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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색 옷감 장수 루디아는 어떤 신분이었을까?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 행6:13-14
자주 염색은 페니키아의 독점 사업
성서시대에 염색은 ‘천’(cloth)이 아닌 ‘실’(thread) 상태에서 이뤄졌다. 당시는 염색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기에 실 상태에서 염색하는 것이 훨씬 수월했다. 아주 가난한 사람들은 아무런 염색 없이 자연적인 섬유 색깔의 옷을 입었지만, 대다수의 평민들은 동물, 식물, 광물 등 주변에서 흔하게 얻을 수 있는 염색 재료를 이용해 옷감에 염색을 했다. 그러나 이중 유일 하게 제외되는 색깔이 바로 ‘자주색’(purple) 계열의 염색이었다.
자주색 염색은 두로(Tyre) 지방에서 독점으로 이뤄졌는데 가격도 비싸고 공정도 복잡했다. 두로 사람들은 자주색 염색의 비법을 공개하지 않았고, 두로가 위치한 페니키아 사람들은 당대에 알려진 최고의 염색 ‘달인’이었다. 이들의 국명 ‘페니키아’(Phoenicia) 역시 ‘자주색 염료’를 뜻하는 헬라어로서, 페니키아는 자주색 염색업으로 유명한 나라였다.
자주색 염료는 ‘뿔고둥’(murex snail)으로 불리는 달팽이의 하부 기관지선(hypo bronchial gland)에서 극히 소량 얻을 수 있었는데, 그나마 두로가 위치한 지중해 해변에서만 잡을 수 있었다. 50cm의 천을 자주색으로 염색하려면 1만 마리의 뿔고둥을 잡아야 했던 만큼 자색 옷감은 귀했다.
뿔고둥은 주로 대합조개와 함께 다녔는데, 선(gland)에서 분비되는 염료만 빼내고 다시 바다에 놓아 주곤 했다.
쁠고둥에서 뽑은 자주색 염료의 대용으로 초막절 때 흔드는 네 가지 식물 가운데 하나인 화석류(myrtle)가 사용되기도 했지만, 이것은 가격이 저렴한 대신 햇빛에 노출되면 색깔이 금방 바래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뿔고둥의 자색 염료는 한 번 염색되면 색깔을 빼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염색 효과가 강력했다.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한 번 물들이면 잘 빠지지 않는 자색 염료와 비교해서 설명한 바 있다. 쉽게 빠지지 않는 쁠고둥의 자주색 염료를 생각할 때, 주홍(진홍) 같은 죄를 눈처럼 희게 할 수 있는 능력이라면 어떠한 죄도 깨끗이 사할 수 있지 않겠는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 사 1:18
자주색은 최상위 3퍼센트의 상류층을 위한 색깔
비싼 가격과 복잡한 공정 때문에 ‘자주색’은 왕족(royal family)이나 귀족(noble man)을 의미하는 색깔이었다. ‘Blue-blooded family’가 ‘유서깊은 귀족 출신의 집안’을 가리키고, 우리말로는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사람’이라고 부르듯이, 성서시대에는 ‘자주색’이 그러한 의미를 가졌다. 소위 말하는 상위 3퍼센트에 속하는 상류 계층을 나타내는 색깔이 ‘자주색’이었던 것이다. 성서시대에 전체를 자주색으로 염색한 겉옷은 오늘날의 화폐 단위로 1억 원가량의 가치가 있었다. 당연히 이런 겉옷은 왕 이외에는 아무나 입을 수 없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드셨던 '부자와 거지 나사로’ 속에 나오는 부자는 얼마나 큰 부차였을까? 1세기 유대인들은 그가 어마어마한 부자라는 것을 간파했다. 바로 부자가 ‘자색으로 물들인 겉옷’을 입었기 때문이다. 이런 부자가 거지 나사로에게 빵 한 조각 건네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이다.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 눅 16:19-21
잠언 31장에 나오는 현숙한 여인 역시 당시에 귀부인들이나 입을 수 있는 ‘자색 옷’을 입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는 자기를 위하여 아름다운 이불을 지으며 세마포와 자색 옷을 입으며 - 잠 31:22
자색은 아가서 기자가 사랑하는 여인의 입술을 묘사할 때도 등장한다.
