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용서와 도말의 차이
"죄의 용서"와 "죄의 도말"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죄의 용서는 매일 드리는 제사라고 할 수 있으며, 죄의 도말은 매년 드리는 제사라고 할 수 있는데, 죄의 용서는 일 년 내내 성소의 봉사에서 매일 반복되는 일이며, 죄의 도말은 대속죄일에 한 번 단행하는 최종적인 죄의 용서를 말하는 것이다.
그것을 실제적인 우리의 경험에서 살펴보면, 죄의 용서란 우리가 평상시에 짓는 죄를 회개할 때에 하나님께서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고 우리의 이름 밑에 "용서받았음"이라고 기록을 해 두시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심사하는 심판을 거쳐서 우리의 진실함과 계명을 지키는 성품이 드러나기까지는 우리 죄의 기록을 아직 완전히 지우시지는 않고 기록 책에 남겨두시되, 우리의 진실한 회개를 보시고 그 당시 당시마다 지은 그 죄 자체를 계속 용서해 가시는 것을 매일의 용서라고 말한다. 매일의 용서도 분명한 용서이다. 그러나 그 죄인의 속마음이 아직 인 쳐지기까지 확정된 것은 아니다.
우리가 받은 죄의 용서는 우리의 태도와 마음을 죄를 회개했던 때와 똑같이 유지하여, 심판 날에 설 때에도 변함이 없을 때에 확정 지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변함없이 죄를 용서받고 싶은 똑 같은 진실한 마음과 동기가 있으면 결국 우리가 받아 온 그 용서들은 영원히 우리의 것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시지만, 우리 인간 편에 문제가 있으므로 마음이 변하여 다시 회개하기 이전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멸망의 길을 택할 수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의 완전한 도말, 다시 말해서 기록 책에서 우리의 죄를 영원히 삭제해 버리시는 일을 최종 조사심판날인 대속죄일까지 미루시는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대속죄일을 "인침 받는 날" 또는 "심판의 날" 혹은 "죄가 도말 되는 날"이라고 불렀다.
진심으로 죄를 회개하고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피를 그들의 속죄 제물로 주장한 사람들에게는 하늘 책에 기록된 저들의 이름 아래 용서받았다는 말이 기록된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의에 참여하는 자가 되고 그들의 성품이 하나님의 율법과 조화된다는 것이 나타날 때, 그들의 죄는 도말 되고 그들 자신이 영원한 생명을 받기에 합당한 사람들이 될 것이다.
조사심판과 죄의 도말은 주님의 재림보다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죽은 자들은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아야 하므로 그들의 사건이 심리되는 살피는 심판이 마치기 전에는 그들의 죄가 도말 될 수 없다. 사도 베드로는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사도행전 3:19,20)라고 말함으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기 전에, 믿는 사람들의 죄가 도말 될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이 대속죄일의 심판이 마치면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이다. 주님께서 죄인들을 용서해 주시기 위해서 오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그들의 행위대로 갚아 주시기 위하여 오시는 것이다.
2. 죄의 도말은 언제 이루어지는가?
이제는 우리가 두 번째의 질문으로 들어갈 준비가 된 것 같다. 그러면 우리의 죄가 언제 도말 되는 가?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주님께 고백할 때에 즉시로 우리의 죄가 도말 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고, 어떤 이들은 우리가 죄를 다 자복하고 버린 후에 성령께서 하나씩 하나씩 모르던 죄를 보여주실 때 우리가 그 죄들을 하나씩 하나씩 승리해 나아갈 때에 죄가 순서대로 도말 되어 나가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들은 다 성경적이 아니다. 조금 전에 살펴본 것처럼 죄의 도말은 마지막에 가서 심판 후 한 번에 단행되는 죄의 기록을 삭제하시는 역사인 것이다.
오순절에 성령의 능력으로 설교한 사도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죄의 도말의 때를 설명하여 주고 있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영어로는 죄의 도말-Blotting Out ~ 필자 주)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사도행전 3:19,20). 베드로의 설명은 우리가 회개하고 거듭나서 악에서 떠나면 죄 도말의 경험이 우리에게 이르러 온다는 조건을 말하면서, 그 시기는 주 앞으로부터 이르러 오는 유쾌하게 되는 날에 일어날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주 앞으로부터 이르러 오는 유쾌하게 되는 날이 언제인가?
마지막 시대에 위대한 복음의 사업을 통하여 익은 열매들이 추수될 것인데, 그 성령의 역사를 늦은 비 성령의 역사라고 부른다(요한계시록 18:1 참조). 오순절에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이른 비 성령이 내림으로 복음의 씨앗이 뿌려졌던 것처럼, 마지막 시대에도 늦은 비 성령이 크게 임하심으로 추수사업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농사에 있어서 씨앗을 뿌리고 발아할 때에는 이른 비가 내리고 추수 때에는 늦은 비가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그때, 사도 베드로가 기대했던 “유쾌하게 되는 날”이 이를 것이다. 유쾌한 날을 영어로는 "The Times of Refreshing"이라고 번역하였는데, 그것은 작물이 열매를 맺어 추수되는 시기, 농부들이 기뻐하는 시기를 말한다. 예수님의 부활 승천 이후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는 시기에는 이른 비로써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있었던 것처럼, 말세에는 주 앞으로부터 이르러 오는 유쾌하게 되는 날, 즉 마지막 복음의 열매를 추수하는 늦은 비 성령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는 말씀이다.
"유쾌하게 되는 날"을 영어로 번역한 "The Times of Refreshing"의 또 다른 의미는, "다시 새롭게 되는 때"로써, 우리 인류가 타락하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간다는 뜻으로도 볼 수가 있다. 다시 온전하게 회복된 기능과 용량을 가지고 하나님을 제대로 경배하며, 구원의 즐거움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상태로 다시 새롭게 되돌아간다는 뜻을 내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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