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어케 올리는지잘모르겟다..
그냥.여기다 쓸테니..복사해서 써줘,.,,^^
그럼 수고수고!
<90년대10대명반>(내맘대로)
1.넥스트2집
날아라 병아리를 타이틀곡으로 한 넥스트의 두번째 앨범 [the return of next part1.]
1994년 5월 N.EX.T가 임창수(기타),이수용(드럼),이동규(베이스),신해철(보컬)등으로 멤버를 재 정비하고 발표한 2집은 1집에 비해
더욱 철학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과감한 음악적인 변신을 시도했다.아직까지 듣기에 익숙치 않은 메탈과 프로그레시브록을 2집
에서 선 보이는 넥스트는 철학적인 주제와 함께 존재와 내면의 이야기들을 그려내고 있다.
[[The destruction of the shell:T껍질의 파괴]]-고음역대를 거침없이질러대는 신해철에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뛰어도 돌아도 더 큰 원을 그릴 뿐"- 헤르만 헤세 에게 영향을 받은 듯 하다..
[[The dreamer]]-'그녀의 고운 눈물도' 이부분만 들으면 내맘속엔 함성이 질러진다. 꿈의 간절함을 나탄낸 듯 하다.
끝 부분의 신해철님의 " I love you"는 "I love my dream"인 거 같다.
[[날아라병아리]]-병아리에 대한 애틋한 사랑. 인간적인 냄새가 배어 있는 곡.
[[Life Manufacturing:생명생산]]- 수술도구들이 눈앞에 놓여져 있는, 생명탄생의 장면을 그려낸 듯 하다.
[[The Ocean: 불멸에 관하여]]-intro 부분의 바다소리, 깊고 푸른 바다를 내려다 보고 있는 듯 하다.
이 곡은 the rose의 "A Taste. of Neptune"에서 영향을 받은 곡이라고 음도에서 해철님이 말씀해 주셨다.
[[Comments all(this album)]]-NEXT 앨범 중에 내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앨범이다.
'날아라 병아리'의 감동을 어떻게 설명하리?
1999. 12. 07 김장현 [cocabear]
신해철 최고의 앨범.
군입대로 인한 오랜 공백을 깨고 세상에
그들의 존재를 확실히 보여준 앨범이다.
곡 하나하나의 높은 완성도와 하나의 컨셉을 향해 일관된 앨범구성이 돗보인다.
전체 46분 정도의 앨범전체는 언제들어도 시간가는 줄 모르게 한다.
1999. 11. 21 민병운 [newage]
완벽하다. 이 한마디로도 표현이 안될만큼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주는 이 앨범은 그야말로 N.EX.T의 아니 신해철의 절정이다.
끝까지 함께할 멤버들과의 호흡은 물론이고 마치 이 앨범을 보여주기 위해 모든것을 준비했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모든것이 놀
라울 정도다.
만약 신해철의 앳된 모습을 연상한다면 오산. 이제부터 신해철은 완벽한 카리스마를 곡에서 표현한다.
'껍질의 파괴'에서 '이중인격자' 로 이어지는 고음처리는 심장마저 멈추게 만든다. 그리고 '불멸에 관하여' 와 'THE DREAMER'
의 사색적인 곡들은 다시한번 감탄을 자아낸다.
2.델리스파이스1집
대학가의 클럽에서 활동하며 인기를 얻은 언더그라운드 밴드로 자연스러우면서 풋풋한 느낌을 느낄 수 있다. 재미있는 가사로 풍자
적인 메시지가 강한 타이틀곡 '가면'을 비롯해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해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는 단순한 가사와 심플한
멜로디로 인기를 얻은 '차우차우'등 델리 스파이스를 대중들에게 알린 앨범
3.서태지와아이들4집
90년대 문화의 전환점이자 시작점이 된 서태지와 아이들의 4번째 앨범인'COME BACK HOME'
'컴백홈'은 가출 청소년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거친 랩을 구사하는 갱스터 힙합을 보여주고 있다. 4집에선 서태지와 아이들의 예전
앨범보다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 훨씬 강도 높게 반영된 노래들이 많은데 공륜심의에 걸려 가사 전체가 삭제되고 연주곡만 삽입
된'시대유감'도 들어 있다.
다들 서태지의 음악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들을 하지만 부정적이고 듣기싫은 음악이라고는 아무도 말하지않는다 그것은 서태지의
음악성에 감동해서두 그의음악이나빠서두아니다.다만 실험성과 재능과 그의매너에 매력을 느끼기때문이다(감히이렇게말한나도 그의
팬이지만....) 4집은 그의 음악에있어서 우리가느낄수있는것들을 충분히 보여준 작품(?)이라 감히 말하겠다.3집에서는 자신의 음악을
하여서 대중들에게 어필했다면 4집은 대중들과 청소년에게 자신을 보여준 것이아닐까한다...다시는 그런 음악을 들을수 없는 우리가
안타까울뿐이다..
2000. 01. 05 손영수 [251426]
음악성을 보나 대중성을 보나 난 이들의 앨범에 대해 100점을 주고 싶다. 우리에게는 청소년들에 영원한 우상으로 기억되고 있으
며 영구보존이 되고 있다. 지금 활동을 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좀더 자기표현이 가능한 활동을 하게금 만들어준 것이 바로 서태지와
아이들이다. 우리는 이 뮤지션들을 영원히 기억할 가치가 있고 그들이 활동을 할때의 모습들을 떠올리며 다음세대들에게 알려줄 필
요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1999. 11. 11 김민성 [rapping1]
그는 우리의 신화였으며 아직도 청소년들에게는
잊을수 없는 우상이다. 그는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많은 유행도 일으켰다
1집때는 상표를 달고 나오는 패션으로 우리에게
충격을 주었고, 2집때는 레게파마와 힙합패션으로 유행을 일으켰으며, 3집때는 치마패션으로
그리고4집때는 마스크와 모자를 유행시켰다.
하지만 그걸로 100점 만점에 100점을 준것은 아니다. 그의 음악때문이다. 솔직히 가수들중에대중과 평론가들을 한번에 낚은 사람도
거의 없다. 하지만 서태지는 그 두가지를 모두 가졌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그가 100점을 맞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난
아직도 서태지를 좋아한다. 아니 이젠 좋아한다기 보다는 존경한다고 하는것이 옳을 것이다.
우리는 그를 기억해야한다. 왜냐면 그같은 음악인은 어쩌면 두번다시 나오지 않을테니 말이다.
<이상은6집>
이상은의 음악성 완성도가 돋보이는 6집.[공무도하가]
2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음악감독으로서 일본스텝들을 이끌며 만들어 이상은의 이미지를 새롭게 인식시킨 앨범으로 이상은의 음반
중 명반으로 꼽는 앨범.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의지와 동양적인 냄새를 물씬 풍기는 자켓과 함께 타이틀곡 '공무도하가'에서는
동양적 스타일을 추구해 영어 가사의 곡을 5곡이나 넣어 동,서양의 문화적 접촉을 시도한 앨범이다.
<듀스3집FORCE DEUX>
힙합의 선두 주자, 듀스의 세 번째 앨범인 FORCE DEUX
95년 듀스가 해체를 하기 전 발표한 정규 앨범으로 1집 때부터 추구하던 힙합에 펑키와 재즈를 접목해 발전적인 앨범을 선 보였
다.'굴레를 벗어나''상처''의식혼란'등 수 많은 히트곡과 함께 듀스는 서태지와 아이들에 이어서 우리 나라에 힙합의 선두주자로 기
억되고 있다.
