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란 무엇인가?
‘소유’ 는 행복을 위한 상대적 조건은 될수있어도 행복 그 자체는 아니다. 될수도 없다. 행복은 철저히 한 개인의 ‘자기느낌’ 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누구라도 행복해 질수있다.
행복의 보편성은 그래서 또 하나의 비밀이다. 행복은 피안의 어떤것이 아니다. 지금 내 앞에 와 있는 불꽃같은 신호들이다.
우리나라 헌법 제10조 제1문 후단은, ‘모든 국민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고하여 행복추구권을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행복추구권이란 안락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추구할수 있는 권리라고 정의할수 있다. 너무나 당연한 일을 헌법으로까지 규정하는것은 그 반대 상황을 알면 이해할수 있다.
북한은 어떤 개인도 직업선택의 자유, 거주이동의 자유는 물론 돈이 있어도 해외여행을 할수없다. 국가권력이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억압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와 전체주의 국가는 개인의 기본권에서 분명하게 갈라진다. 우리가 스스로 자기의 행복을 추구할수 있는것은 헌법이 이를 보장해 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살고있기 때문이다. 실정법을 어기지 않는한, 극것이 악이아니고 이웃에 폐가 되지않는한 우리 모두는 국가의 간섭없이 자유스럽게 자기의 행복을 위해 노력할수 있다. 행복추구권이 법으로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릇, 모든 목적은 그것을 추구하기전에 그 목적의 뜻을 분명히 정의할 필요가있다. 그래야 목표가 뚜렷해지고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그것을 추구할수 있다. 행복을 추구한다고 할때도 마찬가지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이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자기나름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 행복은 실체가 없는 ‘주관적개념’ 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행복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추구하는것과 막연하게 생각하고 노력하는것은 전혀다른 결과를 만나게 된다. 행복은 음식의 맛처럼 계량화 할수없는 아주 복잡한 개념이다. 같은 음식에 대해 그 맛이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듯 행복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는 최선을 다해 행복을 추구한다. 행복은 그만큼 좋은것 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불행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그래서 더더욱 행복에 대한 연구를 해야한다. 행복이라는 목표가 올바른 목적이 되기위해서도 그렇다.
행복(幸福)이란 무엇인가. 우선 하나의 규범적 해석이 될수있는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자. ‘사람이 그 생활속에서 기쁘고, 즐겁고, 만족,을 느끼는 상태에 있는것’ 이다.
기쁜다는것은, 좋은일이 생기거나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거나 어려운 문제가 해결되어 기분이 좋고 흡족한 것이다. 즐겁다는 것은, 어떤일, 상황, 활동등이 쾌감이나 만족을 주어 기분이 좋은상태다. 만족은, 어떤일에 부족함이나 모자람이 없이 좋은 느낌이나 기분을 가지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전적 해석은, 행복의 조건이 물리적인것과 정신적인것이 함께 있어야 가능해 진다는 뜻이다. 기본적 으로는 맞는 해석이다. 물질적 조건이 충족되었을때 그것에 대해 느끼는 인간의 정신-만족감이 따르기 때문이다. 이 얘기는 행복은 물질만 으로도, 정신-개념만 으로도 이루어질수 없다는 뜻이다. 물론 극단적인 인간행위-종교적 수행은 예외라고 할수있다.
이제 평균적 한국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행복의 물질적 조건들을 설문조사를 통해 알아보자.
부채없는 아파트 30평 이상, 월 수입이 500만원 이상, 2000cc급 이상의 자가용 승용차, 예금잔액 1억원 이상, 일년에 한번정도의 해외여행 이었다. 사실 이 정도면 ‘행복할수 있는 기본조건’ 은 갖추는 셈이다.
우리가 선진국 이라고 부르는 프랑스, 영국, 미국등의 경우 위의 다섯가지 조건외에 더해지는것들이 있다. 한가지 이상의 외국어 구사능력, 전문적으로 할수있는 스포츠종목 하나, 남과다른, 자기만의 요리 레시피 한가지, 악기 한가지는 연주할수 있어야 하고, 사회적 공분에 참여할수 있는 정의감, 비평서 한권이상 구독, 사회적 약자를 돕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것 등이다.
