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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81] 16. 상승을 통한 전달(Samāropana-hāra)
Tattha katamo samāropano-hāro?
Ye dhammā yaṃ-mūlā ye c’ekatthā pakāsitā muninā ti.
[제1부에서 열거한 열여섯 가지 전달] 중에서 상승을 통한 전달이란 무엇인가?
[제 2 장에서 언급한] ‘뿌리가 되는 법들, 함게 서있다고 성인이 알려준 [법들]…’이라는
[게송, 이것이 상승을 통한 전달에 해당한다.]’
Ekasmiṃ padaṭṭhāne yattakāni padaṭṭhānāni otaranti, sabbāni tāni samāropayitabbāni.
Yathā āvatte hāre bahukāni padaṭṭhānāni otaranti.
하나의 근접요인에서 근접요인들이 내려가는 만큼 그만큼 모두 올라가야 한다.
‘전환을 통한 전달’에서 많은 근접요인들을 내려갔듯이 [그만큼 올라가야 한다.]
Tattha samāropanā catubbidhā: padaṭṭhānaṃ, vevacanaṃ, bhāvanā, pahānaṃ iti.
여기에서 상승에는 네 가지가 있다. 즉 근접요인, 유의어, 닦음, 없앰[에 따른 상승이다.]
a) Tattha katamā padaṭṭhānena samāropanā?
a) 그 [네 가지] 중에서 근접요인에 따른 상승이란 무엇인가?
Sabbapāpass’akaraṇaṃ kusalassūpasampadā
sacittapariyodapanaṃ etaṃ buddhāna sāsanan ti
모든 악함을 행하지 않는 것, 옳음을 구족하는 것,
자신의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 이것이 붓다의 가르침이다. *(Dhp v. 183)
Tassa kim padaṭṭhānaṃ? Tīṇi sucaritāni: kāyasucaritaṃ, vacīsucaritaṃ, manosucaritaṃ.
Idaṃ padaṭṭhānaṃ.
무엇이 그것의 근접요인인가? 세 가지 좋은 행동이다.
즉 몸으로 하는 좋은 행동, 언어로 하는 좋은 행동, 정신으로 하는 좋은 행동이다.
이것이 근접요인이다.
Tattha yaṃ kāyikañ ca vācasikañ ca sucaritaṃ, ayaṃ sīlakkhandho.
Manosucarite yā anabhijjhā abyāpādo ca, ayaṃ samādhikkhandho.
Yā sammādiṭṭhi, ayaṃ paññākkhandho.
Idaṃ padaṭṭhānaṃ.
그 중에서 몸과 언어에 속하는 좋은 행동이 계의 다발(戒蘊)이다.
정신으로 좋은 행동을 할 때 욕심이 없고 악의가 없는 것이 삼매의 다발(定蘊)이다.
바른 견해가 반야의 다발(慧蘊)이다.
이것이 근접요인이다.
Tattha sīlakkhandho ca samadhikkhandho ca samatho, paññakkhandho vipassanā.
Idaṃ padaṭṭhānaṃ.
여기에서 계의 다발과 삼매의 다발은 사마타에 해당하고 반야의 다발은 위빠사나에 해당한다.
이것이 근접요인이다.
Tattha samathassa phalaṃ rāgavirāgā cetovimutti,
vipassanāya phalaṃ avijjāvirāgā paññāvimutti.
Idaṃ padaṭṭhānaṃ.
여기에서 사마타는 탐냄에 대한 탐냄의 여읨을 통한 ‘마음의 해탈(心解脫)’을 결실로 하고,
위빠사나는 무명에 대한 탐냄의 여읨을 통한 ‘반야에 의한 해탈(慧解脫)’을 결실로 한다.
이것이 근접요인이다.
Vanaṃ vanathassa padaṭṭhānaṃ, kiñ ca vanaṃ ko ca vanatho?
Vanaṃ nāma pañca kāmaguṇā, taṇhā vanatho.
Idaṃ padaṭṭhānaṃ.
초목은 덤불에 대해 근접요인이다. 무엇이 초목이고, 무엇이 덤불인가?
초목은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의 무리(五種慾)를 뜻한다. 덤불은 갈애를 뜻한다.
이것이 근접요인이다. [82쪽]
Vanaṃ nāma nimittaggāho itthī ti vā puriso ti vā,
vanatho nāma teasṃ teasṃ aṅgapaccaṅgānaṃ anubyañjanaggāho:
aho cakkhuṃ aho sotaṃ aho ghānaṃ aho jivhā aho kāyo iti.
