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근 시인 4주기 추모문학제
참관후기 1
박영근 시인 단상
박봉우 시인의 비장한 시에 취해 징그럽게 추운 지난겨울을
막 넘길 무렵, 우연히 박영근을 만났다.
지독한 가난 속에 몇 년 전 세상 뜬 노동자 시인이라기에
호기심 반 걱정 반으로 그를 만났다.
폭력의 시대 정의 실종의 시대에 거대담론이 아닌 서정으로 양심을 울리는 그의 시,
결론 예단치 않고 선택의 끝 살짝 열어놓는 겸손한 그의 목소리가 좋았다.
시의 시대 격정의 시대가 아닌 구십년 대 이천 년대에 외려, 더욱 치열히
자본과 외세에, 우리 안의 나태에 들이대는 비수, 그 예리한 울림이 좋았다.
투쟁보고서가 결코 시 아니기에, 정치선동의 구호가 시 결코 아니기에,
사람을 향한 춥고 작은 사랑 노래 섬뜩한 그 떨림이 좋았다.
비유와 수사, 압축과 비약, 도저한 이미지의 번득임은
모더니스트가 울고 갈 고차원의 시 세계였다.
세상 험난히 살았고 제도권의 문학공부 제대로 하지도 않은 시인이
이 정도로 시적성취를 이루었는데, 세상은 왜 그를 기억하지 못할까.
나는 어이해 이런 훌륭한 시인을 사후 4년만인 오늘에서야 만났을까.
마포벌은 어디이고 산곡동은 어디이며, 부평4동 10의 22번지는 어드멘가.
점례는 누구이고 금대리의 김환영은 누구이며, 시집 속지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성효숙은 대체 누구인가.
알고 싶었다, 박영근 시 세계의 모든 것을.
고향도, 동리도, 그의 주변인 모두 알고 싶었다.
아, 한없이 나를 불편하고 부끄럽게 만드는 시인 박영근 !
부릉 ――
시계는 아침 아홉시 삼십분.
서울발 광주행 버스 마침내 출발이다.
변산 마포학교까지
김제 하차, 오월 문학제 참석 광주행 문인들과 헤어진다.
현기영 선생님이하 여성작가 몇 분과도 헤어진다.
부안까진 시외버스로, 부안에선 문동만 시인의 차로 드디어 변산 마포학교 도착.
시간은 얼추 늦은 세시, 비구름 낀 하늘 사뭇 비감하다.
여기가 바로 박영근의 생가와 그가 다닌 초등학교 있는 외변산의 마포 삼거리 ?
완전 두메산골이다.
육십년 대 중반, 가슴에 손수건 단 서울 시내 한복판
어느 초등학교 입학식에서의 어린이가,
태극기 흔들며 제국의 대통령을 맞고 사지로 파월장병 환송하던 하얀 솜털의
어떤 꼬맹이가 생각난다.
진즉 만났으면, 서울깍쟁이 전라도촌놈 합세하여 두꺼비 목 수없이
졸라댈 수도 있었을 것을······
아는 이 하나 없어 마포초등학교 운동장 어슬렁 배회하는데
서울에서 버스 함께 타고 내려온 유종순 시인이 부른다.
막걸리 한 사발에 현기영 선생님과 김해자 시인에 인사 나눈다.
추모문학제 1부
박영근의 고향친구 환경운동가 허정균의 보무당당 입장으로 1부 본 행사 시작,
참석인원은 약 오십 여명.
박영근과의 추억 담담히 전하는 현기영 선생님과
전북작가회의 이병천 회장님의 목소리에 아쉬움과 분노 잔뜩 실렸다.
“봄은 또 오고
우린 푸르름을 즐긴다
영근이는 없는데 우린 푸르름을 즐긴다
우리 영근이, 지하에서나마 편히 쉬기를”
평소 술 많이 마셨으면 목소리 탁하고 늘어져야 정상이다.
탁탁 짧게 끊어 읽는 감정 전혀 섞이지 않은 완벽한 표준어,
흑백의 슬라이드 필름 함께 박영근의 육성 시 낭송 『그 방』이 흐르고 있다.
온몸 가득 분노를 뱉어내던 마력의 배우 말론 부란도가 생각났다.
