시기를 기도하였습니다. 또한, 어떤 환경에 처하더라도 하늘 왕의 백성답게 행동하여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리라는 굳센 결심을 하였습니다. 더 이상 무섭거나 슬프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내 일생에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그 일은 하나님의 섭리로 인해 생긴 일이니,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내 운명의 시련을 인내로 감당하며 매일의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고자 결심하였습니다.
그 하루의 경험은 내 생애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 무서운 사건이 그날 나를 응석 부리는 아이에서 용감한 어른으로 변화시켰고, 육신에서 올라오던 낙망과 낙심과 슬픔과 원망의 감정을 넘어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게 했던 것입니다.
생애의 빛 편집인 : 네, 감사합니다. 애굽에서의 경험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십시오. 애굽 생활도 쉽지 않았겠고, 그곳에서 여러 가지 어려운 시험과 유혹에 당면하셨을 텐데, 그 시험에 승리한 경험에 대해 좀 나누어 주시겠습니까?
요셉 : 네, 내가 도착하여 팔려간 곳은 애굽 왕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이었습니다. 그 집에서 10년이란 긴 세월 동안 온갖 일을 다하며 주인을 섬겼습니다. 그곳의 환경은 우상을 숭배하는 일이 성행하고 이방의 음란한 풍습들이 자리 잡은 환경이었습니다.처음 보는 것들과 접하는 일들은 낯설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는데, 매일의 생활은 주위에 널려 있는 죄악적인 일들과 유혹과 싸우는 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당시 우상 숭배와 거짓 신의 숭배는 애굽 국가에서 최고의 예배 행위로 간주되고 있었으며, 왕족들로부터 궁정의 모든 사치와 함께 최고의 문명국이었던 애굽 나라의 부와 문화의 지원을 받고 있었습니다. 화려하고 휘황찬란한 주위의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숱한 죄악들로 둘러싸였지만, 나는 마치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사람처럼 생애 하였습니다. 내 생각은 금지된 문제들의 주변에서 머뭇거리지 않았고, 애굽인들의 환심을 사려는 욕망으로 나의 원칙을 감추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늘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의 말씀과 명령대로 살기로 매일 결심하였으며, 나의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께 두었습니다. 단 한 순간이라도 감정에 쏠렸더라면 나는 여러 가지 유혹에 빠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조상들의 종교를 부끄럽게 여기지도 않았고 내가 여호와를 경배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숨기려고 애쓰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나의 결심과 하나님께 대한 충성심을 지켜나갔습니다.
그런 나에 대한 주인 보디발의 신임은 날이 갈수록 두터워져 마침내 그는 나를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주관하는 가정 총무로 삼았습니다. 나의 노력과 보살핌과 정력에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셔서 그 주인집의 모든 일이 점점 잘 되고 집안이 번영하게 되자, 우상을 숭배하는 주인까지도 하나님의 축복이 자기 집 번영의 비결이라고 인정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나의 성실함을 높이 산 시위대장은 나를 노예보다는 오히려 아들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회에서 왕족들과 지위가 높은 사람들, 또 박식한 사람들과 접촉하게 되어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도 가졌습니다.그곳에서의 생활이 점점 자리가 잡혀갈 즈음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충성을 다시 한 번 검증받는 시험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어떤 시험보다 어려웠던 시험이 어느 날 이르러왔는데, 그 유혹은 나에게 참으로 많은 갈등을 일으켰습니다. 사심을 가지고 나에게 친절과 관심으로 대해 주던 주인 아내의 유혹과 요구는 거절하기가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이교도의 나라인 애굽에 범람하는 부패한 문화와 습관들에 오염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살아왔지만, 혈기가 왕성한 젊은이로서 매우 돌발적이고 강하게 매혹적으로 다가오는 그 시험은 대항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 여자는 모든 분위기와 음악과 환경을 유혹적인 것으로 준비해 놓아 저돌적으로 뻗쳐 오는 그 유혹을 견디기 어렵게 부추겨 놓았으며, 더구나 그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저항하는 결과가 어떻게 되리라는 것은 뻔한 일이라는 것을 아는 나였기 때문에 그 시험은 더 치열하게 느껴졌습니다.
