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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대한민국 풍수지리 연합회 07월06일 청주 고인쇄빅물관에서 "충청북도의 개발과 풍수지리" 세미나와 간산에 대한 계획에 대풍련 간산위원회에서 운영일정을 고시합니다.
답산지
1, 청주한씨 시조 한란 ; 충청북도 청원군 남일면 가산리 산18 머미마을
2, 취은 경주 이인형 ; (낙향조,두사충소점)남일면 고은리 산25(오일뱅크207-8)
♣ 한란 선생묘역 도착 행사 시각 2014년 07월06일 09시 30분/10시30분
♣ 취은 이인형 - 10시40분/11시30분. ♣ 중식 - 11시40분/12시40분
간산행사 후 중식 ; 간산지와 행사지 ..약30분소요. 각지역별 참여학회는 추진위 김홍길
위원장과 협의 중식 할 식당 선정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세미나 13시 ~ 18시 까지 청주 고인쇄 박물관 세미나실(흥덕구 운천동 899)
♣ 세미나 안내책자 ; 10,000원(현장판매 및 학회배부)
각 지역 간산지와 의 거리에 대한 도착시간에 대한 조견표
서울 ; 소요시간 약2시간(140k) 제천 ; 약2시간30분(130k) 대전 ; 약1시간 (50k)
구미 ; 약2시간 (120k) 그 외의 지역에서 세미나와 간산에 참여을 원하는 학회는 연락비람.
● 서울출발 3호선 양재역 1번출구 수협 앞. 출발시간 오전 7시30분 .
● 서울지역 행사비는 세미나 자료, 중식 포함 5만원
●“행사 중에 발생하는 모든 제반사고(손해)는 대풍련에서 책임지지 않습니다. 각자의 안전사고 및 손해에 대한
책임 은 본인에게 있음을 알립니다. 여행자 보험 등의 대비는 각자 해주시시기 바랍니다."
1호차 는 서울 각 학회 회장,운영위원 10명외 차량관계로 선착순 30명 한정 예약받습니다.
2호차는 1호차 정원외 30명 이상의 회원이 예약 하시면 2호차 운영예정.참여하실 회원과 학회에서는
정확한 인원을 김정인 사무총장(010-8730-6500)과
冶丁 김명식 간산위원장 (010-2212-3494) 에게 빠른 연락 부탁 드립니다.리플시 꼭 연락처와
이름부탁드립니다.
서울은 각학회 인원점검 1호차 40인승 2호차 25인승으로 정원이 65명 되면 조기 마감합니다.
6월24일 12시 현재 신청인원 50명.
대한민국 풍수지리 연합회 간산분과 위원장 冶丁 김명식
답사기
1,조선8대 명당 청주한씨(淸州韓氏)시조 한란(韓蘭)선생묘를 찾아서...대풍련 고문 민중원
웅장한 순전(脣氈)의 모습(사진①)이 왕릉을 연상시키며 눈길을 끌었다. 옆으로 난 계단을 통하여 혈장(穴場)에 오르니 혈(穴) 앞의 소명당(小名堂)이 길게 뻗어나가고 그 끝이 솟아올라 앞을 약간 가리는 듯한 특이한 혈장이 재미있었다.(사진②) 마치기다란 배를 타고 있는 느낌이었다.
묘 앞(사진③)으로 가서 묵례를 올리고 혈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았으나 혈증(穴證)을 찾는데는 실패하였다. 다시 입혈맥(入穴脈)(사진④)을 살펴보기 위해 묘 뒤편으로 가니 산신제 상석이 입혈맥을 누르고 있어 눈에 거슬렸다.
맥을 따라 혈성(穴星) 머리에 올라보니 철조망으로 차단되어 더 이상 외입수(外入首)와 부모산(父母山) 및 소조산(少祖山)을 밟아 볼 수가 없었다. 발길을 돌려 입혈맥을 천천히 살피며 내려오는데 올라갈 때 본 바대로 실망감을 없애줄 만한 징후를 발견하지 못하였다. 밝고 단단해야 할 토질이 그렇지 못했고 혈을 맺기 위한 몸부림도 없었다. 입혈맥은 최종적인 탈살(脫殺)로 기(氣)를 모아 혈(穴)에 전달해야 하는데 그런 움직임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다시 말하자면 기복(起伏)없이 흘러내리고 굴곡(屈曲)도 없으며 속기(束氣)도 약하고 힘없이 퍼져서 되는대로 흘러내리는 소극적인 모습이 아쉬웠다. 다만 한 가지 다행이라면 혈성머리(星頭)로부터 혈까지 약 ⅔지점쯤에 작은 바윗돌이 있는데 그 뒤로 속기의 흔적이 있고 잠시 맥이 멈출 듯한 흔적에 위안을 삼기로 했지만 못내 아쉬웠다.
