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교과서적인 인공도시" "행정수도의 전형".
호주 캔버라(Canberra)는 행정수도의 상징성을 표본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이 나라 최초이자 유일의 계획도시이다.
호주연방을 구성하고 있는 뉴 사우스 웨일스 등 여섯 주와 노던테리토리를 통할하는 연방정부가 위치한 캔버라는 미국의 워싱턴DC와 마찬가지로 독립된 행정구역이다.
흔히 ACT(Australia Capital Territory)로 불리기도 한다.
캔버라는 각 주마다 강한 독립성을 갖고 있는 이 나라의 특수성을 고려해 행정 및 정치 문화보전기능 등 제한적인 기능만을 담당하는 도시로 만들어졌다.
이에따라 캔버라는 도시성격과 기능, 설계는 호주의 다른 도시들과 본질적인 차이점을 나타내고 있다.
시드니 멜버른 등 대도시가 해변가에 자연발생적으로 발생, 점차 재정비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데 반해 캔버라는 처음부터 허허벌판의 내륙평원에 인공적으로 세워진 도시이다.
캔버라의 이러한 특성은 역사적인 배경을 갖고 있다.
"호주의 행정수도 캔버라"는 중앙정부의 일관된 계획과 강력한 통제 아래 건설된 도시가 아니라 신생국가의 수도유치를 위한 주정부들의 갈등이 낳은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다.
1901년 결성된 호주연방의회는 빅토리아주의 멜버른에서 수도를 옮기되 뉴 사우스 웨일스주의 주도인 시드니로부터 100마일(166km)이상 떨어진 곳에 새로운 수도를 건설한다는 내용에 합의했다.
이에따라 연방의회와 연방주택국은 1902년부터 9년간 수도후보지 선정 작업에 착수, 11개 후보지중 지형이 완만하고 기온 수원확보 등 거주지로 적합한 조건을 갖춘 캔버라를 수도후보지로 최종 확정한 것이다.
1911년 국제설계공모전을 열고 1912년 미국의 건축가인 월터 벌리 그리핀의 작품을 수도의 도시계획안으로 최종 선정한 것이 캔버라건설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캔버라의 도시건설이 완성된 것은 그로부터 무려 70여년이 지난 지난 88년의 일이었다.
개발방향을 둘러싼 정부내의 수많은 이견으로 계획수정이 거듭된데다 호주의 정정변화, 재원부족 등으로 개발이 계속 지연돼 왔기 때문이다.
캔버라는 지난 88년 새로운 국회의사당을 완공함으로써 호주 행정 수도로서 완전한 도시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이다.
주목되는 것은 캔버라 개발기간동안 수많은 계획수정이 있었음에도 도시개발의 기본방향은 전혀 손상되지 않고 일관성을 유지했다는 점이다.
그러한 "방향의 일관성"은 70여년의 세월을 오히려 완벽한 "행정수도의 모습"으로 태어나게 하는 준비기간으로 만들었다.
그 일관된 방향은 캔버라를 철저한 정치 및 행정도시로 조성하고 그밖의 주거와 상업 업무 등 자족기능확보에 필요한 시설은 위성도시로 분산한다는 것.
이는 도심의 팽창으로 수도가 비대해지는 것을 막고 위성도시들을 연계개발함으로써 광대한 국토의 활용도를 높이자는 뜻이다.
이에따라 도심다운타운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는 5층이상의 건물을 짓지 못하도록 했다.
도시성숙에 따라 자연발생적으로 늘어나는 인구를 위성도시에 분산시켜 캔버라의 쾌적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도심은 의회와 정부가 분리된 민주주의의 상징을 표현하기 위해 몰롱글로강을 이용한 인공호수인 벌리 그리핀호를 경계로 행정지역 (시티힐)과 의회지역(캐피털힐)으로 분리했다.
특히 벌리 그리핀호수를 경계로 남쪽의 캐피털힐과 북쪽의 시티힐, 그 오른쪽 플레즌트산자락에 자리잡은 러셀지역을 삼각구도의 거점으로 삼고 이들 거점을 잇는 직선도로를 도시발전축으로 삼았다.
이 3대 거점을 잇는 킹스에버뉴(캐피털힐-레셀) 커먼웰스에버뉴 (캐피털힐-시티힐) 컨스티투션에버뉴(시티힐-러셀)는 캔버라의 도심을 형성하고 있다.
이 삼각구도 내부는 녹지공간으로 지정돼 커먼웰스공원 킹스공원 등이 조성돼 있으며 국립미술관 도시계획관 등이 들어서 있다.
