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순을 치고나서 비닐은 낫으로 반을 가른 다음 거둬얀다.“
사촌형의 말을 되새기며 작업을 하고 있다.
비닐을 걷어내니 빨간황토의 탄력있는 촉감이 전해오는 것 같다.
황토치고는 물빠짐이 좋아 오래전부터 고추를 해서 목돈을 벌 수 있었다는 밭,
올해부터 임대해 지어온 이 밭은 친구가 장기계약으로 얻은 밭인데 내가 대신 짓고 있다.
고구마순머릿부분을 예초기로 잘라내고 비닐을 걷어내야 수확기를 장착한 경운기로 고구마를 캘 수 있다.고구마순이 남아있으면 비닐을 걷을 때 걸리적거려 작업이 더디고 힘들다.얼굴에 흙이 튀길정도로 예초기날을 두둑에 밀착하여 고구마순을 쳐내고 있는 중이다.두어두둑 쳐내고 비닐걷어내고,경운기는 한켠에 서서 대기중.....
고구마순 절단기를 대여해도 되지만,얼마남지 않은 상태라서 그냥 예취기로 치고 있다.
“남수왔냐!!”
인기척을 느끼고 뒤돌아보니 사천댁이 와계셨다.
지금 이밭의 주인이시고 외갓집 바로 아랫집에 사시는 분이다.
친구가 맘에 들어 밭을 장기임대해주셨다고 하는데,친구는 자기집 가까운 곳에 더 큰 밭을 얻어 내가 대신 짓고 있다.
“네가 고생이 많구나.좀 쉬었다 허그라이..어여 이리 온나..."
안따라 나섰다가는 두손이라도 잡고 끌고 나가실 기세다.
그늘로 따라나섰지만 고구마순조각들에 범벅된 옷가지며,땀에 쩔은 얼굴에 흙부스러기까지 튀어박혀 몰골이 어쩔른지 안봐도 비디오다.
“아이고,네가 어찌다 여그와서 이고생이냐,너만 보믄 짠해죽겄다.”
묵직한 비닐봉다리를 펼치시며 혀를 끌끌 차신다.
맥주 두병,복숭아 1개,포도 한송이....물론 컵까지 다 준비해오셨다.
물방울이 송글송글 맺힌 맥주병을 보니 눈보다도 목구멍이 먼저 반기는 것 같다.
단숨에 맥주잔을 벌컥벌컥 비우고 이어지는 비명같은 외마디....
“,캬!!”
맥주잔 밑둥을 통해 바라보는 하늘이 모두 내것같이 느껴진다.
한잔을 더 마시니 비로소 곁을 바라볼 여유가 생긴다.
‘한잔 같이 드시지 그러세요’.
“아니다,너나 먹고,,일허다 목타믄 한잔 더 하그라.“
“그나마 네가 이밭을 짓는닥헌게 얼마나 반가운지 몰르것다.”
만날때마다 반복되는 말씀을 한 번 더 하시고,잠시 측은한 눈빛으로 나를 한번 더 바라보시곤 총총걸음으로 고추밭사잇길을 걸어 시누대사이 살구나무가 있던 곳으로 멀어져가신다.
어렸을 적 나는 외갓집에 가는 걸 무척 좋아했다.
지금은 개간이 되어 밭이 되어버린 야산사이를 가로지르며 논두렁 밭두렁을 꼬불탕꼬불탕 지나고,오리나무,떼죽나무,도토리나무사이로 리어커한대쯤 지날 수 있는 길을 한시간정도 걸어야 했던 길,잔솔밭을 지나면 끝에 하늘을 찌를 듯한 상수리나무들사이에 외가가 있었다.아름드리 상수리나무는 외갓집뒷편언덕에 빙 둘러 있었는데 집을 덮칠 위험이 있다고 해서 아버지께서 밧줄을 묶어놓고 베어내셨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다.상수리를 줍고 핀둥이를 잡으며 놀았던 상수리나무,국어시간엔가 고목나무에 꽃폈다는 대목이 나올 때 제일 먼저 떠올리던 상수리나무,어린 마음에도 왠지 섭섭하고 허한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외할머니,외할아버지,외삼촌,사촌누이,형...여름방학이라도 하게 되면 친구들까지 데리고 가서 하루이틀씩 자고 오기도 했던 외가...한귀퉁이에 소가매어져 있고 마당엔 커다란 멍석을 깔고 매캐한 모깃불연기가 하늘로 솟구쳐 달빛에 반사되던 그때,외할머니는 밥그릇 비우기가 바쁘게 내 밥그릇에 밥을 퍼서 체워주곤 하셨다.멍석은 커다란 것을 두 개 깔았는데 한켠엔 남자,한켠엔 여자밥상이 차려졌고 제일 어린 나는 항상 외할아버지랑 함께 식사를 하였다.