다시 혈장에 내려와 혈증을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혈장의 양 옆이 거의 굴곡이 없이 혈 뒤에서 순전까곧게 앞으로 나갔다. 이곳에 특별히 풍비(豊肥)하게 부풀어서 기(氣)가 뭉쳐있을 만한 곳이 없었다. 다만 오른쪽(백호방) 혈장의 옆 부분이 다소 완만하게 살쪄나간 곳(사진⑤)이 있지만 그 정도로는 약했다. 왼쪽(청룡방) 혈장의 옆은 전혀 살찐 곳이 없이 곧게 앞으로 나가니 이곳이 혈장인지 지나가는 맥인지 구분을 못할 만큼 혈증이 전무(全無)하였다.(사진⑥)
혈 뒤편은 곡장(曲墻) 뒤로 약간 도두룩하게 솟은 흙더미가(사진⑦) 쌓여 뇌두(腦頭) 역할을 하고 있는데 주변 지세를 살핀 바 인작(人作)으로 생각되었다. 왜냐하면 보통 뇌두 뒤는 잘록하고 분수처(分水處)가 있는데 이곳은 그렇지 못하고 평평하게 퍼진 상태였다. 그렇다면 이 자리의 최대 혈증은 순전에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혈이 혈장에 단단히 고정되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혈과 혈장이 겉돌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 원인을 생각해보니 혈을 상하(上下)로 옮긴다 해도 지금과 별 차이가없을 정도이니 반드시 이곳이어야만 한다는 그 혈증(승금, 상수, 인목, 선익, 우각, 분합 등)이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승접법(乘接法)에 보면 수성의 성질은 움직이니 그 고요한 것을 취하고 목성의 성질은 고요하니 그 움직이는 것을 취한다(水性動取其靜, 木性靜取其動)했으니 이곳 혈장은 앞뒤로 곧게 뻗었으니 수성보다는 목성에 가까우므로 그 동처(動處)를 취해야 하는데 취할 동처(動處)가 없는 것이다.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소위 조선8대 명당이라 소문난 곳이 아닌가. 그런 곳이 어쩌다가 혈인지 아닌지를 의심받아야 한단 말인가. 아무래도 내 안목이 잘못 되었겠지 하면서 진혈 여부의 판단은 잠시 유보하기로 하고 용(龍)혈(穴)에 이어서 사(砂)수(水)를 살펴보기로 한다.
기다란 소명당 끝으로 나가서 주변을 살펴보니 참으로 아름다웠다. 백호작국(白虎作局)에 소조산도 백호 쪽에 솟아있었다. 3중(三重)의 백호(사진⑧)가 꽃잎처럼 혈장을 감싸니 내가 화심(花心) 속에 있다는 착각에 빠져들었다. 청룡도 유정(有情)하게 감싸 안고(사진⑨) 그 끝으로 수구(水口)가 되었다.(사진⑩)
명당(明堂)은 대체로 둥근 형태로 손바닥 가운데처럼 아늑하고 수취천심(水聚天心)하였으니 발복이 장구할 상이다.(局員則悠久 : 국이 둥글면 유구하다.) 참으로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명당 가운데를 향하지 못하였으니 혈장이 국내(局內)에서 청룡 쪽으로 치우쳐 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명당이 향(向)을 중심으로 왼쪽은 좁고(사진⑪) 오른쪽은 넓으니(사진⑫) 중심을 향하지 못하여 자손이 고르게 잘 되지 못하고 차등이 있을 수 있는 점이다. 또 한 가지는 우수도좌(右水倒左)에 청룡이 백호보다 짧으니 흠이 된다. 만약 청룡이 길어 백호 밖을 감쌌다면 수성(水城 : 물길)이 지현굴곡(之玄屈曲)하여 대지(大地)의 기틀을 마련하였을 텐데 그렇지 못하여 아쉬웠다. 따라서 내당수(內堂水)를 청룡이 완전하게 역수(逆水)하지 못하였고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이곳에 들어올 때 보았듯이 가용만마(可容萬馬 : 만 마리의 말을 수용할 수 있는)의 넓은 외명당(外明堂)의 물길도 내명당의 물길과 같이 우수도좌(右水倒左)이니 아쉽다 그러나 청룡과 안산의 사이로 수구사(水口砂)(사진⑬)가 외명당을 차단하니 안심이 된다. 글에 이르기를 명당에는 내외가 있는데 내명당은 발복의 느리고 빠름을 주관하고 외명당은 발복의 크고 작음을 주관한다(明堂有內有外. 內則主發祿之遲速. 外則主發祿之大小)고 하였으니 이곳은 명당만을 놓고 본다면 소명당, 중명당, 대명당을 다 갖추었으며 각기 합법하니 발복이 빠르고 또 크다고 할 수 있겠다.
