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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冬至) 동짓날 貪程夜渡津(탐정야도진)-길 재촉하여 밤에 나루를 건너니 今日一陽新(금일일양신)-오늘이 바로 동짓날이로구나 竹籬疏映雪(죽리소영설)-대나무 울타리는 성기어 눈이 비치고 梅塢別藏春(매오별장춘)-매화나무 언덕에는 따로 봄을 감추었구나. 樓閣臨長道(루각림장도)-누각은 긴 길옆에 가까이 있는데 經過問幾人(경과문기인)-지나는 사람 몇몇이나 되는지 물어본다. 白雲看漸逈(백운간점형)-흰 구름은 바라볼수록 점차 아득히 멀어 回首暗傷眞(회수암상진)-머리 돌려보니 은근히 마음만 상하는구나! 윤회(尹淮) 한해를 보내는 동짓날은 이상히 더 추워 보이고 마음이 무거운 느낌입니다. 객지에 있는 사람들은 항상 보는 정자도 매화나무도 마음을 허전하게 합니다. 윤회(尹淮, 1380~1436)는 조선조 세종때의 이름난 문신(文臣)으로 정도전이 쓴 “고려사”를 다른 자료와 대조하여 교정할 정도로 대단한 학자 하였습니다. 유교를 국교로 하여 불교를 배척하는 건의를 올렸고. 1432년에는 세종의 명으로 팔도지리지(八道地理志-조선전기의 지리책)를 편찬하였습니다. 어려서부터 경사(經史-중국 고전인 경서(經書)와 사기(史記))에 통달하여 이름을 떨쳤습니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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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반월(詠半月) 반달을 노래함
誰斲崑山玉(수착곤산옥)-그 누가 곤륜산의 옥을 깍아서
裁成織女梳(재성직녀소)-직녀의 머리빗으로 만들었는가
牽牛離別後(견우이별후)-이별한 견우는 오지를 않아
謾擲碧空虛(만척벽공허)-기다림에 지쳐 던진 빗, 창공에 걸렸구나
황진이(黃眞伊)
황진이!
그녀는 고작 6수의 시조와 10여편의 한시를 남겼지만 한국문학에 차지한 한 자리는 매우 비중이 크다 할 수 있습니다.
위의 “반달”은 황진이의 섬세한 미적 표현감각이 발휘되고 있는 최고의 감정을 묘사한 시로서 매우 수준 높은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가람 이병기 선생은 이백과 두보에 비견될수 있는 뛰어어난 시라고 절찬하고 있습니다.
“반달”에서 떠난 임을 견우에 빗댄 직녀, 즉 자신의 상한 마음을 허공에 걸린 푸른 달로 표현했는데, 견우와 직녀는 아주 헤어지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12월 13일 한시 “동짓달 기나긴 밤” 에서는 임을 기다리는 자신을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황진이는 여인들의 일상도구인 “빗”의 모양이 달의 모양과 같다는 것에 착안(着眼)한 것입니다. 자신이 곧 직녀(織女)에 비유되고 있음을 암시(暗示)하고 이별한 견우가 오지를 않아 기다리다 지쳐 화가 나서 옥으로 만든 머리빗을 푸른 하늘에 던져버린 것이 반달이 된 것입니다.
즉 임을 보낸 여인에게 몸단장이 필요없이 푸른 하늘에 던져버린 빗이 바로 반달이기 때문에 이 시의 뛰어난 재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황진이의 “반달”의 시의 제목은 누가 뭐라 해도 뛰어남이 있습니다. 황진이는 허공에 걸린 달을 통하여 자신의 허탈한 심정을 우회적( 迂廻的)으로 표현함에 있어서 견우(牽牛)와 직녀(織女)의 고사(故事)를 당겨오고 중국 곤륜산(崑崙山)의 전설(傳說)을 끌어들여 아련한 동경(憧憬)의 대상으로써 달이 가지는 전설적(傳說的) 이미지에 또 다른정취(情趣)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재주 많고 박식하고 품위 넘치는 여인이 기생이란 천한 신분으로 취급받던 조선시대에 살았다는 것에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옥황상제의 딸 직녀는 심성이 착하고 일 잘하는 아가씨였습니다. 옥황상제는 다 큰딸이 종일 일만 하고 있는 것이 안쓰러워서 건너 마을의 총각 목동인 견우(牽牛)를 소개시켜 주고 데이트를 하도록 허락하였습니다. 그러나 어찌 알았으리!