네 입술은 홍색 실 같고 네 입은 어여쁘고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한 쪽 같구나. - 아 4:3
예수님은 온 우주를 다스리는 ‘만왕의 왕’(King of king)이시지만, 이 땅에 성육신하신 모습은 전혀 왕으로서의 풍채를 갖고 있지 않았다. 예수님은 일생 가난했으며 사회적 약자들과 소외된 자들을 찾아다니신 섬김의 왕이셨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홈모(欽慕)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 사 53:2
이런 예수님도 '만왕의 왕’으로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 있었는데, 그것은 빌라도 총독 앞에서 심문을 받으실 때였다.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 마27:11
이에 로마 군인들은 ‘유대인의 왕’이라고 주장하는 예수님께 당시 왕 들만 입을 수 있던 자주색 겉옷인 ‘홍포’를 구해 입혀 주면서 온갖 조롱을 해댔다.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 지어다 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희롱을 다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 마 27:27-31
이 땅에 성육신하신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지만 왕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으셨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왕이신 예수님의 모 습이 드러난 유일한 순간은 로마 군인들에게 조롱 받으며 '홍포’를 입은 때였다. 이 땅에서 예수님의 삶은 한마디로 '권리 포기’와 '내려놓음’의 삶 이었던 것이다.
청색 계열 자주색과 제사장 나라
자주색 염료는 청색 계열의 자주색(blush purple)과 홍색 계열의 자주색(reddish purple)으로 나뉘었다. 청색 계열의 자주색은 이스라엘 백성이 옷단 술에 염색하는 색깔이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대대로 그들의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민 15:38)
흰색의 옷단 술 가운데 일부를 청색으로 염색하도록 한 것은 청색이 제사장의 색깔이기 때문이다. 대제사장이 입는 '겉옷’은 청색이었다.
너는 에봇 받침 겉옷을 전부 청색으로 하되(출 28:31)
이스라엘 백성 모두 옷단 술의 일부를 청색으로 염색해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의 백성으로 부르신 목적에 부합한다. 아울러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한 성도가 된 우리도 이스라엘과 합하여 ‘제사장나라’가 된 것이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 출19:5~6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 벧전 2:9
이스라엘 백성이 겉옷에 다는 옷단 술에 청색 염료를 물들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재정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말씀에 순종할 때 약속의 땅에서 복을 받고 그들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고 하셨는데, 이것 역시 옷단 술의 염료와 관련해서 이해하면 그 의미가 새로울 것이다. 모든 사람이 자기의 옷단 술을 청색으로 염색할 정도 로 잘살게 될 것이라는 말씀인 것이다. 즉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순종할 때 이스라엘에는 극빈자가 없이 모두 잘사는 복지국가가 될 것이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 신 15:4
그렇다면 두아디라 성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인 루디아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루디아는 빌립보에서 상당히 영항력있는 재력가였을 것이다. 그녀가 상대하던 고객들 역시 상류층 3퍼센트에 속하는 VIP였을 것이다. 하나님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순종한 바울에게 루디아를 선교 사역의 조력자로 붙여 주셨다. 루디아는 앞으로 바울을 통해 펼쳐질 유럽에서의 선교 사역을 위한 든든한 ‘스폰서’요 ‘물주’였던 것이다.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 행6:13-14
자주 염색은 페니키아의 독점 사업
성서시대에 염색은 ‘천’(cloth)이 아닌 ‘실’(thread) 상태에서 이뤄졌다. 당시는 염색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기에 실 상태에서 염색하는 것이 훨씬 수월했다. 아주 가난한 사람들은 아무런 염색 없이 자연적인 섬유 색깔의 옷을 입었지만, 대다수의 평민들은 동물, 식물, 광물 등 주변에서 흔하게 얻을 수 있는 염색 재료를 이용해 옷감에 염색을 했다. 그러나 이중 유일 하게 제외되는 색깔이 바로 ‘자주색’(purple) 계열의 염색이었다.
자주색 염색은 두로(Tyre) 지방에서 독점으로 이뤄졌는데 가격도 비싸고 공정도 복잡했다. 두로 사람들은 자주색 염색의 비법을 공개하지 않았고, 두로가 위치한 페니키아 사람들은 당대에 알려진 최고의 염색 ‘달인’이었다. 이들의 국명 ‘페니키아’(Phoenicia) 역시 ‘자주색 염료’를 뜻하는 헬라어로서, 페니키아는 자주색 염색업으로 유명한 나라였다.
자주색 염료는 ‘뿔고둥’(murex snail)으로 불리는 달팽이의 하부 기관지선(hypo bronchial gland)에서 극히 소량 얻을 수 있었는데, 그나마 두로가 위치한 지중해 해변에서만 잡을 수 있었다. 50cm의 천을 자주색으로 염색하려면 1만 마리의 뿔고둥을 잡아야 했던 만큼 자색 옷감은 귀했다.
뿔고둥은 주로 대합조개와 함께 다녔는데, 선(gland)에서 분비되는 염료만 빼내고 다시 바다에 놓아 주곤 했다.