Idaṃ padaṭṭhānaṃ.
초목이란 여자 혹은 남자라는 겉모습을 취한다.
덤불은 그 [남녀의] 하나하나의 세부 특징을 취한다.
‘눈이다! 귀다! 코다! 혀다! 몸이다!’ 라는.
이것이 근접요인이다.
Vanaṃ nāma cha ajjhattikabāhirāni āyatanāni apariññātāni.
Yaṃ tadubhayaṃ paṭicca uppajjati saṃyojanaṃ, ayaṃ vanatho.
Idaṃ padaṭṭhānaṃ.
초목이란 여섯 가지 안과 밖의 영역(六內外入處)들을 ‘두루 알지 못함’을 뜻한다.
그 둘을 조건으로 결박이 일어나는 것이 덤불이다.
이것이 근접요인이다.
Vanaṃ nāma anusayo, vanatho nāma pariyuṭṭhānaṃ.
Idaṃ padaṭṭhānaṃ.
초목은 잠재경향을 가리키고 덤불은 사로잡힘을 가리킨다.
이것이 근접요인이다.
Tenāha Bhagavā:
Chetvā vanañ ca vanathañ cā ti
Ayaṃ padaṭṭhānena samāropanā.
따라서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초목과 덤불을 베어 버리고서…” *(Dhp. V. 283 c)
이것이 근접요인에 따른 상승이다. <경전이해의 길 309쪽~>
S42:13 http://cafe.daum.net/pali-study/9akK/70
14. "촌장이여, 법의 삼매가 있다.
만일 그대가 여기에 대해서 마음의 삼매를 얻는다면
그대는 이런 의심스러운 법을 제거하게 될 것이다.
‘‘Atthi, gāmaṇi, dhammasamādhi.
Tatra ce tvaṃ cittasamādhiṃ paṭilabheyyāsi.
Evaṃ tvaṃ imaṃ kaṅkhādhammaṃ pajaheyyāsi.
32. [세존] "촌장이여, 가르침에 의한 삼매가 있습니다.
거기서 그대가 마음에 의한 삼매를 얻으면 그대는 의혹의 상태를 버릴 수 있습니다.
촌장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법의 삼매인가?
Katamo ca, gāmaṇi, dhammasamādhi?
촌장이여, 가르침에 의한 삼매란 무엇입니까?
(1) 촌장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버리고 생명을 죽이는 것을 멀리 여읜다.
그는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버리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멀리 여읜다.
그는 삿된 음행을 버리고 삿된 음행을 멀리 여읜다.
그는 거짓말을 버리고 거짓말하는 것을 멀리 여읜다.
그는 중상모략하는 것을 버리고 중상모략하는 것을 멀리 여읜다.
그는 욕설하는 것을 버리고 욕설하는 것을 멀리 여읜다.
그는 잡담하는 것을 버리고 잡담하는 것을 멀리 여읜다.
그는 간탐을 버리고 간탐하지 않는다.
그는 악의를 버리고 악의 없는 마음을 가진다.
그는 삿된 견해를 버리고 바른 견해를 가진다.
Idha, gāmaṇi, ariyasāvako
pāṇātipātaṃ pahāya pāṇātipātā paṭivirato hoti,
adinnādānaṃ pahāya adinnādānā paṭivirato hoti,
kāmesumicchācāraṃ pahāya kāmesumicchācārā paṭivirato hoti,
musāvādaṃ pahāya musāvādā paṭivirato hoti,
pisuṇaṃ vācaṃ pahāya pisuṇāya vācāya paṭivirato hoti,
pharusaṃ vācaṃ pahāya pharusāya vācāya paṭivirato hoti,
samphappalāpaṃ pahāya samphappalāpā paṭivirato hoti,
abhijjhaṃ pahāya anabhijjhālu hoti,
byāpādapadosaṃ pahāya abyāpannacitto hoti,
micchādiṭṭhiṃ pahāya sammādiṭṭhiko hoti.
33. 촌장이여, 세상에 고귀한 제자는
살아있는 생명을 해치는 것을 버리고 살아있는 생명을 해치는 것을 그만둡니다.
주지 않은 것을 빼앗는 것을 버리고 주지 않은 것을 빼앗는 것을 그만둡니다.
사랑을 나눔에 잘못을 범하는 것을 버리고 사랑을 나눔에 잘못을 범하는 것을 그만둡니다.
거짓말을 [351] 하는 것을 버리고 거짓말을 하는 것을 그만둡니다.
