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수부터 낚시 채비까지, 2박 3일 무인도 여행 리스트
주변에 무인도에 간다는 말을 흘리니 대략 두 가지 반응이 나온다. 하나는 “와, 무인도에서 혼자 밤을 보내는 거야? 낚시도 하고 그렇게 야생적으로”라는 대답. 뭔가 재미나고 낭만이 있지 않겠느냐는 반응이다. 두 번째는 현실적이면서 걱정하는 태도다. 혹시나 고립되는 등 위험에 처할 경우를 철저히 대비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국내 섬의 개수는 3100개 정도고, 그중 무인도는 2700여 개란 정보가 있다. 그러나 정작 갈 만한 무인도를 찾는 게 쉽지 않다. 인터넷 검색창에 ‘갈 만한 무인도’ 혹은 ‘무인도 여행’을 쳐 봐도 갈 만한 무인도는 손에 꼽을 만하다. 또 사람들이 추천하는 섬들은 ‘무인도 여행’이란 주제로 알려져 관광객의 발길이 있는 곳들이다.
기자는 ‘주사위는 던져졌다’ 식으로 무인도를 정하기로 했다. 일차 목적지는 서울에서 2시간 거리인 대부도로 정하고, 현지의 배 주인들에게 부탁해 사람이 없는 무인도에 데려다 달라고 요청할 셈이었다. 여행 일정은 2박 3일로 잡았다.
흔히 무인도는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 아니라, 사람이 거주하지 못하는 환경인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식수를 구할 수 없는 섬이 무인도일 가능성이 높다. 사람이 살지 않으니 비바람 혹은 더위를 피할 ‘집도 절도 없다’. 그만큼 무인도 여행엔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아지는 셈이다.
본격적인 무인도 여행 준비는 지난 6월 중순에 시작했다. 취사 도구 등 기본적인 등산, 캠핑 장비는 몇 해 전에 마련한 상태였고, 이번 무인도 여행을 위해 2인용 텐트와 침낭을 새로 구입했다. 텐트를 구입하면서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3대 요소, 의식주 중 ‘식’ 부분만 빼고는 대충 준비가 완료된 셈이다.
대부도로 향하는 길인 오이도 인근의 바다낚시 점포에 들러 간단한 낚시 도구와 무인도 정보를 물색했다. 바다낚시는 초보고, 무인도에 들른다는 말에 낚시점 주인이 낚시 채비 단계를 꼼꼼하게 일러 준다. 무인도에서는 낚시 장비에 이상이 생기면 혼자서 해결해야 한다. 그 까닭에 배우는 내내 머리가 예민해진다. 메모도 꼼꼼하게 했다. 낚싯대 외에 생선을 손질할 회칼도 구입했다. 무인도에서 일용할 기본 식량은 챙겨 가지만, 수렵이 빠지면 무인도 여행이 ‘팥 없는 찐빵’ 같지 않을까. 낚시 초보에게 눈 먼 생선이 잡혀 준다면 그만한 횡재도 없을 것이다.
낚시점을 나와 인근 마트에서 2박 3일간의 무인도 식량을 구입했다. 첫째 날 저녁부터 계산하면 대략 6끼 분량이 필요했다. 다음은 식량 리스트. 쌀 1kg, 장조림 2통, 닭고기 통조림 3통, 청양고추, 가지 1봉지, 매운탕용 고추장을 구입했다. 비타민을 보충할 과일은 6개짜리 키위 1봉지를 구입했다. 인스턴트 음식으로는 라면 2개, 즉석 밥 4개, 즉석 북엇국과 미역국 각 1개씩을 구입했다. 가능하면 식사는 직접 준비하고 인스턴트 음식은 피하기로 했다. 물은 8리터들이 2통과 1.8리터 생수 2통, 500ml 생수 3통을 챙겼다. 면도와 양치, 세면은 딱히 하지 않고 버틸 요량이었다.
