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 밥 !”
날이 밝으려면 아직 두어시간이 더 있어야 하지만 고3인 딸애는 벌써부터 일어나 등교 준비를 마치고 아침을 대령하란다.
매일 계속되는 아침이지만 오늘따라 침대에서 뒤척이고 픈 잡념을 떨치고 진수는 주방으로 향했다.
“오늘부터 기말고사랬지 ? 잠은 충분히 잔거니 ?”
“응, 잘 잤어. 컨디션도 좋구..이번 셤은 기대해도 좋을 것 같애...헤헤”
부지런히 토란국을 준비하던 진수는 거울 앞에서 빗단장을 하는 딸애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 보았다.
그랬다. 참 잘한 일이었다. 영등포 허름한 연립에서 살다가 이곳 김포 신도시로 이사를 들어온게 작년 이맘때였다. 구겨버린 낙서장 같은 생활이라는 아내의 말처럼 도무지 희망이라곤 없던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김포로 이사 오기를 결정하고 막상 짐을 옮기면서 진수는 두 번 놀랬다. 막연히 공항 근처가 김포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공항은 김포가 아니었다. 또 한가지는 김포 신도시가 생각보다 생활환경이 좋다는 점이었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만해도 방음시설이 워낙 잘돼서 아이들이 별도로 독서실을 다니지 않아도 조용한 분위기에서 집중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아파트가 다 그렇지 뭐..얼마나 다르려고..”생각했는데 U-City 개념을 도입한 신도시 지구내 아파트들은 정말 생활의 편리가 다 갖춰진 공간이었다. 모든 가전제품과 실내용품들은 언제 어디서든 핸드폰 하나만으로 원격 조정이 가능했다. 또한, 처음 설계 당시부터 염두에 둔 듯 시가지를 가로지르고 이리저리 조성된 수변공간은 충분한 휴식공간과 놀이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두어달 전 옆 단지는 전국 살기 좋은 아파트 공모에서 입상을 했다고 잔치를 하기도 했다.
딸애는 애써 준비한 토란국을 먹는 둥 마는 둥 뜨고는 부리나케 현관을 나섰다. 학교라야 집에서 5분거리에 있으니 아침 시간을 충분히 활용 할 수 있을 것이다. 딸애를 보내고 대충 아침을 먹은 진수는 리모컨을 찾아 TV를 켰다. 아침 뉴스에서는 남북교류 협력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는 현장을 리포터가 보여주고 있었다. 거대한 중장비들이 북한과 마주하고 있는 조강 일대의 한강하구에서 모래를 채취하고 있었다. 5년 전이던가..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과 만나 합의를 한 이래 우여곡절 끝에 올 초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이 시작되었다. 남한측에서는 김포시와 경기도가 주축이되어 자금과 장비를 대고 인력은 북한이 지원하는 형식의 합작사업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채취한 모래는 남한의 건설자재로 사용하고 일정 대금은 북한 동포들의 의식주를 해결하는데 쓰여진다고 한다.
화면은 어느새 월곶 조강리에 건설중인 김포~개풍간 연륙교 공사현장을 비추고 있었다. 저 다리가 건설되면 개성공단의 물류가 곧장 인천항과 인천공항을 통해 세계로 수출될수 있다고 젊은 리포터가 침을 튀기며 말하고 있었다.
진수는 일을 나서기 전 으례하는 것처럼 옥상으로 올랐다.
개인택시를 하는 진수는 항상 운동이 부족했고 그렇다고 휘트니스 클럽을 가기도 그렇고 해서 일 나가기 전 30분씩 옥상에서 스트레칭을 하곤 했다. 25층 아파트 꼭대기에 서면 항상 싱그러운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깔끔하게 면도한 얼굴로 바람을 맞으며 진수는 심호흡을 하고 눈 앞에 한강을 두었다.
철책이 제거된 한강변엔 벌써 많은 시민들이 아침 운동을 즐기고 있다. 아직 날씨가 풀리지 않았는데 수상 택시를 이용해 서울로 나가는 사람도 많고 그물을 걷어 올리는 어부들도 눈에 들어온다. 한때는 수도권매립지에서 오는 냄새와 지역 전체를 점령한 크고 작은 공장들로 인해 심각한 환경오염을 걱정한 적도 있다고 하는데 김포의 공기는 수도권 어떤 도시보다 맑고 깨끗했다. 한강 너머로 고양시와 파주시가 멀리 보인다. 한때는 김포가 아닌 강 건너 저곳에 둥지를 틀까도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이미 김포는 고양이나 파주에 비해 훨씬 투자가 가치가 있다고 증명되었고 새로 장만한 아파트 값도 만만치 않게 올라 있었다.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구 시가지와 고촌이 보인다.