<윤도현밴드-한국노래다시부르기>
한국 rock의 미래를 짊어진 윤도현 밴드의 리메이크 앨범이다.
시원시원하게 노래를 부르는 윤도현의 창법은 듣는 이마저도 가슴을 트이게한다.
유명한곡 위주라 앨범을 내면서 부담도 많이 되었을텐데, 윤도현은 그만의 씩씩하고 건강한 음악으로 재해석하여 노래를 실었다.
자신의 노래 '너를 보내며'는 때늦은 인기도 끌고있다.
윤도현의 장점을 잘 살린, 그가 왜 미래를 짊어진 rocker인가를 보여주는 앨범이라고 할수 있다.
2000. 03. 09 김진희 [juyuso]
윤도현 밴드의 진가를 알 수 있는 앨범이다.
시원한 윤도현의 보컬이 정말 스트레스를 날려 주는 청량제 역할을 한다.
담배가게 아가씨의 중간 부분을 랩으로 처리한 것이나, 가사의 의미 전달을 위해 맛깔나게 부른 곳에서 자연스러움이 묻어 난다.
불놀이야 - 는 마치 라이브 현장을 녹음 한것 같다. 흘러간 락과 테크노의 조화가 정말 환상이다.
절대 후회 없는 앨범~!
들어 보지 않는 다면 절대 후회할 앨범~!
윤도현 밴드 4집.적극추천.
도현밴드에게 주는 점수..100점 만점에 90점.
나머지 10점은 남은 그들의 음악에 대한 기대라고나 할까..
2000. 01. 27 이용준 [lyjun]
윤도현 밴드란 이름과 잘 어울리는 그런
앨범인것 같다.. 빅토르 최의 노래인 혈액형
이라는 곡을 정말 잘 부른것 같다..
빅토르 최의 원곡만큼이나 좋다..
<삐삐롱스타킹1집>
음악의 핵인 달파란(강기영)의
매력을 느낄수 있다
삐삐밴드 때까지는 테크노를 주로 했지만
이 앨범은 테크노와 펑크를 섞어놓은
듯한 인상을 준다..
새롭게 선보이는(사실 그렇지도 않지만)
고구마라는 전의 이윤정과 비슷한
첨 듣는분들은 거부 반응을 일으킬만한
보컬 (가수가 맞나? 라는 생각을 가질수 있다)
은 성이 바뀌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둘의 카리스마는 엇비슷하다
개인적으로 달파란의 음악을 좋아하지만
그는 정말 환상이다
근데 아직 달파란의 앨범 `휘파람 별'을 못구했다... 튜브에서 검색해도 없다 나온다..
위대한 뮤지션이.. 이렇게 천대(?) 받다니..
여긴 지방이어서 더더욱 구하기도 힘들다
(삐삐 롱 스타킹 앨범이니 개인의 얘긴 그만하고) 이번 앨범 역시 실험정신이 강하다
매니어용 음반으로 권하고 싶다...
<패닉1집>
사회적인 메시지와 저항정신을 음악으로 표현함으로써 실험적인 아티스트로 출발한 패닉의 시작을 알리는 앨범
작사,작곡,편곡과 신선한 창법의 보컬을 맡은 이적과 반항적인 랩과 댄스,그리고 색소폰까지 맡은 김진표로 구성된 패닉은 팀 이름
처럼 정신분열 직전인 현대사회를 독특한 시각으로 노래하면서 새로운 음악을 선사해 주었다. 지친 사람을 위해 만든 '달팽이'를
비롯해서 신경질적인 정서상태를 표현한 '아무도'소외된 사람들을 상징하는 '왼손잡이'등 은유와 상징적인 내용들의 노래들이 담겨
져 있다.
<김광석2집>
데뷔 앨범 발표 2년 후, '라이브 싱어'라는 칭호를 얻어낸 김광석의 두번째 솔로 앨범.
이 시기 라이브 활동을 열심히 펼치고 있는 김광석은 두번째 앨범인 본작을 발표했으나, 사실상 이 앨범까지는 온전한 그의 앨범이
라 하기에는 부족하다. 즉, 본작은 그의 초기작 범주에 넣어야 할 앨범. 1집에 비해 크게 달라진 것은 없고 이후 3집부터 음악적 협
력자로서 공존하기 시작한 조동익이 이 앨범에 베이스 연주자로 참여하기 시작한다. 더불어 일명 '조동익 밴드'로 불려지는 프로젝
트형 스튜디오 세션 밴드의 일인인 연주자들이 참여했다. '시인과 촌장'으로 활동한 바 있는 기타리스트 함춘호, '들국화'의 기타리
스트였던 손진태, 그룹 '11월'에서 독보적인 하몬드 올겐 연주를 선보였던 김효국이 그들이다. 이 앨범에서 가장 크게 히트한 곡은
한동준이 선사한 발라드 '사랑했지만'이며, 더불어 '사랑이라는 이유로'라는 그의 발라드 넘버 중 주요한 곡이 수록됐다.
<장필순5집>
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몇 안 되는 독특한 여성 보컬리스트였던 장필순의 최고 완성작이자, 단지 싱어가 아닌 완숙한 싱어송라이
터로서의 면모를 확고히 다진 앨범.
본작은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가 라디오를 통해 은근한 히트곡으로 등극했지만, 90년대 중반 최고의 완성작임에도 불구하고
그 빛을 충분히 세간에 전하지 못한 앨범이다. 조동익, 윤영배(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장필순, 삼인의 구도로
이뤄진, 장필순의 다섯번째 앨범에서는 모던록, 포크록의 여성 아티스트로 거듭나는 그녀의 모습을 직면할 수 있다. 그와 일련의 흐
름으로 본작은 '첫사랑',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를 제외하고는 키보드 연주가 없는 심플한 록밴드로서의 사운드를 들려준다.
이러한 심플한 모던-포크록 사운드를 통해 장필순은 역동적인 보컬을 들려주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곡이 'TV,돼지, 벌레', '빨간
자전거 타는 우체부', '스파이더 맨'이라 할 수 있다.
<한영애5집>
진정한 여성 아티스트를 만나고 싶다면, 90년대의 완성도 있는 앨범 중 하나를 듣고 싶다면 이 앨범이 적격일 것이다. 또한 이 앨
범은 아직 솔로앨범을 발표하지 않은 윤영배의 독특한 곡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95년 발표한 다섯번째 앨범인 본작은 대중에게 한영애의 또다른 음악 행로를 알리는 앨범으로 한영애 자신에게는 제 3의 음악인
생을 여는 앨범이다.
이 앨범에는 처음으로 함께 작업하는 이병우가 기타 세션과 앨범 동명 타이틀곡인 '불어오라, 바람아'를 선사하고 있다. 그 외에도
신윤철, 강기영, 김민기 등의 젊은 음악인들과의 작업이 눈에 띤다. 즉, 2집부터 록 성향의 곡을 불러온 한영애는 이 앨범을 통해
보다 묵직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그간 폭발적인 보컬에서 한영애의 카리스마를 느꼈다면 이 앨범에서는 세상을 향한 정제된 시선에
서 느낄 수 있다.
<이현도3집>
완정한 힙합으로 돌아온 힙합맨 이현도의 [完全Hiphop]
[完全Hiphop]이라는 이름 그대로 한 곡 한 곡에 힙합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Force Duex의 수록곡을 듣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첫 번째 트랙 'Disater's Orbit'를 선두로 자유로운 힙합의 퍼레이드는 시작되는데 이번 앨범에서 가장 주목해서 봐야 할
점은 많은 힙합 뮤지션들이 이번 앨범에 많이 참여를 했다는 것이다. 조PD를 비롯해, 타샤니, 드렁큰 타이거, 김진표, 언더그라운드
출신의 Side ?B, Levas, Da Crew등 이미 많은 힙합 매니아들에게 실력을 인정 받은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해 앨범에 빛을 더하고
있다.
