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삼국지연의》에 허소가 조조를 “태평 시대에는 간적奸賊, 난세에는 영웅”이라고 평가하는 대목이 있다. 다른 이의 말을 성심껏 들을 만큼 수양이 되지 못한 사람은 흔히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귀에 담는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다. 공자의 가르침대로 말하면 보통사람은 군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삼국지연의》를 읽은 독자들은 허소의 평가를 ‘조조는 간웅’으로 요약한다. 영웅으로 인정은 하되 좋은 이미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 미묘한 심리적 반응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독자는 자기 자신이 ‘간奸’과는 거리가 먼 ‘착한 사람’이라고 자위한다. 이때 ‘사람’은 영웅이 아니라는 뜻이다.
《삼국지연의》에는 독자의 이같은 사유를 뒷받침해주는 또 다른 표현이 나온다. “寧敎我負天下人休敎天下人負我” 즉 ‘내가 천하 사람들을 저버릴지언정 천하 사람들이 나를 저버릴 수는 없다’라는 조조의 발언이다. 기가 막히게 자기중심적인 발상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적어도 나는 조조만큼 이기주의자는 아니다’라고 스스로를 격상시킨다.
조조와 그의 아들 조비 ‧ 조식은 당대의 이름난 시인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조식은 이백과 두보가 출현하기 전까지 중국 최고 시인으로 평가되었다고 한다. 조조의 시를 읽어본다.
“對酒當歌人生幾何
술을 앞에 놓고 노래하네, 인생이 길어본들 얼마나 되랴
譬如朝露去日苦多
인생은 아침이슬 같은 것, 지나간 날들이 너무 많구나 (중략)
靑靑子衿悠悠我心
그대의 푸르른 옷깃을 보니 내 마음도 펄럭인다
但爲君故沈吟至今
다만 그대를 생각하며 지금껏 홀로 노래를 읊었다네 (중략)
越陌度阡枉用相存
논둑 밭둑 넘어 힘들여 이곳까지 왔으니
契闊談讌心念舊恩
서로 깊은 마음 나누며 옛 은혜를 생각하네
月明星稀烏鵲南飛
밝은 달 듬성한 별밤에 까막까치 남쪽으로 날다가
繞樹三匝何枝可依
나무 위를 세 차례 맴도네, 어느 가지에서 잠시 쉬려나
山不厭高海不厭深
산이 높음을 거리끼지 않고 바다가 깊음을 거리끼지 않듯이
周公吐哺天下歸心
나도 주공 같은 큰 정치를 하여 천하 민심을 얻으리라”
《삼국지연의》는 한나라의 맥을 잇는 유비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자연스레 조조는 간웅으로 성격화되었다. 조조는 220년 3월 15일 세상을 떠났다. 오늘 3월 15일 조조의 기일을 맞아, 역사 관련 책을 읽을 때에는 누군가를 ‘간웅’으로 왜곡하려는 관점 아래 저자가 글을 쓴 것은 아닌지 곰곰 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본다.
물론 그보다도 나의 가슴에 저리게 울려오는 말은 따로 있다.
"술을 앞에 놓고 노래하네, 인생이 길어본들 얼마나 되랴!" (흔히 사람들은 자신만은 '영생'을 누릴 존재인 양 착각하고 살아간다. '주'께서 그렇지 않다고 거듭 강조했는데도 신도들차도 그렇다.)
첫댓글 나는 2번아닌 1번을 찍었다.
그러므로 나는 민주시민이다.란 착각속에 살고있지 않은지.내속에 있는 2찍은 눈감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