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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떨이와 휴지통
나는 지난 해 일본에 머물면서 나의 좁은 시각으로 왜 일본이 잘 사는가를 생각해 본 일이 있다.
해방둥이인 나로서는 여섯 살에 6.25전쟁을 겪었고,
과거 반일투사였던 이승만 대통령 시대에 초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소위 ‘반공’과 ‘반일’의 구호 속에서 자랐다.
그러므로 내 또래의 당시 아이들은 일본인을 ‘왜놈’이라고 부르는 어른들에게 배웠고,
가령 운동경기라면 일본은 무조건 이기고 봐야하는 나라였으며,
1964년엔가 일본이 올림픽을 개최할 때에는 너무나 배가 아팠다.
그러던 차에 일본과 한일 협정을 맺을 때에는 당시 대학생이던 우리 또래의 학생들은
거의 맹목적(?)으로 비준 반대 데모를 하였으며
일본을 미워하는 감정이 바로 애국심인 것으로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초등학교 시절, 그렇게 심이 잘 부러지던 국산품 연필에 비하여
잠자리 그림이 그려진 일제 톰보 연필은 대단히 질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고등학교 시절의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일본 고등학생들의
대학입시용 수학문제집을 가지고 와서 문제 풀이를 하면서 은근히 실력 자랑을 했으며,
대학생 시절에는 손안에 들어갈 수 있는 작고 성능 좋은 일본제 트란지스터 라디오에
거의 대부분이 매혹을 느끼며 갖고 싶어 했던 것이 솔직한 마음이었다.
겉으로 욕하고 미워하고 외면하면서도 속으로는 은근히 부러워하던 소위
메데인재팬에 대한 동경은 그 모순된 욕구에 스스로 수치감을 느끼게 했기 때문에
청소년기의 섬세한 감성에 상처를 입곤 했던 것이 우리들 세대의 자화상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십 여년 전 처음 일본에 갔을 때, 나는 과거 일본식민지 시대 한국인에게
온갖 못된 짓을 했던 일본인의 이미지, 예컨대 일본도를 허리에 찬 일본순사가 무고한 한국인을 잡아다가
욕을 하고 발로차고 때리고 무시하며 혹은 고문을 했던 이야기와는 거리가 먼,
매우 친절하고 상냥스러움을 보고 아주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매우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진 나에게 일본여행의 경험은 하나의 충격이었다.
길거리 혹은 지하철역에서 길을 물었을 때 하나같이 친절하게 안내하거나 가르쳐주는 행인들,
소도시의 건널목에서도 빨간 등이 켜져 있을 때는 전혀 자동차가 오지 않아도
절대로 파란 등이 켜질 때까지 길을 건너지 않는 준법의식,
주택가의 골목길에서는 담배꽁초나 흔한 휴지조각 하나 날리지 않는 깨끗함,
그리고 정성스럽게 가꾸어진 정원이나 잘 조림된 숲들은
일본에 대한 과거의 내 부정적인 선입견을 깨뜨리는 것이었다.
그때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일본인들의 친절, 청결, 질서의식을 우리의 그것과 비교하면서 은근히 속이 상했다.
그래서 나는 교활(?)하게도 의도적으로 일본의 단점을 찾으려고도 해 보았다.
친절함은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인정이 아니라 마음 표면에서 드러내는 얕은 가식이며,
깨끗함은 어쩌면 푸근하지 못한 좀스러움의 표징이고,
질서의식은 유통성 없는 답답한 마음의 표현이라고 여기면서, 그렇기 때문에 혹시 모방은 잘 해도
독창적인 창의력은 모자라므로 미래는 기대할 수 없지만, 그들에 비하여 우리 한국인은 마음이 넉넉하고
솔직하며 융통성이 많고 창의력이 풍부해서 지금은 비록 어렵고 가난하지만
내일은 풍성할 것이라고 스스로 자위도 해 보았다.
그러다가 작년 교환교수로 일본에 머무는 동안,
나의 의도적인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폄하 노력(?)은 옳지 않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했다.
그들이 잘 사는 것을 시기하고 감정적으로 미워할 것이 아니라 2차 대전에 패망했던 그들이
불과 반세기만에 세계의 경제대국으로 다시 일어서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그들의 장점이 무엇인가를 냉정하게 긍정하고 못된 점은 타산지석으로,
장점은 귀감으로 삼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작년 가을 어느 날, 어른인 내가 일본의 아주 어린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에게
아주 중요한 원칙을 하나 새삼스럽게 배운 일이 있었다.
