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비임비 (부사 : 물건이 거듭 쌓이거나 일이 계속 일어남을 나타내는 말)
하늘은 매섭고 흰 눈이 가득한 날
사랑하는 님 찾으러 천상에 올라갈 제
신 벗어 손에 쥐고 버선 벗어 품에 품고
곰비임비 임비곰비 천방지방 지방천방
한 번도 쉬지 않고 허위허위 올라가니
버선 벗은 발일랑은 쓰리지 아니한데
님 그리는 온 가슴만 신득산득하더라
님 그리는 온 가슴만 신득산득하더라
(이응수 작사, 라원주 작곡, 송골매 노래 <하늘나라 우리 님>
지금은 DJ 겸 MC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배철수가 보컬을 맡았던 노래다(몇 개 낱말을 맞춤법에 따라 바로잡았지만 제목까지 손대기가 뭣해서 ‘님’은 그냥 두었다). 작사자로 돼 있는 이응수도 송골매(아니면 활주로든가) 소속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사실 이 노랫말의 많은 부분은 아래 적은 옛 시조에서 빌려 온 것이다.
보션 버서 품에 품고 신 버서 손에 쥐고 곰븨님븨 님븨곰븨 쳔방지방 지방쳔방 즌 듸 른 듸 갈희지 말고 워렁충창 건너가셔 정(情)엣 말 하려고 겻눈을 흘귓 보니
(「청구영언」에 실린 사설시조 <님이 오마 하거늘> 부분)
위아래를 비교해 보면 ‘곰비임비’의 옛말이 ‘곰븨님븨’임을 알 수 있다. ‘천방지방’은 ‘천방지축’의 동의어로 ‘너무 급해 허둥지둥 함부로 날뛰는 모양’을 뜻하는 말이고, ‘허위허위’는 ‘손발 따위를 이리저리 내두르는 모양’이나 ‘힘에 겨워 힘들어하는 모양’을 나타낸다. ‘산득산득하다’는 ‘싸늘한 느낌이 계속 있다’는 뜻이다. 시조에 나오는 ‘워렁중창’은 급히 달리는 모양이나 소리를 뜻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후다닥’ ‘후닥닥’ ‘허둥지둥’ 같은 말로 바꿔도 뜻이 통한다. 북한의 사전에는 ‘워렁중창’과 비슷한 ‘와당퉁탕’이라는 낱말이 실려 있다. ‘잘 울리는 마룻바닥 따위를 요란스럽게 구르며 걷거나 뛰는 소리’라는 뜻이다.
★ 병일은 곰비임비 술을 들이켰다. (현진건의 소설 「적도」에서)
곰상스럽다 (형용사 : ① 성질이나 행동이 싹싹하고 부드러운 데가 있다.
② 성질이나 행동이 잘고 꼼꼼한 데가 있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곰상스럽다’란 말을 들이밀고 무슨 뜻인지 맞혀보라고 한다면 어떨까. 나 같으면 ‘곰’과 ‘상스럽다’란 말을 나눠 생각할 것 같다. 곰은 거칠고 우악스러운 동물이고, ‘상스럽다’는 언행이 천하고 교양이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곰상스럽다’는 ‘곰처럼 상스럽다’는 뜻이라고 답안지에 적었을 것이다. 아니면 ‘곰상’을 ‘곰 相’으로 해석해 ‘곰처럼 생긴 느낌이 있다’고 쓸 수도 있다.
‘곰상스럽다’와 ‘곰살궂다’는 비슷한 뜻을 가진 말들이다. 공통으로 들어가는 ‘곰’은 뜻풀이에 똑같이 들어 있는 ‘꼼꼼하다’에서 비롯되었음이 확실하다. ‘곰곰하다’라는 말은 없지만 ‘곰곰이’와 ‘꼼꼼이’를 비교해 보면 ‘곰’과 ‘꼼’이 같은 뿌리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다. 한 가지 방증을 더 들자면 ‘꼼바지런하다’와 ‘곰바지런하다’는 둘 다 ‘꼼꼼하고 바지런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곰상스럽다’도 ‘곰살궂다’도 언어 세계의 이웃들과 비교해 보면 참으로 특이한 존재들이다. ‘상스럽다’는 물론이고 ‘궂다’도 좋은 뜻을 가진 말이 아니다. 그래서 ‘상스럽다’나 ‘궂다’가 뒤에 붙은 말치고 긍정적인 경우는 좀처럼 찾기 어렵다. 먼저 ‘상스럽다’가 들어간 말들을 보자. ‘밉상스럽다’ ‘울상스럽다’ ‘이상스럽다’ 같은 말들은 다 아는 말들일 테고, ‘망상스럽다’는 ‘요망하고 깜찍한 데가 있다’, ‘툽상스럽다’나 ‘투상스럽다’는 ‘말이나 행동 따위가 투박하고 상스러운 데가 있다’, ‘암상스럽다’는 ‘보기에 남을 시기하고 샘을 잘 내는 데가 있다’는 뜻이다. ‘궂다’가 들어간 말들로는 ‘심술궂다’ ‘얄궂다’ ‘짓궂다’ ‘험상궂다’ 같은 것들이 있다. 자고로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 했는데, ‘곰상스럽다’와 ‘곰살궂다’는 이런 말들과 이웃해 있으면서 어떻게 물들지 않고 좋은 뜻을 갖게 되었는지 곰곰이 아니면 꼼꼼이 생각해 봐야겠다.
★ 둘레에 이끼 낀 작은 정원석을 배치하고 곰상스럽게 만들어 놓은 연못은 소일거리가 없는 이 집 노인의 손장난이었던 것이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에서)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정겨운 우리말 표현...잠 못 드는 새벽에 읽으니 더 좋네요.
노래는 많이 들어봤어도 저 속에 있는 말들의 뜻은 몰랐네요~ 감사! ^^*
송골매 노래 들을 때마다 곰비임비가 무슨 뜻인지 궁금했었는데...궁금증이 풀렸다~ㅎㅎ 고마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