쁠고둥에서 뽑은 자주색 염료의 대용으로 초막절 때 흔드는 네 가지 식물 가운데 하나인 화석류(myrtle)가 사용되기도 했지만, 이것은 가격이 저렴한 대신 햇빛에 노출되면 색깔이 금방 바래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뿔고둥의 자색 염료는 한 번 염색되면 색깔을 빼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염색 효과가 강력했다.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한 번 물들이면 잘 빠지지 않는 자색 염료와 비교해서 설명한 바 있다. 쉽게 빠지지 않는 쁠고둥의 자주색 염료를 생각할 때, 주홍(진홍) 같은 죄를 눈처럼 희게 할 수 있는 능력이라면 어떠한 죄도 깨끗이 사할 수 있지 않겠는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 사 1:18
자주색은 최상위 3퍼센트의 상류층을 위한 색깔
비싼 가격과 복잡한 공정 때문에 ‘자주색’은 왕족(royal family)이나 귀족(noble man)을 의미하는 색깔이었다. ‘Blue-blooded family’가 ‘유서깊은 귀족 출신의 집안’을 가리키고, 우리말로는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사람’이라고 부르듯이, 성서시대에는 ‘자주색’이 그러한 의미를 가졌다. 소위 말하는 상위 3퍼센트에 속하는 상류 계층을 나타내는 색깔이 ‘자주색’이었던 것이다. 성서시대에 전체를 자주색으로 염색한 겉옷은 오늘날의 화폐 단위로 1억 원가량의 가치가 있었다. 당연히 이런 겉옷은 왕 이외에는 아무나 입을 수 없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드셨던 '부자와 거지 나사로’ 속에 나오는 부자는 얼마나 큰 부차였을까? 1세기 유대인들은 그가 어마어마한 부자라는 것을 간파했다. 바로 부자가 ‘자색으로 물들인 겉옷’을 입었기 때문이다. 이런 부자가 거지 나사로에게 빵 한 조각 건네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이다.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 눅 16:19-21
잠언 31장에 나오는 현숙한 여인 역시 당시에 귀부인들이나 입을 수 있는 ‘자색 옷’을 입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는 자기를 위하여 아름다운 이불을 지으며 세마포와 자색 옷을 입으며 - 잠 31:22
자색은 아가서 기자가 사랑하는 여인의 입술을 묘사할 때도 등장한다.
네 입술은 홍색 실 같고 네 입은 어여쁘고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한 쪽 같구나. - 아 4:3
예수님은 온 우주를 다스리는 ‘만왕의 왕’(King of king)이시지만, 이 땅에 성육신하신 모습은 전혀 왕으로서의 풍채를 갖고 있지 않았다. 예수님은 일생 가난했으며 사회적 약자들과 소외된 자들을 찾아다니신 섬김의 왕이셨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홈모(欽慕)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 사 53:2
이런 예수님도 '만왕의 왕’으로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 있었는데, 그것은 빌라도 총독 앞에서 심문을 받으실 때였다.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 마27:11
이에 로마 군인들은 ‘유대인의 왕’이라고 주장하는 예수님께 당시 왕 들만 입을 수 있던 자주색 겉옷인 ‘홍포’를 구해 입혀 주면서 온갖 조롱을 해댔다.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 지어다 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희롱을 다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 마 27:27-31
이 땅에 성육신하신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지만 왕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으셨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왕이신 예수님의 모 습이 드러난 유일한 순간은 로마 군인들에게 조롱 받으며 '홍포’를 입은 때였다. 이 땅에서 예수님의 삶은 한마디로 '권리 포기’와 '내려놓음’의 삶 이었던 것이다.
청색 계열 자주색과 제사장 나라
자주색 염료는 청색 계열의 자주색(blush purple)과 홍색 계열의 자주색(reddish purple)으로 나뉘었다. 청색 계열의 자주색은 이스라엘 백성이 옷단 술에 염색하는 색깔이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대대로 그들의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민 15:38)
흰색의 옷단 술 가운데 일부를 청색으로 염색하도록 한 것은 청색이 제사장의 색깔이기 때문이다. 대제사장이 입는 '겉옷’은 청색이었다.
