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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을 지어가며 복음을 전했던 바울처럼".. 하나님이 기억하실 목회자
-70세 목회자를 도와 교회를 일으킨 어머님의 헌신으로 목회자, 교수, 의사, 교장으로 성장
-전국 최초로 요양보호사교육원을 설립, 민간자격증에서 국가자격증을 만드는데 일등공신
-영원한 청년 조이철 목사, 이제는 학교 밖 아이들을 반드시 살려내는 대안학교를 계획
2천 년 전 사도바울은 성도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며 복음을 전했다. 이 땅엔 사도바울처럼 성도들이 내는 헌금에 기대지 않고 일을 하면서 목회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어디 그뿐인가?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서 아낌없이 사용하는 목회자들이 참 많다. 사람들이 그런 목회자를 기억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기억하실 것이다.
하나님이 기억하실 목회자, 천막을 만들던 바울처럼 지금도 일을 하며 뜨겁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 조이철 목사를 만나러 가던 날은 눈이 하얗게 내렸다.
조이철 목사의 아버지는 6.25 참전용사였고, 전쟁 직후 PX파견대장으로서 군인들의 복지를 위해 헌신했다. 하지만 군인의 월급으로는 5남매 자녀를 공부시키기는 것이 불가능했다. 딸까지 대학공부를 시키기 원했던 아버지는 육군 소령을 끝으로 제대를 했고, 사업을 시작한다. 덕분에 네 아들과 딸 모두 대학을 마쳤고, 지금은 목회자로, 교수로, 의사로, 교장으로 사회에서 각자 큰 일들을 잘 감당하고 있다.
▲대한시니어교수협의회 창립대회 장면(현재 초대 회장을 맡고 있다)
아버지로부터 리더쉽을 배웠던 조이철 목사가 대학에서 법을 선택한 것은 좋은 정치가가 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당시 시대상황은 대학생들에게 많은 실의와 번민을 안겨 주었다. 늘 시위현장에 있었던 조이철 목사는 정치가의 뜻을 접는다. 그 때 만약 조이철 목사가 계속 시위현장에 있었다면 분명 지금의 삶과는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어머니의 기도로 조이철 목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순히 서울신학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다. 어머니는 참으로 특별하신 분이었다. 조이철 목사에게서 듣는 어머니의 일화는 무척 감동스럽다.
“제가 20대 때였습니다. 담임 목사님이 70세가 되어서 은퇴를 하시게 되었는데, 목사님에게는 아직 공부를 해야 하는 딸이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교인들에게 딸이 대학을 졸업하는 2년만 더 목회를 하게 해 달라고 사정을 했어요. 하지만 교회의 중직자들은 거절했죠. 모아놓은 돈이 하나도 없던 목사님은 눈앞이 캄캄했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어머니가 목사님을 찾아가서 제가 도울 테니 개척을 하자고 말합니다. 대부분 교회를 개척할 때는 젊은 목사님과 하는데 어머니는 교회에서 은퇴를 한, 일흔이 넘은 목사님과 교회를 개척합니다. 덕분에 목사님 따님의 공부는 중단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개척된 교회는 현재 광주에서 가장 큰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어머님은 교회를 위해서, 또 목사님을 위해서 힘을 다해 헌신하셨는데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넘치게 갚아주셨어요. 자녀들이 정말 큰 복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신학을 공부하던 시기는 매 순간 하나님의 음성이 연속적으로 들려오는 뜨거움이 있었다. 신학대학을 졸업한 후, 목회를 시작하면서 안정된 도시 교회를 찾지 않았다. 작은 시골교회에서 가난한 사람들, 상처받고 지친 사람들 곁으로 찾아갔다. 성도들이 겪는 어려움은 성도의 어려움이 아니었다. 조이철 목사의 어려움이었다. 성도들이 겪는 가난도 성도들의 가난에서 머물지 않았다. 조이철 목사는 아픈 성도들의 삶을 껴안았다. 조이철 목사는 교회의 성장이 아니라 성도들의 삶의 부흥을 꿈꾸었다. 성도들의 삶이 좀더 나은 방향으로 흘러가기를 바랬던 조이철 목사는 목회와 사회복지라는 양 날개를 펴고 사람들의 손을 잡았다. 조이철 목사가 말한다.
“목회 초기는 물론 지금도 여전히 ‘지역사회에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복음을 잘 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합니다. 지역사회에 필요한 일,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망설이지 않고 달려갑니다. 그래서 어린이집을 만들고 종합복지관을 만들었습니다. 종합복지관을 건축할 때는 국비가 50%, 시비가 30%, 자부담이 20%입니다. 그런데 국비 50%는 나왔는데 시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30%를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종합복지관 건축을 포기하거나 공무원들과 다투지 않았습니다. 좋은 일을 하려고 하는 건데 어떤 이유로든 다투는 것은 옳지 않았습니다. 결국 자부담 50%로 건축했고, 우리는 해마다 조금씩 그 채무를 갚아갔습니다. 2008년부터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되면서 우리 사회는 돌봄사회로 큰 변화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도는 시행되었지만 아무 준비가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 3년 전부터 간병사 교육을 하고 있던 제가 현장 책임자로 지목되었어요. 보건복지부 국장이 고령화사회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현장에 있던 저와 함께 호흡을 맞춰서 일하다보니 노인장기요양 분야에서 대부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고, 전국 대사가 되었습니다.”
