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류성 인후두염
나에게는 일을 미루다 꼭 해야만 하는 마지막 순간에야 일하는 습관이 있다. 일이 맡겨지면 나름대로 일을 처리하는데 소요 시간을 계산한다. 그리고 일을 완료해야 하는 시점까지 딱 소요 시간만큼 남았을 때 일을 시작한다. 시간이 많이 주어지면 여유롭게 일을 시작해도 되련만 아직 시간이 좀 남아 있다고 생각하면서 미룬다. 그러다 보니 실수하기가 십상이다. 모든 일이 계획된 시간 안에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수하면 다음번엔 여유롭게 시간을 잡고 일 처리 하면 좋겠는데 이상하게도 일을 미루는 습관은 여전하다.
평생 나를 괴롭히는 병이 있다. 역류성 인후두염이다. 항상 인후두에 가래가 낀 듯 답답하여 목청소 할 양으로 “흠-흠”하는 습관성 헛기침 버릇이 생겼다. 더구나 감기가 동반되면 누런 가래가 목에 껴서 가래를 뱉어내느라 기침을 심하게 한다. 병원을 여러 군데 다니며 진료를 해본 결과 대부분 특별한 이상이 없다고 한다. 알레르기 비염 때문에 가래가 자주 껴서 불편한 것이라며 며칠 분의 약만 처방해 줬다. 하지만 수십 년에 거친 헛기침 버릇은 사회생활에 상당한 불편을 겪는다. 공연장이나 극장에 갈 때면 헛기침이 나올까 노심초사한다. 참던 헛기침이 나오면 옆 사람 눈치 살피기에 여념이 없다.
평소 친분이 있는 신제주이비인후과를 찾아 원장님께 말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헛기침하는 병을 치료해 주세요.”
원장님과 증세에 대하여 자세히 이야기를 나눴고 목 안쪽과 식도를 내시경으로 보시더니, ‘인후두위산역류질환’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단기간에 낫는 병이 아니란다. 낫지 않고 평생 관리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한다. 위 속에 있는 내용물의 역류를 일으키는 원인 물질인 위산의 분비를 강하게 억제하는 약물을 2~3개월 이상 장기 투여해야 하며,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바람직한 식생활 습관을 병행해야 한다고 한다. 취침 3시간 전부터는 음식 섭취를 자제해야 하며 기름기가 많은 음식, 술, 담배, 커피, 탄산음료 등 식도와 위장을 연결하는 괄약근을 약하게 하는 음식도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생을 교사라는 직업 때문에 하루 대여섯 시간은 목을 사용해야만 했다. 더군다나 과거에는 주로 분필로 칠판 수업을 주로 했기 때문에 흩날리며 호흡기로 들어간 분필 가루도 위산 역류질환에 원인이 되었던 것 같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증세가 퇴직하고 나서 더 심해진 것이다. 잠자다가도 밤중에 목에 이물감이 있는 것처럼 답답하여 잠을 깨고 헛기침하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이제야 수십 년 동안 고질화되어 버린 병세를 치료하자니 여러 가지로 불편하다. 오래전에 병원을 찾아 치료했더라면 하는 후회가 앞선다. 특히, 그토록 좋아하던 커피를 자제해야 하니 삶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무엇이든 문제가 발생하면 초기에 해결하는 것이 상책이다. 조금씩 미루다가 문제가 커지면 해결하는데 상당히 어려움이 따른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커지기 전에 처리하였으면 쉽게 해결되었을 일을 미루었다가 쓸데없이 많은 힘을 들이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내가 바로 그 꼴이다. 앞으로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어리석은 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2023.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