너는 에봇 받침 겉옷을 전부 청색으로 하되(출 28:31)
이스라엘 백성 모두 옷단 술의 일부를 청색으로 염색해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의 백성으로 부르신 목적에 부합한다. 아울러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한 성도가 된 우리도 이스라엘과 합하여 ‘제사장나라’가 된 것이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 출19:5~6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 벧전 2:9
이스라엘 백성이 겉옷에 다는 옷단 술에 청색 염료를 물들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재정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말씀에 순종할 때 약속의 땅에서 복을 받고 그들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고 하셨는데, 이것 역시 옷단 술의 염료와 관련해서 이해하면 그 의미가 새로울 것이다. 모든 사람이 자기의 옷단 술을 청색으로 염색할 정도 로 잘살게 될 것이라는 말씀인 것이다. 즉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순종할 때 이스라엘에는 극빈자가 없이 모두 잘사는 복지국가가 될 것이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 신 15:4
그렇다면 두아디라 성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인 루디아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루디아는 빌립보에서 상당히 영항력있는 재력가였을 것이다. 그녀가 상대하던 고객들 역시 상류층 3퍼센트에 속하는 VIP였을 것이다. 하나님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순종한 바울에게 루디아를 선교 사역의 조력자로 붙여 주셨다. 루디아는 앞으로 바울을 통해 펼쳐질 유럽에서의 선교 사역을 위한 든든한 ‘스폰서’요 ‘물주’였던 것이다.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 행6:13-14
자주 염색은 페니키아의 독점 사업
성서시대에 염색은 ‘천’(cloth)이 아닌 ‘실’(thread) 상태에서 이뤄졌다. 당시는 염색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기에 실 상태에서 염색하는 것이 훨씬 수월했다. 아주 가난한 사람들은 아무런 염색 없이 자연적인 섬유 색깔의 옷을 입었지만, 대다수의 평민들은 동물, 식물, 광물 등 주변에서 흔하게 얻을 수 있는 염색 재료를 이용해 옷감에 염색을 했다. 그러나 이중 유일 하게 제외되는 색깔이 바로 ‘자주색’(purple) 계열의 염색이었다.
자주색 염색은 두로(Tyre) 지방에서 독점으로 이뤄졌는데 가격도 비싸고 공정도 복잡했다. 두로 사람들은 자주색 염색의 비법을 공개하지 않았고, 두로가 위치한 페니키아 사람들은 당대에 알려진 최고의 염색 ‘달인’이었다. 이들의 국명 ‘페니키아’(Phoenicia) 역시 ‘자주색 염료’를 뜻하는 헬라어로서, 페니키아는 자주색 염색업으로 유명한 나라였다.
자주색 염료는 ‘뿔고둥’(murex snail)으로 불리는 달팽이의 하부 기관지선(hypo bronchial gland)에서 극히 소량 얻을 수 있었는데, 그나마 두로가 위치한 지중해 해변에서만 잡을 수 있었다. 50cm의 천을 자주색으로 염색하려면 1만 마리의 뿔고둥을 잡아야 했던 만큼 자색 옷감은 귀했다.
뿔고둥은 주로 대합조개와 함께 다녔는데, 선(gland)에서 분비되는 염료만 빼내고 다시 바다에 놓아 주곤 했다.
쁠고둥에서 뽑은 자주색 염료의 대용으로 초막절 때 흔드는 네 가지 식물 가운데 하나인 화석류(myrtle)가 사용되기도 했지만, 이것은 가격이 저렴한 대신 햇빛에 노출되면 색깔이 금방 바래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뿔고둥의 자색 염료는 한 번 염색되면 색깔을 빼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염색 효과가 강력했다.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한 번 물들이면 잘 빠지지 않는 자색 염료와 비교해서 설명한 바 있다. 쉽게 빠지지 않는 쁠고둥의 자주색 염료를 생각할 때, 주홍(진홍) 같은 죄를 눈처럼 희게 할 수 있는 능력이라면 어떠한 죄도 깨끗이 사할 수 있지 않겠는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 사 1:18
자주색은 최상위 3퍼센트의 상류층을 위한 색깔
비싼 가격과 복잡한 공정 때문에 ‘자주색’은 왕족(royal family)이나 귀족(noble man)을 의미하는 색깔이었다. ‘Blue-blooded family’가 ‘유서깊은 귀족 출신의 집안’을 가리키고, 우리말로는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사람’이라고 부르듯이, 성서시대에는 ‘자주색’이 그러한 의미를 가졌다. 소위 말하는 상위 3퍼센트에 속하는 상류 계층을 나타내는 색깔이 ‘자주색’이었던 것이다. 성서시대에 전체를 자주색으로 염색한 겉옷은 오늘날의 화폐 단위로 1억 원가량의 가치가 있었다. 당연히 이런 겉옷은 왕 이외에는 아무나 입을 수 없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드셨던 '부자와 거지 나사로’ 속에 나오는 부자는 얼마나 큰 부차였을까? 1세기 유대인들은 그가 어마어마한 부자라는 것을 간파했다. 바로 부자가 ‘자색으로 물들인 겉옷’을 입었기 때문이다. 이런 부자가 거지 나사로에게 빵 한 조각 건네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이다.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 눅 16:19-21
잠언 31장에 나오는 현숙한 여인 역시 당시에 귀부인들이나 입을 수 있는 ‘자색 옷’을 입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는 자기를 위하여 아름다운 이불을 지으며 세마포와 자색 옷을 입으며 - 잠 31:22
자색은 아가서 기자가 사랑하는 여인의 입술을 묘사할 때도 등장한다.
