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도를 펼쳐놓고 은둔할 곳을 찾았다. 손은 저절로 삼척과 태백, 울진, 봉화 쪽 페이지를 더듬었다. 화전민의 후예가 살고 있는 심심산골의 덕풍계곡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이곳이다. 내 마음 속 꿈꾸었던, 언젠가 꼭 가보려 했던 오지.
‘먼 길’이란 방패막으로 사람의 발길을 피해 숨어왔던 그곳. 사람들의 눈을 피해 눈부신 비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숨겨진 땅 그곳으로 풍덩 몸을 던졌다.
삼척과 울진의 경계에 1,000m에서 1m 모자란 높이의 응봉산이 있다. 주변의 산에 비하면 대단한 높이는 아니지만 산이 품은 골짜기 만큼은 전국의 어느곳에 뒤지지 않는다.
덕풍계곡, 구수골, 덕구계곡 등 절경의 계곡을 여럿 품고 있다. 이중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의 덕풍계곡은 지리산의 칠선계곡, 내설악의 백담계곡 등과 어깨를 견줄 만한 아름다운 계곡이다.
덕풍계곡의 상류인 용소골은 깎아지른 벼랑과 폭포, 깊은 소들이 산재해 등산인들에게는 모험적인 산행지로 알려져 있다.
덕풍계곡의 시작은 가곡산휴양림 입구인 풍곡리. 풍곡초등학교 앞에 넓은 주차장이 마련돼 있다. 덕풍계곡을 따라 6km 되는, 차 한 대 겨우 지날 길이 뚫려있다. 덕풍마을을 잇는 길이다. 차가 다닐 수 있는 가파르지 않은 이 길은 가족이 함께 하기 좋은 트레킹 코스다.
하얀 계곡이 고아낸 맑은 물이 티끌 하나 없이 명징하다. 바위에 뿌리를 박은 소나무들이 맑은 소 위에 초록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덕풍마을은 덕풍계곡 길의 끝이자 용소골 탐방의 시작점이다. 첩첩산중의 이 마을엔 13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이 산골도 40~50년 전에는 석탄 광산과 목재를 베는 산판이 있어 300가구 이상이 북적거리며 살았다고 한다.
마을을 잇는 계곡길이 생긴 건 10년도 채 되지 않았다. 이전엔 산허리를 휘휘 도는 산길로 풍곡이나 서포로 나가야 했다. 4륜 구동의 차량으로 1시간 반 가량 걸렸다고 하니 도보로 4~5시간은 족히 걸렸을 길이다.
계곡으로 난 길도 태풍 루사와 매미에 휩쓸려 오랫동안 끊겨있기도 했다. 루사와 매미는 논들을 죄다 쓸어버려 주민들은 논농사 대신 텃밭을 일구고 벌을 치며, 간혹 마을을 찾는 등산객들에게 방을 빌려주며 살고 있다.
덕구계곡의 비경은 용소골에서 더욱 화려해진다. 마을 토박이인 덕풍산장의 이희철(57)씨는 “계곡은 아름답지만 또 그만큼 위험하다”고 했다. 길이 따로 나 있지 않아 계속 계곡을 길 삼아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비라도 내리면 바위는 아주 미끄러워지고 그나마 발을 디딜 곳도 물에 잠겨버린다. 큰 비가 오면 갑자기 물이 불어나 양쪽 절벽을 물길 삼아 급하게 흘러내려 입산이 철저히 금지된다.
용소골엔 3개의 용소폭포가 있다. 제1용소까지는 2km. 제2용소는 여기서 2km를 더 올라야 한다. 이씨는 “제3용소까지 다녀오려면 왕복 7~8시간이 걸린다”며 제2용소까지만 다녀올 것을 권유했다.
마을을 지나는 오솔길은 바로 계곡으로 안내한다. 넓은 암반 위로 흐르는 맑은 물을 깎아지른 벼랑들이 병풍처럼 둘러섰다. 바위 병풍을 굽이돌 때마다 새로운 장관이 쉼없이 펼쳐졌다.
30분쯤 걸어왔나, 갑자기 물소리가 커졌다. 길은 벼랑으로 안내했다. 벼랑에 달린 굵은 동앗줄을 부여잡고 한걸음 한걸음 폭포 옆으로 올랐다. 제1용소다. 하얀 물줄기가 내려꽂히는 용소는 시커멓다. 그 속이 얼마나 깊기에 이 맑은 물이 저처럼 검은 빛을 띄는걸까.