만나자마자 이들의 눈에 불꽃이 일어나 뜨거운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을!
한번 사랑에 눈이 먼 견우와 직녀는 자연히 소를 돌보고 베 짜는 본래의 일을 등한히 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안 옥황상제는 진노하여 이들을 각각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헤어져 살 게하고, 다만 일 년에 단 하루 칠월 칠석 날만 만나라고 엄명합니다. 선남선녀가 사랑의 스파크가 일어나면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는 것인데도 무정하고 야속한 옥황상제는 이들을 생이별시킨 것입니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옥황상제의 지엄한 명을 받고 이들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요?
특히 꽃다운 직녀 아가씨가 사랑의 환희를 잃고 흘린 두 줄기 눈물은 바다가 되고, 이별의 아픔은 산을 만들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임, 견우(牽牛)가 은하수 저편으로 눈물 흘리며 떠나가자 직녀는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을 가눌 수가 없었습니다. 직녀가 던진 얼레빗이 하늘에 그대로 박혀 반달이 되었다고 황진이는 노래한 것입니다. 만고의 절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임을 떠나보낸 후 직녀의 아픈 가슴을 누가 이렇게 족집게처럼 집어낼 수 있겠습니가?
황진이는 단지 한시 20자로 그림처럼 그려냈습니다.
우리는 이 시 한 수만을 읽고도 황진이를 그리는 마음을 가눌 수 없는데 이웃집 총각이 황진이를 단 한 번보고 상사병이 나서 결국 죽음의 길 밖에 없었던 일과, 30년을 도를 닦은 지족선사(知足禪師)가 왜 목탁을 집어 던진 파계승이 되어야만 했던가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농월-
박연폭포(朴淵瀑布) 一派長川噴壑豅(일파장천분학롱)-한 줄기 긴 물줄기가 바위에서 뿜어나와 龍湫百仞水潨潨(용추백인수총총)-폭포수 백 길 넘어 물소리 우렁차다 飛泉倒瀉疑銀漢(비천도사의은한)-나는 듯 거꾸로 솟아 은하수 같고 怒瀑橫垂宛白虹(노폭횡수완백홍)-성난폭포 가로 드리우니 흰무지개 완연하다 雹亂霆馳彌洞府(박난정치미동부)-어지러운 물방울이 골짜기에 가득하니 珠舂玉碎徹晴空(주용옥쇄철청공)-구슬 방아에 부서진 옥 허공에 치솟는다 遊人莫道廬山勝(유인막도려산승)-나그네여, 여산을 말하지 말라 須識天磨冠海東(수식천마관해동)-천마산야말로 해동에서 으뜸인 것을. 황진이(黃眞伊) 참고 “나그네여, 여산을 말하지 말라”에서의 여산(驪山)은 중국 섬서성(陝西省) 서안(西安)에 있는 산으로 진시황(秦始皇)이 생전에 70만 인원을 동원해 자신의 묘소를 축조시킨 곳으로도 유명하며, 또 당(唐)나라 현종(玄宗)이 이곳 온천에 화청궁(華淸宮)을 짓고, 양귀비(楊實妃)와 더불어 사랑에 빠졌던 곳으로 중국 최고의 명소입니다. 황진이는 중국의 여산 따위를 박연폭포가 있는 천마산 앞에서 자랑하지 말라고 일침을 놓고 있습니다. ---------- 박연폭포(朴淵瀑布)는 송도(松都) 삼절(三絶)중의 하나입니다. 삼절(三絶)이란 말은 시를 잘 짓고 글씨를 잘 쓰고 그림을 잘 그리는 선비를 가리켜 칭송하는 말입니다. 