벳푸대학의 사카구치 교수가 하루는 그의 자동차로 나와 나의 아내에게 관광안내를 해 주었는데,
그때 그는 초등학교 3학년생인 아들 준이찌로를 데리고 왔었다.
단정하게 깍은 상고머리와 웃을 때는 유난히 눈이 가늘어지는 귀여운 인상의 준이찌로에게
나는 너희 반에는 학생이 몇 명이냐, 좋아하는 과목은 무엇이냐, 어떤 운동경기를 좋아하느냐,
한국의 야구선수 선동열을 아느냐, 피아노를 줄 아느냐는 등 필요 이상(?)의 관심을 보이며 질물을 했고,
그래서인지 그 애는 금방 나와 친해질 수 있었다.
어느 휴게소에서 그 애의 아버지가 일본의 전통음식이라면서 종이에 싼 떡을 사다가
한 개씩 맛을 보라고 우리들에게 주고는 잠시 자리를 비운 일이 있었다.
우리는 노천 휴게소의 탁자 앞에 둘러앉아서 그 떡을 먹었는데,
나와 아내는 떡을 쌌던 종이를 구겨서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커다란 재떨이에 버렸다.
그런데 우리보다 늦게 떡을 먹은 준이찌로는 떡을 쌌던 종이를 작게 접더니
재떨이에 버리지 않고 손에 들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 애에게 재떨이를 가리키면서
그 휴지를 왜 이곳에 버리지 않고 들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 애는 대답을 않고 잠시 두리번거리다가는
재떨이에 우리가 버렸던 휴지까지 집어들고 저쪽 나무 밑으로 뛰어갔다.
나는 의아해서 그 애의 행동을 눈으로 따라가 보았다. 우리가 앉아있던 탁자로부터
약 20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는 나무 밑에 휴지통이 있었는데,
그 애는 그곳에다 가지고 간 휴지를 버리고 이쪽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부끄럽고 놀랍기도 했지만 돌아온 그 애에게 태연하게 물어보았다.
“어차피 이 재떨이에 버리면 청소하는 분이
이 재떨이를 쓰레기통에 가져다 비우게 되어 있으니까 마찬가지가 아니냐?
구태여 그곳에까지 갖다 버리지 않고 재떨이에 버려도 되지 않니?”하고 그의 표정을 살폈다.
준이찌로는 아주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이것은 재떨이이니까 담뱃재를 털거나 꽁초를 버리는 곳이고,
휴지는 휴지통에 버려야 하는 것이니까 휴지통에 버렸지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 아이의 원칙적인 대답에 대단히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렇다.
대학교수인 내가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에게 중요한 것을 한 수 배운 것이었다.
담배꽁초는 재떨이에,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버린다는 당연한 사실을
오히려 나는 융통성이라는 이름으로 편리하게 함부로 뒤섞어버렸던 것이었다.
재는 재떨이에 털고 휴지는 휴지통에 버린다는 것을 융통성 없이
그대로 실행하게 하는 것이 일본 어린이의 생각이었다.
물론 어린이의 경우라면,
아마 한국의 어린이도 당연히 준이찌로처럼 재떨이와 휴지통을 구분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나는 나의 무의식 속에 그런 혼돈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에도 같은 어른들은 마찬가지로 그것을 구분하지 않고
융통성(?)있게 휴지를 재떨이에 버릴는지도 모르잖는가?
어쩌면 이제는 일본은 실제 이상으로 좋게 보려는 게 아닌가?
그러나 그러한 의심도 나는 얼마 후 한 백화점의 점원으로부터
또 하나의 신선한 충격을 받고 그들의 좋은 점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배울 것은 적극적으로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작은 카메라를 하나 사려고 어느 백화점에 들렀다.
한 모델이 마음에 들어서 가격표를 보니 소형이어서인지 값도 매우 싼 것이었다.
나는 점원을 불러 그것을 하나 사겠다고 말했다.
점원은 아주 친절하고 싹싹한 30대 후반의 아주머니(?)였는데,
그녀는 내게 정말 그 카메라가 마음에 드느냐고 물었다.
나는 값도 싼 것 같고 모양도 예뻐서 마음에 든다고 대답했더니, 그녀는 상냥하게 웃으면서
그 카메라가 마음에 들면 오늘 사지 말고 열흘 후에 구입하라고 말했다.
나는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그게 무슨 뜻인가 물었다.