뒤로 용 쪽을 보니 좌선룡(左旋龍)이었고 명당수(明堂水)는 우선수(右旋水)로 배합이 잘 맞는다. 방위는 건외입수(乾外入首)에 건입혈맥(乾入穴脈)에 건좌손향(乾坐巽向)이며 오득손파(午得巽破)였다. 즉 양룡(陽龍)에 음향(陰向)에 양득수(陽得水)니 음양박잡(陰陽駁襍)으로 정음정양(淨陰淨陽)법에 맞지 않고 88향법으로는 수국(水局)에 절처봉생(絶處逢生) 자생향(自生向)에 당면출수(當面出水)로 불가경용(不可輕用 : 俱從天上去 ~ 不可冲犯地之 ~ 左水不可來 ~ 右水或大或長而來 ~ 百步轉攔不見蕩然直出 ~ 總之龍不眞穴不的不可亂扦 : 가벼이 사용할 수 없다. : 모두 천간자로 나가야 하고 지지를 범하면 안 되며 왼쪽 물이 오면 안 되고 오른쪽 물이 크거나 길게 와야 하며 백보전란하고 탕연직출하는 것이 보이면 안 된다. 전체적으로 용진혈적하지 않으면 함부로 천장할 수 없다.)에 해당한다.
한 수강생이 묻기를 이곳은 향법 상 절향절류(絶向絶流)라 한다는데 맞는지를 물었다. 답하기를 그 말은 요즘 사람들이 붙인 이름같고 원전을 보면 지리오결에는 자생향(自生向)에 당면 출수(當面出水)라했고 직지원진에는 자생향에 소천간출수(消天干出水)라 했으니 절향보다는 자생향이란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하였다.
또,한 수강생이 묻기를 백호쪽 오방(午方)득수(得水)가 팔살황천이 아니냐고 하기에 잠깐 설명하고자 한다. 팔살황천은 관귀효살(官鬼爻殺)로 오는 물을 꺼리고(忌來水) 향을 꺼리며(忌向) 택일에도 적용(乾山忌壬午 : 건룡(乾龍)에 임오(壬午)연월일시를 꺼림)된다. 글에서는 내룡좌산에 모두 그것을 보기를 꺼린다. 범하면 형육이 있다.(凡來龍坐山俱忌見之主犯刑戮)고 하였다. 이곳도 건룡(乾龍)에 오수래(午水來)로 황천살이다.
다시 나경의 인반중침으로 주변 사(砂)를 측정하니 제일 높은 봉우리가 백호쪽의 곤방사(坤方砂)인데 성수오행상(星宿五行上) 목성(木星)으로 왕사(旺砂)이니 발사가(撥砂歌)에 이르기를 왕사는 재록을 맡고 자손이 많다.(旺司財祿多子孫)고 하니 길(吉)하고 그 옆의 정방사(丁方砂)는 소위 삼길육수방에 남극성으로 장수를 상징하고(天星曰南極 ~ 其所主人福壽 : 천성은 남극성이라 하고 그곳은 사람의 복과 수명을 주관한다.) 성수오행상으로는 노사(奴砂)가 되니 재물을 가져다 줄 봉우리로 생각된다.(奴砂爲財帛居官得祿又和平 : 노사는 재백이 되니 벼슬하여 녹봉을 얻고 또 화평하다.) 하지만 이기(理氣) 못지않게 형기(形氣)가 중요하니 우리 수강생들은 이기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고 형세 보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어느 수강생이 어디서 보았다며 이곳이 기룡혈(騎龍穴)이냐고 묻기에 아니라고 대답하고 말하기를 기룡혈은 행룡(行龍)하는 중간에 맺히는 혈인데 이곳은 용진처(龍盡處)에 해당하는 곳이며 아마 그 말은 소명당 끝이 솟아올랐기 때문에 나온 말 같은데 그렇다고 기룡혈은 될 수 없다했다.
