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 고궁박물관
기간 : 2013. 6. 25 ~ 9. 1
▶ 우리나라 자수의 역사 韓國刺繡歷史
자수는 섬유와 직물로 옷을 지어 입고 그 위에 장식을 더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작되었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지배계급의 의복에 자수가 사용되었으며, 생활용품이나 국가 의장품 등에도 자수가 사용되었다. 고려시대부터는 자수를 감상의 대상으로 여겨, 그림을 수놓아 병풍 등으로 꾸며서 실내를 장식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자수가 사치품 규제의 대상으로 여겨져 주로 왕실을 중심으로 한 상류층에서 향유되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들어 민간 상공업이 발달하면서 안주수, 순창수와 같은 상업 자수가 등장하였다.
▶ 궁중자수 宮中刺繡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수방繡房을 별도로 두어 궁내 수요의 자수를 전담하도록 하였다. 수방 내인內人들은 주로 의복과 각종 장신구에 놓을 장식용 자수를 만드는데 동원되었으며, 전체적인 도안은 전문 화원이 그린 밑그림을 사용하였다. 궁중 자수는 자유분방한 구도와 원색 대비가 강한 민간 자수와 달리 정제된 문양의 도안 위에 천연 염료로 물들인 다채로운 색실을 사용하여 고아한 기품이 느껴진다. 수실은 꼬아 만들어 강도와 탄력을 높인 꼰사를 사용하였으며, 윤곽선에는 금사와 은사를 둘러 왕실 공예품다운 아름다운 품격을 느끼게 하였다.
수본과 자수 繡本ㆍ刺繡 자수를 놓기 위한 밑그림을 수본繡本 또는 수초繡草라고 한다. 간단한 도안은 수방의 내인이 직접 그렸으나, 복잡한 구성에 섬세한 필치가 필요한 경우는 화원이 밑그림을 그렸다. 수본은 재료에 따라 유지 수본과 목판 수본으로 구분된다.
궁중 복식 자수 宮中服飾刺繡 조선시대에는 사회적 신분에 따라 착용할 수 있는 복식의 종류와 옷감의 종류, 색, 문양, 장식 등에 차이가 있었다. 왕과 왕세자, 왕비 등이 착용하는 흉배는 ‘보補’라고 부르며, 용과 봉황 등 상상의 동물을 금실로 화려하게 수놓았다. 신하들에게는 관직과 등급에 따라 수실과 문양에 차이를 두어 수놓은 흉배와 후수를 하사하였다.
왕실 혼례와 자수 王室婚禮刺繡 혼례는 왕실의 대를 잇는다는 점에서 가장 경사스러운 궁중의 행사였다. 혼인이 이루어지게 되면 그 징표로 대궐에서 사자使者로 하여금 예물을 함에 넣어 별궁으로 보냈는데, 각종 의복과 장신구 뿐 아니라 수를 놓은 부채, 주머니, 노리개, 수저집, 필낭, 열쇠패 등을 담았다. 왕실의 경사로운 행사인 혼례를 앞두고 제작된 혼수품에는 부부간의 화합과 다산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아 정성스레 수를 놓았다.
왕실 생활 자수 王室生活刺繡 궁중에서는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생활품에도 자수를 놓아 왕실의 품격을 살렸다. 궁중에서 자수로 장식한 대표적인 생활품으로는 침구류, 주머니, 노리개 등이 있다. 왕실에 날마다 좋은 일이 함께 하기를 기원하는 뜻을 담아 수놓은 것이며, ‘수壽’, ‘복福’, ‘부富’, ‘강녕康寧’의 글자와 봉황, 원앙, 십장생, 연꽃, 모란 등의 각종 문양을 수놓았다.
궁중 장식 자수병풍 宮中裝飾刺繡屛風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경사스러운 날에 병풍을 둘러 전각 내외를 장식하는 전통이 있었다. 특히 왕실의 혼례나 회갑연, 각종 축하 잔치 등에 왕실의 평안과 무병장수 등을 기원하는 내용의 그림과 자수병풍을 제작하여 행사장에 설치하였다. 자수병풍은 안료로 채색하여 그린 그림병풍보다 입체적인 실의 질감에 따라 문양마다 아름다운 광택을 느낄 수 있어 장식의 효과가 더욱 컸다.
중국과 일본의 자수병풍 中國ㆍ日本刺繡屛風 조선 말 외래 문물의 수입이 활발해지면서 중국과 일본에서 들여온 공예품과 가구, 그림이 궁궐 안을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우리나라 전통 자수와는 다르게 푼사를 사용하여 실이 가늘고, 색의 변화를 치밀하게 수놓은 중국과 일본의 자수병풍은 마치 그림병풍을 보는 착각이 들만큼 회화성이 뛰어났다. 고종 황제를 비롯하여 궁궐 안에서 찍은 왕실 인물들의 사진을 보면 중국과 일본의 자수병풍을 뒤에 세워놓고 찍은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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