김완선의 히트곡인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를 샘플링한 '삐에로'와 타샤니와 함께한 신나는 힙합곡 'Party', 힙합 매니아들에게
인기를 끌은 김수용 원작의 애니메이션 [힙합]의 사운드트랙 수록곡인 '힙합', 99년 11월에 힙합 클럽 마스터 플랜에서 가진 생생한
라이브 공연을 담은 'Beat Box & Free Stylez'등이 수록되어 있다.
"우리 나라 힙합 음악계의 맏형"
그렇다. 서태지가 한국에 힙합이라는 씨를 뿌렸다면 그 씨에게 사랑과 애정으로 비료를 주고 제대로 된 생명으로 피어나게 한 것은
이현도이다. 서태지는 힙합이란 장르를 도입하긴 했지만
힙합 음악에 있어서 중요한 것을 빠뜨렸다.
바로 rhyme(각운)이다. 하지만 이현도는 라임에 있어서 엄청난 역량을 가지고 있으며 애정 또한 강하다. 그의 라임은 가볍지 않은
충분한 무게를 가지고 있다.단지 말을 맞추기 위해 이리 저리 기워 맞추기식의 가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 음반 또한 그의 가사는 한층 깊이를 더 해 간다.
이렇게 완벽한 가사를 쓰는 그에게도 보완할 점은 있다.바로 래핑이다.
그 또한 그것을 인식하고 매 앨범마다 노력을 한 흔적이 역력히 보인다.
이번 앨범에서 그는 그 부족한 래핑을 객원 rapper를 써서 보완하려고 했다.
많은 rapper들이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컴필레이션 음반으로 보이지 않는 것 또한 그의 음악적 역량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 힙합 음악이 다소 어둡고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겐 "투혼""party""흑열가"를 권해주고 싶다.
"투혼"은 세상에 맞서 열심히 살자(?)라는 다소 진부할 수도 있는 내용이지만 그의 가사를 하나한 듣는 사람은 아마도 카타르시스
를 느씰 수 있을 것이다.
"party"는 다덜 사이좋게 놀아보자 그런 내용으로 볼 수 있고. 충분히 어두우면서도 충분히 신나는 묘한 곡이다.
"흑열가"는 언더와 오버에서 인정 받은 rapper들이 참여해 8마디씩 끊어서 부른 음악인데
조pd,D.tiger,side-B,윤미래등이 참여했다.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음악이니 들으면서 여러 뮤지션의 화려한 래핑을 듣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000. 07. 18 최정미 [yotaiji]
전집에 비해 개인적으론 휠씬 좋은것같다.
그의 힙합에 대한 사랑은 그칠줄을 모른다.
아마 사람들은 그의 그런 모습에 아낌없는 사랑과 찬사를 보내는가 부다.
그의 음악은 긴장을 준다.
이번에는 어떤, 다음번에 어떤..
그의 혼자인 모습이 가슴아팠지만 그의 곁에 있는 음악때문에 그의 모습뿐만 아니라 그의 음악이 더 한층 빛을 발하는것 같다.
앞으로의 모습이 기대된다.
by 정미 2000. 05. 26 류근영 [rw2000]
이 이현도 라는 가수는
실험정신이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 자기 자신의 확실한 음악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고 나름대로 생각을 합니다.
그러 난 100%힙합이란 것은
힙합메니아에게는 기쁜일이나.
평번한 애호가에게는 별로...
그러나 괜찮은 앨범이다
그다음은...힙합의 4대요소.,..
<제1장> 힙합의 4대요소-①그래피티(Graffiti Art)
'그래피티'란 한마디로 '낙서의 예술'입니다. '힙합 좀 안다'하는 분들에게 그 기원을 물었더 니, '70년대 중반 뉴욕의 슬럼가에서
발생되었다'고 설명해주더군요. 뒷골목의 벽이나 지하 철, 다리교각 등에 울긋불긋 낙서 된 것 본 적 있으시죠? 굳이 뉴욕까지 날
아가지 않더라도, 헐리웃 영화 몇 편쯤 보신 분이라면 무릎을 탁 치시면서 "아! 그래피티가 바로 그거였구 나!" 하실 겁니다. 근데
낙서라는 것이 꼭 '70년대 뉴욕 슬럼가에서 출발했느냐' 하면 또 그 건 아닙니다. 우리 어린 시절에도 이웃집 담벼락이며 학교 화
장실에 크레용칠 한번쯤은 해 봤으니까요. 세계 곳곳에서 낙서는 행해져 왔습니다. 그러니 힙합의 요소인 '그래피티'의 사 전적 풀
이만 놓고 봤을 땐 뉴욕 어딘가에서 기원됐다 하는 말이 무언가 석연치 않죠. 그 부 분의 오해를 풀 수 있는 키워드는 바로 이것입
니다.
'그 낙서(그래피티)를 했던 사람들의 정서가 무엇이냐' 미국 슬럼가의 다리기둥에 그림을 그리던 흑인, 라틴계들의 정서가 '힙합'이
라는 코드 위에 존재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단 얘깁니다. 아침에 눈뜨면 콘프레이크를 씹으며 랩을 읊조리고 커다란 스피커를 어깨에
짊어진 채로 골목길에서 춤대결을 벌이며, 저희들끼리 밤새 파티를 열었던 사람들의 문화 말입니다. 어쩌면 그래피티는 그들 아지
트의 인테리어 외부장식이자, 영역표시 수단이었던 거죠. "여기는 우리의 댄스홀이야! 우리 아지트니까 신경 꺼!" 하는 식 으로 말
입니다. 그렇기에 '힙합의 속살'을 얘기할 때 엠싱, 비보잉, 디제잉과 더불어 꼬박꼬 박 그래피티가 꼽사리 끼는 것인가 봅니다. 허
구한날 발라드만 귀에 꼽고 다니던 누군가가 철물점에서 천오백원만 주면 살 수 있는 스프레이 락카 하나 사들고, 동호대교 교각에
낙서 해봤댔자 힙합의 그래피티와는 다르다는 것쯤 이제 아시겠죠? 아직까지 우리사회에 필요 없는 규제가 너무 많다고 생각하시
는 독자도 있겠지만, 모르긴 해도 요즘은 예전에 비해 '힙합 하기 그나마 좋아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게 다 힙합 하나 에 목숨걸
고 버텨온 '제1세대'들의 은공이겠지만, 너도나도 힙합! 힙합! 하는 분위기만 봐선 '힙합이 예전에 비해 힘이 참 세졌구나!' 하고 느
껴집니다. 더도 말고 딱 십 년 전으로 돌아 가 볼까요?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께서 '레게파마'를 하고 명동 한 복판에 서 있
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아마 난리가 났을 겁니다. 어떤 사람은 신기해서 쳐다볼 것이고, 어떤 사람 은 미쳤다고 손가락질 할 것이며,
또 압니까? 지나가던 할아버지는 지팡이를 내던지며 욕을 하실지.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레게파마를 말든, 노랑물을 들이든
뭐라는 사람 없잖습 니까.