한편에는 은폐와 총애와 보상이 있고, 다른 편에는 수치와 투옥과 죽음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내 장래의 전 생애가 일순간의 결정에 달렸었습니다. 감정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과 원칙을 어길 것인가, 아니면 육신의 끓어오르는 감정과 유혹을 부인하고 여전히 하나님께 충실할 것인가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 나의 마음은 마치 저울에 달린 추가 떨리듯이 떨렸습니다.
그러나 나는 늘 해 오던 삶의 원칙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기로 결정했습니다. 내 입에서 나온 말은,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였습니다. 나는 지상에 있는 주인에 대한 신의를 배반하고 싶지 않았고, 결과가 어떻게 되든지 하늘에 계신 나의 주인이신 하나님께도 참되게 행하기를 원하였습니다. 나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천사들을 보는 듯이 행하고 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위를 보시고, 우리가 하는 말을 들으시며, 우리의 언행에 대한 세세한 기록을 보존하고 계시다는 사실과 우리가 그 모든 기록을 장래에 다 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고 산다면, 우리는 유혹에 굴복하여 범죄하기를 두려워할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 곳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항상 하나님 앞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여야 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동 중 어느 하나도 보지 못하시는 것이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의 모든 동기가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 펼쳐져 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성실함 때문에 고생을 당했고, 유혹하던 그 여자가 더러운 죄목을 씌워 고소함으로 인해 감옥에 갇히게 되는 일을 당하였지만, 오히려 유혹에 저항함으로 하나님께 충성하였다는 기쁨으로 마음이 편했습니다. 만일 주인 보디발이 나에 대해 그의 아내가 한 고소를 그대로 믿었다면, 아마 나는 벌써 생명을 잃었을 것이지만 감옥으로 보냈다는 것은 내가 무죄하다는 하나의 증거였습니다.
또 감옥에서 지냈던 적지 않은 세월 동안 하나님을 원망하고 내 생을 한탄하고 싶은 감정과 유혹에 직면할 때가 많았고 비탄과 불만에 빠져 나의 삶을 어두운 비관과 한숨 섞인 불평의 말과 시간으로 채우고 싶은 유혹들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럴 때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말씀을 붙잡았으며,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그 모든 것들을 참고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매우 영화로운 직책과 결과들을 보상으로 주셨습니다.
기적처럼 꿈을 통해 애굽의 총리대신이 된 일, 하나님의 은혜로 형제들을 용서하고 가족들을 기근에서 살리게 된 일, 그립던 아버지를 만난 일, 모두 나에게는 기쁨과 감격의 순간들이었고, 유혹과 고난과 시련을 견딘 후에 받은 하나님의 선물과 보상이었습니다. 내 인생의 모든 경험을 되돌아보면, 그 당시는 매우 힘들게 보였던 모든 사건들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진 일들이라는 것이 너무 확실하고, 나를 인도하시고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이 충만합니다.
생애의 빛 편집인 : 당신이 이루신 승리의 경험이 독자들에게 큰 용기를 주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나누신 경험들이 우리에게 좋은 모본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과 그분 말씀의 원칙을 붙잡고 유혹과 감정과 죄를 승리하는 사람들이 되도록 열심히 기도하며 노력하겠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신앙: 6부 - 한때 낙심에 빠졌던 개혁자 엘리야와의 대담
생애의 빛 편집인: 엘리야 선지자님! 당신은 성경에서 위대한 개혁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명령을 확실한 믿음으로 행동했던 개혁의 이야기를 좀 들려 주십시오!
