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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장자권!(24) : 장자여! 우선순위를 결정하라!”
+ 본 문 : 느혜미야 7장 1절 - 4절 (구약성경 734쪽)
1 성벽이 건축되매 문짝을 달고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 사람들을 세운 후에
2 내 아우 하나니와 영문의 관원 하나냐가 함께 예루살렘을 다스리게 하였는데
하나냐는 충성스러운 사람이요.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 중에서 뛰어난 자라.
3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해가 높이 뜨기 전에는 예루살렘 성문을 열지 말고
아직 파수할 때에 곧 문을 닫고 빗장을 지르며 또 예루살렘 주민이
각각 자기가 지키는 곳에서 파수하되 자기 집 맞은편을 지키게 하라 하였노니
4 그 성읍은 광대하고 그 주민은 적으며 가옥은 미처 건축하지 못하였음이니라. 아멘!
서로 축복 / “나는 하나님의 장자입니다. 당신도 하나님의 장자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당신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 당신도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복의 근원입니다. 당신도 하나님의 복의 근원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장자 – 하나님의 자녀가 가지는 권세를 회복하고, 그 권세를 누리며 살아갑시다.
오늘 주일은 “장자여!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살라.” 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저를 따라 선포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장자인 나는 / 우선순위를 / 분명히 하고 살리라! 아멘!”
그런데 항상 인기가 있는 대학이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대학입니다.
여기 재학 중엔 사회에서 인정받는다 하지만, 이곳을 졸업하고는 대부분 좋은 소리 못 듣고 삽니다.
요즘 이 대학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럽잖아요? 어느 대학입니까? “청와대”
그런가 하면 여름에만 다니는 유명한 대학도 있습니다. 각계각층이 모이며, 분위기가 좋습니다.
단 지방이라는 약점이 있기는 하지만, 여름만 되면 언제나 인기절정입니다. 어느 대학입니끼? “해운대”
이런 대학도 있습니다. 아주, 정말 볼품없습니다. 가봤자 개똥과 개 오줌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똥개만 가는 게 아닙니다. 가끔은 개 같은 사람도 가는 대학입니다. 어느 대학입니까? “전봇대”
이런 대학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여자대학으로 개교를 했으나, 요즘에는 멋진 남자들도 갑니다.
그래서 여학생들의 사랑을 듬뿍 받습니다. 이 대학은 교복이 있습니다. “앞치마” 어느 대학? “싱크대”
지금까지의 개그는 아재 개그였습니다. 그냥 웃자고, 우선순위 대학이야기 하다가 실없이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진짜입니다. 오늘 주일 설교제목이 “장자여!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살라.”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의 우선순위가 분명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담대하게 신앙생활하게 됩니다.
어느 중학교 생물시간에 선생님이 진화론을 가르치시면서 “원숭이가 사람의 조상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한 학생이 묻습니다. “선생님! 그러면 선생님은 원숭이의 몇 대 손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화가 나서 소리 지릅니다. “요놈! 너 예수쟁이지. 수업 다 마치고 교무실로 와.”
그 예수쟁이 학생이 수업을 다 마친 다음 교무실로 갔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 하나님 믿는다고 큰 소리 치는데, 그럼 하나님을 보여 줘 봐. 그러면 나도 하나님을 믿을 께.”
“선생님! 정신이 있으십니까? 없으십니까?” “뭐라구? 야, 이놈 봐라. 내가 정신이 있지. 왜 없어?”
“선생님! 그러면 선생님에게 있다는 그 정신을 제게 보여주세요. 그러면 저도 하나님 보여 드릴께요.”
선생님이 무슨 재주로 정신을 보여 주시겠습니까? 그래서 선생님이 “내가 졌다.” 항복하셨답니다.
아직 중학생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학생으로서 그의 우선순위가 확실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를 다니는 것이 우선순위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이 우선이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래서 이 시간 중대한 결단을 하기를 진심으로, 진심으로 원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로서의 저와 여러분의 인생의 우선순위 결정 문제입니다.
저는 한 사람의 목회자로서 교인들의 신앙과 삶을 관찰해볼 때마다, 가슴 아픈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곧 우선순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사람들은 괜한 헛고생을 하며 산다는 안타까운 점입니다.
본인의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열심히 잘 믿어 보려고 애씁니다. 그런데 주님 말씀보다 세상이 우선입니다.
무엇이든지 주님 뜻이 우선이어야 하는데, 내 생각이 우선입니다. 그래서 이해타산을 따지고 믿습니다.