얘기가 삼천포로 빠졌군요. 다시 '그래피티'쪽으로 방향을 틀어보죠. 한때 뉴욕시에선 말입니다. 그래피티를 합법적으로 풀어준 적
이 있었답니다. 칙칙했던 도시 미관을 향상시킨다는 명목으로 지하철 열차에 한정해서 허가했었다는데, 제 생각에는 너무 많은 바
밍(Bombing/락커로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를 일컫는 말로 일명 '폭탄 떨어뜨리 기')이 통제불능에 이르자, 울며 겨자 먹기로 내
놓았던 뉴욕시 당국의 꽁수가 아니었을까 생 각합니다. 긍정적인 측면만을 놓고 합법화 시켰다가, 얼마 후 다시 정책을 바꿔 못하
게 만들 었으니 임시변통의 꽁수 아니고 뭐겠습니까. 아무튼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압구정이나 홍대 앞의 특정 담벼락, 또는 클럽내
부 장식을 위한 소품으로 쓰이는 경우가 전부입니다. 솔직히 춤이나 의상 등에 비해, 그래피티 문화는 우리나라에 유입되기에 어느
정도 한계가 있어 보 입니다. 이웃집 담벼락에 에어 스프레이 낙서를 하기에 우리 양심은 너무 '고지식하게' 단련 되었던 걸까요?
독립운동 하는 것도 아닌데, 어두운 골목길에서 '잽싸게' 바밍을 시도하고 도망치기가 사실 쪽 팔렸던 걸까요? 모르겠습니다. 우좌
간 힙합도 예술인데, 작품을 이해하 지 못하는 사람들 눈치나 봐서 어떻게 활동이 되겠습니까. '걸려서' 된통 망신당하는 상상을 해
보십시오. 차라리 은행을 터는 게 덜 민망하겠습니다. 어쨌거나 그래피티를 우리식으로 각 색할 필요성이 절실히 느껴지네요. 아시
는 분은 아시겠지만, 여러 아티스트들을 통해 수십년 전부터 행해져 온 '낙서의 작품화'는 이미 이 시대 또하나의 예술장르로 자리
잡은 지 오래입 니다. 물론 '작가의 역량'이나 '구사하는 도구'는 다를지언정, '힙합 그래피티'나 '바스키아' 같 은 화가의 그림이나
막말로 그게 그거 아닙니까. 미술공부를 하시는 분들께는 다소 건방지 게 들리겠지만 제 횡수의 요지는 '출발점이 어디까지나 '낙
서' 아니더냐' 그 것입니다. 아무 튼 버릴 수 없다며 '그래피티'를 힙합의 한 부분으로 끝까지 짊어지고 갈 생각이 있는 힙합 퍼라
면, 앞으로 풀어야할 숙제가 너무 많은 듯 합니다. 힙합용어에 관한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무엇이든 환영합니다.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서 모범답 안, 혹은 널널한 썰을 풀어 보이겠습니다.
<제2대요소-랩>
창간호의 '그래피티'에 이어 이번에는 '랩'에 대한 얘기를 계속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쩌면 랩이야말로 힙합의 성격을 가장 단적
으로 잘 표현해내는 요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왜냐하면 '그림(그래피티)'이나 '몸 동작(브레이킹)' 보다는 '말(랩)'이라
는 수단이 의사표현 방식에 있어 가장 편리하고 우수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다면 랩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운율(韻律/Rhyme)'입니다. 운율에 대해서는 다들 국어시간을 통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셨죠? 한편의 시를 놓고 '
두운' '요운' '각운'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빨간 줄로 밑줄 쫙쫙 쳐가며 공부하셨을 테니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아도 잘 아실 겁니다.
그 '라임'이라는 것을 쿵탁 쿵탁 드럼 비트 위에 얼마만큼 개성 있고 창의적으로 잘 얹히느냐가 랩 가사의 생명을 좌우하게 됩니
다. 어떻게 생각하면 꽤 간단한 것 같아 보이지만, 이것은 사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부단한 노력을 필요로 하죠. 또 그
렇다해도 어느 정도의 위치까지는 도달할지언정, 타고난 감각 없이는 훌륭한 랩을 만들기가 참 어렵습니다. 종이에 꼼지락 꼼지락
운만을 맞춰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노래 전체의 흐름을 유효 적절하게 배치함은 물론 그 의미가 물 흐르듯 제대로 '뚫려야' 하는
고난도 기술을 필요로 합니다.
현재의 랩에는 종류도 참 많습니다. 소프트 랩(Soft Rap), 하드코어 랩(Hardcore Rap), 갱스터 랩(Gangsta Rap), 도프 랩(Dope
Rap), 저머 랩(Jermer Rap), 지-펑크(G-Funk) 등등…. 다양하고 폭 넓죠. 그러나 구분자체도 미묘할 뿐만 아니라 각각 발생당시 '
시대상황'과 전문적인 '음악논리'를 적용해야 하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모두 설명하기란 불가능한 게 사실입니다. 또한 직접 연습
하고 경험해야만 이해가 되는 부분들도 있으므로 보다 자세한 접근을 원하시는 분들은 가까운 학원에 가시거나 전문서적을 펴놓고
독학하시길 당부 드리는 바입니다. 아참! 힙합 클럽에 가셔서 쟁쟁한 MC들의 공연을 귀 기울여 듣는 것도 훌륭한 방법이겠군요.
그럼 지금부터 어디까지나 BOUNCE의 편견에 입각한 '랩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몇 가지 '썰'을 풀어보겠습니다.
랩의 기원은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에 대한 얘기부터 시작할까요? 자메이카의 '토스팅(Toasting)'이니 고대 아프리카 부족 사회의
'구두(口頭) 통신 수단'이니 그 유래에 대한 사설이 많긴 하지만, 직접적인 기원은, 힙합이 처음 발생한 미국의 슬램가로 봐도 큰
무리가 없을 듯 합니다. 그렇다면 그 당시의 상황으로 시계를 맞춰봅시다.
궁핍한 생활의 흑인들은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을 겁니다. 이 세상에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모두 갖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마는, 권력이나 경제력을 좀 가진 기득권자들은 힘없고 돈 없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자기들 편리한대로 사회적 틀을 만들어나가죠.
그것은 세계어디나 사람 모여 사는 곳이라면 마찬가집니다. 그렇다보니 돈 없고 '빽' 없는 자들은 당연히 사회에 대한 불만이 말도
못하게 많을 수밖에 없죠. 힙합이 발생한 '빈민가(Ghetto)' 역시도 그랬습니다.
잘 사는 백인들에 대한 질시와 경계심, 언젠가 받은 대로 돌려줄 거라는 앙심, 인종차별에 대한 복수심, 배고픔 따위의 삭막한 현
실…. 그러한 타의적 콤플렉스에서 기인한 내용들, 그 와중에 즐겁게 놀아보자는 내용, 여자를 유혹하는 적나라한 가사 등이 들어가
게 된 것이죠. 당연히 초창기의 랩은 '바르고 고운말'이 아닌 피비린내 나는 험악한 단어와 욕설로 난무하게 됩니다. 사실 지금의
랩 가사 역시 그러한 내용들이 상당 부분 차지하고 있다고 해야할 것 같습니다. 시대가 변해가므로 보다 다양해졌을 따름이죠. 아
무튼 그랬기 때문에 초창기 랩의 가사는 다소 노골적이며 상대방 비방하고 헐뜯기, 자기과시 등 극단적으로 흘렀습니다. "야, 내가
제일 잘났어. 니들이 뭘 알아. 죽여버릴 꺼야!" 라든지 "우리 옆집 담배 가게 아가씨! 아가씨 몸매 끝내주는데! 나 좀 한번 줘봐. 한
번 줘봐!" 다소 과장되긴 했지만 어쨌든 그렇게 적나라하고 표현자체가 '꾸밈없었다'는 얘깁니다. 사실 힙합의 랩 이전의 가사라는
것들은 "당신을 너무 사랑하므로 내가 떠날게요"라든지 왠지 고상한 척 내지는 예쁘고 아름답게 배배 꼬여진 것들이 대부분이었습
니다. 배가 고파 죽겠는데 그런 말들이 씨가 먹혔겠습니까? 사랑하므로 떠나야한다니…. 그렇기 때문에 같은 사랑 얘기를 하더라도
"사랑하니까 나하고 살림 차리자!" 라는 식의 솔직하고 사람 냄새 팍팍 나는 표현의 가사가 그 당시, 그들에게 먹혔던 겁니다.