삼절이라는 말의 시작은 중국 당나라 송영문(宋令文)이 문장이 뛰어나고 글씨를 잘 쓰고 힘과 용기가 있어 삼절이라 불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세종 때 안견(安堅)과 세조 때 강희안(姜希顔),등이 모두 시(詩) 서(書) 화(畵)에 뛰어나 삼절이라 불리었습니다. 지금의 개성시 박연리(朴淵里)에 있는 옛날 송도(松都:개성)에서는 학자 서화담(徐花潭), 명기(名妓) 황진이(黃眞伊), 절경(絶景) 박연폭포(朴淵瀑布)를 송도의 삼절이라 지금까지 전하여 지고 있습니다. 또한 전북(全北)에 “부안삼절”이라 하여 이매창 유희경 직소폭포가 있습니다. 박연폭포는 황진이가 자신을 포함한 송도삼절의 하나로 꼽을 정도로 사랑한 폭포입니다. 송도의 기생이었던 황진이는 이곳을 자주 찾아 폭포를 벗하여 풍류를 즐기며 그녀의 일생에 빼 놓을 수 없는 공간을 메워준 곳입니다. 드라마 “황진이”에서도 거드름 피우는 중국사신앞에서 이시를 읊어 콧대를 꺽은 장면이 나옵니다.
400년전 조선을 살다간 기생 황진이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인간이 만든 것은 더욱 그러하나니. 재미보다는 괴로움이 많고 희망보다는 허무하기만 한 이 세상, 신나게 놀다 가면 그뿐이지, 고작 90년 인생에 출세와 겉치장에 목을 빼고 있으니, 특히 요즈음 대선 후보들의 서로 물고 뜯는 작태를 보면 기생보다 못한 소인배의 뱃속을 들어내 보이고 있습니다. 그 여인의 마지막 유언, 그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애잔한 감동을 남기고 있습니다. 자신의 시신을 매장하지 말고 그냥 길거리에 버려두라고.... 『나 때문에 천하의 모든 남자들이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했으니, 내가 죽거든 내 시신을 동문 밖 모래터에 그냥 내버려 두어서 개미와 벌레들이 내 살을 뜯어먹게 하여, 천하 여인들의 본보기로 삼아라.』 황진이는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천하의 미인으로 불리던 자신도 이렇게 죽으면 그저 개미와 벌레의 밥이 되는 구차하고 초라한 인간일 뿐이라고. 그러니 괜히 어깨 힘주고 거들먹거리거나 속빈 겉치장이나 꾸밈보다는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라고... 개성 관광이 개통되었으니 언젠가는 가 볼수 있지 않겠습니가?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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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야(除夜)섣달 그믐 신응조
莫恠今朝把酒頻(막괴금조파주빈)-송년술많이 마신다고 야릇하게 생각마라
明朝七十歲華新(명조칠십세화신)-내일 아침 되고 보면 이내나이 칠십일세
夢中猶作靑年事(몽중유작청년사)-좋은 청춘 자나 간일 꿈결인양 허무한데
世上空留白髮身(세상공유백발신)-이제와선 부질없이 백발만 남았구나.
北望雲飛金厥曙(북망운비금궐서)-임계신 궁궐에는 좋은 구름 서렸으리
東來花老石樓春(동래화노석루춘)-석란에 매화 늙어 봄소식도 가까운 듯
鼓樓更罷城鴉起(고루경파성아기)-파루치자 새벽밝아 자는 새들 날개 친다
신응조(申應朝)
참고
“파루치자 새벽밝아 자는새들 날개친다”에 파루(罷漏)는 조선 시대에 서울에서 통행금지를 해제하기 위하여 새벽에 종각의 종을 서른 세 번 치던 일을 말합니다.