또, 한 수강생이 묻기를 이곳은 형국(形局)이 누에혈(臥蚕穴)이라 한다는데 맞는지 물어왔다. 답하기를 형국 즉, 갈형(喝形)은 혈장 모양뿐만 아니라 용세(龍勢)와 안산(案山) 등을 참고하여 정하는 것인데 그 말은 이곳 혈장이 누에가 누운 것처럼 보이니까 붙인 이름 같은데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한 송이 꽃봉오리로 보인다고 답했다.
끝으로 이곳의 최대 쟁점이자 특징은 조선팔대 명당에 걸 맞는지부터 짚어 보아야겠다. 물론 많은 후손의 발복으로 치자면 그럴 수도 있겠으나 진혈여부(眞穴與否)부터 판별하는 게 순서라고 본다. 진혈에는 반드시 그에 합당한 혈증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곳의 혈증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성두(星頭)에서 혈(穴)쪽으로 입혈맥 ⅔지점의 바윗돌 부근에 있는 약간의 속기 흔적과 잠시 멈춘 듯한 곳이 첫째고 그 다음으로는 혈의 백호쪽 혈장 옆으로 다소 살쪄 나온 부분(사진⑭)이 둘째고 풍만한 순전이 세 번째 혈증이 되겠는데 조선팔대 명당이라는 칭호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한 혈증이다. 왠지 허전하고 아쉬운 마음이 떠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음에 맑고 밝은 마음으로 다시 한 번 와서 보아야겠다.
2,두사충이 소점한 것으로 알려진 이인영 음택(특이한 장법) 대풍련 회장 碩礎 채 영 석
이곳 음택의 주인인 이인형(李寅馨)은 청주지역의 유생(儒生)으로, 경주이씨 30세 참판공이다. 자(字)는 문원(聞遠)이고, 호는 취은(醉隱)이다.
묘소 앞의 비석이 배위 부좌( 左)로 표기되어 지금까지 배위(配位)인 정부인(貞夫人) 순흥안씨(順興安氏, 진사 汝止의 딸)와 합장묘(合葬墓)로 알고 있었고, 특이하게 두 개의 봉분을 용미로 연결시켜 놓아, 뒤쪽의 묘소가 과연 누구의 묘소일까, 하는 궁금증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맴돌았는데, 이번 간산에서 묘소 우측에 세워진 비석의 비문을 판독한 결과 부부가 상하장(上下葬)의 용미(龍尾)로 연결되어, 뒤쪽의 묘소가 배위란 사실을 비로소 알게된 것이다.
이곳 묘소는 임진왜란 때, 원군(援軍)한 명나라 이여송의 지리 참모인 두사충(杜師忠)이 소점(所占)한 것으로 전하지만 무덤의 형기적(形氣的) 소점 방식이나, 두사충이 용사(用事)한 것으로 알려진 다른 곳의 묘소와 비교하면, 형식이나, 모양 등에서 상당부분 일탈되고 있다는 점으로 보아 두사충을 가탁(假託)했거나, 또는 훗날 후손들이 다시 손을 보면서 상당부분 변형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곳 묘역을 올라 당판을 바라보면서 대부분의 간객(看客)들이 의아하다는 모습을 짓거나, 머리를 갸우뚱거리는 것은 상하(上下)의 두 기의 묘소가 다른 곳과는 너무 대조적으로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즉, 대부분의 묘소는 뒤에서 들어오는 후룡(後龍)이나, 입수룡(入首龍), 입수도두(入首倒頭) 등을 등지고 조성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곳 묘소는 직룡으로 떨어지는 입수룡이 일군 천조지설(天造地設)의 도두(到頭)를 일탈하여 2m 정도 우측(백호방)으로 자리를 이동시켜 맥선을 잇듯이 연결하여 보토(補土)하고 사성(莎城)아래에 상하장의 봉분 두 기가 연결되듯이 조성되었다.
특이한 점은 사성 꼭지점에서 용미(龍尾)를 길게 연결하여 배위의 봉분에 닿도록 하고, 앞쪽의 부군 묘소와 배위의 묘소를 다시 용미로 이어 놓았다.
