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실록 4권, 정종 2년 6월 20일 계축 5번째기사 1400년 명 건문(建文) 2년
세자가 대학연의를 읽다가 좌보덕 서유와 더불어 사병 혁파와 관련한 문제를 논하다
세자가 《대학연의(大學衍義)》를 읽다가 좌보덕(左輔德) 서유(徐愈)와 더불어 병권을 잡는 폐단을 논하였다. 당나라 현종(玄宗)·숙종(肅宗)의 일에 이르러 탄식하였다.
"숙종이 이보국(李輔國)064) 을 두려워한 것은, 다만 이보국이 병권을 잡았었기 때문이었다. 병권이 흩어져 있게 할 수 없는 것이 감계(鑑戒)가 이와 같다. 또 우리 집 일로 말하더라도 태상왕께서 병권을 잡았기 때문에, 고려(高麗)의 말년을 당하여 능히 화가위국(化家爲國) 할 수 있었던 것이고, 무인년 남은(南誾)·정도전(鄭道傳)의 난에 이르러서도 우리 형제가 만일 군사를 가지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사기(事機)에 응하여 변을 제어할 수 있었겠는가? 박포(朴苞)가 회안군(懷安君)을 꾄 것도 또한 병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근일에 공신 3, 4인이 병권을 내놓게 된 것을 불평 불만하여 마지않았으므로, 대간(臺諫)이 죄주기를 청하여 외방에 귀양보내었다. 지난날에 병권은 흩어져 있을 수 없다는 일 때문에 내가 면대하여 간절하게 일렀건마는, 모두 능히 깨닫는 이가 없었다. 지금에 와서 오직 조영무(趙英茂)가 평양(平壤)에 있으면서 말하기를, ‘세자의 가르침을 깨닫지 못한 것이 한이다.’고 한다."
서유가 대답하였다.
"옛날에 송(宋)나라 태조(太祖)가 천하를 평정하고 궁내에서 장상(將相)에게 잔치하였는데, 장상(將相)들이 말하기를, ‘천하가 평정되었으니 즐기심이 마땅합니다.’ 하니, 태조가 말하기를, ‘나는 즐겁지 않다.’ 하였습니다. 장상들이 말하기를, ‘천하가 이미 정(定)하여졌는데, 폐하께서는 왜 즐겁지 않으십니까?’ 하니, 태조가 말하기를, ‘처음에 경들이 병권을 쥐었기 때문에 능히 나를 추대하여 천자를 삼았으니,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경의 휘하 장사(將士)들이 경을 추대하여 천자를 삼기를, 또한 경이 짐(朕)을 추대한 것 같이 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공신·장상이 머리를 조아리고 절하여 사례하고, 즉일로 인수(印綬)를 올리고 병권을 내놓았습니다. 지금 세자의 말씀이 송나라 태조와 같습니다. 다만 공신(功臣)과 장상(將相)이 송나라 태조 때에 미치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