몇몇 흑인 소년들이 그런 랩 가사를 만들어 맨 처음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을 때, 그 파급은 엄청났을 겁니다. 아주 난리가 났겠죠.
또래들은 열광했을 테고 어른들이나 잘 사는 자들은 방방 뛰었을 겁니다. 안 봐도 비디오죠. 그러다가 결국에는 추상적인 시적 표
현과 흑인들 특유의 은어를 섞어 쓰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고 이만큼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랩은 단순한 랩의
차원을 뛰어넘어 시(詩)가 되고 있습니다. 널널하지만 아무튼 기원에 관해 잠깐 얘기했습니다.
다음으로 '랩 가사의 메시지'를 알아봅시다. 그것은 아마도 '상대방에게 나의 뜻을 전한다' 이 정도가 아닐까요. 그러나 막무가내로
운만 맞춰 읊어댄다고 다 랩은 아니고, 가사를 듣는 사람에게 감정의 '전이' 또는 '공감'을 이끌어 내야한다고 봅니다. '내 얘기가
옳다고 생각하면 함께 동참하든지 그게 아니라면 당신들 가고 싶은 대로 가버려' 하는 식으로 말이죠. 관객이라는 '청자들(聽者)'을
향해 '일방적인 의사소통'을 해야하므로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원래 래핑이란 상대방과의 '헐뜯기'에서 발생했습니다. 그러므로 MC들은 관객 혹은 음반을 듣고 있는 청자들을 향한 방백을 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특정대상', 즉 '겨룰 대상'을 향해 웅변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므로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고 남의 실력
을 깎아 내리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니까 MC들의 랩 가사에 전혀 과민 반응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냥
듣고 즐기거나, '쌩까면' 됩니다. 아시겠죠?
어느덧 우리나라도 '힙합의 대중화' 또는 '문화로서의 힙합'을 부르짖게 되었습니다. 힙합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만 대안 없는 '힙합의 혁명'이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쿠데타'로 끝나버릴 위험요소가 너무나도 많다는
거죠. 아직까지는 힙합이란 문화를 '우리 식'으로 얼마만큼 훌륭하게 각색해서 '확고히' 정착시키느냐의 필요성에 주력해야 될 것
같습니다. 랩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언어와 우리의 언어가 다르듯, '본토의 랩'이란 '우리의 랩'과 차이가 있습니다. 그들의 랩
을 카피하거나 배워야 하는 것은 인정합니다만, 하루빨리 개성 있고 감각적인 MC들의 노력에 힘입어 우리 식의 랩 가사가 여기저
기 활개를 쳤으면 좋겠다는 말씀입니다. 그 작업이야말로 힙합을 우리식으로 재창조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역사로 봤을 때
'말이 없으면 문화도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 식의 랩이 없다면 우리의 힙합도 없는 겁니다. 우리 랩 가사가 비실비실 하면 당연히 우리 힙합도 볼장 다 본 거 아닐까요?
우리말의 '독창성' 있고 '정확한 의미를 담은' 랩 가사 만들기. 그것이야말로 우리 힙합의 살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제3대요소-비보잉>
세 번째는 "비-보이"로 일컬어지는 '힙합 댄스'이다.
B-boy(B-girl)에서의 "B"는 breaking(break dance)를 가르키며, 곧 B-boy는 Break Dance를 전문
적으로 추는 사람을 일컫는다. DJ들은 간혹 음악을 틀다가 break(노래 중간에 비트만 나오는 구
간)부분을 계속하여 들려주는데, b-boying은 이 때 이 break에 맞추어 춤을 추는 것으로부터 시
작되었다. 원래 그 기반은 디스코 댄스이며, 차츰 독자적인 breakin'만의 기술 개발로 80년대 그
전성기를 이루었다. 미국에는 'breakin'을 전문으로 하는 댄스팀(Rock Steady Crew등)이 구성되
어 있으며 매년 패스티발을 열어 서로의 실력을 과시하기도 한다.
비-보이는 놀이문화로 출발하여 이제는 전세계를 춤추게 만든 월드와이드 문화로써 흥겨움을 절
대 참지 않는 흑인들만의 자연스러움이 만들어낸 멋이다. 웬만한 댄서라면 브룩클린에서 가장 오
래된 비-보이 그룹 '록스태디 크루' 정도는 알고 있을 만큼 뉴욕댄서들의 '작가정신'은 유명하
다.
90년대 들어서는 힙합스타일이라고 하여, 보다 자유스럽고 즉흥적인 형태의 춤을 선보이기도 한
쓰기(W) 조회수검색(DS) 목록(L) 상위메뉴(M) 그림보기(SEE) 복귀(RET,RET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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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제4대요소-디제잉>
힙합에서는 디제잉이 가장 기본적인 필수 요소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단순히 음악을 틀어주는 사람으로
인식되어 있는 게 사실입니다. 힙합에서의 DJ는 공연이나 파티의 분위기에 맞는 선곡 능력과 자신만의 테크닉을 이용해 전혀 새로
운 음악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죠. 약간 과장해서 말하자면 창조자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나 할까? 사람들이 일반
적으로 알고 있는 DJ는 그저 나이트 클럽에서 댄스 음악을 틀어 주는 사람 정도의 개념일 거에요.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은 DJ라고
하면, 도끼빗을 뒷주머니에 꽂고 길게 빗어 내린 머리를 한 쪽 손으로 넘기면서 느끼한 목소리로 노래를 틀어주던 음악 다방 DJ를
떠올리시겠죠? 떡볶이 먹으러 신당동을 자주 찾으셨던 분들은 통유리로 된 박스 안에서 신청곡을 틀어주던 DJ를 떠올리시겠군요.