외삼촌은 반주로 막걸리를 드시곤 했는데 집에서 직접 담근 막걸리였다.
당시 막걸리제조는 불법이었는데,뒤안(뒷마당)갈쿠나무배물에 공간을 만들고 술단지를 넣어두셨다.외숙모는 가끔씩 지금의 누룽지처럼 생긴 단술을 한 대접씩 주곤 하셨는데 밥알이 씹히면서시큼하고 달짝지근한 것이 지금이라도 한그릇 먹어보고 싶어진다. 외할아버지할머니,외삼촌내외,그리고 7남매와 나,왁자지껄한 식사가 끝나면 기다란 곰방대에 담배쌈지를 펼치고 담배를 장착하신 할아버지께선 나직하고 구수한 목소리로 옛날얘기를 시작하셨다.흥부와 놀부,심청전으로 해서 나중엔 당신께서 열두살에 부모님을 여의고 가산을 정리해 이곳에 정착하신 과정,젊은 날 인천부두에서 쌀 하역작업을 하시던 얘기,그리고 동네 여러집안들의 내력과 품성,외가와의 인연 등등....
이어서 방안에 들어가면 블을 끄고 베게를 베고 이어지던 외삼촌의 수수께끼타임,스무고개..
돌이켜보면,전화도 텔레비전도 없던 시절 그 옛날의 생활과 삶의 지혜들이 가족들이 모여앉은 가운데 후대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모습이기도 하였다.오천년의 역사라고 하는데,지금처럼 풍속이 사라지고 핵가족화가 진행되고 도시화가 진행될수록 비능률과 비위생,비효율이라는 이름으로 대화가 사라지고 전통이 끊기고 풍속이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우리의 정신을 지배하고 삶을 지탱해오는 근간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진 않았을텐데 말이다.
그 아랫집에 커다란 살구나무가 두그루 있었고 바로 사천댁네 집이 있었다.
살구나무는 노랗게 익으면서 벌어지는 개살구와 노란 살집에 붉으스름한 반점이 조금씩 있었던 참살구나무가 있었다.개살구는 시고 참살구는 달았다.살구를 따먹다 손이 닿지 않으면 돌을 던져서 따먹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하얀 백발의 할머니와 지금은 돌아가신 아저씨 그리고 이름까지 기억하는 그집 형과 누나,동갑내기 여자애,사촌누이들이랑 섞여 마당에서 함께 놀이에 몰두하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그저 나를 반갑고 따뜻하게 맞아주시던 기억,장날에라도 뵈면 인사 꼬박꼬박 해드리던 기억
그리고 수십년만에 만났을 뿐이다.최소한 나와는 같은 세대는 아니시다.
“도대체 엄니는 뭘 얼마나 잘해드렸간디 그냥반이 나한테까지 잘허는거대요?”
저녁 밥상머리에서 어머니께 여쭤보았다.
사천댁이 처음 시집왔을 때는 아랫집은 형펀이 어려웠고 외갓집은 비교적 잘 사는 집이었다.
옛날 보릿고개때는 피죽으로 연명하던 시절이었는데 어머니는 새댁이었던 사천댁을 불러 모퉁이에서 함께 밥을 먹거나 챙겨주시곤 했다고 한다.그 후로 어머니께서 울동네로 시집을 오셨는데 무척 서운해 하셨다고 한다.
아마도 그때 배고픈시절의 기억 때문일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품성이 따뜻하고 부지런한 분들이어서인지 자식농사를 잘 지으셨다고 한다.
어쨌든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옛날의 인연들이 수십년만에 고향을 찾은 나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하다.
덕분에 내가 아무 영문도 모르고 맨날 맥주며,과일이며 그집 밭에 갈때마다 챙겨먹을 수 있는 것이었구나..
지금현재의 이해타산으로 설명되지 않는 커다란 인연의 뿌리가 보이지않는 사람들의 내면에 깊게 얽혀져 있다.
얼마전엔가 해리면에 귀농하신 분이 땅을 사기 위해 흥정하다가 며칠 후 찾아갔더니 땅이 팔렸다고 하더란다.
도대체 얼마에 팔렸느댜고물어보니 자기가 제시한가격보다 훨씬 더 싸게 팔려서 의아해하였다.
동네분이 땅이 필요하다고 해서 싸게 팔았다는 것이다.
농촌의 이해관계는 도시의 이해관계와는 다르다.
금전적이고 일시적인 것이 아닌 지속적이고 끈끈한 유대감같은 것이 자리잡고 있다.
귀농인의 존재는 수십년 혹은 수세대를 거쳐 살아오면서 깊이 얽혀진 만수산드렁칡같은 관계에 겨우 일년생잡초의 풀뿌리 같은 인연하나 얹어놓은 것에 불과할지 모른다.
너는 누구이며 성은 무엇이냐?
아버지가 누구냐?