그녀 대답에 의하면 그 모델은 열흘 후에 세일 상품으로 계획되어 있으니까
그때 오면 할인가격으로 더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당연하게 그녀의 조언에 따라서 열흘이 지난 후에 20% 저렴한 가격으로 그것을 구입했다.
생각해보면 백화점 점원이 고객에게 어떤 특정 상품은 어느 때에
할인품목에 들어있다는 정보를 알려주는 것은 상도의상 당연한 일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경우가 한국이었다면 어떠했을까를 생각해보고 나서,
과연 일본이 우리보다 앞서 있음을 당연하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령 어떤 외국인이 우리나라 백화점에 가서 사진기를 사려고 한다면,
그 모델은 열흘 후에 할인상품으로 계획되어 있으니 열흘 후에 와서 사십시오, 라고
점원 아가씨가 친절하게 얘기해 줄 것인가?
그날의 매상을 올리기 위하여 속으로는 오히려 잘됐다 싶어서 얼른 팔아치우려 하지 않았을까?
더구나 언제 다시 볼는지 알 수 없는 뜨내기 외국인이면 열흘 후에 반드시 다시 온다는 보장도 없지 않는가?
혹은 며칠이 지나면 마음이 달라지거나 다른 백화점으로 갈는지도 모르지 않는가?
상인이라면 어떻게든 당장 많은 상품을 판매하여 많은 이익을 남기는게 목적 아닌가?
그러니 그 자리에서 그날의 정당한 가격으로 하나라도 더 팔려고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러나 나는 그녀에게서 진정한 상인의 정신을 읽었다.
프로 의식을 가진 진정한 상인이라면 한번 고객은 영원한 고객으로 대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 고객에게 최대의 서비스를 베풀어야 할 것임은 물론,
절대로 속임수를 쓰거나 눈앞의 작은 이익에 묶여서는 안 된다.
한 개의 상품을 구입한 고객은 늘 그것이 최상의 물건이기를 원할 것이므로,
상인은 고객이 원하는 대로 만족을 주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고객은 그 상인을 최대로 신뢰하게 되고
당연히 그 상점에 단골이 되며 차후에는 친지들에게 그 상점을 추천할 것이다.
정말로 나는 ‘정직이 최상의 정책이다’라는 영국 속담에 공감한다.
요컨대 그날 나는 작고 값싼 카메라를 산 후 그 백화점을 마음속으로부터 신뢰하게 되었고,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그곳을 추천하게 되었던 것이다.
선진국이 선진국인 까닭은 그 국민의 도덕성 때문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런 국민이라면 공장에서 제품을 만들 때 최선의 노력으로 성실하게 만들 것이며,
그것을 판매할 때에도 정직한 가격으로 고객을 신회하게 하고 만족시킬 것이다.
그렇다면 그 나라의 제품은 국제적으로 신용도가 높아질 것이며 당연히 국제경쟁력이 제고되어
경제수준도 향상되고, 따라서 정치, 문화, 사회 모든 분야에서 선진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뚜렷한 자원도 없고 인구에 비해 국토도 좁은데다가 전쟁으로 황폐화된 일본이
불과 반세기만에 세계의 경제를 주도하게 된 까닭은 재떨이와 휴지통을 철저하게
구별하는 준이찌로 같은 원칙주의와, 오늘 당장의 판매고를 높이기보다는 고객에게 정보를 주고
고객의 편에서 물건을 팔려고 하던 백화점 판매원의 정직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나는 것이며 정직이 최상의 정책이기 때문이다.
(1998)
첫댓글 요즘 과거 역사 문제로 우리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본 아베정권,
참으로 속좁은 일본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일본한테 배워야할것은 배워야됨니다.
무조건 반일만 부르짗는것이 애국이 아닌 글로벌 시대에 맞는 애국을 해야할때 입니다.
일본인들의 정직함, 친절, 공중 도덕, 청결은 우리 세대에는 따라 잡을수 없는 좋은 국민성 인거 같습니다.
일본인에게 배울 건 배우고 대적할 건 하고....
1990년 처음 일본에 가 보고 놀란 내 가슴,,,, 지금도 생각납니다...
친정 어머니께서 일본의 교육 문화를 칭찬하시는 걸 듣고 우리 아들이 할머니는 친일파.. 일갈했는데..
여행가서 보니 우리 엄니 말씀이 옳았다는 걸 뒤늦게 알았지요..
얄미운 건 얄미운 거구 배울 건 배우고 하는 게 현명한 국민 아닌가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