네 입술은 홍색 실 같고 네 입은 어여쁘고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한 쪽 같구나. - 아 4:3
예수님은 온 우주를 다스리는 ‘만왕의 왕’(King of king)이시지만, 이 땅에 성육신하신 모습은 전혀 왕으로서의 풍채를 갖고 있지 않았다. 예수님은 일생 가난했으며 사회적 약자들과 소외된 자들을 찾아다니신 섬김의 왕이셨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홈모(欽慕)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 사 53:2
이런 예수님도 '만왕의 왕’으로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 있었는데, 그것은 빌라도 총독 앞에서 심문을 받으실 때였다.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 마27:11
이에 로마 군인들은 ‘유대인의 왕’이라고 주장하는 예수님께 당시 왕 들만 입을 수 있던 자주색 겉옷인 ‘홍포’를 구해 입혀 주면서 온갖 조롱을 해댔다.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 지어다 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희롱을 다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 마 27:27-31
이 땅에 성육신하신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지만 왕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으셨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왕이신 예수님의 모 습이 드러난 유일한 순간은 로마 군인들에게 조롱 받으며 '홍포’를 입은 때였다. 이 땅에서 예수님의 삶은 한마디로 '권리 포기’와 '내려놓음’의 삶 이었던 것이다.
청색 계열 자주색과 제사장 나라
자주색 염료는 청색 계열의 자주색(blush purple)과 홍색 계열의 자주색(reddish purple)으로 나뉘었다. 청색 계열의 자주색은 이스라엘 백성이 옷단 술에 염색하는 색깔이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대대로 그들의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민 15:38)
흰색의 옷단 술 가운데 일부를 청색으로 염색하도록 한 것은 청색이 제사장의 색깔이기 때문이다. 대제사장이 입는 '겉옷’은 청색이었다.
너는 에봇 받침 겉옷을 전부 청색으로 하되(출 28:31)
이스라엘 백성 모두 옷단 술의 일부를 청색으로 염색해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의 백성으로 부르신 목적에 부합한다. 아울러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한 성도가 된 우리도 이스라엘과 합하여 ‘제사장나라’가 된 것이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 출19:5~6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 벧전 2:9
이스라엘 백성이 겉옷에 다는 옷단 술에 청색 염료를 물들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재정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말씀에 순종할 때 약속의 땅에서 복을 받고 그들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고 하셨는데, 이것 역시 옷단 술의 염료와 관련해서 이해하면 그 의미가 새로울 것이다. 모든 사람이 자기의 옷단 술을 청색으로 염색할 정도 로 잘살게 될 것이라는 말씀인 것이다. 즉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순종할 때 이스라엘에는 극빈자가 없이 모두 잘사는 복지국가가 될 것이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 신 15:4
그렇다면 두아디라 성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인 루디아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루디아는 빌립보에서 상당히 영항력있는 재력가였을 것이다. 그녀가 상대하던 고객들 역시 상류층 3퍼센트에 속하는 VIP였을 것이다. 하나님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순종한 바울에게 루디아를 선교 사역의 조력자로 붙여 주셨다. 루디아는 앞으로 바울을 통해 펼쳐질 유럽에서의 선교 사역을 위한 든든한 ‘스폰서’요 ‘물주’였던 것이다.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 행6:13-14
자주 염색은 페니키아의 독점 사업
성서시대에 염색은 ‘천’(cloth)이 아닌 ‘실’(thread) 상태에서 이뤄졌다. 당시는 염색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기에 실 상태에서 염색하는 것이 훨씬 수월했다. 아주 가난한 사람들은 아무런 염색 없이 자연적인 섬유 색깔의 옷을 입었지만, 대다수의 평민들은 동물, 식물, 광물 등 주변에서 흔하게 얻을 수 있는 염색 재료를 이용해 옷감에 염색을 했다. 그러나 이중 유일 하게 제외되는 색깔이 바로 ‘자주색’(purple) 계열의 염색이었다.