젊은 날의 말론 부란도 저항의 그 목소리가 생각났다.
말론 부란도 가래 끓는 목소리 아닌 중저음의 낭랑한 박영근 목소리이건만,
아마도 내가 좋아하는 배우와 시인이라서.
내가 좋아하는 영화사와 문화사, 아니 인간의 역사라서.
눈물 질질 빼며 슬라이드 필름에 눈 고정한다.
고교동창 의사 친구녀석 말로는 '결핵성 뇌수막염'은 병도 아니라 하더만,
치료 꾸준히 받고 밥 잘 먹으면 되는 아주 하찮은 병이라 하더만, 만년에 이를수록
야위고 초췌히 변해가는 시인 박영근의 흑백사진에 심사 마냥 괴롭다.
새벽시장 봉지김치에 라면밥 말아먹던 방, 아아 "그 방" !
이어지는 고향친구 조찬준과 박형진의 인사말과 시 낭송.
“영근이는 자기 갈 길을 알았기에 술만 그렇게 먹고
먼저 갔나보다.
우릴 놔두고 성효숙을 놔두고
건방지게, 삶의 문 아닌 죽음의 문
먼저 열었나보다.”
겸손 소탈한 그들 모습에 어리는 지금은 저 세상사람, 내 고교동창생 유일의 농부
경기도 이천의 어느 녀석이 생각났다.
아아 지금 이 순간 내게도, 저런 친구 다시
살아올 수 있다면······
김남주 시인의 환생인 듯 박력의 송경동 시인,
부안 동향 신석정 박영근 두 시인의 시세계 차분히 설명해준 고길섶 문화비평가,
성우 뺨치는 프로급의 목소리 손 세실리아 시인,
박영근은 서쪽 벼랑의 시인이었다 하며 자작곡 ‘새만금에서’의 열창도 모자라
자필 서예 '솔아'까지 선사하신 가객 별음자리표,
노동현장에서도 시에 대한 관심 결코 놓지 않았음을 재미있는 비유로 설명한
김난희 시인,
본인의 추모시 고사하고 박영근의 유고시 ‘이사’를 일점일획 안 빠트리고
감동으로 낭송해준 박남준 시인,
박영근과의 첫 만남과 헤어짐 그 가슴 아픈 역사를
맑은 표정으로 전해주신 김해화 시인,
만장한 추모객들에 절절한 고마움 표해주신 형님 박정근 시인 감사의 변으로
엄숙한 행사는 끝나고,
이제는 박영근 불후의 절창 ‘솔아 푸른 솔아’ 합창의 시간.
누리끼한 얼굴 되바라진 표정의 서울 아이들과는 전혀 딴판인
변산공동체학교 청소년들이 씩씩하게 노래를 부른다.
민중의 넋이 주인 되는 참 세상 자유 위하여
시퍼렇게 쑥물 들어도 강물 저어 가리라
어른 아이 남녀노소 모두, 시인 묵객 친지 날건달 모두, 목이 터져라 ――
노래를 부른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 마라
창살 아래 내가 묶인 곳 살아서 만나리라
1부 행사 끝났다.
이제 박영근 불러내어 함께 밥 먹고 술 마실 시간이다.
※글 하단부에 나오는 날건달은 저를 일컬음입니다.
2010. 5. 23. 최 병 일
"솔아 푸른 솔아"를 열창하는 박영근 시인의 고향마을 후배, 변산공동체학교 청소년들 !
첫댓글 <솔아푸른솔아>를 열창하는 고향마을의 공동체 청소년들로 끝맺음을 하는 최병일님의 글,
서로 알아보는 독자와 시인...
정말 인연은 이승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네요.
워낙이 숫기 없는 놈이라 여기님과는 별 대화 못 나누고 헤어졌네요.
'시인의 아내는 정말 힘들다'는 말 웃음으로 기억합니다.
3주년땐 참석했는데 참석 못해서 하늘나라에 계신 영근형님께 용서를 구합니다.변산면 마포에 함 가보았습니다.우리 대학선배가 거기서 일하고 있더군요.5주년땐 꼭 참석하겠습니다.
대시인의 추모현장을 어설픈 저의 글로 혹여 훼손치 않았나 심히 걱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