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커피를 즐겨 마신다. 중독되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거의 매일 아침 원두를 그라인더로 갈아서 1리터짜리 프렌치 프레스에 넣은 뒤 뜨거운 물을 붓고 10분 후에 플런저를 눌러 찌꺼기는 걸러내고 커피만 따라내 마신다. 하루를 맑은 정신으로 보내려면 커피가 꼭 필요하다. 주말에도 커피가 없으면 안 된다. 어쩔 수 없이 끊어본 적도 있는데 그럴 때는 어김없이 집중력이 떨어졌다. 하루 종일 멍해서 책을 읽고 글을 쓰기가 어려웠다. 진료를 시작할 때 뇌에 시동을 걸려고 한 잔, 점심 먹고 식곤증을 물리치려고 한 잔, 오후에 꺼져가는 뇌에 불꽃을 다시 일으키려고 또 한 잔을 마시다 보면 일일카페인 권장량(하루에 400밀리그램)을 넘기 일쑤다.
매일 커피를 즐긴다고 ‘카페인’에 중독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성인이 섭취하는 카페인 대부분은 커피에서 얻는다. 커피 외에 초콜릿이나 홍차, 녹차, 콜라에도 들어 있지만 커피에 비하면 함량이 낮다. 진통제나 감기약에도 카페인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약은 매일 먹는 것이 아니므로 일일 카페인 섭취 총량에는 크게 기여하지 않는다. 에너지 드링크도 카페인 함량이 높지만 커피보다는 낮다.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톨 사이즈(355밀리리터) 1잔에는 카페인 150밀리그램이 들어 있고, 에너지 드링크 레드불(250밀리리터)에는 62.5밀리그램이 포함되어 있다. 카페인 함량만 놓고 보면, 커피가 최고다.
커피에는 항상 카페인 부작용 경고가 따라붙는다. 고혈압, 심장 질환, 불안장애, 불면증 환자는 커피를 삼가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커피를 습관적으로 마시다 보면 의존하게 된다.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집중력을 발휘하기 힘들고, 의욕이 생기지 않아서 일을 시작하기 어렵다. 커피로 기분을 북돋아주지 않으면 사람을 만나는 것도 귀찮아지고 괜히 짜증을 부리게 된다. 단 한 잔이라도, 장기간 습관적으로 마시면 카페인 의존이 생긴다. 그래서 카페인을 두고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섭취하는 최고의 마약”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한때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카페인을 도핑 물질로 규정하기도 했다.
카페인의 각성 작용은 아데노신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의 작용을 방해해서 얻어지는 효과다. 아데노신은 수면과 이완을 유도한다. 잠을 못 자고 피로해지면 중추신경계에 아데노신 분비가 늘어나서 각성 수준이 낮아지고 졸음이 밀려온다. 동물이 동면에 들어가는 것도 중추신경계에 아데노신이 축적되었기 때문이다. 카페인은 아데노신과 화학구조가 매우 유사해서 아데노신 수용체에 결합할 수 있다. 아데노신 수용체에 아데노신 대신 카페인이 결합하면, 아데노신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카페인의 각성 효과는 안정을 유도하는 아데노신 기능을 억제해서 얻어지는 것이다. 비유해서 표현하면, 카페인은 아데노신이라는 브레이크를 일시적으로 작동하지 않게 해서 뇌라는 자동차가 더 빨리 달릴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카페인 내성도 같은 원리로 설명된다. 카페인이 아데노신 기능을 억제하면, 뇌는 이를 보상하려고 더 많은 아데노신을 생성, 분비한다. 이렇게 되면 이전보다 많은 카페인이 몸에 들어와야 늘어난 아데노신을 억제할 수 있으므로, 같은 수준의 각성 효과를 얻으려면 카페인을 더 많이 섭취해야만 한다.
카페인은 도파민, 글루타민과 같은 흥분성 신경전달물질의 활성도를 높인다. 세로토닌이나 노르에피네프린처럼 기분을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도 활성화시킨다. 카페인이 유도하는 이러한 신경계의 변화는 항우울제를 복용했을 때 일어나는 현상과 유사하다. 카페인이 뇌에서 작동하는 기전과 커피를 마셨을 때 ‘기분이 좋아지고, 정신이 번쩍 들면서, 무엇인가 하고자 하는 마음 상태가 되는’ 경험을 바탕으로 커피가 우울증에 도움이 되는지 연구한 결과들이 보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