''쌍섬''의 첫날 밤, 보다 ''야생적인'' 스케줄을 기약하다
가는 길에 일정이 조금 변경됐다. 대부도 가는 길에 있는 오이도 선착장(시화방조제)에 들러 가까운 거리에 무인도가 있는지, 더불어 배편이 있는지 알아봤다. 사람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오후 시간이라 이미 낚싯배 운항은 마감됐고, 한 시간 남짓한 거리에 무인도가 있긴 한데, 거기 데려다 줄 선장은 없을 것이란 얘기다. 그 무인도에 가려면 하루 조업을 포기해야 하고, 요즘 같은 고유가 시대엔 뱃삯도 감당 못할 정도란 대꾸다. 혼자 무인도에 간다는 외지인에게 겁을 주는 건지, 실제 혼자 타는 뱃삯이라 그리 비싼지는 모를 일이다. 한 뱃사람이 타협점을 찾아줬다. 굳이 먼 무인도에 가지 말고, 방조제에 위치한 간이 낚시점에서 운영하는 낚시 보트를 타고 쌍섬에 가 보라는 제안이다. 그러면서 손짓으로 1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노란색 트럭을 개조한 낚시 가게를 추천해 준다. 추천한 낚시점에 들러 주인장에게 쌍섬에 갈 거라고 했더니, 묵묵부답으로 미소를 짓는다. 못 갈 이유는 없다는 오케이 사인이다.
쌍섬은 낚시 보트로 10여 분 거리에 있다. 섬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 30분경. 물이 언제 찰지 모르고, 금방 비가 올 듯 날이 흐렸다. 가장 먼저 한 일은 텐트를 치는 것이었다. 과거에 텐트를 쳐 본 적은 없었고, 작은 삽으로 바닥 고르기를 하고 텐트를 치고 나니 한 시간 정도가 훌쩍 지났다. 사실 기자가 텐트를 치는 사이, 한 팀의 낚시꾼들이 섬에 들어왔다. 기자가 선점한 무인도에 낚시꾼들이 방문하니, 영역을 침범당한 기분이 들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받는 것 같아 당혹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쌍섬이 기자 소유가 아니니 내쫓을 방법은 없다. 첫째 날은 낚시꾼들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들과 별개로 나만의 생활을 하자는 자기 암시를 했다. 그러나 이 자기 암시는 저녁 식사 시간을 버티지 못했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데, 낚시꾼들이 혼자 온 기자가 안쓰러웠는지, 그동안 낚은 생선 몇 마리를 건넸고, 기자는 덥석 고맙게 생선을 받아든 것이다. 첫째 날 저녁 식탁은 직접 지은 쌀밥에 매운탕이 주 메뉴가 됐다.
사람들의 손길을 거부하는 일은 그리 쉬운 게 아니다. 저녁을 먹은 뒤에는 낚시꾼들에게 낚시하는 방법, 갯지렁이 끼우는 법 등을 배웠다. 직접 낚시를 시도했으나, 낚시 릴 조정법이 서툴러 두 차례 낚싯줄이 끊겼고, 처음 하는 수렵 생활은 난관에 부딪힌 채 중단됐다. 텐트에 돌아와 기호 식품으로 준비한 일회용 커피 믹스를 마시는 것으로 첫날 밤을 마감했다. 한편으로 낭만적인 밤이었겠다고? 커피를 마시는 사이 매섭기로 소문난 바다 모기가 수차례 기자를 물었다. 고통스런 밤이 아닐 수 없다. 시계를 보니 대략 밤 10시경. 노동이라고 해야 텐트를 치는 것과 식사 준비, 바다낚시 등이 고작인데, 의외로 몸이 피곤했다. 슬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텐트에서 듣는 빗소리는 의외로 컸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스르르 잠이 들었다.
“내일부터는 시계를 보지 말아야겠다. 일출과 일몰에 맞춰 ‘야생적’인 스케줄을 보내야겠다.”
다음 날 새벽,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잠든 기자를 깨운 건 낚시꾼들의 고함 소리였다. “물이 찼다, 빨리 대피하라.” 덜 깬 눈으로 텐트 창밖을 보니, 아뿔싸, 바닷물이 텐트 코앞에서 출렁거렸다. 긴급 상황이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정신이 번쩍 든다. 부랴부랴 해안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텐트와 짐을 옮기고 상황을 살폈다. 바닷물은 계속 밀고 들어와 텐트 이동 지역까지 위협한 뒤에야 만조가 됐다. 날짜와 시간에 따라 만조의 양이 다르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무인도 해변에 텐트를 칠 경우, 밤의 만조와 새벽의 만조 양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가장 깊숙이 물이 들어올 경우, 어디까지 들어올지를 현지인에게 묻고 또 물은 뒤 텐트 칠 장소를 결정해야 한다.
