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승일이형
박승일형을 처음 만난 건 지난 4월말.
내 앞 침대에 계시던 분이 갑자기 퇴원하시면서 다른 병실에 있던
어떤 분이 옮겨 오셨다. 나는 누워있었기 때문에 얼굴도 잘 안 보였지만
엄청 키가 크다는 것, 그래서 침대가 모자라서 판자를 덧대어야 할 정도라는
얘길 들었다. 그 때 담당 간호사님께서 말하시길,
"형진아, 네 앞 자리에 엄청 유명한 사람 온다. 박승일 선수라고 알아?"
그것이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그 후 며칠은 검사와 재활운동 때문에 서로 이야기할 새도 없이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 어떤 선생님과 승일이형의 대화도중 나에 대한 얘기가 나온 것이다. 얘기인 즉,
어떻게 컴퓨터로 글을 쓰느냐 였는데 형은 눈동자를 이용한 '안구 마우스'로 컴퓨터를
할 수 있게 되었다고... 그걸 알게 된 건 신문에 실린 한 연세대 장애학생에 관한 기사를
보고 연락해서 물어봤다고 한다. 그리고 언젠가 그 학생을 만나서 꼭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고... 그러자 선생님께서,
"어, 그 학생이 앞에 있는 저 친구 아니에요?"
그제서야 서로를 알아본 우리들...승일이형과 형의 어머님께선 나와 엄마를 만나게 돼 너무나
기뻐하시며 찾아가 인사하고 싶으셨다며 반가워 하셨다. 나와 엄마도 이런 뜻밖에 만남에 너무도 기뻤다.
승일이형은 연세대 농구 선수였다. 졸업 후 기아자동차 농구단에 입단해 프로생활을 하다 96년 은튀 뒤 2000년에 미국유학을 떠나 국내최초로 2년 동안 코치공부를 하고 돌아오셨다.
하지만 갑자기 찾아온 병마가 그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근위축성 측삭경화증(ALS),
일명 루게릭병이 발병한 것이다. 루게릭병은 운동뉴런이 파괴되어 점차 수의근이 마비되어 모든 일상생활을 남에게 의지하게 만드는 무서운 병이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스티븐 호킹이다.
발병 후 형의 길고도 힘든 투병생활이 시작되었다. 비록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숨쉬어야하고
위에 튜브를 뚫어 식사할 정도로 힘든 상황이지만 그 어떠떤 것도 형을 꺾을 수 없었다.
형의 가족들은 신문에 난 내 기사를 보고 퀵글랜스를 알게되었고 엄마에게 전화로 물어보아 구입하게 되었다. 그 후 승일이형은 컴퓨터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쓴 글이 작년에 중앙일보에 연재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근육병환우들의 실상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게다가 형의 노력으로 정부가 근육병 환우들에게 지원하는 간병비가 오르는 등, 형이 조금 씩 세상을 바꾸는 것이었다.
얼마 안 되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승일이형과의 만남은 내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줬다. 아프고 힘든 몸이지만남에게 도움을 주고 세상을 더 좋게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승일이형은 앞으로도 계속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다.
출 처:[난 산다.]
첫댓글 승일 님도 형진 님도 큰 일을 하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