엘리야: 갈멜 산에서 이방 선지자들과 이세벨과의 대전을 익히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하나님이 참 신이시라는 혁혁한 증거가 갈멜 산을 가득 메운 백성에게 증거된 후, 바알을 섬기던 선지자들을 모두 죽임으로 이스라엘 나라에 힘찬 영적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그날, 백성은 죄를 자복하고 그들 조상의 하나님을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 인정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아합 왕과 백성은 이제 기근이 물러가고 비가 올 것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확연했습니다.
사실, 내가 확신 있게 아합 왕에게 큰 비의 소리가 있나이다 라고 말했지만, 소나기가 내리려는 어떤 외적인 증거가 있거나 보였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고, 우렛소리도 들리지 않았지요. 그러나 그것은 나의 육신적인 감정을 넘어, 하나님의 성령께서 나를 감동시켜서 말하게 하신 것을 말했을 뿐이었습니다.
나는 그날 온종일 하나님의 뜻을 확고하게 수행하였고,이제 나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행하였으므로, 하나님의 비를 풍족히 내려 주시겠다는 약속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거듭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종을 보내어 눈에 보이는 증거가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였습니다.
종이 돌아와서 아무것도 없나이다. 라고 말할 때마다 초조해지려는 유혹을 받았으나, 나는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들었고 오히려 더 열렬히 탄원하기를 계속하였습니다. 일곱 번째 드디어 나의 종은 돌아와서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 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이것으로 넉넉하였습니다. 나는 급히 종을 아합에게 보내어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라는 기별을 전하였습니다.
인간의 감정대로 하자면, 두려움과 의심과 걱정에 둘러싸이게 되는 일들이었지만, 나는 감정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의 약속을 굳게 붙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믿음은 하나님께 응답을 받았던 것입니다. 눈을 뜰 수 없이 세차게 내리는 빗속을 뚫고 왕의 마차 앞을 달려서 왕을 성문으로 인도하던 그날의 기쁨은 결코 잊을 수 없이 감격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생애의 빛 편집인: 좋은 경험의 말씀 감사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하나님 말씀의 약속을 굳게 붙잡고 승리할 때까지 그 약속을 놓지 않는 신앙이 정말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어 보면 그 위대하던 개혁 뒤에 잠깐 인간의 연약한 감정에 빠졌던 때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때의 경험을 좀 나누어 주시겠습니까?
엘리야: 아, 그때의 경험 말입니까? 아마 그 경험은 독자들에게 많은 용기를 주는 이야기가 될 것 같군요.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연약한 인간들이므로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붙들어 주지 않으면 금방 실족할 수 있다는 증거가 되는 이야기니까요.
갈멜 산에서 일어난 놀라운 사건들과 여호와께서 참 하나님이시라는 것이 밝혀진 사실, 그리고 아합이 바알의 선지자들을 모두 죽인 일에 대하여 들은, 회개할 줄 모르는 이세벨은 격분하였지요. 그 밤에 한 사자가 종일 여러 가지 사건을 겪고 피곤함에 지쳐 잠든 나를 깨우면서 기별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 기별은 다름이 아니고 이세벨이 이렇게 말하며 나의 생명을 찾고 있다는 기별이었습니다. 선잠에서 깨어 그 기별을 듣는 순간, 혼자 일을 수행하느라고 정신적으로 지치고 외롭고 피곤했던 나는 감정을 가다듬을 시간이 없이 급격한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그날 갈멜 산에서 그처럼 대담한 용기로 혼자서 왕과 사제들과 백성 앞에서 완전하게 승리를 거둔 나였지만, 그리고 그처럼 현저한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스러운 돌보심의 증거로 축복을 받았던 나였지만, 역시 나는 연약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놀라 당황한 나머지 선잠에서 깨어 서둘러 도망을 갔습니다.