하지만 DJ에게 가장 중요한 건 선곡 능력이니까 위에 열거한 것처럼 신청곡을 틀어주던 DJ는 엄밀히 따지자면 전문 DJ는 아닌 셈
이죠. 힙합이 생성되기 시작한 1970년대 중반에는 갱단의 폭력 문화가 매우 과격한 상황으로 번져나갔대요. 그래서 뉴욕의 브롱스
나 할렘 지역에서 활동하던 몇 명의 클럽 DJ들이 폭력성에 대한 일종의 대안으로 주도했던 게 본격적인 DJ 문화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그들은 클럽에서 스크래치와 믹싱 등의 기술을 이용해 새로운 클럽문화를 형성했고 브레이크댄스와 같은 새로운 춤의
문화를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디제잉에 주로 사용되는 기술은 스크래칭(skratching), 샘플링(sampling), 믹싱(mixing), 저글링
(juggling) 등이 있습니다. 스크래칭은 믹서와 턴테이블, LP(레코드판)를 이용해서 만드는 소리죠. LP를 턴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믹
서의 크로스 페이더는 좌우로, LP는 앞뒤로 움직이면서 만들어내는 소리입니다. 들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스크래칭이 곁들여지면 음
악의 분위기가 한층 흥겨워지고 새로운 느낌을 갖게 됩니다. 두 번째로 샘플링은 어떤 노래의 한 부분이나 특정 소리를 차용해서
자신의 느낌대로 재편성하여 전혀 새로운 소리나 노래를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퍼프 대디의 'I'll Be Missing You'는 샘플링의 승
리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 같군요. 그 노래가 1980년대 초반에 전세계적으로 크게 히트했던 폴리스의 'Every Breath You Take'
라는 곡의 후렴구를 샘플링했다는 사실은 다들 알고 계시죠? 우리 나라에는 어떤 곡이 있을까요? 요즘 한참 인기를 얻고 있는 허
니 패밀리의 '남자이야기'. 이 노래는 프랭크 시나트라가 불렀던 불후의 명곡 'My Way'를 샘플링한 곡입니다. 이것도 알고 계신다
구요? 쑥스럽습니다. 별 것도 아닌 걸 갖고 잘난 체 했군요. 그럼 믹싱을 설명해 드리죠. 한때 젊은이들 사이에서 많은 인기를 끌었
던 록카페나 나이트 클럽에서, 분위기가 비슷한 두 곡의 음악을 끊어지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아주 기본적인 기술을 뜻하
는 용어입니다. 나이트 클럽을 한번이라도 가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한참 신나게 춤추고 있을 때 음악이 어설프게 끊기면 맥 빠지잖
아요. DJ들은 그것을 막기 위해 믹싱이라는 기술을 이용하는 거죠. 저글링은 두 개의 턴테이블 위에 각각 LP를 올려놓고 오디오
믹서에 연결한 다음 양쪽 LP의 특정 부분을 선택해서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자면, 두 가지의 똑같은 드
럼 소리나 서로 다른 드럼 소리를 이용해서 전혀 새로운 드럼 소리를 만들어내는 거죠. 이해가 되셨는지 모르겠군요. 그렇다면 본
격적인 힙합 DJ의 시작은 언제부터였을까요? 최초의 힙합 DJ는 자메이카 출신의 쿨 허크(Kool Herc). 그는 1970년대 초에 뉴욕으
로 진출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음반을 틀 때 리듬과 비트가 강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틀었다고 하는데요. 두 개의 턴
테이블에 같은 음반을 한 장씩 올려놓고, 오디오 믹서를 이용해서 각각의 턴테이블에서 나오는 소리를 번갈아 가며 원하는 부분만
을 계속 이어서 틀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브레이크비트(breakbeat)'라고 알려지게 되었고, 이 브레이크비트를 기반으로
해서 힙합 음악이 탄생하게 된 겁니다. 그가 주로 사용했던 믹싱 기술은 턴테이블의 바늘을 적당한 곳에 떨어뜨려 정확한 믹싱 타
이밍을 기다리는 것이었죠. 미국 브롱스에서 클럽을 위주로 활동했던 쿨 허크는 DJ의 선구자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겁니다. 그
런 그의 인기가 하락하게 된 건 그랜드마스터 플래시(Grandmaster Flash)라는 DJ가 등장하면서였어요.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
한 그는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믹싱, 스크래칭 등의 기술을 개발했구요, 특히 사전에 믹싱 타이밍을 정확하게 계산해서 브레이크비
트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 시기의 음악들은 밝고 명랑한, 춤추기에 아주 좋은 곡들이 많았다고 하는군요. 가사도 '재미있게, 한바탕
놀아보자'는 내용이었구요. 그런 분위기 속에서 그랜드마스터 플래시가 1982년에 'The message'라는 곡을 발표했는데, 바로 이 곡
이 현실과 밀접한 내용의 가사를 담았던 랩의 신호탄이었습니다. 흑인 빈민가의 실태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곡으로 많은 평론가들이
'1982년 최고의 싱글'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 한 명의 유명한 DJ 중에 '아프리카 밤바타(Afrika Bambaataa)'라
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트럼펫과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음악에 관심을 보였는데, 음반 수집가이기도 한 그는 R&B
에서 록에 이르기까지 굉장히 많은 음반을 보유하고 있었죠. 1970년부터 파티 DJ로 활동을 하기 시작했고 DJ 쿨 허크를 만난 이후
에 DJ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아프리카 밤바타는 브레이크비트의 선구자 중에 한 명이자 '힙합의 대부'라고도
불리고 있으며, 또 힙합 이외에도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선보여서 'Master of Records'라고도 불렸다고 합니다. 1970년대 중반, 아
프리카 밤바타가 비보이, DJ, 래퍼, 브래이크 댄서 등을 영입해 만든 '줄루 네이션(Zulu Nation)'이라는 그룹은 힙합 문화를 전세계
에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R&B에 전자음을 도입한 그의 작곡 방식은 마이애미 베이스, 힙 하우스, 하
우스, 테크노 등과 같은 장르를 파생시키기도 했다고 하니 시대를 앞서간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군요. 턴테이블리즘
(Turntablism)에 대해 얘기해 볼까요? 턴테이블리즘이란 턴테이블을 다루는 기술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앞에 설명한 DJ들도 턴
테이블을 이용해 스크래칭이나 브레이크비트 등의 기술을 만들어낼 수 있었죠. 그러니까 턴테이블리즘의 역사는 힙합의 역사와 그
괘를 같이 한다고 보시면 맞을 겁니다. 그러나 이 용어가 처음 사용되었던 건 1995년이었고, 처음 사용한 사람은 DJ 바부(Babu)였
습니다. 단순히 LP를 재생시키는데 필요한 기계에 불과했던 턴테이블이 이제 하나의 악기로 사용되고 있다는 거죠. 랩과 힙합이 상
업화되고 있는 요즘, 샘플러, 미디 관련 악기, 컴퓨터 프로그래밍 등 일련의 진보된 장비들이 사용되면서 턴테이블리즘은 무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턴테이블리즘은 언더그라운드에서는 힙합의 기반이 되는 아주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디제잉에
는 앞에 열거한 컴퓨터 관련 장비들이 전혀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턴테이블과 믹서, 헤드폰, LP 등이 필요할 뿐이죠. 장비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턴테이블리즘의 진정한 가치는 오직 DJ만의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기술에 의해 결정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아무
리 장비가 좋아도 기술 개발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DJ라고 할 수 없죠. 턴테이블리즘에 어느 정도 통달한 사람
을 '턴테이블리스트(Turntablist)'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 명칭을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
런 노력이 결과로 드러나는 곳이 바로 DJ 배틀 대회장이죠. DJ 배틀은 그동안 갈고 닦은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며, 참가자들이 서로의 경험과 정보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경쟁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참가한 DJ는 2∼5
분 사이에 자신의 모든 기량을 보여주어야 하고, 심판들은 창의성, 독창성, 정확성, 무대 매너, 청중들의 반응 등을 종합해 점수를
매기게 됩니다. 중요한 건 마인드죠. 단지 턴테이블과 믹서 같은 장비만을 갖추고 있다고 모두가 'Turntablist'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장비를 갖추었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느냐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죠. 시대에 따른 음악의 변화에도 항상 관심
을 가지고 있어야 하구요. 좋은 악기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누구나 좋은 뮤지션이 될 수 있는 게 아닌 것처럼, 좋은 장비를 갖추고
있다고 해서 모두가 'Turntablist'가 될 수 있는 건 아니겠죠?