주일성수도 그렇고, 예배도 그렇고, 헌금생활도 그렇고, 사역도 그렇고, 인간관계도 그렇습니다.
이렇게 신앙의 우선순위가 잘못되다 보니, 세상에서의 모든 일들이 엉망진창 꼬입니다.
나름대로 살아보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최선의 노력을 다 쏟습니다. 그런데도 일이 풀리지 않습니다.
고생과 고난의 악순환입니다. 소위 흑자인생을 추구하지만, 결산을 해보면 여전히 적자인생일 뿐입니다.
그러면 깨달아야 하는데 깨닫지를 못하고, 그래서 신앙품성은 말할 것도 없고 인격조차도 무너집니다.
그 근본이유가 있습니다. 우선순위에 따라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들에게 스티븐 코비가 지적했습니다.
그렇게 뒤죽박죽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보면, 중요한 일로 바쁘기보다는, 늘 급한 일 때문에 바쁘고,
힘들게 살아갑니다. 여러분! 바쁘게 산다고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과 시간의 순서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선순위라는 말을 씁니다. 우리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이 우선이어야 합니다.
중국 상인들 상술 유명하잖아요. 그들의 상술에서는 “축시(丑時)” 라는 단어를 매우 중요시합니다.
축시란 적절한 시기에 할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장사를 잘하는 사람은 기회를 잘 잡습니다. 쇠는 달구어졌을 때 두들겨야 합니다. 쇠가 달구어졌을 때, 망치로 몇 번만 두들겨도 쉽게 변형됩니다.
그러나 쇠가 식어서 굳어진 다음에는 망치질을 수십 번 하며 몇 배의 노력을 가해도 변형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러지고 맙니다. 이처럼 저와 여러분의 삶에는 먼저 할 일 있고, 나중 할 일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 믿음의 생활도, 세상에서의 삶도 우선순위가 분명한 사람이 성공적인 인생을 삽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예수님의 성공 이론입니다. 예수님의 우선순위 원리는 아주 간단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마태복음 6장 33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니라.” 아멘! 믿습니까?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던 사도 요한의 우선순위가 무엇이었습니까? 요한삼서 1장 2절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아멘!
그렇습니다. 우리의 우선순위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고, 그것을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혼이 잘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선순위를 알고 살면, 반드시 성공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내 생각을 앞세우고, 세상일을 먼저 앞세우고, 자기 일을 우선하기 때문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믿고 구원 얻고, 천국 가기 위해서 믿기 때문에 주님 바라보고, 예수님의 십자가 바라보고,
믿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사람 쳐다보고, 목사 쳐다보고, 그러다가 시험 들고, 실족하고 넘어집니다.
사람보기 싫다는 핑계로 예배시간 빼먹고, 사역 내려놓고, 헌금 안하고, 우선순위가 잘못돼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청교도 설교자였던 필립스 브룩스라는 분은, 너무나 귀한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하늘의 것을 먼저 구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하늘의 것과 땅의 것, 둘 다 얻을 것입니다.
땅의 것을 먼저 구해 보십시오. 그러면 하늘의 것과 땅의 것, 둘 다 잃어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시간 우리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 한 사람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느헤미야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이 바벨론 제국에 패망한지 100년 후에 태어난 유대인 이민 2세입니다.
그는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았고, 믿음으로 탁월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유대인 포로 출신 2세가 왕실의 의전실장이 되었습니다. 그런 느혜미야를 하나님이 불러 70년 동안,
어느 누구도 이루지 못한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52일 만에 거뜬히 이룸과 동시에 신앙운동을 일으킵니다.
이런 그의 성공의 비결을 2장 18절에서 “하나님의 선한 손이 도우시고 형통케 하셨다.” 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확실한 우선순위를 따라 신앙생활을 하면, 하나님의 선한 손이 직접 도우시고,
형통하게 하십니다. 여러분! 믿습니까? 하나님의 선한 손, 이 도우시는 인생이 곧 축복 인생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우선해야 하늘의 축복을 누릴 수 있을까요?
첫째로, 우리가 하늘의 축복을 누리고 살려면 예배를 우선해야 합니다.
느헤미야 1장 - 6장까지는 무너진 성벽 재건운동이요. 7장부터는 무너진 신앙 재건 운동입니다.
지금까지 예루살렘 성벽 재건운동을 진두지휘해온 느헤미야는 이제부터 신앙의 재건운동을 전개합니다.
그러면서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1절에 보면, 제사장들을 복직시켜준 일입니다.
