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찬송’은 없습니다.
찬송은 예배를 위한 준비가 아닙니다.
예배 그 자체입니다.
찬송은 한 주간 동안 세상에서 살다가 피곤하여 지친
성도들을 음악으로 위로하고 달래고,
때로는 흥을 돋구는 그런 엔터테인먼트가 아닙니다.
찬양인도자는 본 방송이 시작되기 전에 무대에 나와서 관객들에게
박수도 유도하고 우스갯 소리도 하면서 본방송을 위한 워밍업을 한 후에
카메라 뒤로 사라지는 무명 개그맨이 아닙니다.
찬송 시간은 성도들을 위해 있지 않습니다.
찬송 시간은 앞에서 찬양하는 찬양팀의 음악성을 과시하기 위한
잘 차려진 무대도 아닙니다.
찬송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고,
마땅히 찬송 시간은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찬송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입니다.
준비찬송이라는 개념은
예배의 중심이 오직 설교에만 있다는 한국교회의 전통이 낳은 오류입니다.
언제가 한 번은 청년들을 가르칠 때
늘 하던 예배형식을 바꾸어서 제가 설교를 먼저하고
찬양인도자를 설교 뒤에 세웠습니다.
매번 그렇게 하지는 못했지만,
예배를 올바로 가르치기 위해서 과감하게 틀을 넘어선
의미있는 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예배의 중심은 설교가 아닙니다.
‘설교만 들으면 되지’하는 편협한 예배관이 있기 때문에
예배에 느즈막히 들어와도 전혀 신앙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예배의 중심은 하나님 과의 교감입니다.
하나님 과의 소통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과 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인격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런데 그 교감과 소통이 설교시간에 이뤄질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설교시간에만 들려지고 선포되고 나눠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날은 대표기도자의 기도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 옵니다.
어떤 날은 성가대의 찬양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임재와 음성을 듣습니다.
어떤 날은 찬양과 경배의 곡조와 함께 담긴 말씀과 메시지를
온 성도가 한 맘으로올려드리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합니다.
어떤 날은 축도를 받으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어떤 날은 입구에서 환하게 맞으시는 안내자의 표정에서
하나님을 볼 수도 있습니다.
예배 안에서 하나님과의 소통채널을
단 한 개만 열어놓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예배에는 다양한 채널이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지 않으면
설교 이외의 다른 모든 순서는 설교를 위한 들러리로 전락하기 쉽습니다.
저는 설교를 하는 목사입니다.
그리고 찬양과 경배를 인도하는 목사입니다.
설교를 준비할 때나 찬양인도를 준비할 때나,
똑같이 기도와 말씀으로 준비합니다.
3-4곡의 찬송을 인도해도
성경이 말하고 있는 언어인지,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는지,
그리고 예배의 언어가 담겨 있는지 확인합니다.
당연히 설교를 준비할 때도
성경이 정확하게 뒷받침하고 있는 바른 해석과
시대와 현장에 필요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메시지를 담아내려고 합니다.
뒤로 한 걸음 물러난 성도들까지도
함께 예배의 자리로 나가게 하기 위해서
받은 은사를 최대한 활용하며 성령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요즘 한국교회는 모르겠지만
제가 10년째 사역하는 이곳 이민 교회안에는
‘준비찬송’이라는 단어가 목회자들과 성도님들의 말 속에서
종종 들려옵니다.
어제도 심방을 갔는데 한 집사님께서
“정목사님이 매주 예배 전에 하는 준비찬송 있잖아요...
전 그 시간이 참 좋습니다. 예배를 더 잘 준비하게 되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그 집사님의 마음과 중심의 의미도 정확히 알고
너무 감사한 마음이 있지만, 그와 동시에
일일이 그럴 때마다 위의 내용들을 다 설명해 드릴 수도 없어서
안타까운 마음도 함께 있습니다.
그래도, 한국교회에나 이민교회에나
많은 사역자들이 바른 예배관을 가지고
열심히 사역하고 계시는 모습을 보면
너~무 좋습니다... ^ ^
첫댓글 맞습니다. 저도 자주 찬양을 통해 하나님과 만나게 됩니다.
우리교회 홈피에 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