이간짓을 하는 것을 버리고 이간질을 하는 것을 그만둡니다.
욕지거리하는 것을 버리고 욕지거리하는 것을 그만둡니다.
꾸며대는 말을 하는 것을 버리고 꾸며대는 말을 하는 것을 그만둡니다.
욕심을 버리고 욕심 없이 지냅니다.
분노와 증오를 버리고 분노 없는 마음으로 지냅니다.
잘못된 견해를 버리고 올바른 견해를 가진 사람이 됩니다.
촌장이여, 이런 그는 이와 같이 탐욕이 없고 악의가 없고 현혹됨이 없으며,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며, 자애가 함께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그처럼 두 번째 방향을, 그처럼 세 번째 방향을, 그처럼 네 번째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주위로,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고,
충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악의 없고 자애가 함께한 마음으로 모든 세상을 가득 채우고 머문다.
‘‘Sa kho so, gāmaṇi, ariyasāvako evaṃ vigatābhijjho vigatabyāpādo asammūḷho sampajāno paṭissato
mettāsahagatena cetasā ekaṃ disaṃ pharitvā viharati, tathā dutiyaṃ, tathā tatiyaṃ, tathā catutthaṃ,
iti uddhamadho tiriyaṃ sabbadhi sabbattatāya sabbāvantaṃ lokaṃ
mettāsahagatena cetasā vipulena mahaggatena appamāṇena averena abyāpajjena pharitvā viharati.
33. [세존]
1) 촌장이여, 그 고귀한 제자는
욕심을 떠나고, 분노를 떠나고, 혼란되지 않고, 올바로 알아차리고, 새김을 확립하여
자애의 마음으로 동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자애의 마음으로 남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자애의 마음으로 서쪽 방향을 가득 채우고, 자애의 마음으로 북쪽 바향을 가득 채우고,
자애의 마음으로 위와 아래와 옆과 모든 곳을 빠짐없이 가득 채워서,
광대하고 멀리 미치고 한량 없고 원한 없고 악의 없는 자애의 마음으로 일체의 세계를 가득 채웁니다.
그는 이와 같이 숙고한다. '이 스승은 '보시도 없고 공물도 없고 제사(헌공)도 없다. …
덕스럽고 바른 도를 구족한 사문·바라문들도 이 세상에는 없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졌다.
So iti paṭisañcikkhati –
‘yvāyaṃ satthā evaṃvādī evaṃdiṭṭhi –
natthi dinnaṃ, natthi yiṭṭhaṃ, natthi hutaṃ, natthi sukatadukkaṭānaṃ kammānaṃ phalaṃ vipāko,
natthi ayaṃ loko, natthi paro loko, natthi mātā, natthi pitā, natthi sattā opapātikā,
natthi loke samaṇabrāhmaṇā, sammaggatā sammāpaṭipannā
ye imañca lokaṃ parañca lok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pavedentī’ti.
2. 그는 '이 스승은 '보시도 없고, 제사도 없고, 헌공도 없고, 선악에 대한 과보도 없고,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고, 화생하는 뭇삶도 없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스스로 곧바로 알고 깨달아서,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세상에서 올바로 살고 올바로 실천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도 없다.'라는 교리와 견해를 갖고 있다.
그런데 만일 이 스승님의 말씀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나와는 모순이 되지 않는다. [*M60 제목참조]
나는 떠는 자도 굳건한 자도 해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두 가지 면에서 행운의 패를 잡은 것이다.
나는 몸으로 단속하고 말로 단속하고 마음으로 단속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선처, 천상계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Sace tassa bhoto satthuno saccaṃ vacanaṃ, apaṇṇakatāya mayhaṃ,
yvāhaṃ [yohaṃ (sī. syā. kaṃ. pī.)] na kiñci [kañci (?)] byābādhemi tasaṃ vā thāvaraṃ vā?
Ubhayamettha [ubhayattha me (?) ma. ni. 2.95 pāḷiyā saṃsandetabbaṃ] kaṭaggāho,
yaṃ camhi kāyena saṃvuto vācāya saṃvuto manasā saṃvuto,
yañca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sugatiṃ saggaṃ lokaṃ upapajjissāmī’ti
[paraṃ maraṇā na upapajjissāmīti (?)].
비록 이 존경스런 스승이 말이 진실이라고 해도
내가 약자든 강자든 누구도 해치지 않겠다는 것을 뒤집을 수 없다.
나는 두 가지 측면에서 행운의 주사위를 던진 셈이다.