느혜미야가 이렇게 제사장들을 복직시켜,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을 하도록 하기를 원하였던 것입니다.
원래부터 느헤미야는 언제나 일의 우선순위가 분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예루살렘 성벽 재건,
공사를 시작할 때도 누구와 함께, 어디서부터 시작하였습니까? 3장 1절에 보면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먼저 대제사장 및 제사장들과 함께 일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양문부터 수리를 시작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려면, 양을 제물로 바쳐야 하기 때문에 양문부터 복구한 것입니다.
이처럼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제단을 쌓는 일, 우리로 표현하면 예배드리는 일을 최우선으로 여겼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의 최고 우선순위는 무엇이어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의 최고의 우선순위는 하나님께 영광스러운 예배를 드리는 일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의 최고의 우선순위는 직장생활의 성공이나 진급이 아닙니다. 사업의 번영도 아닙니다.
건강관리를 위한 운동도 아닙니다. 결혼이나 생일잔치도 아닙니다. 예배가 최우선이어야 합니다.
심지어 교회봉사나 활동도 예배보다 앞설 수는 없습니다. 교회에서 그 어떤 직분에 맞게 수고하고,
봉사하고, 헌신한다 하더라도 하나님께 예배를 바로 드리지 못하면 모든 수고와 섬김은 헛수고입니다.
성경은 물론 기독교 역사를 보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한 사람들은 모두가 예배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찾고 계신다고 말입니다.(요 4:23)
우리 예수님은 열심히 일만 하는 마르다 스타일보다는, 엎드려 예배하는 마리아 형을 칭찬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삶에서 무엇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최우선의 일일까요?
구제, 선행, 선교, 봉사, 효도, 교제, 아닙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십계명의 첫 부분의 네 가지 계명은, 모두 다 하나님을 예배하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자기 앞에 예배드리러 나오는 자기 자녀들을, 결코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으십니다.
하늘의 놀라운 특혜를 주십니다. 축복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예배에 성공해야 인생도 성공합니다.
특히 교회의 항존직분자 여러분! 언제까지 주일 예배 한번 드리고 마는 일회성 신자로 머물려하십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이든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은 없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늘 우리도 느헤미야처럼 예배를 우선하는 성도가 되어, 인생 성공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우리가 하늘의 축복을 누리고 살려면 경건생활을 우선해야 합니다.
예루살렘 성벽과 성읍을 완전히 복구한 느헤미야는, 이제 지도자를 세워야 했습니다.
자기는 바벨론의 왕실 공직자로 잠시 시간을 허락받아 왔기에, 하던 일을 위임하고 떠나야 했습니다.
그런데 느혜미야는 자기를 대신할 지도자를 세우면서, 출신성분, 가정배경, 학력, 실력, 경력, 재력,
재주, 재능, 외모 등, 외적인 이력은 하나도 따지지 않았습니다. “오직 진실한 신앙이 뛰어난 사람!”
오직 진실한 신앙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이처럼 느헤미야는 외모가 아니라 믿음만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의 진실을 보십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믿는 믿음을 보십니다. 오직 믿음 소망 사랑의 경건을 중요하게 보십니다.
그런데 오늘 얼마나 외모 중심, 외형 위주입니까? 서울 강남에서 목회하는 목사님들의 우스개소리입니다.
얼굴을 하도 뜯어고쳐서 교인관리가 어렵대요. 집사님이 한 달 교회 안 나와서 심방을 갔답니다.
그런데 딴 사람이 나오더랍니다. 그래서 이사가셨는가보다 돌아서려니까? “목사님 저 아무개 집사에요.”
교회 안 온 한 달 사이에 얼굴 뜯어 고쳐서 딴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도 헷갈린답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즐겨하고 계십니까? 혹시 교회 생활하면서도,
신앙과 전혀 관계가 없는 지극히 인간적인 사귐을 즐기는 유유상종으로 어울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믿음 성장이나, 어떻게 하면 한 영혼이라도 전도할까? 어떻게 하면 교회에 유익이 될까? 복 받을까?
이런 대화보다는 교회를 무너뜨리는 이야기, 목사나 성도들 비난하고 비방하며 수군대는 말을 하며,
쾌감을 느끼는 그런 사람들은 절대로 되지 마십시오. 제가 해남 사람입니다. 열 중 아홉 가지가 좋습니다.
그런데 진짜로 한 가지, 이건 싫습니다. 제 앞에서 누군가의 흉을 실컷 봅니다. 저는 대답을 않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 가서 자기가 흉본 이야기, 이 김목사가 한 것처럼, 거기다 보태서 따불로 해댑니다.