큰비는 아니지만 비가 흩뿌리는 무인도에서 조난을 당한 기자의 신세는 말 그대로 처량했다. 급하게 옮긴 텐트며 배낭, 조리 도구 등이 장마에 떠내려간 살림살이와 비슷했다. 낚시꾼이 없었다면, 바닷물이 텐트를 침범했을 것을 생각하니 위험천만한 순간이다. 위기를 넘겼다는 안도감보다는 신세 한탄이 먼저 나왔다. 도대체 몇 시쯤일까. 새벽녘은 된 듯한데, 시계를 보지 않기로 했으니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다. 무인도 여행의 낭만은 사라졌고, ‘야생성’의 기대는 생존 게임으로 바뀌었다. 새벽에 뜻하지 않은 난리를 겪고 나니, 아침을 제대로 챙겨 먹을 기운이 안 생겼다. 직접 밥 짓는 것을 포기하고, 즉석 밥과 미역국 등 간단한 인스턴트 음식으로 대신했다. 난민 신세를 겪고 나니 ‘가사’를 챙길 여력은 어렵다.
인스턴트 아침 식사를 마친 후 텐트 재정비에 들어갔다. 인근에 버려진 나무 탁자를 끌어다가 텐트 받침대로 사용한 뒤 그 위에 텐트를 재설치하고 나니 그나마 안심이 됐다. 잠깐 눈을 붙이며 부족한 잠을 채웠다. 오후 무렵 낚시꾼들은 떠났고 섬엔 기자 혼자 남았다. 혼자만의 오롯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건 다행이고, 혹시나 또 위기가 있을 경우 도와줄 손길이 없다는 건 걱정으로 남았다.
짜릿한 ''어신'' 속에 놀래미 3마리 + 우럭 1마리를 낚다
늦은 점심 뒤에는 본격적인 낚시에 들어갔다. 초보 낚시꾼에게 물리는 눈 먼 고기는 없었고, 낚싯줄은 바닥에 걸려 몇 차례 끊어졌다. 저녁 무렵이 되면서 다시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보통 만조에 고기들이 많이 몰린다. 텐트와 거리가 떨어진 바위로 자리를 옮겨 수렵을 진행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큰 기대는 없었다. 바위에서 맞는 바람이 시원했고, 기분이 좋다. 릴 대를 힘차게 던져 찌가 자리를 잡는 순간, 찌가 쑥~ 하고 들어간다. 잽싸게 릴을 감았다. 이게 ‘어신’(물고기가 입질을 할 때 낚싯대에 전달되는 느낌)이란 걸까. 설마, 설마 하는데, 놀래미가 잡혀 올라왔다. 원시 시대, 가족들의 끼니를 구하러 나간 초보 가장의 마음이랄까. 엄청난 성취감이 밀려왔다. ‘야호~’란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근 20여 분 만에 기자는 놀래미 3마리, 우럭 1마리를 낚았다. 모두 손바닥 반만한 크기. 만조 때라 그런지 고기들이 많긴 많은 것 같다. 웬만큼 궁한 낚시꾼이 아니면 다시 바다로 돌려줄 크기지만, 기자는 궁하디궁한 낚시꾼이므로 모두 포획해 매운탕의 제물로 삼았다. 둘째 날 저녁은 그렇게 스스로 잡은 제물로 만찬을 즐겼다.
늦은 밤, 썰물을 따라 조개 잡기에 나섰다. 고둥은 숱하게 많았고, 운 좋게도 큼지막한 소라 3개를 잡았다. 조그만 박달 게 새끼도 몇 마리 잡았다. 박달 게와 고둥은 야참으로 끓인 라면에 넣었고, 소라는 물에 데쳐 준비해 간 초장에 찍어 먹었다. 라면도 라면이지만, 소라 맛이 기가 막혔다.
무인도의 예상치 못한 분주함, 사색은 사치에 가깝더라
그날 밤, 텐트에 랜턴을 밝힌 뒤 준비해 간 책을 읽을 요량이었다. 책은 2권을 준비했다. 스케줄이 2박 3일이고, 무인도에서는 딱히 신경 쓸 일이 없을 테니 2권은 충분히 읽지 않을까, 계산했다. 그런데 책을 펼치니 글은 안 들어오고, 금세 잠이 쏟아진다. 그냥 몇 페이지를 넘기다 잠이 들었다.