그것은 내가 신체적으로 절제되고, 언어적으로 절제되고, 정신적으로 절제되기 때문이고,
몸이 파괴되어 죽은 뒤에 하늘나라에 태어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성찰합니다.
[그가 이렇게 숙고하였기 때문에]
그에게는 환희가 생긴다. 환희가 생기면 희열이 생긴다.
마음에 희열이 있는 자의 몸은 경안하다. 몸이 경안한 자는 행복을 경험한다.
행복한 자의 마음은 삼매에 든다. [.............................................................*정형구,
.......................*apaṇṇakatāya mayhaṃ이기 때문에, 파스칼의 내기(Pascal’s wager)]
Tassa pāmojjaṃ jāyati. Pamuditassa pīti jāyati. Pītimanassa kāyo passambhati.
Passaddhakāyo sukhaṃ vedayati. Sukhino cittaṃ samādhiyati.
3) 그에게는 기쁨이 생겨납니다. 기쁘면 희열이 생겨납니다. 마음이 희열로 고양되면 몸이 평온해집니다.
몸이 평온해지면 행복을 느낍니다. 행복한 사람의 마음은 집중됩니다.
촌장이여, 이것이 법의 삼매이다.
Ayaṃ kho, gāmaṇi, dhammasamādhi.
촌장이여, [352] 이것이 가르침에 의한 삼매입니다. [*法燈明]
만일 그대가 여기에 대해서 마음의 삼매를 얻는다면 그대는 이런 의심스러운 법을 제거하게 될 것이다."
Tatra ce tvaṃ cittasamādhiṃ paṭilabheyyāsi, evaṃ tvaṃ imaṃ kaṅkhādhammaṃ pajaheyyāsi.
거기서 그대가 마음에 의한 삼매를 얻으면, 의혹의 생태를 버릴 수 있습니다. [*自燈明]
671쪽 하단 주> ....마음의 삼매.. 법의 삼매.. 주석서는 이 둘의 차이를...
1. 법의 삼매는 10가지 유익한 업의 길[十善業道]의 법이고,
마음의 삼매는 위빳사나와 더불어 네 가지 도(예류도부터 아라한도까지)이다.
2. 아래에서 언급되고 있는 다섯 가지 법들, 즉 환희 희열 경안 행복 삼매는 법의 삼매라 불리고,
마음의 삼매는 여기서도 위빳사나와 더불어 네 가지 도이다.
3. 10가지 유익한 업의 길[十善業道]과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四梵住]은 법의 삼매이고,
이러한 법의 삼매를 성취한 자에게 생기는 마음이 한 끝에 집중됨[心一境性, cittekaggataa]이 마음의 삼매이다.
S35:235
수행승들이여, 연소하고 작열하고 불꽃 튀는 뜨거운 쇠바늘로 시각기관을 차라리 지질지언정,
시각으로 인식되는 형상의 인상과 속성에 사로잡히지 말라. <성전협회 역>
Varaṃ, bhikkhave, tattāya ayosalākāya ādittāya sampajjalitāya sajotibhūtāya [sañjotibhūtāya (syā. kaṃ.)]
cakkhundriyaṃ sampalimaṭṭhaṃ,
na tveva cakkhuviññeyyesu rūpesu anubyañjanaso nimittaggāho.
시뻘겋게 불타오르고 불꽃을 튀기고 빛을 내는 쇠꼬챙이로 차라리 눈의 감각기능[眼根]을 파괴할지언정
눈으로 인식할 수 있는 형색들에 대해 [세세한] 부분상을 통해서 표상(전체상)을 취해서는 안 된다.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의 의식이 인상의 유혹에 사로잡히거나 속성의 유혹에 사로잡혀,
그 순간에 죽는다면 지옥으로 떨어지거나 축생으로 태어나는
두 가지 운명 가운데 하나를 얻을 가능성이 있다.
수행승들이여, 나는 그 위험을 보고 이와 같이 말한다.
Nimittassādagathitaṃ [nimittassādagadhitaṃ (syā. kaṃ. ka.) ma. ni. 3.316-317] vā, bhikkhave,
viññāṇaṃ tiṭṭhamānaṃ tiṭṭheyya, anubyañjanassādagathitaṃ vā
tasmiñce samaye kālaṃ kareyya, ṭhānametaṃ vijjati, yaṃ dvinnaṃ gatīnaṃ aññataraṃ gatiṃ gaccheyya –
nirayaṃ vā, tiracchānayoniṃ vā.