전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완전 나쁜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완전 이간질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 앞에서 누군가가 누가 이랬다고 이간질 시키는 사람, 반드시 딴데 가서 흉봅니다.
가만히 있었는데도 자기가 한 이야기 덮어 씌워 이간질 시킵니다. 저 그래서 도둑놈 누명 많이 썼습니다.
교인들 욕하는 목사로 욕 많이 먹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저는 주님이 아시기에 기도만 합니다.
그리고 정말로 미치고 환장한 것은, 당회, 제직회 때에 한 마디도 않습니다. 나가자마자 욕하고 다닙니다.
앞에서는 찬성한 척 웃고 예 했습니다. 그런데 나가서는 반대로 돌아서서 이 김목사 등에다 대고,
수도 없이 칼질을 합니다.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욕을 해댑니다. 심지어 안 믿는 사람들에게도 제 욕합니다.
우리교회 나뿐 교회로 소개합니다. 그러고도 복 받을까요? 저는 오히려 염려되어 위해서 기도합니다.
여러분! 우리 제발 비겁하지 맙시다. 그게 정말로 정의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앞에서 말하십시오.
우리 지역 사람들, 교회 안에서든 밖에서든, 사람 앞에 놔두고 말 못합니다. 그리고 뒤에서 말합니다.
착한 것 같지만, 그것 절대로 착한 짓 아닙니다. 사람 죽이는 일입니다. 무서운 영적 살인입니다.
교회 부흥을 막는 일입니다. 천하하고도 바꿀 수 없는 영혼들을 실족시키는 무서운 일입니다.
여러분! 제발 모이면 좋은 이야기 합시다. 생산적인 이야기 합시다. 칭찬합시다. 축복하고 선포합시다.
이처럼 경건 생활을 우선으로 여기고 살아갈 때, 하나님의 큰 도우심과 엄청난 축복을 체험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날마다 우선해야 할 일은, 경건한 신앙의 생활화입니다.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났을 때, 방바닥에 먼저 닿는 부분이 발이 되지 말고, 무릎이 되게 하라.”
우리 그렇게 하며 사십시다. 느헤미야는 매일의 경건한 신앙생활로 하늘의 큰 축복을 누렸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처럼 경건하게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도우셔서 형통케 될 줄로 믿습니다.
셋째로, 우리가 하늘의 축복을 누리고 살려면 헌신을 우선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제 1차로 예루살렘에 돌아온 5만여 명의 상세한 명단입니다.
고향 땅에 돌아온 그들은 대체로 집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예루살렘 성벽을 먼저 재건했습니다.
개인의 주택보다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 재건이 먼저였습니다. 그들은 이만큼 하나님 일을 우선하였습니다.
그들이 헌신하는 순서를 주의해서 보십시다. 먼저 지도자들이 모범을 보입니다. 총독도 최대한 바칩니다.
가문의 어른들이 성심성의 헌금을 합니다. 그러니까 나머지 백성들까지 모두 총력 헌신을 합니다.
그렇게 모아진 헌금이 오늘날 돈으로 환산하면 오백만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60억 원이 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버는 돈을 계산하지 않으시고, 쓰는 돈을 계산하십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자기들의 집도 생활도 안정되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바치며 헌신했을까요?
그들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감격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왜 헌신을 우선으로 살아야 할까요? 우리의 영혼을 죄악과 지옥의 형벌로부터 구원해주셨고,
새 생명을 주셨고, 천국의 영원한 복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계속해서 특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태신자를 전도하는 일에 최대한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전도야말로 최고의 헌신입니다.
전도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헌신입니다. 엄청난 축복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헌신하는 만큼, 금세와 내세에 백 배, 만 배의 특혜를 누릴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대답해 보십시오, 지금 여러분의 삶의 우선순위는 무엇입니까?
얼마나 예배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예배를 우선하고 계십니까? 마지못해 나오셨습니까?
의무감 때문에 예배드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배에 성공하는 만큼 인생도 성공합니다.
침대에서 일어났을 때 방바닥에 발이 닿기 전, 무릎이 닿는 경건생활을 하고 계십니까?
오늘날로 하면 경제 불황속에서도 헌신했던 느혜미야의 헌신을 본 받아 살기 원합니다.
오직 성공하는 예배, 오직 경건한 신앙생활, 오직 주님을 향한 헌신하는 우선순위로,
주님의 특혜를 받고, 축복받고 행복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