우리처럼 경제적 기준에만 매이지 않고있는게 특징이다. 삶의 폭이 그만큼 넓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특히 남을위한 봉사활동을 통해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게 선진국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들처럼 GDP가 3만불 이상이면 이런 생활이 가능해 진다.
연세대학의 서은국 교수는 ‘행복심리학’ 을 전공하고있다. 이제 그의 학문적 주장을 요약해 들어보자. ‘행복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인은 선천적 기질이고, 다음이 문화적 환경이다.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가치관, 규범이 사회구성원의 행복감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한국처럼 어느대학에 가고, 몇평짜리 아파트에 사느냐같은 획일적 잣대로 개인을 평가 하는 사회에선 행복도가 낮을수밖에 없다.‘ 앞에 지적했던 평균적 한국인의 다섯가지 기본조건은 행복에 대한 근본적인 설명은 될수없다는 얘기다. 그는 이어서,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폴과 같은 아시아 신흥 경제국들이 그 경제력에 비해 행복도가 떨어지는 이유는 강압적이고 수직적인 공동체 문화에서 찾을수 있다.‘ 고 한다. 우리의 ‘대학입시문화’ 가 대표적일 것이다.
서교수의 결론은, ‘인간은 의식주가 해결되면 정서적인 면에서 행복을 찾게된다. 이는 국가가 (복지등으로) 해결해 줄수없는 문제다. 행복은 목표가 아니라 인간이 뭔가를 하도록 하는, 불이 반짝이는 신호같은 것이다.‘ 라고 주장한다.
범어사 방장(方丈)이신 지유스님(82)은, ‘무엇을 깨달았느냐고 물으면 아무것도 깨달은것이 없다고 할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내가 숨쉬고 말하고 있다는것은 알고있어, 지난 과거나 오지않은 미래에 연연하지 않고 항상 지금으로 살아야지.‘ 욕심을 내서 해석하자면, ‘지금의 상태’ 가 가장 행복하다는 말씀이 아닐까. 스님은 계속해서 이런 얘기도 하셨다. ‘달마조사를 찾아온 혜기가 번민을 얘기하자 조사께서 그걸 가져오라고 했어, 어찌 실체가 없는걸 가져올수 있겠나.‘ 번민-고통이 실체가 없는것 이라면 행복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구약성경 시편 제1편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받은 사람에 대해 얘기한다. 악을 꾸미는 자리에 가지않고, 죄인들의 길을 거닐지 않으며, 조소하는 자들과 어울리지 않고, 야훼께서 주신 법을 낙으로 삼아 밤낮으로 그 법을 되새기는 사람이다. 이 말씀안에는 ‘소유’ 는 하나도 없다. ‘어떤 상태’ 만 명시돼 있을뿐이다. 그 상태의 결과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 는 것이다. 정말 놀라운 가르침들이다.
서울시가 발표한 ‘2013년 통계로본 서울남성의 삶’ 에 의하면 앞에 예시했던 5가지 물질적 조건을 다갖춘, 스스로 중산층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20대 이상에서는 20.4%, 50대 이상에서는 25.6% 였다. 소유를 기준한다면 낮은행복도 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앞에서 분석했던 ‘행복’ 의 뜻은 기쁘고, 즐겁고, 만족을 느끼는 것이었다. 하나같이 주관적 개념이다. 개념(槪念)은 철학적인 용어로서 어떤 사물이나 그것을 나타내는 언어가 가지는 기본적인 의미와 내용이다. 말하자면 행복은 ‘느끼는’ 것이다. 기쁜것도, 즐거운것도, 만족해 하는것도 모두가 우리의 ‘느낌’ 이다. 느낌은 개인에 따라 다르고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수학적 계량화(計量化) 가 불가능하다. 