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좀 불편할 뿐이지 결코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라고 했고,
성경에서는 오히려 "가난한 자가 진 복자"라고 들려 주더군요.
이 말씀을 이해 하는데는 너무나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했습니다.
어째서 '가난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가난한 자가 진 복자' 일까를..............
학창시절에 등록금을 제 때 내지 못하니 매번 등교 정지를 먹으면,
친구들 보는 앞에서 교실을 쫓겨 날 때,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수업에 필요한 책을 못 사니 윤리 담당 선생님이 한 권 주시며,
다음에 어른되면 갚으라 했지만 그 분은 이미 고인이 되셨고.....
쉬는 시간엔 친구 책을 빌어 다음 수업 시간의 책을,
선생님 오는 줄도 모르고 노트에 배끼다 알 밤을 한 대..........
찹쌀떡 판을 처음 맨 날은 "찹~쌀~떡~"이라는 소리를 외치지 못해,
통금시간이 다 되도록 밤 길을 수 없이 걷기만 했던 날도..............,
한 때는 가난을 탈출코자 5년을 "챔피언 꿈"을 꾸며,
샌드 빽과 펀치 볼로 주먹을 달구어 보기도 했지요.
학창시절 방학은 꿈과 낭만이 흐르는 날이 아니라,
인근의 제비표 성냥 공장이 아니면 노가다판에서 한 달씩 보내며,
다음 학기 등록금 마련하며 겨우 겨우 졸업장 받아 쥐고,
오늘의 직장을 얻어 어른들 속의 사회를 살기 시작 했습니다.
남들이 다하는 결혼인 줄로만 알고 막상 결혼은 했지만,
그 때부터 이 집 저 집 셋방을 맴돌기 시작 해 "26년 13일" 만인 쉰 살의 중반에,
로얄층 다 골라 간 2순위로 맨 꼭대기층인 19층에 입성하고 나니,
이제는 매일 아침마다 내 집 정원처럼 훤히 내려다 보이는,
창 밖의 창원시는 진정으로 아름다운 내 정원이 되었다.
요즘도 아이들에게 전기불 좀 아껴라 수도물 아껴라,
전화 요금 아껴라는 잔소리 노래가 끊이지 않는다.
너희가 가난한 집 자식들에게만 주어졌던 자존심 상하는
"강냉이 죽"(일명 꿀꿀이 죽)을 먹어 보았어?
너희가 눈물 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비빔밥도 아닌
"눈물 콧물 밥"을 먹어 보았어?
모처럼 만난 친구와 한 자리 술 값이 두려워 눈치를 보다가
아프지도 않은 어머니가 편찮다며 어설픈 핑게 하나 던져 놓고,
떠나오는 "가난한 자의 가슴앓이 눈물"을 흘려 보았어?
하지만, 일생 공직 수행을 손가락질 받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그랬는지?,
'청백봉사상 대상'과 '대 십자 훈장'을 받으면서야,
"가난한 자가 진복자"라는 뜻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가난 때문에 부끄럽지 않다는 사실을............
개기름이 번지르한 자들의 벼락 꿈 짓거리로 쇠고랑 찬 모습들을 보면서 부터,
조금씩 조금씩 그 말을 더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것도 굵직 굵직한 전직 명함이 무색할 정도로 치사한 짓거리를 하고도
들통만 나지 않았다면 지금도 어딘가의 사회적 명사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박수를 받았을 것을 생각하면..............
창자 밑구녕에서 부터 뒤틀려 올라오는 분노를 느낀다.
**우리는 비록 깡통을 차더라도
하늘을 보아 부끄럽지 않는 당당한 거지가 오히려 위대한 사람이 아닐까?
<아래 자료는 정연태 박사님께서 보내주신 자료 입니다.>
첫댓글 정말 어려운 시절 시절 이였죠 그시절은 춥기는 왜그리 추웠는지..
지금은 다들 행복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