그다음은..대중음악의역사에관한글...이건그냥..알아서처리해줘...;;;
1. 서태지는 10대의 영웅이다
대중음악은 모든 사람들이 즐기는 가장 보편적인 문화이다. 더구나 대중음악은 다른 문화와는 달리 대중이 직접 행위를 한다는 특
성을 지닌다. 한국 대중음악의 시작을 1926년 윤심덕의 로본다면 대중음악 수용 역사는 대중문화의 여러 장르 가운데 가장 오래되
었다.그 기나긴 역사를 통과해 오는 동안 대중매체를 통해 누구나 손쉽고 값싸게 접하고, 행위까지 할 수 있는 장르인 까닭에 대중
음악은 대중의 일상성 속에 가장 깊숙이 자리잡은 문화가 되어
왔다. 따라서 대중음악의 영향력을 따로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일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대중문화, 특히 대중음악은 그 어느 시기보다 막강한 위력을 발휘한다. 그 위력은 과거 대중음악의 영향권 밖
에 있던 세대까지 소비자로 끌어들여 대중음악은 이제 모든 계층, 모든 연령층이 향유하는 문화예술 장르로 자리를 굳혔다. 60년대
까지만해도 대중음악의 흐름을 주도하는 세력은 도시의 젊은층이었다. 당시의 젊은층이란 나이는 20대 초반이었어도 명실 상부한
어른이요 성인이었다. 70년대 들어 청소년들이 청년문화를 주도하는 세력에 편입되었고, 그 이후 대중음악의 주도 세력은 점점 연
령이 낮아져 10대 중반을 거쳐
지금은 국민학교 어린이들에게까지 내려와 있다.80년대까지만 해도 10대부터 중년층까지가 대중음악의 수용자층이었고 국민학생은
만화영화로 대표되는 대중문화의 한 지류에만 참여하고 있었다면, 90년대에는 국민학생도 텔레비젼 쇼 프로그램의 시청률과 음반의
판매량을 주도하는 수용자층에 합류했다. 대중음악의 적극적인 수용자층을 거쳐 성인이 된 사람들도 대중음악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지 않으며, 몇년 사이 급속하게 보급된 노래방을 비롯한 각종 하드웨어의 발전은 대중과 그들의 음악을 더욱 밀착시키거나 적극
적으로 소비하는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 이로써 대중음악은 어린이부터 노년층에 이르는 전 연령층과 전 계층을 장악하는 강력한
대중문화 장르로 급부상했다.
특히 10대는 대중음악을 주도하면서 대중음악 시장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또 그만큼 대중음악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는다.
10대의 대중음악 영웅들은 학교 밖에서 교사보다 더 큰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80년대의 조용필과 90년대의 서태지는 우리역사상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었던 강력한 지도력을 10대에게 발휘하고 있다. 입시 공포에 시달리는 한국의 청소년들은 부모세대와 학교
생활로 대표되는 일상의 억압적 삶에서 벗어나는 거의 유일한 창구로 대중음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능동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수용자층의 확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대중음악은 다른 음악장르와 비교해 볼 때 80년대 중반부터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
중이 달라졌다. 음향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하고 '미국화'에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둠으로써 80년대 중반 한국 대중음악은 음반 산
업과 대중매체에서 서양의 팝음악과 자리바꿈을 하는 데 성공했다. 언더그라운드의 제도권 진입 등이 낳은 이 역전 현상은 대중음
악의 수용자들에게 대중음악의 생산자를 '아티스트'로 자리잡게 하고, 한국의 음반시장이 세계 10위권을 넘볼 정도로 급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2. "좋아하기는 하지만 예술은 아니다"?
시장규모와 수용자층의 확대, 음반을 구매할 능력을 갖춘 10대의 열광에 힘입어 대중음악은 한국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에 있어 대
중문화 가운데 가장 강력한 장르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대중음악에 젖어 있으면서도 예술의 한 장르로 인정은 하지
않는 이중적 태도를 굳세게 견지한다. 이를테면 술자리 같은 사적 모임에서는 거의 언제나 대중음악으로
끝을 내면서도 술에서 깨어나면 대중음악을 천대시하는 것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교육'이라는 민감하고도 '어려운' 문제를 노래
해도, 10대들에게 통일을 '교육'해도, 그것이 대통령의 말보다 더 강력하고 직접적인 효과를 발휘해도, 우리 사회의 지식인들은 그
방향이나 영향력을 애써 외면하거나 폄하하는 오랜 습성을 아직도 버리지 못한다.
세종문화회관에서 벌어지는 무슨 음악회만 예술이고 텔리비젼 쇼 프로그램에 나오는 대중음악은 상품일 뿐이라는 일방적인 규정은
'예술은 반드시 격조 있고 우러러보아야 할 대상'이라는 잘못된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30년대 중반 일본의 문화산업이 자리
잡는 과정에서 지식인과 대중을 분할 통치하려는 일제의 교묘한 문화정책에서 비롯된 그 고정관념은 순수음악과 대중음악을 장르
의 다름이 아니라 상하의 관계로 고정시켰고, 그 전통은 '서구의 고전음악만이 가치 있는 음악'이라는 지식인들의 강박관념 혹은
허위의식의 유포에 힘입어 지금도 굳건히 자리잡고 있다. 포크로 대표되는 70년대 초반의 대중음악은 한국 사회의 단단한 고정관념
을 깨트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으나 그마저 75년 철권에 의한 가요규제조치로 그 싹마저 잘리고 말았다. 이를 보면 오히려
군사정권의 담당자들이 대중음악의 위력이나 사회적 지위를 지식인들보다 훨씬 높게 평가했을지도 모른다.
대중음악은 현대 산업사회에서 가장 대표적인 음악 양식임에도 여전히 음악 연구자들의 진지한 연구 대상에조차 끼지 못할 정도로
심한 푸대접을 받고 있다. 한국 엘리트들의 뿌리깊은 편견으로 인해 대중음악은 같은 대중문화의 한 장르인 영화와는 달리 언론 매
체에서도 문화로서의 제 대접을 받지 못한다. 특히 언론의 경우 어떤 가수가 무슨 사고를 일으켜야 뉴스거리로 취급할뿐 그들이 끼
치는 영향력이나 수용자층의 반향 같은 긍정적인 측면은 '사건'으로 다루지 않는다. 자동차가 수백만대 팔리면 큰 뉴스로 취급해도
서태지의 음반이 그렇게 팔리면 대수롭지 않은 '연예 기사'쯤으로만 폄하해버리는 게 우리 언론의 현실이다.
대중음악에서 이 시대의 경향과 성격을 읽어내거나, 대중음악의 역사를 통해 지나간 시대를 바라보려는 진지한 시도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서양 음악사 말미에 20세기를 대표하는 음악 장르로서 팝 음악이 당당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데 반해, 한
국에서는 대중음악사조차도 노래운동 진영의 몇몇 연구자들의 외로운 시도 이외에는 전혀 씌어지지도 않았을 뿐더러 언제나 지식
인들의 관심권 밖에 놓여 있었다. 기나긴 역사를 통해 쌓여온 우리 대중음악의 자료들은 모두 폐기처분되고 있다. 비틀즈 같은 서
양 팝 음악가를 '위대한 아티스트'로 떠받드는 한국 사회는 우리 대중음악의 생산자들에게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한번도 붙여주
지 않았을 뿐더러 그들이 끼친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검토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다.
3. 대중음악 담당자들이 천대와 비판의 빌미를 제공했다.
