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7월 9일 〈보리밭〉의 시인 박화목이 우리 나이 82세에 세상을 떠났다. 윤용하가 곡을 붙인 〈보리밭〉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널리 알려진 명곡이다. 보리밭을 본 적이 없는 사람조차 이 가곡을 흥얼거린다. 악보 없이도 누구나 부를 수 있으니 ‘국민 가곡’이라 하겠다.
보리밭 사이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
고운 노래 귓가에 들려 온다
돌아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
저녁노을 빈 하늘만 눈에 차누나
‘발을 멈춘다’가 아니라 ‘나를 멈춘다’가 눈길을 끈다. 추억은 발을 멈춘다고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발을 멈추는 것은 신체를 묶는 행위이지만 나를 멈추는 것은 마음을 정지시키는 정신작용이다. 이 한 대목만으로도 〈보리밭〉은 훌륭한 시의 반열에 오를 자격을 갖췄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평이한 시어를 쓰면서도 깊은 인식까지 보여주는 가작이다.
박화목의 시에는 또 다른 유명 노랫말이 있다. 김공선 작곡의 〈과수원길〉이다.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하아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향긋한 꽃 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솔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보며 생긋
아카시아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길
두 노랫말 모두 ‘옛’이 관통하고 있다. 혼자 옛 생각을 하노라니 외로운 느낌이 일어나 휘파람을 불어본다. 그리운 이와 함께 불렀던 고운 노래가 들려오는 듯하다. 하지만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둘이서 말없이 마주보며 생긋 웃음을 나누었던 과수원길 추억도 옛날 일일 따름이다. 도시에는 보리밭도, 동구도, 과수원길도 없다.
잃어버린 것은 자연에서 살았던 젊은 날의 추억만이 아니다. 지금의 나도 풋풋했던 지난날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다. 〈보리밭〉과 〈과수원길〉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데에는 이와 같은 심연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관념으로만 존재할 뿐 현실에서 만날 수 없는 ‘하늘’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늘 ‘빈 하늘’이다. 저녁노을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하늘은 그저 빈 하늘일 뿐이다.
회색빛 도시에서 태어나고 생활하는 현대인은 이미 고향을 잃었다. 실바람이 불어도 꽃향내가 아니라 매연만 흩날린다. 과수원길과 보리밭길이 없으니 그리운 사람과 정겹게 걸을 일도 없다. 아이들이 트로트를 부르는 사회에 어찌 ‘고운 노래’가 살아남을 수 있으랴. (*)
정만진은 민주당 당원이 아닙니다. 물론 국민의힘 당원도 아닙니다. 대구시 교육위원으로 일했으므로 당연히 정당 가입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내가 사는 대구, 대구가 알고 싶다>는 민주당 대구시당의 초청 강연입니다. 바람직한 강연회를 준비한 민주당 대구시당! 잘했습니다. 정만진은 국민의힘 대구시당이 대동소이한 주제의 강연을 요청해도 가서 '대구'를 이야기할 것입니다. 왜냐? 정치 행사가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