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여행(2)
<2024. 09. 08(일)~2024. 09. 10(화), 2박 3일>
동대문 DDP(Dream, Design, Play)
서울특별시 중구의 전시장 및 쇼핑몰. 영국의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했다.
홈페이지에 따르면 세계 최대 규모의 3차원 비정형 건축물이라고 한다.
2007년 동대문운동장이 철거된 이후 동대문운동장에 대한 개발 정책의 일원으로
세워지게 되었으며 2008년에 착공하여 6년 만인 2014년 3월에 개장하였다.
현재 운영 기관은 서울시 출연기관인 서울디자인재단이며
2009년에 먼저 개장한 동대문역사문화공원과 더불어 총 관리를 하고 있다.
동대문 생선구이 골목에서 저녁먹고 창경궁으로~~~
창경궁(昌慶宮)
사적 제123호, Changgyeonggung Palace
왕의 숲이 건네는 따스한 위안
조선시대에는 창덕궁과 더불어 동궐로도 불렸으며 종묘와도 연결돼 있다.
경복궁, 창덕궁의 남향 배치와 다른 동향 배치로 왕실의 별궁으로 쓰였다.
창경궁/홍화문(昌慶宮/弘化門)
창경궁의 정문. 조선 중기에 만든 문이나 조선 초기 양식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보물 제384호이다.
고유의 아름다움이 일부 퇴색되기는 했지만, 17세기 초반 목조건축의 연구자료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건물이다.
창경궁/명정문(昌慶宮/明政門)
창경궁의 정전인 명정전의 정문이다.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으로 들어와 옥천교를 건너면 바로 보인다.
광화문에서 근정문까지 일직선으로 이어져있는 경복궁과 비슷하지만,
경복궁엔 중문이 있고, 창경궁엔 없는 것이 다르다.
경복궁은 예법에 따라 반듯하게 구획한 정궁인 반면,
창경궁은 애초 대비궁의 개념으로 지은 것이기 때문이다.
창경궁-명정전(昌慶宮/明政殿)
창경궁의 정전.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거나 국가 의식을 거행하는 곳이다.
창경궁의 정문 홍화문으로 입궐했을 때 옥천교를 건너 명정문을 통해 바로 정면에 보인다.
N285 호텔 인사동
인사동에서 투어를 시작하고 강북지역의 랜드마크를 위해 선택한 호텔이었다.
투숙평가는 so so ....
외국 나갈 때 숙소 자주 이용하는 앱인 부킹닷컴에서 평가도 좋고 하여 선택한 곳인데
그저 그럭 저럭.... 가성비도 별로였고,
다음에 또 이용할 의사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No~~~~다음에는 사양~~~
1인 숙박에는 그럭저럭 Not so bad
[2일차 : 2024년 09월 09일(월)]
(종묘/광장시장/동대문 DDP/이태원 세계음식거리/한강크루즈)
종묘(宗廟)
박석의 삼도를 따라, 왕의 혼을 따라
서울특별시 종로구 훈정동 1-2번지에 자리한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 및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神主)를 모신 조선 왕실, 대한제국 황실의 유교 사당.
면적은 186,786 ㎡. 태묘(太廟)라고도 한다.
'종묘사직'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 전제왕조 당시 왕실과 나라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물 중 하나였다.
1963년 1월 18일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1995년 12월 6일 독일 베를린에서 개최된
제19차 세계유산위원회(World Heritage Committee)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해설사와 함께 하는 종묘 투어~~~~
종묘-정전(正殿)
대한민국의 국보 제227호이다.
종묘의 중심건물로서 좁은 의미로는 이 건물이 곧 종묘이다.
태조를 비롯하여 임금의 신주 19위, 왕후의 신주 30위 총 49위가 모셔져 있다.
정전의 남쪽 중앙에는 혼과 향로를 모시는 신문(神門)이,
동쪽에는 제례 때 제관이 출입하는 동문(東門)이,
서쪽에는 악공, 일무원, 종사원 등이 출입하는 서문(西門)이 있다.
정전의 전면에는 길게 다듬은 돌을 쌓아 만든 동서 109m, 남북 69m의
넓은 월대를 조성했으며 그 가운데에는 정전의 신실로 통하는 신로(神路)가 남북으로 나 있어
사묘 건축으로서의 품위와 장중함을 나타낸다.
종묘-영녕전(永寧殿)
대한민국의 보물이다. 정전에서 옮겨진 제왕과 왕후,
그리고 추존된 제왕과 왕후의 신주를 모시고 있는 별묘(別廟)로 정면 16칸, 측면 4칸의 건물이다.
영녕전(永寧殿)이라는 이름은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國以永寧 爰及苗裔(나라가 길이 평안하게 후손에게 물려지리라)’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세종 3년(1421년) 5묘제의 관습에 따라 정전에서 나와야 하는 선조들의 신주를 모시기 위해 건립되었다.
간단히 말하면 ‘조금 덜 중요한 임금들’의 위패가 모셔진 곳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당시 재위 중인 임금을 기준으로 5대 이전의 임금들의 신주는
영녕전으로 옮기는 것이 원칙이고, 그 중 공적이 특별히 뛰어나다고 인정된 임금들만
예외적으로 정전에 계속 모셔두는 것이다.
영녕전에는 제왕의 신주 16위, 왕후의 신주 18위 총 34위가 모셔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