그동네의 누구누구를 아느냐?
두어번 문답만에 상황파악이 끝난다.
그동안 학습된 것을 꺼내 대입시키면 나에 대한 기초적인 파악과 집안과 내력,품성등을 쉽게 유추해내는 것이다.바로 이순간에 내가 우리집안에 대한 책임과 지켜야 할 명예와 의무가 할당되어지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만들어갈 모습은 무엇일까
이미 우리의 모습은 여러사람의 입을 거쳐 입체적으로 조망된 후 해설과 주석이 덧붙여저 벌써 많은 사람들에게 학습되어지고 있을 것이다.
여기에 평생을 두고 만들어가야 할 나의 이미지와 발전적인 인격에 대한 설계도가 나와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곳은 맘에 들지 않으면 안 가고 안 만나고 안사고 또 성에 차지 않는다고 사표를 쓰는 그런 곳이 아니다.
내가 나를 만들어가고 내 행동에 책임을 져 가는 진정한 삶의 출발점에 서 있는 것이다.
내가 조상이 되고 시조가 되어 내 후손의 앞날을 좌우할 족보의 첫페이를 만들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구릉위에 약간 경사가 진 밭이다.
지금은 '책마을 해리'로 쓰이고 있는 나성초등학교 뒷편으로 언덕배기 두어개와 갯논을 지나면 명사십리가 펼쳐진다.
마대자루에 사정없이 잡히는 노랑조개,까네미,뽀각이 대나무에 실을 달아 바늘만 드리워도 잡힌다는 운지리(망둥어),아무리 흉년에 보릿고개라고 해도 굶을 일이 없었다는 그 바다,유네스코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고창,그중에서도 바닷물의 수온과 지형의 영향으로 서리마저 내리지 않는다는 천혜의 지역이기도 하다.
석양빛을 밭은 크고 작은 밭들이 불규칙한 밭두렁으로 경계를 이루고 저마다의 작물로 자기색깔을 뽐내고 있다.
땅콩,복분자,고구마,콩,고추,담배,블루베리,인삼,회양목,비닐하우스.....
저렇게 울긋불긋 얽혀서 사는게지. . 내가 살아가면서 내는 때깔도 저리 고울 수 있었으면....
밭 깊숙한 곳까지 들와있는 사륜구동트럭에 주섬주섬 낫이며 예취기를 싣는다.
내일을 위해 남은 맥주 한병도 뒷좌석에 착실하게 챙긴 후 운전석에 오른다.
일발시동,집-으-로--!!!
첫댓글 !!!
♥♥♥
외갓집은 늘 사랑의 정이 넘치는 추억이 가득하지요.
저희 외갓집도 고창 성송면 학천초교 주변인데요.
방학때면 비 포장 시골길을 덜커덩 덜커덩 하는 버스를 유일하게 타보는 재미의 추억과 함께
반갑게 맞아 주시는 외할아버지 할머니 이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은 어린 유년시절에
늦은 시간까지 동네 꼬마녀석 친구들하고 소꿉놀이의 추억도 스처가고~~
추석날 인사차 외가에 방문 할때 쯤이면 앞집에 탐스런 석류가 빙그레 웃으며 유혹하면
담 넘어 한개 살짝 땡겨서 상큼한 석류의 맛도 보앗던 외가집은 늘 정신적 지주라고나 할까요 ?
남수야 !
힘든 시골 농사일에 건강 잘 돌보면서 하고 힘내그라 ~ 잉 !
남수 홧~팅
담에 만나서 햄버거나 함께 뽀개보세!^^
ㅎㅎ~~~
햄버거 뽀개는거 동문님들께서는
뭔~소리 하냐고 무척 궁금 헐~텐디....?
세월을 33년전으로 돌려서
고속버스도 같이 타야 할것이고
짬도 내야 하고 서로가 바쁜 생활에
걍 ~
저~어~~기
보이는 고마를 뽀개 보드라고~~~
성실 근면의 표본인 남수의 전원 생활이 아주 멋지게 묘사되었군
노랑바구니의 고구마 보니 침이 꼴깍 넘어가는구나~
멋진 남수야!! 사랑사랑해~
어제 건강박수 치느라 욕보고 왔습니다.
사회보시는 모습 멋있었고요.
수고많으셨습니다.고구마 수확하믄 한박스
보내드릴께요.^^
고구마 안보내줘도 멋드러진 남수얼굴만 자주봐쓰먼 정말 좋큿다~ㅎㅎ
속세의 저주를 품은 귀농!!
사업 악화의 대용으로 선택한 귀농!!
전원생활의 신드롬에 부푼 귀농!!!
어느 한구석을 훑어 보더라도 남수의 귀농은 세번째에 해당될터~~
떼묻지않은 마음까지 곱게 닮은 농부의 아들 남수가 아름답다.
올해도 모종 잘해서 황금수확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