북변동과 사우동, 풍무동은 지금 한창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처음에는 신도시와 원도심이 지나치게 불균형을 이룰 것이라고들 했다던데 지금 진행되는 재개발 규모나 속도로 보면 신도시에 비해 결코 손색이 없는 생활환경이 될 것 같다. 진수가 스트레칭을 하는 동안에도 일산대교를 이용하는 차량이 꼬리를 물고 얼마 전에 개통한 신도시 경전철은 산뜻한 스카이라인을 만들며 출근 시민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스크레칭을 마친 진수는 엘리베이터로 지하주창에 세워 둔 자신의 영업장으로 향했다. 주차장을 미끄러지듯 빠져나가는 차의 부드러운 승차감을 느끼면서 영업장을 김포로 옮기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 김포로 이사를 하고 영업장소 마저 김포로 옮긴다고 했을때 동료 기사들은 모두 반대를 했었다. 아무래도 물이 커야 손님도 많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진수는 생각이 달랐다. 서울은 이미 포화된 도시이고 김포는 새롭게 성장하는 도시이기 때문에 유동인구도 많고 경제활동도 활발해서 택시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것이 적중하고 있었다. 김포는 이미 번화한 도회지로서 손색이 없는 규모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스스로 진화하는 도시였던 것이다.
첫 손님으로부터 콜이 들어왔다. 고촌 현대아파트에서 항공산업단지까지 갈 손님이란다. 굳이 네비게이션을 켜지 않아도 가장 빠른 길은 48호 국도를 타는 일이다. 경전철이 개통 된 후 강변 고속화도로와 함께 48호국도에 몰려있던 교통량이 분산되면서 출퇴근 시간대에도 이곳 신도시에서 고촌까지는 5분이면 족하게 되었다. 더욱이, 오래전부터 교통체증의 주범으로 지목되던 신곡사거리 일대가 말끔하게 정리되어 한결 숨통이 터진 것을 매일 느끼게 된다. 손님은 항공산업단지에 근무하는 직원이었다. 아파트 단지에 택시를 대고 손님이 내려올 때까지 진수는 차에서 내려 복장을 가다듬었다. 진수는 스스로 택시기사가 아닌 사장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항상 깔끔한 제복을 입고 차 안팎을 말끔하게 청소하는 것은 기본이고 정비도 수시로 해서 늘 새 차 처럼 보이게 했다. 시에서 주관하는 서비스 친절 교육도 빠짐없이 참석해서 손님을 주인이나 왕 정도가 아니라 마치 가족처럼 대하는 자세를 늘 잊지 않고 실천했다. 손님을 태우고 목적지로 향하는 일은 항상 진수에게 행복한 시간 이다. 진수는 손님들에게 늘 주변 경치와 시설들을 설명해 주었다. 처음에는 손님들에 대한 서비스 차원에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어엿하게 지역 홍보대사로 임명될 정도로 지역의 역사와 지형, 시설에 대한 공부도 많이했다. 손님을 싣고 가는 길이 상쾌하게 느껴졌다. 넓고 깨끗한 도로는 최상의 로면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고, 차도와 인도를 구분하는 가로변 환경도 특색있고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무엇보다 인도는 자전거도로와 병행사용할 수 있었고 중간중간 나타나는 육교와 시설물들도 친근한 이야기 그림으로 단장되어 있었다. 신도시를 벗어나자 크고 작은 기업체와 농경지가 혼재된 지역이 나타난다. 그리고 문득 거대한 기계음이 들려오는 공장지대에 들어선다. 항공산업단지다. 벌써 조립을 끝낸 헬기가 줄지어 서 있고 각종 동체와 부속을 실어 나르는 지게차와 대형 크레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산업단지와 통진읍 일대에서 두어차례 손님을 더 모신 진수는 시네폴리스로 차를 몰았다. 아내는 작년에 강남에서 이사해 시네폴리스에 입주한 에니메이션 업체에서 일하고 있었다. 개봉을 한달여 앞둔 영화의 마무리 작업을 위해 벌써 사흘째 집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아내의 회사는 시네폴리스 중심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작년부터 입주가 시작된 시네폴리스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주목 받는 장소중의 하나가 되었다. 크고 작은 셋트장이 설치되고 국내외 굴지의 영화제작사와 관련업체가 입주하였으며 대형 영화관과 야외 공연장은 물론, 특히 한강변에 조성된 워터프론트는 한강을 이용한 수상 스포츠와 함께 어우러져서 수도권 젊은층이 가장 많이 찾는 장소가 되었다. 며칠 전에는 딸애의 성화에 못이겨 요즘 가장 뜨고 있는 아이돌 그룹의 공연을 보기도 했다. 내년 초에는 3차 남북정상회담을 시네폴리스 메인스트리트에 있는 “금파호텔”에서 가질 것이라는 발표도 있었다.
