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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나 귀신이 따로 있을 것 같지 않았다. 3일동안 뒤주속에 갇혔다 끌려나온 여자 종, 그 처녀아이야 말로 귀신이자 도깨비였다. 아니 도깨비나 귀신도 문제의 처녀아이를 보았다면 기절초풍 기겁을 해 달아나 버릴 것만 같다. 머리칼은 뒤죽박죽 헝크러진데다 꾀죄죄한 얼굴엔 광대뼈가 우뚝 솟았고, 흰자위뿐인 눈망을은 악마의 것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았다. “마, 마님. 저 밥, 밥을 주세요. 어서요!” “음, 그래, 주고말고 밥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김부인은 부리나케 밥상을 차렸다. 사람은 누구나 사흘굶어 도둑질 안 할 수없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여자아이는 곱빼기로 가득 담은 찬밥 한 그릇을 게눈 감추듯 처분하고 나서 간에 기별도 안갔다며 한 그릇을 더 요구했다. 밥 두릇을 비웠을 때 김부인은 입을 열었다. “도대체 어쩌다 그렇게 된게야 응?” “네, 말씀드릴게요, 제 잘못 탓으로 벌은 받았어도 억울해요, 사람을 굶겨 죽이는 벌은 너무 잔인하고 가혹한 것 아니겠어요? 마님이 구해주시지 않았다면 저는 굶어죽었을 거예요” 귀신의 목소리 같은 괴상한 목소리로 말머리를 꺼내고 나서, 숭늉물 한 사발을 벌컥벌컥 들이마신 다음 목을 늘어뜨리며 꺼억! 하고 트림을 했다. 그리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3일전 아침이었죠. 제가 밥상을 들고 안방으로 들어서는 도중에 사고가…. 저의 부주의 탓도 있었지만, 재수가 옴 붙은 탓이었죠. 문턱에 한쪽발이 걸리면서 넘어졌지 뭐예요. 밥상이 뒤집혔고, 밥그릇과 반찬그릇들이 박살이 나버린거예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노발대발 길길이 뛰시면서 저에게 대뜸 사형선고를… 흑흑…. 천벌받아 마땅하겠지만, 조용히 뒤주속에 넣어 저승으로 보내야겠다면서 집어넣었답니다. 마님도 감쪽같이 모르셨다니 너무하신 것 아니에요?”여자아이는 울분을 삭이지 못하고, 폭발할 것처럼 울음 터트렸다. “쉿! 살고 싶으면 울음을 멈춰야 해. 이제부터 내가 하라는대로 하도록 해라 응!” 김부인은 손을 내밀어 그녀의 입을 틀어박으며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여자아이는 곧 이성을 되찾았다. 김부인은 패물꾸러미를 꺼내 여자아이의 손에 쥐어주면서, “자, 넉넉지 못하지만, 이걸로 노자를 해서 한양을 떠나거라. 먼 곳으로 자취를 감추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울테니까. 내 말대로 할 수 있겠냐? 일이 잘못되는 날엔 너는 말 할 것 없고, 나도 무사하지 못할테니까 똑바로 정신차리도록, 알겠냐? “네, 고맙습니다. 마님, 마님의 은혜 백골이 진토가 되어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생명의 은인이신 마님이야말로 저를 낳은 부모님보다도 더 고마우신 분입니다. 마님께 절대로 누를 끼치지 않을 테니 염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여자아이는 비오듯 눈물을 흘리며 방바닥에 이마가 닿도록 엎드려 큰 절을 했다. 김 부인은 사다리를 놓아 여자아이를 울 밖으로 탈출케 했다. 그길로 여자아이는 며칠동안 남으로 남으로 걸어내려 가다 충청도 땅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곧 부잣집 종으로 취직을 했다. 그 집에는 건장한 총각머슴이 있었는데, 서로 눈이 맞아 집주인이 승낙아래 혼례를 치르게 되었다. 마음씨 좋은 주인은 혼례를 치러준 다음, 종 문서를 없애고, 평민으로 신분을 보장해줌과 동시에 독립해서 가정을 꾸리도록 뒷받침해주었다. 평민으로서 어엿한 가정주부가 된 최 여인-10개월이 되자 어린애를 낳았다. 아들이엇다. 최여인은 아들이 5살이 되자 글 공부를 시켰다. 15살이 되었을 때 4서3경(四書三經)을 떼었다. 어머니 최여인의 권유로 그는 ‘마곡사’에 들어가게 되었고, 고명한 스님으로부터 10년동안 풍수지리를 익혔다. 어느날 아침 스님의 지시를 받고 그는 오랜만에 집으로 달려갔다. “지금 한양 서씨집안에 영감님이 돌아가셨으니 그 댁으로 달려가서 명당자리를 잡아 드리고 오너라!” 어머니의 긴급지시를 받고 그는 부랴부랴 한향으로 내 달렸다. | ||
조문객 아닌 지관(地官)의 신분으로 최여인의 아들은 한양의 서씨 집을 찾아가게 된 것이었다. 어머니 최 여인의 말은 딱 들어맞았다. 대문밖에 ‘謹弔’라는 두 글자가 씌어진 커다란 등(燈)이 내걸렸고, 문전에는 조문객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