이들 거점들 자체가 방사형구조의 거대한 블럭으로 구성돼 위성도시를 잇는 다운타운역할을 겸하고 있다.
각 거점들에는 중심광장을 기점으로 8-10개의 방사형 또는 바둑판 모양의 대로가 건설돼 각각 2~4개의 위성도시와 연결된다.
이같은 완벽한 도로망을 통해 대부분의 위성도시 거주인구는 20분안에 자동차로 캔버라도심에 진입할 수 있다.
이같은 교통여건에 힘입어 각 위성도시들은 주거 판매 생산 업무 등 도심을 보완하는 독립적인 섹터를 형성, 캔버라를 이원적인 구조와 기능을 가진 도시로 만드는데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캔버라 도심도 기능에 따라 지역을 엄격히 구분했다.
캐피털 힐 주변은 구국회의사당, 최고재판소, 국회도서관, 국립미술관 등이 들어서 있는 공원지구와 국회의사당, 수상관저지역으로 나눠져 있다.
벌리 그리핀 호수를 건너 캐피터힐 맞은편 11km지점에 위치한 시티 힐에는 연방정부의 각 부처와 외국대사관 전쟁기념관 국립대학 등이 들어서 있어 캔버라 도심내에서도 입법기능과 행정기능이 독립된 민주주의의 상징성을 표현하고 있다.
도시의 성숙과 함께 캔버라의 인구도 급속히 증가했다.
캔버라건설을 주도한 NCDC(National Capital Development Commission) 발족과 함께 도심에 빌딩군이 들어서기 시작한 1958년 당시의 인구는 3만9,000명선.
그러나 도심개발이 진전되면서 1974년에는 18만6,000만명, 수도의 기능이 완성된 1989년에는 27만8,000명으로 서서히 늘어나 현재 30만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캔버라에 적용된 철저한 기능구분, 정치.행정수도로서의 성격 규정에 따른 도시팽창억제와 위성도시 육성정책에 힘입어 캔버라고유의 쾌적성과 여유는 조금도 손상되지 않고 있다.
인간의 한평생에 비견되는 오랜시간이 걸렸고 그동안 수많은 계획수정을 거쳤지만 행정도시로서의 기본이념에 충실한 캔버라의 도시개발 모형은 서울의 비대화로 새로운 행정수도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우리실정에서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다.
캔버라의 도시개발 전과정에는 행정 및 정치중심지라는 켄셉이 녹아 있다.
위치선정과 건물배치, 도심과 위성도시의 연결 등 거시적인 부문에서 가로수 거리이름 등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의 원칙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해발 450m 내외의 평원지역에 도심을 꾸며 도시기능이 한 덩어리로 융화된 모습을 보이도록 한 것과 캐피털 힐, 시티 힐이 위성도시를 연결하는 개발축으로 설계한 것은 주정부와 연방정부의 권력연계성과 조화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국회의사당을 도심내 가장 높은 곳에 건설, 도심을 내려다볼 수 있도록 주변을 압도하는 분위기를 연출한 점과 위성도시들이 기능과 도로망에서 도심의 종속기능을 유지시킨 점은 주정부보다 높은 연방 정부를 표현한 도시계획상의 기교이다.
무엇보다도 인공호수인 벌리 그린핀호수를 경계로 마주보고 있는 케피터 힐(국회의사당 지역)과 시티 힐(행정부 지역)은 자연스런 행정부와 의회의 거리감을 의미하고 있다.
특히 국회의사당과 정부관공서지역 중간지점에 지어 연방대법원을 만든 것은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다 호주다운 도시를 만들려는 연방정부의 의지도 돋보인다.
정치구조 교통체계 거리이름까지 대부분 영국의 것을 모방하고 있는 호주의 현실과 비교하면 파격적인 것이다.
미관을 위해 도심 일부지역에 화려한 수입수목을 배치한 것을 제외하고는 개발이전 캔버라지역에 있던 토착수목으로 조경을 꾸몄다.
거리와 위성도시의 이름도 리버풀 요크스트리트 등 영국 것을 그대로 따와 사용하는 다른 도시들과는 달리 호주의 예술가, 행정가, 정치가, 시인, 탐험가, 교육가, 성직자 등 호주역사를 빛낸 위인들에게서 차명했으며 호주산 식물 호주원주민의 부족명 등도 가미했다.
< 국회의사당>
<중앙청사>
<시내중심 시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