한강을 내려다보며 자리한 식당은 이미 손님들로 만원이었다.
아내는 야근을 한 사람 치고는 깔끔한 모습으로 식당을 들어왔다.
“애는 잘 챙겨 보낸거죠 ?” 항상 이런식이다. 남편은 나중이고 애들이 먼저다.
“응, 근데 당신은 피곤하지 않아 ? 벌써 사흘짼데...”
“힘이야 들죠...그래도 시네폴리스에서 밀려나지 않으려면 이정도는 감수해야죠..”
“하긴...충무로와 강남의 고급 인력들이 이곳에 다 몰린다니...”
아내가 좋아하는 이탈리안 칠리소스를 얹은 오리 훈제를 점심으로 먹고 진수는 강변 고속화도로를 달려 하성 전류리로 향했다.
전류리부터는 한강변을 따라 자전거 도로가 펼쳐져 있다.
대여소에서 등록을 하고 자전거를 빌린 진수는 옷을 갈아 입고 패달을 밟기 시작했다. 석탄리 주변에는 새로운 갑문식 수중보 공사가 한창이고
애기봉이 가까워지자 예술가와 연예인들이 모여 산다는 예술인촌이 멋들어지게 자리잡고 있다. 애기봉은 이미 대대적인 정비공사를 진행하고 있어 내년이면 국민관광지로 거듭난다고 한다. 대곶에 있는 덕포진 관광지와 함께 수도권 시민들의 휴식 및 관광공간으로 손색이 없을 듯 싶다.
두어시간 하이킹으로 휴식을 취한 진수는 오후 영업을 접었다.
네시에 대명항 인근 식당에서 개인택시 총회가 잡혀있기 때문이다.
김포로 영업장을 옮긴지 얼마 되지 않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활동한 덕분에 『서비스 부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었다. 오늘은 회의도 회의지만 이번에 새로 개인택시 면허를 받은 사람들에게 한시간 가량 교육을 해야 했다. 양곡을 지나 대곶으로 가는 길은 이미 4차선으로 시원하게 확장되어 있었다. 대명항은 과거 작은 물량장과 횟집 몇 개로 명맥을 이었다고 하는데 요즘은 깨끗하게 신축된 어판장과 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게 위치한 식당가, 그리고 무엇보다 3년전에 문을 연 함상공원이 또다른 명물로 자리잡고 있었다. 오늘 회의도 바로 그 함상공원에서 열리게 된다.
회의도 교육도 무난하게 진행되었다. 행사가 끝날 무렵 아내가 딸애를 데리고 왔다. 함상공원 맨 윗층에 있는 라운지에서 저녁을 했다.
초지대교와 대명항 주변이 야경으로 빛나고 있었다. 초지대교 중간에 설치한 김포 관문이 경관조명을 받아 자태를 드러낸다. 관문은 이곳 초지대교를 포함해서 모두 4군데 설치되어있다. 서울시계인 고촌과 일산대교 중간, 그리고 강화대교가 그곳이다. 시민 공모를 통해 설치된 관문은 김포의 상징이 되었다. “이 문을 통해 들어오는 사람들은 행복을 꿈꾸고 김포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행복을 실감한다.” 관문마다에 새겨진 문구이다.
첫댓글 환상을 본듯하구만 !!. 너무 사실 같이 묘사를 해서 현재 그런줄 알았어 !^^
포스트모던니즘적인 발상과 현재의 시제를 적절하게 구사한 글이 탄탄하게 구성되어 있네..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