신응조(申應朝1804~1899)
조선 후기 고종때의 문신(文臣)으로 1882년 임오군란 후 흥선대원군에 의해 우의정과 좌의정에 올랐으며 은퇴후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습니다. 기로소(耆老所)는 조선시대에 나이가 많은 문신(文臣)을 예우(禮遇)하기 위해 설치한 국가가 설치한 복지 기관입니다. 일단 기로소에 들어가면 녹명안(錄名案)에 이름이 기록되면서 노후 대우를 받는데 기로소제목록후(耆老所題目錄後)이란 책에 조선조 임금도 태조 숙종 영조 등이 기록되어 있으며 최고령자는 현종 때의 윤경(尹絅)으로 98세였으며, 다음 숙종 때 97세의 이구원(李久源), 96세의 민형남(閔馨男) 등의 원로들이 있습니다.
-농월-
半壁殘燈照不眠(반벽잔등조불면)-깜박이는 등잔불에 잠못 이루고 夜深虛館思悽然(야심허관사처연)-밤 깊도록 빈 집에서 처연한 심사 萱堂定省今安否(훤당정성금안부)-어머님은 요사이 어떠하신지 鶴髮明朝又一年(학발명조우일년)-늙으신 몸 내일이면 또 한 해 맞는데. 윤집(尹集) 윤집(尹集1606~1637) 조선 병자호란 때 문신(文臣)으로 청나라와 화의(和議)를 적극 반대한 척화론(斥和論)자로 오달제 홍익한과 함께 삼학사(三學士)의 한 사람으로 청나라에 잡혀가서 고문을 받았으나 끝내 굴하지 않고 중국 선양 서문 밖에서 사형되었습니다. 역사는 이들 삼학사에 대하여 “국가의 정통성과 충정을 빛냈다” “아니다 국제정세의 흐름을 감안하여 청나라와 국교를 하여 나라를 보존했어야 했다”는 의견으로 양면의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한해를 마감하는 12월의 그믐에 그렇지 안 해도 마음이 허전한데 대통령 선거를 통한 국민들의 갈등이 너무 큰 상처가 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12월 19일이 내일 모레인데 과연 이번 후보자들 중에 이 나라를 5년간 마낄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있으면 누구를 선택해야 할 것인가? 이제는 절대로 전라도다, 경상도다, 우파 보수주의다, 친북좌파다, 하는 유치하고 낡아빠진 촌스러운 생각을 버리고 윤집의 한시 한수를 읽으면서 그믐밤에 깊이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농월- |
제야(除夜)섣달 그믐날 강백년 酒盡燈殘也不眠(주진등잔야불면) 밤깊도록 마셨으나 잠못이루고 曉鐘鳴後轉依然(효종명후전의연) 새벽종 울려와도 여전하구나 非關來年無今夜(비관내년무금야) 내년을 생각마라 오늘 같은 밤 다시 오지 않으니 自是人情惜去年(자시인정석거년) 가는해 만류못해 안타까워하네 강백년(姜栢年) 강백년(姜栢年, 1603~1681)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장원급제한 뒤 동부승지, 예조참판 등을 지내고 청백리(淸白吏)로 기록되었다. 강빈옥사(姜嬪獄事)가 일어나자 강빈의 억울함을 상소했다가 한때 삭직되었다. 강빈옥사(姜嬪獄事)는 남한산성의 치욕으로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갔다온 소현세자가 귀국 2개월 만에 인조와 불화관계에 있던 중에 의문으로 죽자 소현세자와 강빈 사이에 태어난 원손(元孫)이 폐위되고, 봉림대군(鳳林大君효종)이 세자로 책봉되어 강빈은 설 자리를 잃었다. 여기에 강빈과 반목하고 있던 소의(昭儀) 조씨(趙氏)의 무고로 궁중에서 일어난 인조 저주사건과 왕의 음식에 독약이 들어갔다는 사건의 배후자로 몰려 1646년 3월 사사되었다. 이 사건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강빈의 어머니와 네 형제가 처형되거나 고문으로 죽었다. 우리의 역사속에는 이처럼 권력을 중심으로 반목을 일삼아온 역사의 발자취가 많은데 지금의 대통령 선거도 역시 남을 흘뜯기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어찌하여 명색의 지도자들이 좋은 본은 버리고 나쁜 본만 받고 사는지 머르겠다. 참 통탄할 노릇이다 ! 서양 정치사의 고전인 마키아벨리가 쓴 “군주론”과 맹자의 왕도정치가이 새삼 기억되는 시대이다. -농월- |
격양가(擊壤歌)를 부르게 할 대통령은 선출 되는가?
