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여왕, 5월의 어느 멋진 날.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원주 나들목에서 중앙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시원한 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오고 신록은 제철을 맞아서 푸르름이 한창인 이즈음, 눈으로 산천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되고 힐링이 되는 것 같다. 평일이라서 차도 별로 없고, 한갓진 고속도로를 달리니 마음도 가볍고 눈도 몸도 즐거운 하루였다. 나는 원래가 번잡한 곳보다는 조용하고 한가로운 곳을 좋아하는 편인데, 치악휴게소는 바로 그런 곳 중의 하나다. 경부고속도로에서는 황간휴게소를 좋아하고, 대진고속도로에서는 덕유산 휴게소를 즐겨 찾으며 동해안을 끼고 갈 적에는 동해휴게소가 말 그대로 동해를 한 눈에 볼 수 있고 대체로 조용한 편이라서 아주 좋아하는 편이다. 잠시 휴게소에서 쉬면서 주변의 산세를 둘러보는 재미도 꽤 괜찮으며 깊은 산 속이라서 공기도 한결 신선하고 상쾌해서 기분이 한층 더 좋아진다. 중앙고속도로를 따라 한참을 가다가 인삼과 인견의 고장인 풍기 나들목으로 나와서 영주에 있는 부석사로 차를 몰았다.
국립공원인 소백산 자락의 봉황산 아래에 자리 잡은 부석사는 화엄종의 본찰로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유명한 사찰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제법 비탈진 도로를 20여분 걸어가면 상당이 급경사의 돌계단 몇 군데를 거쳐서 힘들게 올라가면 제일먼저 눈에 띄는 것이 부석사의 안양루다. 모든 중생의 평안을 염원하는 의미를 가진 안양루가 오랜만이라는 듯이 우리를 반겨주는 것 같고, 안양루 아래 계단을 지나서 올라가면 커다란 북이 있는 2층으로 된 높은 누각이 우뚝 솟아서 속세를 굽어보며 둥둥 울리는 북소리가 중생들을 깨우칠 것 같다. 경내로 들어와서 여기저기를 대충 둘러보고 무량수전으로 가니 큰 건물이 중생을 압도하는 듯하고 문이 열려있어서 잠시 안을 들려다보니 두어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아마 부처에게 소원을 비는 것이리라 짐작하며 나는 배흘림기둥에 기대어 보았다. 최순우 씨가 쓴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어 서서“라는 글을 생각하며 잠시 생각에 잠기어 보았다. 하지만 평범한 나로서는 높은 뜻을 헤아릴 수가 없고 다만 나도 흉내를 한 번 내보자 하는 심사로 배흘림기둥에 기대어 서서 사진도 찍고 이모저모를 살펴보았지만 건축에 대하여 문외한인 나에게는 그저 오래된 나무기둥이 배가 약간 부르다는 것 외에는 특별한 것이 눈에 띄지를 않았다. 그러나 이런 훌륭한 건물을 다시 찾아왔다는 것이 그냥 좋은 것이다. 무량수전은 국보18호로 우리나라 목조건물 중에서는 규모나 건축양식이나 예술적, 역사적 가치가 가장 뛰어난 건물로 알고 있으며 부석사의 얼굴이 바로 무량수전이라고 할 수 있다. 무량수전 앞의 작은 석등도 국보 17호로 귀한 보물을 가진 부석사는 영주를 대표하는 유명관광지 중의 하나가 되었다. 나는 사찰도 멋있지만 주변에 우람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커다란 소나무가 인상적이었다. 소나무가 100년을 지나면 몸이 뒤틀린다고 하는데 제법 뒤틀린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것을 보니 아마 수 백 년은 된 듯하고 보는 것 자체가 기분이 좋아진다.
부석사를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 길가에 앉아서 산나물을 파는 할머니에게서 큼지막한 더덕 한 묶음을 사고, 소수서원으로 차를 몰았다.
소수서원은 사적 55호로 1542년에 주세봉이 영주의 대표적인 성리학자인 안향의 사묘로 세우고 다음 해에 백운동 서원을 창건하였으며 1549년 풍기군수 이황에 의해 국가의 공식 교육기관으로 인정을 받고, 사액을 요청하여 명종 임금이 소수서원이라는 사액을 내렸다고 한다. 특이할만한 것은 대원군이 서원이 붕당의 발원지가 되어 정치적으로 많은 문제를 야기하자 전국의 서원을 폐쇄하였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폐쇄되지 않고 살아남았던 47개 서원중의 하나다. 서원은 강학당을 비롯하여 경무당과 일신제 등이 가지런히 지금도 잘 보존이 되고 있는 우리나라 서원을 대표하는 곳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수서원에는 국보111호인 회헌영정과 보물59호인 숙수사지 당간지주를 비롯하여 여러 점의 보물이 있다.