무인도 여행을 계획하면서 기자는 많은 생각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사람과 마주칠 일이 없는 무인도라면, 혼자만의 깊은 사색이 가능할 것이란 예상을 했다. 고민이 있다면 고민을 정리할 생각을 했고, 지극한 조용함 속에서 독서의 즐거움도 맛보려 했다. 그런데 독서는 힘들었고, 사색의 시간은 없었다.
번잡한 도시가 아니고, 신경 쓸 사람들도 없는데 도대체 왜일까.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무인도는 수고롭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스스로 밥을 짓고, 음식을 마련하며 설거지를 하는 데 생각보다 시간과 품이 많이 든다. 다음 끼니를 걱정하는 일들은 분주한 노동이 된다. 이런 종류의 겪어 보지 않은 수고로움이 사람을 빨리 노곤하게 만든다. 한편으로 생체 리듬이 자연과 닮아 가는 것 같다. 해가 뜨고 지는 것에 리듬을 맞추다 보면 몸도 그에 따라 간다.
사람은 적당한 편리함이 뒷받침된 상황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사색할 시간을 갖는 게 아닐까. 매 끼니를 걱정하고, 가사 노동에 신경을 쓰고, 생존을 생각하는 환경에서 사색은 한편으로 사치에 가까운 일이다. 즉 모든 게 갖춰진 고급 호텔의 침대에서 나를 돌아볼 시간은 넉넉해도, 무인도의 텐트 안에서는 생존이 우선인 것이다.
낭만과 생존 그 사이, 쌍섬과 작별을 하다
둘째 날 밤은 깊은 잠을 못 잤다. 중간 중간 눈이 떠졌고, 텐트 창밖으로 물이 어느 정도 차 올랐는지를 파악했다. 아침의 긴급 상황이 사람을 긴장하게 만든 것이다. 다행히 다음 만조는 첫째 날보다는 얕았다. 마지막 날은 주말이었고, 낚시꾼들과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섬을 찾았다.
낚시 보트가 오기로 한 시간은 오후 4시경. 기자는 남은 먹을거리를 대부분 정리하는 늦은 아침을 챙긴 뒤 섬 탐방에 나섰다. 설거지를 마치고 나니 준비해 간 물을 거의 사용했다. 기자가 챙겨 간 물의 양은 대략 15리터 정도. 사람에게 하루 필요한 물의 양을 1리터라고 하자. 2박 3일에 식수로 4~5리터 정도를 사용했다고 계산해도, 나머지 10리터 이상은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는 데 사용한 셈이다. 무인도에서 하루를 더 묵고자 해도, 사용할 물이 없어 가능하지 못할 일이었다. 가용할 물이 없는 무인도일 경우, 물은 충분히 준비해 갈 필요가 있다.
섬 위로 오르니 이름 모를 풀들과 잡목, 갈대가 무성했다. 섬의 정상에 오르고 대충 한 바퀴를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30분 정도. 노란빛의 원추리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냈다. 어느 이름 모를 꽃줄기에서는 무당벌레를 만났다. 콩알탄 크기의 배설물이 야생 동물의 흔적을 알렸지만, 굴을 파고 산다는 야생 토끼는 만나지 못했다. 섬은 전체적으로 둥그런 모양이었고, 위치에 따라 절벽과 바다의 느낌이 달랐다. 섬 탕방을 마치고 나니 조금 더 ‘쌍섬’이란 무인도와 친해지고 ‘소통’하게 된 것 같았다.
무인도를 떠나기로 예정된 시간. 배웅을 나온 낚시점 사장님은 “그래, 할 만했느냐?”며 씨익~ 정감 어린 웃음을 날렸다. 기자는 정말 할 만했는지, 혹은 못 할 고생을 한 건지, 아리송한 감정으로 무인도와 작별 인사를 나눴다. 무인도는 ‘원시 지향의 여행’이기에, 그 느낌은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모를 일이다. 그래도 경험담을 정리하라고 하면, 낭만과 수고로움, 원시성의 매력과 원시적인 데서 오는 불편함, 그 사이에 무인도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