격양가(擊壤歌)라는 말은 “땅을 치며 노래한다”는 뜻으로 중국 요(堯)나라 때의 태평세월을 구가한 노래입니다. 동양에서 역사이래로 가장 나라를 잘 다스린 임금을 요(堯), 순(舜) 임금이라 말합니다. 요 임금이 천하를 다스린 지 50년이 되었을 때, 과연 천하가 잘 다스려지고 백성들이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하고자 평민 차림으로 거리에 나섰습니다. 넓고 번화한 네거리에 이르렀을 때 아이들이 노래 부르며 놀고 있어 그 노랫소리를 유심히 들었습니다. 立我烝民(립아증민)-우리 백성들을 살게 하는 것은 莫匪爾極(막비이극)-임금의 어질고 지극함이 아닌 것이 없다 不識不知(부식부지)-느끼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면서도 順帝之則(순제지칙)-임금의 법에 따르고 있다 위의 뜻은 임금님이 인간의 본성에 따라 백성을 도리에 맞게 인도하기 때문에 백성들은 법이니 정치니 하는 것을 모르고 배우지 않아도 자연 임금님의 어질고 바른 행동과 가르침에 본을 받고 따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 임금은 다시 발길을 옮겼습니다. 한 노인이 길가에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한 손으로는 배를 두들기고 또 한 손으로는 땅바닥을 치며 장단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日出而作(일출이작)-해가 뜨면 일하고 日入而息(일입이식)-해가 지면 쉬고 鑿井而飮(착정이음)-우물 파서 마시고 耕田而食(경전이식)-밭을 갈아 먹으니 帝力于我何有哉(제력우아하유재)-임금의 덕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이 뜻은 정치의 고마움을 알게 하는 생색나는 정치보다는 정치가 있는지 없는지 전혀 느끼기조차 못하게 하는 정치가 진실로 위대한 정치라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이 노래를 그 유명한 행복에 겨워서 “땅을 치며 노래한다”는 격양가(擊壤歌)라 합니다. 이 노래를 들은 요임금은 크게 만족하여 “과시 태평세월이로다” “진실로 평화와 민주와 태평시대라 하는 것은 임금이 있는 줄 모르고 법이 존재하는 것도 모르면서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고 통치권자의 본분이구나” 하였다 하며, 그 후 중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풍년이 들어 오곡이 풍성하고 사회가 평안한 태평시대를 비유하는 말로 쓰이고 있습니다. 오늘이 대통령 뽑는 날입니다. 입후보자 전원이 상대방은 나쁘고 자기만이 올바른 대통령이 될 자격이 있다고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요(堯)임금에게는 장남인 단주(丹朱)가 있었지만 나라를 매낄 인물이 못된다하여 멀리 격리 시키고 생지부지 남인 순(舜)이 인물됨이 바르다고 하여 임금 되기를 권하니 순(舜)임금이 사양하여 말하기를 “요(堯)임금같이 큰 태양이 있는데 촞불같은 내가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고 사양하였지만 간절히 권하는 바람에 임금이 되었습니다. 순(舜) 요(堯) 같은 대통령은 바랄 수 없지만 자신의 얼굴이라도 깨끗이 씻은 사람이 당선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국민들도 자기 고향사람이라고 무조건 찍는 바보 같은 짓은 그만합시다. 정치하는 자들이 그것을 잘 이용하고 있습니다. 『누구든 죄없는 자만이 이 여자를 돌로 쳐라』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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