물론 묘를 조성한 후손들의 입장에서 보면 터에 합당한 법수(法數)를 동원하여 어련히 썼을까 많은 형기적(形氣的)으로 잣대를 들이미는 후학들의 경우에는 쉽게 이해하기가 어려운 난해한 장법(葬法)인 것만은 확실하다.
인위적인 도두에서 용미를 길게 연결시킨 묘소
이러한 여러 정황과 현장 사항을 감안한 필자의 상상력을 짜내어 나름대로의 장법과 관련한 소견을 피력해보고자 한다.
첫째, 우선룡(右旋龍)으로 밀고 들어오는 척봉(脊峰, 玄武峰)에서 낙맥(落脈)한 후룡(後龍)이 도두(到頭)까지 들어오는 동안 거의 변화가 전무(全無)한 직룡(直龍)이 되어, 무기룡(無氣龍)에 가깝다 보니, 천조지설의 도두에서 우측으로 맥선(脈線)을 잇듯이 보토(補土)하여 인위적인 변화로 용맥의 생동감을 불어넣고, 동시에 래룡(來龍)을 영접(迎接)하는 래팔(來八)의 지각(支脚)이 일품인 전방(前方)의 전순(氈脣)이 일군 본신안산(本身案山)에 정대(正對)한 형기적(形氣的) 장법의 하나로 추리된다.
내맥을 래팔로 받는 본신 안산의 영사가 특출나다
둘째, 천조지설의 도두아래에서 본신 안산을 향해 자좌오향(子坐午向)내지 임좌병향(壬坐丙向)으로 향(向)을 정하게 되면, 나경법의 일종인 내입수(內入首, 透地六十龍)의 향선(向線)이 임자순(壬子旬)의 퇴기맥(退氣脈)인 차착공망(差錯空亡)으로 사용이 불가(不可)한 분금상(分金上)을 통과하므로, 인위적인 도두를 조성하여 병자순(丙子旬)의 왕기맥(旺氣脈)을 수용하고자 한 이법적(理法的) 장법으로 볼 수 있다.
내입수(나경패철 투지육십룡의 왕기맥과 퇴기맥)
셋째, 도두에서 우선(右旋)으로 회전하는 당판(堂坂)을 일구다 보니(관성의 법칙 상 우측이 背가 되고 좌측이 面이 됨), 천연(天然)의 도두(到頭)에서 보면 좌측보다 우측이 넉넉한 입지를 이루게 되어 당판의 중심부에 봉분을 조성하기 위한 인위적 조정으로 볼 수 있다.
넷째, 수법(水法), 또는 의수입향(依水立向)의 88향법 등으로 향을 정한 장법으로 간주할 수 있다.
즉, 현재의 봉분 앞에서 보면 청룡자락에서 발출한 골육수(骨肉水)가 향전(向前)을 통과하여 백호 끝자락인 정미방(丁未方)으로 출수(出水)되는 자왕향(自旺向)이다.(비문을 해석해보면 이곳의 묘를 다른 장소로 移葬하기 위해 破墓를 하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번개가 내리쳐, 이장작업을 포기했다는 내용 등으로 보아, 다른 장소를 포기하고, 당판 내에서 조정하여 천장(遷葬)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섯째, 양균송이 완성시킨 도장법(倒杖法)의 하나인 철장법(綴杖法)을 응용한 사례로 볼 수 있다. 도장법에서 말하는 철(綴)이란 실로 옷을 꿰맨다는 뜻으로, 인위적으로 맥선(脈線)을 연결시켜 객토(客土)하고 맥을 꿰매듯 점철(粘綴)한다는 법수이다.
즉, 이곳도 맥을 일으키는 조종(祖宗)에 비해 낙맥(落脈)하는 내맥(來脈)이 빈약하고, 변화가 없는 무기룡(無氣龍)의 살맥(殺脈)이 되다 보니 도두 끝에서 맥선(脈線)을 우측으로 연결시켜 육지(肉地, 흙)로 보토(補土)하고, 월현(月弦, 사성)을 조성하여 당판의 우측을 이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직룡으로 떨어지는 내맥을 제어(制御)시켜, 강유(剛柔)가 서로 구제하듯 상제(相濟)되어 살기(殺氣)를 순화(醇化)하여, 화기(化氣)가 자생(自生)한다는 장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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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청주한씨 한란지묘 위치도)
(취은 이인형지묘 근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