제1용소를 뒤로 하고 또 올랐다. 동앗줄을 부여잡고 4,5m 되는 바위를 타야 하는 길이 더 많이 나타났다. 아무도 없는 계곡, 휴대폰도 통하지 않았다. 겁이 났지만 쉽게 찾아오기 힘든 곳. 용기를 내서 걸음을 옮겼다.
중간에 만난 깊은 물웅덩이가 시선을 잡아끌었다. 폭포도 없는데 물 속의 암반 한가운데 고래 모양의 깊은 구멍이 뚫렸다. 비취빛 물 속에서는 작은 물고기들이 떼로 헤엄을 치고 있었다. 이씨가 일러준 ‘오강소’인가보다. 방안에서 볼일 보는 ‘요강’을 닮았다 해서 이름이 지어졌단다.
드디어 제2용소에 닿았다. 코끼리 코 같은 물미끄럼대를 타고 시원스레 쏟아져 내려오는 폭포수. 보석을 흩뿌려놓은 듯 깊고 짙은 소 위로 빛도 함께 부서져 내렸다.
이씨 설명에 40여년 전 이 소의 깊이를 잰 적이 있다고 했다. 용소골 골짜기는 일제 때 금강송을 베어 날랐던 곳. 목재를 나를 때 쓰던 레일 등 철근 자재가 계곡에 많이 떠내려갔다. 쇠값이 비싸던 시절, 이 용소에 그 쇠붙이들이 많이 빠져있을 거란 생각에 물길을 옆으로 돌리고 제2용소의 물을 뽑아냈다.
이씨는 “깊이가 한 20m 됐을까. 완전히 동그란 항아리 모양이었다”고 생생히 기억했다. 소의 바닥에는 조그만 자갈만 평평하게 깔려있었고 물 퍼낸 이들이 꿈꿨던 쇠붙이는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
새벽같이 찾아왔으면 3개의 용소 중 가장 아름답다는 제3용소도 봤을텐데. 아쉬움을 뒤로 하고 몸을 돌렸다.
덕풍계곡 인근에는 또 하나의 숨은 비경 미인폭포가 있다. 신리 너와마을 삼거리를 지나 통리역에 이르기 직전에 '미인폭포ㆍ혜성사'라 적힌 작은 이정표를 만날 수 있다. 좁은 길을 따라 얼마 안 가 차 대여섯 대를 댈 수 있는 좁은 공터가 나왔다. 차를 대고 오솔길로 걸음을 옮겼다. 짙은 녹음을 휘휘 돌아 내려간 길은 산허리에 아담하게 둥지를 튼 암자 혜성사로 안내했다. 절 마당으로 길은 이어졌고 절 문을 나서자 우렁찬 물소리가 들려왔다. '옛날 절세의 미인이 완벽한 신랑감을 기다리며 세월을 보내다, 물에 비친 자신의 늙은 모습을 보고 뛰어내렸다' 혹은 '미인이 결혼했다가 남편이 일찍 죽어 재가했지만 둘째 남편도 얼마 못 가 세상을 뜨자 이 폭포에 몸을 던졌다'고 하는 전설이 전해지는 미인폭포다. 어떤 미인이 떨어졌는지 모르겠지만 폭포는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다웠다. 30m 높이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는 거셌다. 뙤약볕을 잔뜩 담은 물이 내리치며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물방울을 튕겨낸다. 통쾌한 물줄기, 가슴속까지 시원하게 한다. 폭포에서 눈을 돌리면 거대한 붉은 암벽이 펼쳐진다. 폭포보다도 더 가슴에 깊은 울림을 주는 통리협곡이다. 깎아지른 붉은 암벽엔 마치 책을 층층이 쌓아놓은 듯한 줄무늬들이 이어졌다. 그 붉은 빛, 그리고 강물이 깎아내 만든 생성의 비밀이 미국의 그랜드캐년과 똑같다고 한다. 지질학자들이 통리협곡을 '한국의 그랜드캐년'이라고 일컫는 이유다. 너른 고원을 오십천 강물이 깊게는 270m를 파고 내려와 너울너울 굽이쳐 흐르는 곳. 심한 단층운동과 강물의 침식으로 V자형 골짜기를 이룬 웅장한 통리협곡이다. 미인폭포는 통리협곡의 시작점이자 통리협곡을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포인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