하늘에서는 비가 쏟아지고 사방은 어두웠습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줄행랑을 치는 나는, 삼 년 전에 하나님께서 이세벨의 증오와 아합 왕의 수색에서 피할 장소를 친히 지시하여 주시고 보호하여 주셨던 사실도 잊은 채, 하나님께 도움을 구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목숨을 부지하려고 황급히 도망을 쳤습니다.사실, 나는 내가 맡은 의무의 자리에서 도망하지 말아야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을 옹호하도록 사명을 맡겨 주신 하나님께 나를 보호해 주시기를 호소하면서 이세벨의 위협을 직면하여야 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그다음에 어떻게 역사하셔서 그 일을 마치실지 기다리지 않고 성급한 마음이 앞섰던 것입니다. 사실 갈멜 산 꼭대기에서 온종일 음식도 먹지 못하고 신경을 많이 쓰고 마지막 신체적인 힘을 다하여 아합 왕의 마차를 인도한 후, 나는 육체적으로 많이 지쳐 있고 과로했었습니다. 그래서 사사로운 감정에 빠져서 나 자신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때, 항상 높은 신앙과 영광스러운 성공에 흔히 뒤따라오는 그런 반작용이 나에게도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나는 갈멜 산 위에서 시작된 개혁이 중단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로 의기소침하여졌고, 이세벨이 아직도 혈기가 왕성하여 회개하지 않고 권세를 휘두르는 것을 보고 실망하였던 것입니다.그것은 정말 인간적인 감정이었지요.
마음이 조용하게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감을 받고 있을 때에는 혹독한 신앙의 시련을 견딜 수 있었지만, 피곤에 지치고 지나친 염려로 소진하고 번거로워진 마음으로 있을 때, 귀에 들리는 이세벨의 위협과 이 악한 여인의 음모를 통해 나타나는 사단의 계속적인 영향력으로 인해 실망한 나머지 나는그때 하나님을 의지하는 데 실패하였던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계속 도망하여 마침내 아무도 없는 쓸쓸한 광야에 오게 되었고, 녹초가 되어서 로뎀나무 아래 쉬려고 주저앉았습니다. 그리고는 하늘을 향하여 죽기를 간구하였습니다.나는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쓸쓸한 도망자가 되어 무서운 절망으로 말미암아 정신이 꺾인 채, 나는 완전히 기진맥진하여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생애의 빛 편집인: 낙심의 감정이 몰려오고 인간적인 연약함으로 인해 하나님을 의지하는 일에 실패하기 쉬운 때에, 어떻게 하면 그것을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는지, 그리고 절망 가운데 느낀 하나님은 어떤 분이셨는지, 엘리야 선지자님의 경험을 통하여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엘리야: 네. 모든 사람의 경험 가운데는 통렬한 실망과 철저한 낙담의 때와 슬픈 운명에 처하여 하나님이 그분의 자녀를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운 날들, 고통이 마음을 눌러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나은 것처럼 느껴지는 날들이 이르러 옵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잃어버리고, 의심의 노예가 되고, 불신의 속박에 얽매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런 때에 영적 통찰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섭리가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럴 때 느껴지는 감정을 뛰어넘어 우리를 보호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다면, 그리고 말씀에 나타난 약속들을 주장한다면, 우리는 이런 감정과 환경과 분위기를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처럼 불안한 예감이나 심한 절망적인 감정에 빠지고 싶은 시험을 당해 본 일이 있으십니까? 가장 암담한 날, 형세가 가장 험악한 것처럼 보일 때에도 무서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십시오.내가 경험해 보고 겪어 본 하나님은 정말 좋으시고 신뢰할 만한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시련의 때에 버리셨던가요? 그렇지 않습니다.나 자신이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느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하늘로부터 불을 보내어 갈멜 산 꼭대기를 비추던 때와 똑같이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잠자고 있던 나에게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지고 나를 깨우는 상냥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순간 나는 원수가 나를 발견하지나 않았나 하는 두려움으로 깜짝 놀라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눈을 뜨자, 나를 굽어보는 동정 어린 얼굴은 원수의 얼굴이 아니라 천사의 얼굴이었습니다.하나님께서는 나를 잊지 않으시고 음식을 가진 천사를 하늘로부터 보내셨던 것입니다.