자주색 염색은 두로(Tyre) 지방에서 독점으로 이뤄졌는데 가격도 비싸고 공정도 복잡했다. 두로 사람들은 자주색 염색의 비법을 공개하지 않았고, 두로가 위치한 페니키아 사람들은 당대에 알려진 최고의 염색 ‘달인’이었다. 이들의 국명 ‘페니키아’(Phoenicia) 역시 ‘자주색 염료’를 뜻하는 헬라어로서, 페니키아는 자주색 염색업으로 유명한 나라였다.
자주색 염료는 ‘뿔고둥’(murex snail)으로 불리는 달팽이의 하부 기관지선(hypo bronchial gland)에서 극히 소량 얻을 수 있었는데, 그나마 두로가 위치한 지중해 해변에서만 잡을 수 있었다. 50cm의 천을 자주색으로 염색하려면 1만 마리의 뿔고둥을 잡아야 했던 만큼 자색 옷감은 귀했다.
뿔고둥은 주로 대합조개와 함께 다녔는데, 선(gland)에서 분비되는 염료만 빼내고 다시 바다에 놓아 주곤 했다.
쁠고둥에서 뽑은 자주색 염료의 대용으로 초막절 때 흔드는 네 가지 식물 가운데 하나인 화석류(myrtle)가 사용되기도 했지만, 이것은 가격이 저렴한 대신 햇빛에 노출되면 색깔이 금방 바래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뿔고둥의 자색 염료는 한 번 염색되면 색깔을 빼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염색 효과가 강력했다.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한 번 물들이면 잘 빠지지 않는 자색 염료와 비교해서 설명한 바 있다. 쉽게 빠지지 않는 쁠고둥의 자주색 염료를 생각할 때, 주홍(진홍) 같은 죄를 눈처럼 희게 할 수 있는 능력이라면 어떠한 죄도 깨끗이 사할 수 있지 않겠는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 사 1:18
자주색은 최상위 3퍼센트의 상류층을 위한 색깔
비싼 가격과 복잡한 공정 때문에 ‘자주색’은 왕족(royal family)이나 귀족(noble man)을 의미하는 색깔이었다. ‘Blue-blooded family’가 ‘유서깊은 귀족 출신의 집안’을 가리키고, 우리말로는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사람’이라고 부르듯이, 성서시대에는 ‘자주색’이 그러한 의미를 가졌다. 소위 말하는 상위 3퍼센트에 속하는 상류 계층을 나타내는 색깔이 ‘자주색’이었던 것이다. 성서시대에 전체를 자주색으로 염색한 겉옷은 오늘날의 화폐 단위로 1억 원가량의 가치가 있었다. 당연히 이런 겉옷은 왕 이외에는 아무나 입을 수 없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드셨던 '부자와 거지 나사로’ 속에 나오는 부자는 얼마나 큰 부차였을까? 1세기 유대인들은 그가 어마어마한 부자라는 것을 간파했다. 바로 부자가 ‘자색으로 물들인 겉옷’을 입었기 때문이다. 이런 부자가 거지 나사로에게 빵 한 조각 건네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이다.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 눅 16:19-21
잠언 31장에 나오는 현숙한 여인 역시 당시에 귀부인들이나 입을 수 있는 ‘자색 옷’을 입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는 자기를 위하여 아름다운 이불을 지으며 세마포와 자색 옷을 입으며 - 잠 31:22
자색은 아가서 기자가 사랑하는 여인의 입술을 묘사할 때도 등장한다.
네 입술은 홍색 실 같고 네 입은 어여쁘고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한 쪽 같구나. - 아 4:3
예수님은 온 우주를 다스리는 ‘만왕의 왕’(King of king)이시지만, 이 땅에 성육신하신 모습은 전혀 왕으로서의 풍채를 갖고 있지 않았다. 예수님은 일생 가난했으며 사회적 약자들과 소외된 자들을 찾아다니신 섬김의 왕이셨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홈모(欽慕)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 사 53:2
이런 예수님도 '만왕의 왕’으로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 있었는데, 그것은 빌라도 총독 앞에서 심문을 받으실 때였다.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 마27:11
이에 로마 군인들은 ‘유대인의 왕’이라고 주장하는 예수님께 당시 왕 들만 입을 수 있던 자주색 겉옷인 ‘홍포’를 구해 입혀 주면서 온갖 조롱을 해댔다.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 지어다 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희롱을 다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 마 27:27-31
이 땅에 성육신하신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지만 왕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으셨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왕이신 예수님의 모 습이 드러난 유일한 순간은 로마 군인들에게 조롱 받으며 '홍포’를 입은 때였다. 이 땅에서 예수님의 삶은 한마디로 '권리 포기’와 '내려놓음’의 삶 이었던 것이다.