소수서원은 旣廢之學 紹而修之 ‘이미 무너진 학문을 다시 이어 닦게 했다’는 뜻으로 세워진 서원으로 강 건너 바위에는 주세봉이 안향을 존경한다는 의미를 가진 敬자의 붉은 글씨가 뭇 사람들을 지금도 깨우치는 것 같이 선명한 색깔을 지니고 있고, 바로 옆에 숲속에 외롭게 서 있는 취한대는 자연을 벗하여 학문을 하던 곳으로 이황이 터를 닦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나는 소수서원을 볼 때마다 서원의 조용한 분위기도 좋지만 주변의 멋지게 쭉쭉 뻗은 소나무와 수 백 년은 된 것 같은 은행나무를 보면 나도 모를 정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서원과 이어진 선비촌은 옛 모습은 사라지고 너무 인공적으로 재구성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루의 일정을 끝내고 평소에 문자로 주고받으며 영주 쪽으로 오면 꼭 한 번 들리라고 하던 어느 목사님이 시무하는 교회를 방문하였다. 단산면의 작은 마을에 있는 교회는 시골교회로서는 제법 규모가 있어 보였지만 교인 수는 12명 정도라니 어떻게 운영을 할까하는 걱정이 되었다. 목사님은 어려운 형편에서 교회를 지었고, 5개의 교회를 개척하였으며 건축하면서 생긴 빚을 갚기 위해서 부부가 잠은 차에서 자면서 강원도 산판에 가서 보름정도 노동을 하여 번 돈으로 300만원의 빚을 갚았고, 관의 지원으로 어린이 집도 세워서 지역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과 복음전파에 힘을 쏟을 뿐만 아니라, 요양원을 운영하면서 믿지 않는 노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때의 한없는 보람과 기쁨을 느낀 것에 대하여 한 시간 정도 목사님의 간증을 들으며 많은 은혜와 도전을 받았다. 그리고 따님이 시무하는 교회까지 가보고는 도시교회의 지도자들과는 너무나 대조적이구나 하는 생각과 책임이 무겁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목사님이 사주시는 저녁을 먹고 요양원을 방문하였다. 부석면 한적한 시골에 있는 요양원은 생각보다는 규모가 크고 시설이 잘 되어있었다. 서울에서 대학을 나온 아들이 직접 관리를 하고 주방과 목욕을 담당하는 직원이 있어서 깨끗하게 잘 정리가 되어 있었다. 역시 12명이 지내고 있으며 입소할 때 38만 원을 내면 정부의 지원으로 운영을 하는데 인원이 적어서 겨우 운영을 할 정도라고 한다. 물론 목사님은 한 푼도 받지를 못하고 봉사를 하는 것이다. 그래도 맡은 사명으로 알고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을 보니 대견하고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산체험이 많은 것을 느꼈다.
아침 일찍이 잠이 깨어서 씻고 밖으로 가서 산책을 하다가 씀박이와 머위를 몇 잎 뜯어서 들어왔는데도 시간이 너무 이르고 아무도 보이지 않는 요양원에서 기다리기가 멋쩍어서 6시경에 차를 몰고 나왔다. 막상 나와서 보니 이른 시간에 식당에 가서 아침을 먹기도 그렇고 하여 어짜피 오는 길이니까 풍기를 지나서 죽령 옛 길로 가다가 희방사를 가보기로 하였다. 그 전부터 꼭 한 번은 가봐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마음을 지니고 있었는데, 이곳까지 온 김이 가봐야 할 것 같았다. 희방사는 아는 바와 같이 훈민정음 해례본 원본, 즉 희방사본이 보존되어있는 곳이어서 이름이 난 곳이다. 7시경에 희방사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안식구는 다리가 아파서 쉬겠다고 하여 혼자서 찾아갔다. 약500m 정도 되는 짧은 길이지만 비탈이 심해서 상당히 힘이 들었다. 조금 올라가니 소백산 등산을 하는 사람들 다섯 명이 준비를 하며 인사를 하기에 답례를 하고,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고 하니 세 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였다. 절벽의 계곡에서 외줄기로 떨어지는 폭포가 멋지게 나를 반겨주었다. 28m의 폭포와 울창한 숲이 잘 조화를 이루고 신록의 5월, 아침의 신선함을 온 몸으로 마음껏 느낄 수 있었고, 산속이고 아침이라서 싸늘할 정도의 기온에 급경사를 올라가는데도 전혀 덥지가 않았다. 절은 자그마하고 특별한 것은 없었다. 다만 이런 절벽의 지형에 사람의 접근도 어려울 것 같은 곳에 어떻게 절을 지었는지, 절을 찾을 때마다 느끼는 공통된 마음이
또 들었다. 그런데 절 마당에 가서 보니 주차된 차가 있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찻길을 만들었으며 꼭 차가 올라오도록 해야 하는지 하는 기우를 하며 조용히 발길을 돌렸다.
희방사를 보고 죽령을 넘어 가는 것보다는 죽령터널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다시 돌아 나오다가 한 식당에서 순두부로 아침을 먹고, 식당 주인이 직접 농사를 지어서 파는 사과를 3만원치(35개)를 사서 트렁크에 싣고 오다가 덕평 휴게소에서 내 자켓과 티셔츠를 하나 사가지고 신선한 바람을 맞으며 아름답고 싱그러운 계절의 여왕인 5월의 끝자락을 멋지게 마무리 하였다. 2016. 5. 26~27