천사는 일어나서 먹으라. 고 말하였습니다. 나는 준비된 음식을 먹은 후 다시 잠에 빠졌습니다. 두 번째 천사가 와서 피로에 지친 나를 깨워 친절한 말로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하였습니다.그 식물의 힘으로 나는 사십 주 사십 야 를 여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 에 이르러 그곳 한 굴속에서 피난처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그러나 피로에 지치고 실망한 나를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굴 입구에서 만나시려고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오셔서 물으셨습니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나는 너를 그릿 시내로 보냈고 그 후에는 사렙다 과부에게 보냈다. 나는 네가 이스라엘로 돌아가 갈멜 산에서 우상 숭배자의 사제들 앞에 서도록 명하였다. 나는 너를 능력으로 띠 띄워 왕의 마차를 이스라엘 성문으로 인도하게 하였다. 그런데 누가 너를 이처럼 급히 광야로 도망하게 하였느냐?너는 무슨 사명을 띠고 여기에 와 있느냐? 비탄에 빠져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나는 입에서 불평 아닌 불평을 발했습니다.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 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왕상 19:10) 그러자 천사는 나를 굴 밖으로 불러내어 산 위에 올라가 여호와 앞에 서서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고 명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왕상 19:11~12).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주 조용한 가운데 세미한 소리 가운데 계셨습니다. 여호와의 계시를 기다리는 동안 폭풍이 휘몰아치고 번갯불이 번쩍이고 삼키는 불이 휩쓸고 지나갔으나 그 모든 것 가운데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침착한 가운데, 인간의 소란스럽고 고조된 감정이 가라앉은 후에야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리는 법입니다. 이제 나의 급한 성미는 가라앉고, 정신은 부드러워졌습니다.
나는 비로소 하나님을 조용히 신뢰하고 굳게 의지하면 이 어려운 때에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것을 침착하게 그리고 더 자세하게 깨달았던 것입니다. 또한, 나는 이스라엘 땅에서 나 혼자만이 참 하나님을 섬기는 자라고 생각하였지요. 그러나 모든 사람의 마음을 환히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오랜 배도의 세월을 통하여 하나님께 충성스럽게 남아 있는 7천이나 되는 많은 사람이 있다는 것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낙담과 표면상으로 패배한 것처럼 보이는 날 동안에 겪은 나의 경험으로부터 독자 여러분이 배울 귀중한 교훈이 있습니다. 고통스러운 환경 아래서 견딜 수 없을 정도의 압박을 받아 실망하고 낙담하게 되거나, 또 아무런 삶의 보람이 없는 것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는 나를 기억하십시오! 성경에 위대한 개혁자와 선지자로 기록된 나였지만, 격노한 여인의 분노 앞에서 두려워하여 잠깐 하나님의 능력을 잊어버리고 도망했던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나 피로하고 지치고 쓰라린 실망으로 죽기를 구하였던 나는, 바로 희망이 사라지고 사업이 실패한 것처럼 보이던 그때에 가장 귀중한 교훈을 배웠다는 것을.
나는 가장 쇠약한 때에 극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의지할 필요와 가능성을 배웠고, 인간적인 감정 대신 하나님을 붙잡아야 한다는 것을 철저하게 배웠던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가장 어려울 때, 나의 곁에 가장 가까이 계셔 주셨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경험을 지나 다시 믿음과 영적인 힘을 회복하게 하시고, 마침내 더 영광스러운 보상으로 나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좋으신 하나님이신지요! 늘 그 하나님을 기억하고 승리하십시오! 감사합니다.