실로 행복의 놀라운 비밀이 여기에 있다. 가장 주관적인것, 자기만의것, 자기에게 절대적인것, 그것이 개인의 ‘참행복’ 인 것이다. 그래서 행복은 비교할 필요가 없다. 상대적인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갑의 행복을 을이 설명할수 없고, 을의 행복을 갑이 설명할 수가 없다. 행복에 대한 조건과 그 느낌이 갑과을 모두에게 비교할수 있는 상대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느끼는 행복감은 절대로 나만의 고유한 것이다. 이 글을 쓰고있는 나 역시 그 누구의 행복에 대해서도 어떤 평가나 설명도 할 수가 없다. 엄격히 말해 나는 내 행복에 대해서만 얘기할수 있을뿐이다. 그리고 그 얘기가 다른이들에게 참고가 되기를 기대할 뿐이다. 지금의 은퇴생활에서 내가 행복을 느끼는 통로는 크게 네가지다. 우선 독서가 그 하나다. 내가 제일좋아 하는것이 책이고 그 책을 읽는 독서다. 책을 선별하고, 주문하고, 배달된 책의 포장을 풀고, 책의 무게와 냄새에서 벌써 행복해 지기 시작한다. 가장 조용한시간, 안락의자에 깊숙이 앉아 따뜻하고 밝은 조명 아래에서 책을 읽는 행복은 필설로 다 설명할 수가 없을정도다. 종이책은 인류가 남긴 위대한 문화적 유산이다. 따라서 책은 없어질수 없는 인류의 자산이기도하다. 종이책은 검색의 대상이 아니다. 다음이 음악을 듣는시간, 나는 목관, 금관, 현악기와 함께 타악기까지 연주했으며 베이스파트에서 하이든의 ‘천지창조’ 와 헨델의 ‘메시아’ 를 연주한 경험이 있다. 따라서 모든 장르의 음악을 거의 전문적 수준에서 들을수 있다. 그래서 행복하다. 거기에 더해 지금은 첼로를 연주하고 있다. 악기는 인간의 영원한 반려라고 할수있다. 음악은 내 생활의 일부분이며 하루도 음악없이 지내는 일은 없다. 그 다음이 영화감상이다. 중학교때 흑백의 무성영화를 보기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나는 영화광이다. 엄선한 영화 500여편을 가지고 있다. 1961년 J. 리 톰슨의 ‘나바론 요새’ 1962년 윌리엄 와일러의 ‘벤허’ 1978년 로버트 와이즈의 ‘사운드 오브 뮤직’ 1986년 스티븐 스필버그의 ‘컬러 퍼플’. 1993년 데이빗 린의 ‘아라비아의 로렌스’ 와 같은 고전들은 언제나 다시보는 명화들이며 감동도 그만큼 크다. 최근의 것으로는 2009년에 개봉한 제임스 케머런의 ‘아바타’ 가 있다. 영화사에 하나의 획을 그을만한 영화다. 2011년 5월에 개봉한, 던칸 존스 감독의 ‘소스코드’ 는 이쪽차원과 저쪽차원을 연결해 보려는 특이한 SF 로서 그 대담성이 돋보이는 영화였다. 그리고 얼마전 케서린 비글로우의 ‘제로다크 서티’ 를 흥미진진하게 봤다. 내용만큼 대본이 탄탄한 영화였다. 내게있어 영화는 상상력의 보고라고 할수있다. 사람은 상상력이 없으면 글을쓰지 못한다. 생활도 윤택해 질수가 없다. 상상력이 없는생활은 말라죽은 나무와 하나도 다를게 없다.
책을읽고, 음악을 듣고, 악기를 연주하고, 영화를 감상하는것은 모두가 ‘지금’ 하고 있는, 내가 하고있는 일 들이다. 어제는 과거이며 내일은 아직 오지않았다. 그래서 ‘지금’ 여기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것이 내게는 행복의 시간들이다. 이 행복은 나만의 느낌이며 다른 어떤것과도 비교될수 없는 절대적인 것들이다. 다른것, 타인의것이 들어설 틈이 전혀없는 주관적 느낌일 뿐이다.
‘소유’ 는 행복을 위한 상대적 조건은 될수있어도 행복 그 자체는 아니다. 될수도 없다. 행복은 철저히 한 개인의 ‘자기느낌’ 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누구라도 행복해 질수있다.
행복의 보편성은 그래서 또 하나의 비밀이다. 행복은 피안의 어떤것이 아니다. 지금 내 앞에 와 있는 불꽃같은 신호들이다. (옮긴글) 바다를 보는 눈은 사람마다 다르다.-yorowon. |
출처: 竹馬故友 원문보기 글쓴이: 오인의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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