Imaṃ khvāhaṃ, bhikkhave, ādīnavaṃ disvā evaṃ vadāmi.
비구들이여, 만일 그의 알음알이가 표상(전체상)의 달콤함이나 [세세한] 부분상의 달콤함에 빠진 채로
유지되다가 그런 상태로 죽음을 맞이한다면 그에게는 이런 경우가 있을 것이다.
즉 그는 두 가지 태어날 곳 가운데 하나로 갈 것이니, 지옥이거나 축생의 모태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위험함을 보기 때문에 나는 이와 같이 말한 것이다”
S47:8 http://cafe.daum.net/pali-study/9akK/120
7.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여기 현명하고 슬기롭고 능숙한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면서 머문다.
그가 이처럼 몸에서 몸을 관찰하면서 머물 때 마음은 삼매에 들고 오염원들은 제거된다.
그는 표상을 취한다.
Evameva kho, bhikkhave, idhekacco paṇḍito byatto kusalo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Tassa kāye kāyānupassino viharato cittaṃ samādhiyati, upakkilesā pahīyanti.
So taṃ nimittaṃ uggaṇhāti.
9.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현명하고, 유능하고, 숙련된 어떤 수행승도 이와 같다.
1) 그 수행승은, 열심히 노력하고 올바로 알아차리고 새김을 확립하여 세상의 탐욕과 근심을 제거하며,
몸에 대해 몸을 관찰한다.
그가 몸에 대해 몸을 관찰하면서
마음이 집중되고, 번뇌가 버려질 때, [152] 그는 그 인상을 파악한다.
A6:68
Eko paviveke anabhiramanto [PTS Page 423] cittassa nimittaṃ gaṇahissatīti2 netaṃ ṭhānaṃ vijjati.
Cittassa nimittaṃ agaṇhanto sammādiṭṭhiṃ paripūressatiti netaṃ ṭhānaṃ vijjati.
Sammādiṭṭiṃ aparipūretvā sammāsamādhiṃ paripūressatīti netaṃ ṭhānaṃ vijjati.
Sammāsamādhiṃ aparipūretvā saññojanāni3 pajahissatīti netaṃ ṭhānaṃ vijjati.
Saññojanāni appahāya nibbānaṃ sacchikarissatiti netaṃ ṭhānaṃ vijjati.
무리지어 사는 것을 즐기면서 혼자 閑居를 즐길 수 없고,
그러면 마음의 표상을 취할 수 없고,
그러면 바른 견해<*念 → 擇法>를 갖출 수 없고,
그러면 바른 삼매를 갖출 수 없고,
그러면 족쇄를 제거 할 수 없고,
그러면 열반을 실현하리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 不殺[~10善業] → 正見→ 正見 [8正道~正念)] → 正定.
*閑居 - 心相<念> - 正見(?擇法 = 自燈明) - 正定 - - -
Uggaṇhāti [ud + gṛh, see gaṇhāti] to take up, acquire, learn
Gaha2 [Sk. graha, gaṇhāti, q. v. for etym.] "seizer," seizing, grasping,
Gāha [fr. gaṇhāti] 1. (n.) seizing, seizure, grip
gaṇhāti : [gah + ṇhā] takes; holds of; seiz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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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좀 어수선하지요. ㅋ
파악 (把握)
[명사] 1. 손으로 잡아 쥠. 2. 어떤 대상의 내용이나 본질을 확실하게 이해하여 앎. <Naver>
'파악'이란 단어의 의미에는 1. 쥐다. 2. 알다. 두 가지 의미가 있네요.
봄봄은 위 '相을 파악'한다고 했을 때의 '파악'이 <알다>의 의미보다는 <쥐다>의 의미로 읽혀지고,
'파악'은 慧쪽은 아닌 듯 여겨집니다.
공부합니다
최근 어떤 스님과 대화 중에 '佛性'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나왔습니다.
스님의 말씀의 요지는 '이미 부처가 어찌 다시 중생이 되느냐?'라고 이해했습니다.
봄봄은 동의하면서 굳이 대변하여 좋게 이해하자면
'겨자씨 만한 바른 견해가 있다면 그것을 佛性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인간의 몸 받은 것도 겨자씨 보다 더 작은 佛性이 없지는 않을 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최소한의 '양심과 수치심'이라도 있다면...
그러던중 본문의 閑居를 통하여 [자신의 心相]을 취하는 것이 正見의 기초가 된다는 경문을 보고서
이런 댓글을 올립니다. [心相]이 뭔지는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