클래식 음악뿐 아니라 팝음악에 비해서도 대중음악이 여전히 열등한 장르로 인식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일제와 군사통치 시기를
거치면서 대중음악이 지배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이용된 데서 찾을 수 있다. 대중음악은 단지 여흥의 수단일 뿐
이며 오락거리를 제공하는 '권투'와 같은 종류로 취급되어온 것이다. 대중음악이 여러 연령층과 계층의 정서를 반영하고 그들로 하
여금 건강한 삶을 영위하게 하는 생산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데 직접적이고도 결정적인 걸림돌이 된 것이 군사정부의 정치적 탄압
이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대중음악 담당자들의 책임을 전적으로 가려주지는 못한다. 손에 꼽히는 몇몇 '아티스트'를 제외한 대부분
의 생산자들은 대중음악을 문화산업의 상품만으로 인식하고 자기의 사회적 위치를 스스로 낮추어 온 것 또한 사실이다.
사회적 역할이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상업성만을 앞세운 대중음악 담당자들의 자기 비하와 철학의 부재는 한국 사회가 대
중음악에 편견을 갖는 빌미를 제공해왔다. 대중음악의 다양한 장르를 통해 시대성과 젊은이들의 폭발적인 에너지를 수용하고 재생
산하는 외국의 대중음악과 비교할 때 우리 대중음악은 그 내용이 너무도 빈약하다. 음악성은 물론 가사의 내용이 수용자들의 생활
과 동떨어진 '사랑'이라는 한 가지 패턴밖에 가지지 못했고, 이는 아직도 대중음악이 '싸구려 사랑타령'만 한다는 해묵은 인식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지난 10년간 음반시장이 급성장해도 그 내용은 별로 달라지지가 않았다. 외형적 성장
에 걸맞는 내적 구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그 속에서 질적 성장을 꾀하려는 시도가 전반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상업성만
강조되어 대중음악은 '하향 평준화'의 답보를 거듭해 왔다.
최근 들어 몇몇 발군의 생산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대중음악 생산자들은 어느 평론가의 지적대로 이른바 '개떼 근성'까지 보이고
있다. 한 장르가 '뜬다' 싶으면 가수의 성향이나 수요자의 욕구 혹은 정서는 무시한 채 한 곳으로 우루루 몰리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이다. 반면 대중음악에서 벌어들인 돈을 새로운 장르를 발굴하거나 '아티스트'를 키우기 위해 재투자하는 데는 아예 관심을 기울
이지 않거나 매우 인색하다. 10대를 겨냥해 제작자들이 벌이는 한탕주의에 방송의 시청률 제일주의와 언론의 센세이셔널리즘이 가
세한 결과 한국 대중음악은 대중음악의 또 다른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다양성을 무시해 20대 후반 이후 세대를 위한 음악을 거의
생산하지 못하는 심한 불균형 보인다.
4. 학교가 둘러친 높은 벽
노동만큼이나 휴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지금의 대중에게 대중음악이 끼치는 영향력과 중요성은 날이 갈수록 달라지고 있다. 그러나
철학의 부재로 인한 메시지의 결여, 상업성과 맞물린 한 장르의 일방적 독주 등은 '대중음악을 사랑 타령만 일삼는 오락물'로 간주
하려는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편견을 심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클래식 음악의 잣대로 대중음악을 판단하려 하거나, 대중음악이
라면 무조건 천박한 장르로 여기는 한국 사회의 일반적인 분위기를 바꾸는 일은 먼저 대중음악 담당자들이 떠맡아야 한다. 오락물
인 의 아들>에게 벌어들인 자본으로 을 재생산해내는 영화인들의 방법을 참고로 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대중음악 시장의 많은
부분을 10대들에게 의존한다면, 지금 그들의 문화가 어떤 것이며 억압된 삶의 구조 안에서 그들이 가진 응어리가 어떤 것인지를 규
명 해보고, 또 그들의 가슴 속에 쌓여 있는 불만 요소들을 추출하고 해소해주는 생산적인 측면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최근 비디오로 출시된 라는 미국 영화는 미국 고교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음악 수업의 풍경을 담고 있다. 교사는 학생들과 함께 팝
음악을 틀어놓고 신나게 춤을 춘다. 이 수업에는 방관자가 없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팝과 클래식은 어떻게 다르
지?" 춤을 춘 한 학생의 대답은 대중음악에 대해 한국에서 갖는 편견을 요약한다. "팝은 나쁜 거고, 클래식은 좋은 거죠." 교사는
학생의 편견을 단호하게 바로 잡는다. "그건 기호의 차이지." 다른 학생이 또 대답한다. "베토벤은 춤 추는 데 맞지 않죠." 교사는
그 대답에 이어 클래식과 팝 '장르가 어떻게 다른가'를 설명한다. "마돈나의 노래는 끝까지 4분의 4박자야. 멜로디는 바뀌어도 리듬
은 일정하지. 그러니 춤을 출 수 있지. 반면 현악 4중주는 리듬이나 멜로디가 다 바뀌지." 이 교사는 제자의 천부적인 재능을 알아
보고 줄리어드에 입학을 시키는, 고전음악에 매우 정통한 사람이다.
한국의 교실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이런 풍경을 찾을 수가 없다. 학교에 대중음악이 들어오는 것 자체를 '범죄시'하는 풍토는 90년
대 들어서도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몇십년 동안 지속되어온 서양 고전음악 중심의 학교 교육은 현장의 음악 교사들마저 곤혹스럽
게 만들고 있다. 국민학교 때부터 대중음악의 세례를 흠뻑 받고 입학하는 학생들에게 교사들은 지금의 교과과정으로는 '살아 있는'
음악교육을 시키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토로한다. 대중음악을 심각하게 따져보고 올바른 수용 방법을 가르치는 교육이 학교 현장
에서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락 스타가 유아교육용 음악을 만드는 데 참여하고, 생활상의 모든 일
들을 음악으로 끌어안아 그 생활음악을 바탕으로 음악 교육을 실시하는 서구와 정반대되는 상황이 우리 교육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중음악이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과 특히 10대에게 끼치는 영향력을 감안한다면 수용 방법에 대한 교육은 물론, 비교적 쉽게
가사를 쓰고 곡을 만들 수 있다는 대중음악의 특성까지 교육 현장에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학교교육제도 입
안자들의 편견이 교육 현장에서 지속되는 한 10대를 대상으로 한 음악교육은 현실과 겉돌 수밖에 없고, 대중음악에 대한 변별력을
우리 사회 어디에서도 키우지 못한 어린 10대들은 시청률 경쟁을 벌이는 매체와 상업성을 앞세운 저품질의 대중음악에 휘둘릴 수
밖에 없다.
대중음악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여론화하기 위해서는 대학에서 이 문제를 따져보는 작업도 필요하다. 대중음악에 관한
논의나 연구가 지금은 음악대학에서가 아니라 사회학과나 신문학과에서 매체비평으로만 이루어져 대중은악 현장과는 별연계성을
갖지 못한다. 대중음악의 역사와 이론, 구체적인 방법론들이 대학에서 교육된다면 현재 대중음악계가 안고 있는 고질중의 하나인
엘리트 부재 현상도 부분적으로는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대학에서의 적극적인 교육과 연구는 근거 없이 대중음악을 폄하하려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시각을 바로 잡는 데도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여건과 수용자의 태도 변화에 앞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대중음악 담당자들이 다양한 종류의 대중음악 상품을 개
발하고 생산하는 일이다. 대중과 가장 밀착되어 있는 예술장르인 만큼 대중의 일상과 현실을 가장 잘 반영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적극적이고도 효과적인 예술장르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대중음악이 소모적인 오락물이 아니라 독립된 하나의
예술적 산물이며 현대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예술장르임을 인식하고, 사회적 문제제기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생산적인 예술장르
로 거듭나는 과제를 스스로 떠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건 끝이다..편집 잘하고..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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