조이철 목사는 시대의 변화를 따라갔던 사람일까? 아니다. 약한 자를 돌보는 지극한 마음이 먼저 있었고, 실천했던 사람이다. 다시 조이철 목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지나고 보니 정말 대단한 일들이 많았어요. 기적이라는 표현 말고는 달리 설명할 수가 없어요. 그 당시 돈도 없었고,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절대적인 역사가 있었습니다.”
조이철 목사는 전국 최초로 요양보호사교육원을 설립하고, 요양보호사를 배출했다. 지금은 국가자격증이 되었지만 요양보호사 제도가 시행되던 초기에는 민간자격증을 가진 요양보호사들이 일을 했다.
전국을 두루 다니면서 사회복지 일자리 교육(간병 호스피스)과 요양보호사교육원, 재가센터, 주야간보호소설립교육을 강의했던 조이철 목사, 우리나라가 지금의 눈부신 복지 향상을 이룬 것은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눈물이 있었다. 요양보호사가 민간자격증에서 국가자격증이 되기까지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고, 여기에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다. 그 노력들 중에 조이철 목사의 헌신이 매우 크다.
노인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고 있는 현실은 모두가 다 아는 일이다. 예전에는 기본적인 생계비 지원만으로도 국가의 의무가 충실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경로당마다 체육시설을 갖추고,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것은 물론 식사가 제공된다. 그러나 우울증을 앓는 노인들은 더 늘어났고, 자살하는 노인의 숫자도 계속 증가하는 상태다. 노인상담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재가복지센터와 주간보호센터, 그리고 요양원에 근무하는 요양보호사는 대부분 내국인이지만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는 간병인들은 외국인들이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온전한 돌봄과 간병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어서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들을 발생시키고 있다. 간병인 역시 요양보호사에 버금가는 교육이 필요하다.
다시 조이철 목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현재 우리나라에는 250만 명에 가까운 요양보호사들이 있습니다. 충남에 15만 명, 아산에는 2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요양보호사 자격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현장에서 일하고 있지 않아서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또 집에 계신 노인들을 방문해서 돌보는 생활지원사들 역시 많이 부족합니다. 저희 협회에서 생활지원사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만 이젠 단순한 돌봄을 넘어서야 합니다. 스토리텔링은 물론 놀이와 정서프로그램이 함께 들어갈 때 노인들을 제대로 돌볼 수가 있습니다. 국가가 많은 일들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국가의 손이 미처 닿지 못하는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노인들을 위해서 더 나은 일자리를 찾고 만들어내는 조이철 목사, 그는 시니어교수협회를 만들었다. 다시 조이철 목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전국시니어교수협회는 50명으로 출범했는데 연령대가 60대부터 80대에 이릅니다. 사회적 참여에 대한 열렬한 꿈을 가진 시니어들이 강사교육을 받고 시작했습니다. 50명 모두가 맡은 분야는 각각 다르지만 그동안 사회에서 쌓아온 경험과 실력들이 녹아 있죠. 유명 강사들 못지않은 실력 있는 강의를 펼쳐냅니다. 이 밖에도 할 일이 아주 많습니다. 노인들을 돌보고, 또 노인들이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다보니 저의 삶은 노인들과 매우 가깝습니다. 다시 말하면 죽음과도 가깝다고 말할 수 있어요. 죽음은 나와 상관없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맞닥뜨려야 하는 문제라는 것을 매일매일 자각합니다.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죽는 것도 중요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웰다잉- 민간자격증’을 발급할 수 있는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죽음을 앞 둔 사람들을 돕는 일은 매우 경건하고 거룩한 일이니까요. 이 일을 하면서 좋은 상담이 건강과 인간관계는 물론 지혜와 지식을 바꿔준다는 사실도 경험합니다.”
요즈음 조이철 목사는 고민이 많다. 학교의 환경은 말할 수 없이 좋아지고 있는데 학교 밖 아이들이 많아지는 현실에 마음이 아프다. 아이들 이야기를 하는 조이철 목사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진다.
“적지 않은 수의 청소년들이 흡연을 하고 술을 마십니다. 심지어는 피임약을 아무 거리낌 없이 사고, 마약에 노출되는 청소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나간 아이들이 갈 곳이 없어요. 그들과 함께 뛰어 놀고,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그들을 기다려주고, 격려해줄 어른들이 많지가 않은 거죠.
현재는 초고령사회를 겨냥하여 고령자에게는 사회적일자리를 통해서 지역사회에 기여하며 지역사회에는 사회적기여와 사회적일자리 창출로 아름다운세상을 만들어간다. 그래서 요즘 대안학교를 계획하고 있어요.”
목회 초기에는 어린이집을 운영했던 조이철 목사다.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젊은 사람들까지 품에 안았던 사람이다. 이제 조이철 목사는 청소년들을 안을 준비를 하고 있다. 조이철 목사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자.
“한 아이가 방치되어서 잘못되면 이다음 우리 사회는 아주 많은 댓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래서 학교 밖 아이들을 반드시 살려내야 합니다.”
이 사회에 대해서, 또 사람들에 대해서 일관되게 살리는 꿈을 꾸는 조이철 목사, 그의 꿈이 푸르니 그는 여전히 청년이다.
우리는 조이철 목사를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고, 성장하고, 살아나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행복한 노인들의 이야기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동화같은 삶의 이야기도 많이 듣게 될 것이다.
■충남요양보호사협회장 조이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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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자 작가 pulbat@daum.net
출처: 아산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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