청색 계열 자주색과 제사장 나라
자주색 염료는 청색 계열의 자주색(blush purple)과 홍색 계열의 자주색(reddish purple)으로 나뉘었다. 청색 계열의 자주색은 이스라엘 백성이 옷단 술에 염색하는 색깔이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대대로 그들의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민 15:38)
흰색의 옷단 술 가운데 일부를 청색으로 염색하도록 한 것은 청색이 제사장의 색깔이기 때문이다. 대제사장이 입는 '겉옷’은 청색이었다.
너는 에봇 받침 겉옷을 전부 청색으로 하되(출 28:31)
이스라엘 백성 모두 옷단 술의 일부를 청색으로 염색해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의 백성으로 부르신 목적에 부합한다. 아울러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한 성도가 된 우리도 이스라엘과 합하여 ‘제사장나라’가 된 것이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 출19:5~6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 벧전 2:9
이스라엘 백성이 겉옷에 다는 옷단 술에 청색 염료를 물들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재정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말씀에 순종할 때 약속의 땅에서 복을 받고 그들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고 하셨는데, 이것 역시 옷단 술의 염료와 관련해서 이해하면 그 의미가 새로울 것이다. 모든 사람이 자기의 옷단 술을 청색으로 염색할 정도 로 잘살게 될 것이라는 말씀인 것이다. 즉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순종할 때 이스라엘에는 극빈자가 없이 모두 잘사는 복지국가가 될 것이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 신 15:4
그렇다면 두아디라 성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인 루디아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루디아는 빌립보에서 상당히 영항력있는 재력가였을 것이다. 그녀가 상대하던 고객들 역시 상류층 3퍼센트에 속하는 VIP였을 것이다. 하나님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순종한 바울에게 루디아를 선교 사역의 조력자로 붙여 주셨다. 루디아는 앞으로 바울을 통해 펼쳐질 유럽에서의 선교 사역을 위한 든든한 ‘스폰서’요 ‘물주’였던 것이다.
자주 염색은 페니키아의 독점 사업
성서시대에 염색은 ‘천’(cloth)이 아닌 ‘실’(thread) 상태에서 이뤄졌다. 당시는 염색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기에 실 상태에서 염색하는 것이 훨씬 수월했다. 아주 가난한 사람들은 아무런 염색 없이 자연적인 섬유 색깔의 옷을 입었지만, 대다수의 평민들은 동물, 식물, 광물 등 주변에서 흔하게 얻을 수 있는 염색 재료를 이용해 옷감에 염색을 했다. 그러나 이중 유일 하게 제외되는 색깔이 바로 ‘자주색’(purple) 계열의 염색이었다.
자주색 염색은 두로(Tyre) 지방에서 독점으로 이뤄졌는데 가격도 비싸고 공정도 복잡했다. 두로 사람들은 자주색 염색의 비법을 공개하지 않았고, 두로가 위치한 페니키아 사람들은 당대에 알려진 최고의 염색 ‘달인’이었다. 이들의 국명 ‘페니키아’(Phoenicia) 역시 ‘자주색 염료’를 뜻하는 헬라어로서, 페니키아는 자주색 염색업으로 유명한 나라였다.
자주색 염료는 ‘뿔고둥’(murex snail)으로 불리는 달팽이의 하부 기관지선(hypo bronchial gland)에서 극히 소량 얻을 수 있었는데, 그나마 두로가 위치한 지중해 해변에서만 잡을 수 있었다. 50cm의 천을 자주색으로 염색하려면 1만 마리의 뿔고둥을 잡아야 했던 만큼 자색 옷감은 귀했다.
뿔고둥은 주로 대합조개와 함께 다녔는데, 선(gland)에서 분비되는 염료만 빼내고 다시 바다에 놓아 주곤 했다.
