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빌4:17)
바울이 빌립보교회가 보낸 연보에 대해 기뻐한 이유는 그 돈보다 그들의 믿음의 싹이었습니다(빌4:10) 옛적의 사람들이 사람을 평가할 때에 싹이 노랗다는 말을 많이 썼습니다. 그러나 빌립보교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는 싹을 보였습니다. 삭개오가 주님을 만나 구원을 받는 과정을 보면 나무에 올라가므로 존재가 포기 되고 주님을 영접한 후에 소유가 포기된 후에 드디어 구원이 선포가 됩니다(눅19:1:10) 지금의 기독교는 성도의 삶의 지표를 너무 높이 잡아 그렇게 살지 않으면 복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만족이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옛날에 비해 엄청 잘 살지만 주님께 인색한 이유가 아닌가 여겨집니다.
제가 선교사 초기에 만나는 사람들마다 밥은 거나하게 먹자고 하는데 선교비를 얼마라도 주고자 하는 사람이 적었습니다. 사실 선교현장은 절박하여 밥 한 끼 먹는 돈으로 많은 일을 할 수 있는데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아마 저를 대접하는 분들은 그게 제게 대한 선물이라고 생각했겠지요. 개인적인 부탁입니다만 만일 여러분들이 선교사들을 만나시면 밥 보다 약간의 현금을 드리도록 하세요. 그게 선물은 아니지만 그분들이 아무 말은 않지만 선교비가 절실할 뿐 먹는 것은 그들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실 그때는 선교지에서 버티는 것이 어려우니까 제게도 누군가 하고 은근히 선물을 기다리는 마음이 있었죠. 바울이 위대한 선교사인 것은 그런 마음이 없었다는 겁니다.
오히려 빌립보교회의 선물보다 그들에게 유익하기 위해 풍성한 말씀의 열매를 바랐습니다. 사실 그게 제일 큰 헌물인 겁니다. 주의 종들이 이렇게 까지 되기까지는 긴긴 시간 말씀과 함께 환난과 인내와 연단을 받은 후에 비로소 ‘나를 능하게 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빌4:13)고 선언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선물이 아니라 가는 곳곳마다 그들에게서 그리스도의 생명의 열매를 확인하기 시작합니다. 사실 목회에 제일 고된 점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와 사랑은 전혀 모르고 물질로 수고로 교회를 섬기려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경우를 순교자적인 콤플렉스라고 부르지요. 공동체의 어려움이 자신의 탓이며 책임으로 느껴 그걸 혼자 감당하려는 생각입니다.
목사들이 이를 바로 잡지 못하면 나중에 큰일이 생기죠. 말씀사역만 하는 선교사는 참 어렵습니다. 교회를 짓고 학교를 짓고 뭔가 보이는 퍼포먼스가 있어야 참여하는 사람이 많은데 바울과 같은 선교사들의 괴로움에 참여할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같이 선물을 구하지 않고 오히려 교회의 유익을 위해 풍성한 열매를 구하는 선교사가 되는데 까지 나아가야죠. 반면에 교회는 선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로 섬겨야지요(빌4:18) 바울은 빌립보교회의 풍성한 열매를 바라면서 그의 괴로움에 동참한 빌립보교회의 성숙함에 대해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4:19)고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