마치면서
하나님의 남은 무리인 마지막 성도로서 우리는 승리하는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곧, 육신에서 올라오는 감정과 느낌들을 배제하며, 그것에 영향을 받지 않고, 그 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주님의 뜻대로 나아가는 연습을 철저하게 하여 죄를 승리하는 법을 터득해야 합니다. 사단이 맹렬한 시험을 가지고 영혼을 공격할 때는 그 영혼이 가장 약할 때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의지력이 약해지고 믿음이 결핍될 때에 오랫동안 의를 위하여 담대히 섰던 사람들이 유혹에 굴복했던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아합 앞에 담대히 섰으며, 갈멜 산에서 대결이 있던 날 종일 온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참 하나님의 유일한 증인으로 섰던 엘리야도 한순간의 피로로 인한 죽음의 공포가 하나님께 대한 그의 신앙을 정복하도록 허락하였습니다.
오늘날에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의심에 싸이고 고통스러운 환경에 처하거나 인간적인 감정으로 가장 약해 있을 때에 사단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신뢰심을 흔들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우리들의 과오를 들추어 내고 나열하여 하나님을 불신하고 그분의 사랑을 의심하도록 유혹하고, 우리의 영혼을 낙심하게 하여 우리의 신앙을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럴 때에 영적인 식별력을 활용하며, 감정이나 느낌에 휩쓸리지 않고 굳센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붙들고 전진해야 합니다.
독자들이시여! 유혹이 올 때에 하나님께 매달리십시오! 그리고 계속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감정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그분께서 설계하신 섭리의 길을 믿음으로 가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죄와 싸우는 그분의 모든 자녀를 붙드실 만큼 강하십니다. 인간 자신의 힘은 무력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음으로 모든 감정과 죄는 정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께서 위하여 죽으신 자들을 절대 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선악 간에 진행되는 영적인 전투의 결과는 우리가 감정의 편을 따라가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느냐 하는 것에 따라 좌우되며, 그 전투의 결과에 우리의 영원한 운명이 달려 있습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에 승리하는 독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질문과 답변: 구원의 위조지폐를 아시나요?
많은 사람들의 신앙생활이 전진하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는데, 그 이유는 구원에 관한 두 가지 중요한 면들이 올바르고 균형 있게 활용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믿음과 행함은 서로가 부딪치거나 투쟁하는 것이 아니며, 서로가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협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믿음은 항상 순종이라는 선한 행위를 생산해 낸다. 성경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 (약 2:26)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성경에서, 우리는 세 가지 믿음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사단이 가지고 있는 믿음인데, 사도 야고보는 그러한 믿음은 행함이 전혀 없는 믿음이라고 분명하게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 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 것인줄 알고자 하느냐? (약 2:19~20)야고보가 지적인 동의나 정신적인 동의에 불과한 믿음을 귀신의 믿음으로 묘사하였던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두 번째 종류의 믿음은 행함이 있지만, 잘못된 동기와 목적을 근거로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신호등이 있는 네거리에서 정지 신호를 보고 있는 운전사의 예를 통하여 두 번째 부류의 믿음을 설명할 수 있다. 한 사람이 자동차를 정지시켰다. 그가 왜 자동차를 정지시켰는가? 다른 편에서 달려오고 있는 자동차와 충돌하여 죽는 것이 무서워서 정지하였는가? 아니면, 교통 경찰관이 자신에게 법규 위반 티켓을 줄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정지하였는가?이러한 종류의 믿음은 하나님께 가납될 수 없는데, 왜냐하면 그러한 행위들은 두려움에 근거해서 나오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두려움에 근거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그들의 신앙은 마치 불을 피해 도망가는 것과 같다. 그들은 자신들이 걷고 있는 길의 끝에 불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들은 그 불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선한 사람들이 하는 선한 행위를 하기 위해서 애를 쓴다.그러나 이러한 부류의 믿음은 율법주의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세 번째 믿음에 대해서 살펴보자. 세 번째 믿음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유일한 믿음인데, 그 믿음은 갈라디아서 5장 6절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에 일치하는 모든 순종의 행위가 사랑에 그 근거와 동기를 두고 이루어질 때에 그것은 참된 믿음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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