쁠고둥에서 뽑은 자주색 염료의 대용으로 초막절 때 흔드는 네 가지 식물 가운데 하나인 화석류(myrtle)가 사용되기도 했지만, 이것은 가격이 저렴한 대신 햇빛에 노출되면 색깔이 금방 바래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뿔고둥의 자색 염료는 한 번 염색되면 색깔을 빼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염색 효과가 강력했다.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한 번 물들이면 잘 빠지지 않는 자색 염료와 비교해서 설명한 바 있다. 쉽게 빠지지 않는 쁠고둥의 자주색 염료를 생각할 때, 주홍(진홍) 같은 죄를 눈처럼 희게 할 수 있는 능력이라면 어떠한 죄도 깨끗이 사할 수 있지 않겠는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 사 1:18
자주색은 최상위 3퍼센트의 상류층을 위한 색깔
비싼 가격과 복잡한 공정 때문에 ‘자주색’은 왕족(royal family)이나 귀족(noble man)을 의미하는 색깔이었다. ‘Blue-blooded family’가 ‘유서깊은 귀족 출신의 집안’을 가리키고, 우리말로는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사람’이라고 부르듯이, 성서시대에는 ‘자주색’이 그러한 의미를 가졌다. 소위 말하는 상위 3퍼센트에 속하는 상류 계층을 나타내는 색깔이 ‘자주색’이었던 것이다. 성서시대에 전체를 자주색으로 염색한 겉옷은 오늘날의 화폐 단위로 1억 원가량의 가치가 있었다. 당연히 이런 겉옷은 왕 이외에는 아무나 입을 수 없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드셨던 '부자와 거지 나사로’ 속에 나오는 부자는 얼마나 큰 부차였을까? 1세기 유대인들은 그가 어마어마한 부자라는 것을 간파했다. 바로 부자가 ‘자색으로 물들인 겉옷’을 입었기 때문이다. 이런 부자가 거지 나사로에게 빵 한 조각 건네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이다.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 눅 16:19-21
잠언 31장에 나오는 현숙한 여인 역시 당시에 귀부인들이나 입을 수 있는 ‘자색 옷’을 입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는 자기를 위하여 아름다운 이불을 지으며 세마포와 자색 옷을 입으며 - 잠 31:22
자색은 아가서 기자가 사랑하는 여인의 입술을 묘사할 때도 등장한다.
네 입술은 홍색 실 같고 네 입은 어여쁘고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한 쪽 같구나. - 아 4:3
예수님은 온 우주를 다스리는 ‘만왕의 왕’(King of king)이시지만, 이 땅에 성육신하신 모습은 전혀 왕으로서의 풍채를 갖고 있지 않았다. 예수님은 일생 가난했으며 사회적 약자들과 소외된 자들을 찾아다니신 섬김의 왕이셨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홈모(欽慕)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 사 53:2
이런 예수님도 '만왕의 왕’으로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 있었는데, 그것은 빌라도 총독 앞에서 심문을 받으실 때였다.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 마27:11
이에 로마 군인들은 ‘유대인의 왕’이라고 주장하는 예수님께 당시 왕 들만 입을 수 있던 자주색 겉옷인 ‘홍포’를 구해 입혀 주면서 온갖 조롱을 해댔다.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 지어다 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희롱을 다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 마 27:27-31
이 땅에 성육신하신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지만 왕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으셨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왕이신 예수님의 모 습이 드러난 유일한 순간은 로마 군인들에게 조롱 받으며 '홍포’를 입은 때였다. 이 땅에서 예수님의 삶은 한마디로 '권리 포기’와 '내려놓음’의 삶 이었던 것이다.
청색 계열 자주색과 제사장 나라
자주색 염료는 청색 계열의 자주색(blush purple)과 홍색 계열의 자주색(reddish purple)으로 나뉘었다. 청색 계열의 자주색은 이스라엘 백성이 옷단 술에 염색하는 색깔이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대대로 그들의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민 15:38)
흰색의 옷단 술 가운데 일부를 청색으로 염색하도록 한 것은 청색이 제사장의 색깔이기 때문이다. 대제사장이 입는 '겉옷’은 청색이었다.
너는 에봇 받침 겉옷을 전부 청색으로 하되(출 28:31)
이스라엘 백성 모두 옷단 술의 일부를 청색으로 염색해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의 백성으로 부르신 목적에 부합한다. 아울러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한 성도가 된 우리도 이스라엘과 합하여 ‘제사장나라’가 된 것이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 출19:5~6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 벧전 2:9
이스라엘 백성이 겉옷에 다는 옷단 술에 청색 염료를 물들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재정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말씀에 순종할 때 약속의 땅에서 복을 받고 그들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고 하셨는데, 이것 역시 옷단 술의 염료와 관련해서 이해하면 그 의미가 새로울 것이다. 모든 사람이 자기의 옷단 술을 청색으로 염색할 정도 로 잘살게 될 것이라는 말씀인 것이다. 즉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순종할 때 이스라엘에는 극빈자가 없이 모두 잘사는 복지국가가 될 것이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 신 15:4
그렇다면 두아디라 성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인 루디아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루디아는 빌립보에서 상당히 영항력있는 재력가였을 것이다. 그녀가 상대하던 고객들 역시 상류층 3퍼센트에 속하는 VIP였을 것이다. 하나님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순종한 바울에게 루디아를 선교 사역의 조력자로 붙여 주셨다. 루디아는 앞으로 바울을 통해 펼쳐질 유럽에서의 선교 사역을 위한 든든한 ‘스폰서’요 ‘물주’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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